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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실종시대 - 기독교적 시각 -
우리는 생명윤리 실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수년 전 경춘가도에서 유흥비 몇 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가족을 무참히 죽이고 어린 딸은 살아있는 채로 생매장한 끔찍한 사건이 있은 후로 살인 공장을 차려놓고 닥치는 대로 생명을 살해한 지존파, 이들과 경쟁해 온 온보현파, 40대 여인을 염전 밭에 생매장한 막가파 등이 신문에 오르내리며 이제 웬만한 사건은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오늘 우리 역시 점차 생명 경시 풍조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암매장 당하는 소녀의 절규 속에서 우리는 낙태되는 태아의 비명을 들을 수 있으며 토막 살인된 주검을 통해 갈기갈기 찢겨진 어린 생명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한 형법학자는 이런 끔찍한 살해사건은 이미 낙태술로 오랫동안 습득되어지고 반복된 범죄의 행위가 바깥으로 표현된 사회 현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생명과 관련된 윤리 문제들―인공 유산, 여아살해, 장기매매, 안락사―등이 곧 이어 성문란과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급기야 폭력과 살인을 위시한 각종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켜서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종말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의학의 발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기술이 채 정립되기도 전에 다음 기술이 임상에 도입되면서 이를 윤리적으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험관 아기를 비롯한 불임치료, 자신의 입맛대로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타입의 정자와 난자를 살 수 있는 세상, 태아 세포 이식술,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이식, 장기수급이 부족해서 그 대책으로 등장한 뇌사문제,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의사의 안락사 시비, 복제 양으로 야기된 인간 복제논란, 모두가 의료인 한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전문적인 윤리문제들이다.
지난 1998년도는 IMF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로만 설명하려는 분위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별다른 대안을 내어놓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실직을 당한 아버지들은 거리를 방황하며,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집을 나선 주부들은 유흥가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이혼이 급증하며 아이들은 쉽사리 가출하고, 고아원과 양로원에는 버려진 아이와 노인들로 벌써 만원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어린 자식의 손가락이라도 자를 수 있고, 자신의 발도 도려낼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다. 그 와중에 세계 최초의 인간복제실험이 이 땅의 병원에서 처음으로 자행되었다. 수술실 한 편에서는 신생아를 살리기 위한 수술이 한창이고, 그 옆 방에서는 7개월 된 아기를 낙태시키는 수술이 동시에 진행된다. 실로 정신분열증의 혼돈된 사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행위 뒤에는 반드시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배경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윤리적 기준과 행위를 결정하게된다. 이 세상에는 많은 가치와 세계관이 존재하지만 다 상대적이며 변하는 것들이다. 오직 변하지 않는 절대적 기준은 성경이며 변치 않는 하나님, 성경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II. 도전받는 생명윤리
1. 위기에 처한 현대의학
이시즘에 우리가 최선의 것이라고 믿고있는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현대의학은 수치화할 수 있는 측정가능한 자료만을 치료의 기준으로 사용한다. 보다 중요한 인격적인 부분은 소외되어있는 것이다. 기쁘다거나, 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마음은 치료의 데이터로 이용되지 않고 있다.
둘째로 의학이 너무 세분화되고 미시화되어 전체를 보지 못한다. 수십가지의 전문과목으로 나뉘어지고, 각 전문과목 역시 다양한 특수과목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가령 내과도 10개의 분과로 나뉘어지고, 이 중 소화기내과라면 또 위, 식도, 간, 담도, 대장 등으로 나뉘어지고, 간 중에서도 만성간염 전공 등으로 세분화된다. 진료의 대상이 장기, 조직, 세포, 분자생물학 등으로 깊어짐으로 나무는 보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현미경적 관점과 아울러 거시적으로 몸 전체를 바라보며, 정신과 영혼, 가정과 사회, 국가, 지구환경, 온 우주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진료의 대상이어야 한다.
셋째로, 지나치게 기계중심적이다. 현대의학은 값비싼 의료장비들과 고가의 검사기구들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에는 조그마한 집에서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보면 명의가 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첨단장비들이 구비된 대형병원에 근무하며 매스컴의 각광을 받을 때 가능해진다. 이런 병원에서 수련받은 의사들은 시설이 초라한 무의촌에서는 제대로 진료를 해내지 못한다. 환자와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먼저 검사부터 시행하려는 잘못된 습관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기계화된 현대의학은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기보다는 물질적인 육체로 환자를 대하게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넷째로 이런 고가의 첨단 기계화는 병원의 대형화를 불러왔고, 대부분의 재벌이 대형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시장에 진출하여 병원은 거대한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는 자그마한 개인의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서서히 몰락하고 있으며 초대형병원은 최대의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마치 대형 슈퍼마켓이 동네 구멍가게들을 몰아내는 것과 같은 현상인 것이다. 자본시장에 의해서 의료기관도 살아남는 철저한 경제원칙만이 적용되는 현실 앞에 인술은 꼬리를 감추게 된다.
다섯째로, 다양한 치료방법이 있으나 이를 올바르게 환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 없다. 제도화된 의료마저 양방과 한방으로 나뉘어 어느 쪽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지, 함께 사용해도 되는지, 전혀 연구되어 있지 못해 환자들은 갈팡질팡하며, 기타 자연요법들을 비롯한 각종 민간요법, 대체요법들은 검증을 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치유, 신유, 죄사함의 감격, 내적 치유와 평안 등의 영적 상태가 현대의학에서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얼마전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한 신애 아이의 부모처럼 현대의학을 부정하고 무조건적 맹신과 안찰기도 만을 고집하는 극단이 있는가 하면, 신유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 자체를 부인하는 과학지상주의가 의학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대체요법의 등장을 틈타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선'이나 '기' 치료를 빙자한 의료행위를 일삼고 있으며 이는 향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과학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의료의 무속화를 가속시킬 전망이다.
2. 다가올 미래의학의 문제
미래학자 피셔는 '미래의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21세기에 일어날 의료를 예견한 바 있는데, 2003년에는 인간의 모든 염색체의 DNA염기배열이 규명되어 40억 캐릭터 이상의 유전정보를 한 장의 디스켓에 수록하는 이른바 '유전지도(Genome Project)'가 완성되며, 2006년에는 인공장기가 실용화되어 췌장, 간장, 신장 등이 인공적으로 다량 생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미 돼지나 송아지 등 다른 동물에 인간의 유전정보를 주입하여 인간의 장기를 생산해내는 기술은 임상에 부분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생명복제기술의 발달로 인간유전자복제를 통한 장기의 동물 생체내의 대량생산은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머지않아 식용이 아닌 장기공급용 돼지가 다량 사육되며, 유전자복제술을 도입해 인간장기를 복제생산함으로 매년 30만건 이상의 이종장기이식이 시술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65세이상의 인구가 2020년에는 12.5%를 넘어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게되면서 노인의 의료비용이 증대되고, 이를 감축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안락사 논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가속되어 인구의 90%이상이 도시에서 생활하게 됨으로 각종 환경문제와 정신질환들이 늘어날 것이며, 음란문화와 유흥업의 번창으로 잠시의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매매춘을 비롯한 원조교제, 비아그라문화 등의 성의 상품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개는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는데, 얼마전 자신의 신장을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판매하여 최고 입찰가가 570만 달러까지 올라갔던 예가 있을 정도이다. 인간이 TV를 만들고 컴퓨터를 고안해냈으나, 어느새 인간은 그 기계문명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대화방을 통한 청소년과 주부 및 성인들의 탈선은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각박한 개인주의와 성공지향의 경쟁사회는 자살을 5대 사인의 하나로 격상시켜 놓았다.
21세기에는 지구상에 재난이 가중되면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가 심화되어 더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또한 AIDS에 비할 수 없는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수많은 환자들이 죽어갈 것이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노화방지와 피부를 젊게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소비하는 동안 아프리카와 북한에서는 단돈 1달러짜리 수액이 없어 수천만명이 떼죽음을 당하게 될 것으로 에측된다. 과연 의학발달을 어디까지 허용해야할 것인가?
3. 대표적인 생명윤리의 실제문제들
1)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
생명윤리의 문제들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윤리적 이슈들이고, 둘째는 생명의 마지막과 연관된 윤리적 문제들, 셋째는 삶의 과정 속에 일어나는 생명윤리의 문제들이다. 최근 복제인간이 미래 인류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윤리적 논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소위 '생명공학'의 선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부와 학계, 산업계 모두 부분적 인간복제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인간복제를 금하는 법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 내용은 '생명공학육성법'이라는 이름 그대로 복제연구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인 것이다. 인간복제 대신에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배아복제'로서 마치 배아는 인간과는 구별된 존재인 듯한 착각을 통해 인간의 시작시점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닌 것이, 그동안 일년에 150만건 이상 자행되어온 낙태도 전배아, 배아, 태아 등 이러한 모호한 생명의 시작시점을 점차 확대해나가면서 인간을 살해하는 죄의식을 피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이런 태아의 발달구분은 정확히 구별되어질 수 없는 것으로 생명은 수정란 때로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시점에서 구분될 수 없는 연속선상의 존재라는 것이다.
즉, 수정란을 손쉽게 폐기처분하는 행위는 이어서 배아를 실험할 수 있는 배경을 이루며, 배아를 마음대로 실험하는 연구자에게 하루, 이틀 차이나는 태아의 실험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태아를 마음대로 낙태시킬 수 있다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영아를 살해하는 행위를 금지할 논리가 힘을 얻기 어려우며, 기형아나 중증장애아의 경우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과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생명의 시작을 수정된지 14일 이후로 연기하려는 움직임과 아울러 생명의 마지막을 심장이 멈추기 14일 이전 뇌사상태로 앞당기는 작업이 금세기에 마무리되면서 생명은 앞뒤로 각각 2주씩 줄어들게 되었고, 생명을 지키려는 일부 생명윤리전문가들은 여기에 맞서 "14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낙태와 배아실험 외에도 생식의료와 관련된 여러 윤리적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정자은행과 난자은행은 애초의 불임치료의 성격을 넘어서서 질 좋은 유전인자를 가진 정자와 난자를 판매하는 회사로 발전하고 있고, 부부관계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동성연애자들이 자녀를 가지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가정을 이루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지고 양육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가정의 파괴는 그 한계를 이미 넘어서 버린 듯하다.
성감별 역시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징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IMF경제난과 범띠해가 겹치면서 어느 지방의 경우 남녀 출생성비가 200:100을 넘어섰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가 보고된 바 있으며, 전반적으로 123:100을 넘어서는 불균형으로 유네스코는 인위적인 성감별로 인한 사회적 제문제를 관찰하는 모니터 대상국가로 한국을 선정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2) 생명의 마지막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
대표적인 문제로 안락사를 들 수 있다. 미국인 의사 커보키안은 안락사 시술 장비를 고안하여 지금까지 100여명의 환자들을 안락사시킨 바 있으며, 이들 중에는 말기 암환자 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존엄한 죽음을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의 자살을 조장하는 이러한 안락사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이라고 불리워진다. 안락사 외에도 장기확보 방안으로 마련된 뇌사입법화, 그로 야기되는 죽음의 불명확한 경계선,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 인간이 과연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 논쟁이 일고 있는 사형제도 등이 격렬한 논쟁 가운데 있다. 안락사의 대안으로 등장한 호스피스가 최근 많이 확산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죽음의 권리를 찾으려는 안락사의 거대한 물결에 비하면 아직은 작은 움직임일 따름이다.
3) 생명기간 중에 야기되는 윤리적 문제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은 기존의 개념들을 쉽사리 허물어버리게 된다. 과거에는 머리가 좋은 아이나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을 천부적인 것으로 인정해 왔으나,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인위적 유전자조작으로 IQ가 뛰어난 원숭이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공부시키기보다는 유전자조작으로 뇌를 개조시키는 편이 더 쉬워지게 되어 학습의 근본적 개념이 흔들릴 전망이다.
지난 8월 29일자 영국일간지 The Sunday Times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의 로버트 화이트박사에 의해 침팬지에서 세계최초의 뇌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고 한다. 이식할 뇌를 섭씨 10도 이하에서 보존시킨 후 뇌전체를 뇌조직 손상없이 이식하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얼마전 원숭이 두 마리의 머리 몸통 교환수술 성공에 이어 이러한 뇌이식 성공은 인간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존엄성의 기반이 허물어져 내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뇌에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몸통에 '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지, 과연 영혼은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 등의 끝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얼마전 고아원에서 행해진 백신주사제의 안정성 실험은 본인이나 보호자의 동의없이 행해진 점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지금도 상당수의 임상실험들이 본인의 동의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국내 기독교 생명윤리운동의 형황과 전망
1)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의 역사
1884년, 의사 알렌에 의해 서양의학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래 의료윤리는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삶과 연관되어 실천윤리가 강조되었다. 더욱이 해방 후 6.25전쟁으로 도처에 부상자와 고아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의료선교사 뿐 아니라, 장기려 박사를 비롯한 기독의료인들이 병원을 설립하고 인술을 베풀었던 것이 국내 생명윤리운동의 시초로 볼 수 있으며, 이렇게 시작된 병원들~ 부산복음(고신 의료원), 구호, 침례, 위생병원, 인천기독, 원주기독 등~에 이어 최초의 의료보험인 청십자보험이 태동하여 가난한 이웃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60년 봄, 장기려 박사를 중심으로 부산에서 기독봉사회가 창립되어 행려 환자들과 극빈 환자를 돌보기 시작하였고, 1965년 5월 4일 서울에서는 이화여대의 이명수 교수를 중심으로 기독의사회가 창립되었으며, 이후로부터 수양회 주제로 의료윤리가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나 생명윤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보다는 기독교인의사가 지녀야 할 실천윤리를 많이 강조하였다. 그 예로 장기려 박사는 다음의 다섯 가지 덕목을 기독의사가 가져야 할 윤리상으로 제시하였다. 첫째, 기독의사는 인격을 소중히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둘째, 사랑의 동기로 의료활동을 해야 한다. 셋째, 환자의 육체적 질병 뿐 아니라 환자의 전 인격과 환경까지 돌보아야 한다. 넷째, 기독의사는 교육, 연구, 분주함 등 어떠한 이유가 있어도 주위사람을 돌보는 긍휼의 책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기독의사는 환자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19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가족계획사업이 국가정책으로 확대되면서, 1972년 유신정권은 낙태를 합법화하는 모자보건법을 통과시켰던 바, 가톨릭에서는 1973년 이를 반대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시작된 데 반해 기독의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오히려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그리스도와 의료'지에 낙태를 두둔하는 글들이 게재되었던 사실은 생명윤리에 관한 기독의사회의 오점이라고 생각된다.
1980년 시작된 한국누가회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들의 영적 성장, 의대생들의 기독학생운동, 의료윤리연구, 국내외 의료봉사를 목표로 창립되어 수련회의 선택식 특강과 '누가들의 세계'지를 통하여 의료윤리문제를 다루어 왔다. 1987년 학술윤리부가 발족되면서 정기적인 학술윤리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생명윤리 스터리그룹이 시작되어 월1회 기독교의료윤리의 총론과 각론을 연구하고 토의하였다.
이즈음에 가장 뜨겁게 논의된 주제는 인공유산의 문제였던 바, 당시 반낙태활동을 독자적으로 벌이던 새생명사랑회, IVF의 생명을 아끼는 모임, 목산교회, 한국누가회, 기독교실천윤리운동(기윤실)이 함께 모여 1994년 4월 26일 낙태반대운동연합(낙반연: 대표 김일수)을 결성하게 되었으며, 낙태를 합법화하는 개정형법에 반대한 1만명 서명서의 국회제출과 침묵시위 등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34개 기독교단체와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사역의 배경에는 70~80년대의 인권탄압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시민의식과 기독교계내의 자기반성으로 87년 출발된 기윤실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낙태문제 이외에도 올바른 기독의료인의 윤리상을 정립하기 위하여 기독청년의료인회, 기독간호사회, 한국누가회와 함께 기독의료인 윤리강령을 제정 선포하였다. 기윤실과 낙반연의 연합사역은 초교파적인 기독교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생각되며 생명윤리운동의 범시민참여에 앞으로도 지대한 공헌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의 현황
1995년 11월, 기독의사회와 한국누가회가 연합으로 생명의료윤리연구회를 구성하여 월1회 정기모임을 현재까지 갖고 있으며, 서울의대의 박재형 교수외 13인이 공동으로 미국기독의사회의 "의료윤리의 새로운 문제들"이라는 신간을 번역 출판하였다. 이 연구회는 서울대학병원 내 함춘 기독봉사관에 생명윤리연구소를 설립했고 많은 기독의료인들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기독의사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누가회와 기독간호사회가 함께 참여해온 한, 중, 일 기독의료인 교환대회는 매년 여름 3개국을 순회하면서 20여 년 간 개최되어 왔으며, 의료윤리가 대회 주제로 자주 채택되어 다른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3개국 사이의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의료윤리에 관한 국제학술대회에 소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해외의 생명윤리센타에 장단기로 연수를 다녀오는 의사들도 늘고 있다. 얼마 전 아주의대가 주최한 한, 중, 일 의대생 인성교육 및 의료윤리학술대회는 생명윤리분야의 국제화의 첫 시도라 생각되며 계속적인 발전을 기대해본다.
우리 나라 의과대학에서의 의료윤리교육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며, 연세대가 1987년 김일순 교수를 중심으로 의료윤리강좌를 개설하였고, 이어서 3권의 자료집을 출간한 바 있으며, 가톨릭대는 의사이며 신부인 김중호 교수가 1989년부터 의료윤리강의를 맡아오고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 다른 의대에서는 아직도 의학개론수준에서 의료윤리를 다루고 있으며, 그나마 강의가 개설되지 못한 대학들이 태반인 실정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97년 11월, 울산의대 홍창기교수와 가톨릭대 맹광호 교수를 중심으로 의료윤리교육학회가 창립되었고, 보건복지부에서도 대학에서의 의료윤리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무척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라 여겨진다.
신학대학에서의 생명윤리연구 역시 첫걸음을 내딛는 정도지만 장신대의 맹용길 교수가 1987년 생명의료윤리 교과서를 발간함으로 기독교의료윤리의 신학적 기초를 다졌으며, 가톨릭신학대가 1991년 생명윤리강의를 개설하였고, 고신대는 1991년 고신의대와 함께 의료윤리강좌를 개설하기 시작하였고, 합신대는 최근 귀국하신 송인규 교수가 의료윤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총신대는 아직도 독립적인 강좌 없이 학생회 주최의 의료윤리세미나 개최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생명윤리운동 역시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예비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명윤리강좌는 무척 중요하며, 생명윤리운동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는 측면에서도 더욱 활성화되어야할 영역이라 여겨진다.
일반대학에서의 생명윤리연구는 더더욱 미미한 정도로 철학과 교수 중 의료윤리분야로 국내외에서 학위를 취득하신 몇몇 교수들~ 김영진(인하대), 김형철(연세대), 구영모(서울대), 임종식(성균관대), 김상득(서울교대) 등~에 의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최근 젊은 철학도들을 중심으로 생명윤리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바 미래가 밝을 것으로 전망된다. 1997년도에 철학, 생명공학, 환경, 의학 전문가들이 총망라되어 '생명윤리학회'를 창립하게 된 것은 생명윤리의 학문적 첫걸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계열에서도 고려대의 김일수교수가 생명윤리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고대 법의학교실의 문국진 명예 교수, 이준상 교수를 비롯한 여러 변호사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 외 유전공학과 관련하여 첨단의학분야의 여러 교수들이 의료윤리에 관심을 가지는 바, 지난 97년 4월 아산재단이 개최한 복제인간 심포지엄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3)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의 21세기 전망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의학은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며,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괴이한 실험들과 새로운 시술의 개발로 예측 불허한 생명윤리의 문제가 분출될 것이 명백하다. 또한 이러한 유전공학의 발달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기업이 생기기 마련이며, 이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 병원마다 의료윤리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며, 대학마다 의료윤리학교실이나 생명윤리연구소 설립의 붐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각 연구소간의 입장 차이가 두드러질 것이며, 이의 조정을 표방하는 관련학회들이 창립되며, 국제적인 세미나와 정보교류가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계 내에서도 의료일원화를 둘러싼 의사, 한의사 간의 갈등, 한의사, 약사와의 갈등,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 약사의 갈등이 표출될 것이며, 시장경제이론으로 의료를 독점해 나가는 재벌병원과 취약한 중소병원 사이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개방으로 인해 외국병원들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고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한 환자들의 인식의 변화와 권리 주장으로 의료구조의 획기적인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며, 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의료인들의 갈등이 윤리적인 문제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BC 350년경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직도 유용한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에 걸맞은 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 하나의 직업인으로서의 의사일 것인지? 아니면 성직자와도 같이 인술의 사도로 남아야 할 것인지? 극도의 개인주의와 공리주의는 의사들의 직업관과 소명의식에 일대 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의사와 환자 사이의 기대감의 괴리는 쉽게 극복되지 못하는 숙제로 남을 것이다.
일반시민들의 인식변화와 권리요구증대는 활발한 시민운동으로 표출될 것이며, 생명윤리운동도 보다 전문화되어 각 이슈별로 새로운 연합이 시도될 것으로 기대되며, 지방자치제에 힘입어 각 지역마다 독창적인 생명윤리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각 학회 차원에서의 생명윤리운동이 활성화되어 미국에서의 반 낙태산부인과 의사회같은 전문집단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며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연합적인 생명윤리운동이 환경운동처럼 국경을 초월해 가속화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윤리의 전문가들이 급격히 증가해서 각 대학이나 대규모 종합병원에는 의료윤리전문가가 반드시 고용되도록 제도화될 것이며, 많은 관련학도들~ 의학, 간호학, 신학, 철학, 법학 등~이 국내외의 대학에서 전문가로서의 교육과정(M.A., Ph.D.)을 밟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교회가 올바른 의료윤리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여지가 많으며, 젊은 기독지성인들과 기독교학문단체―기독교대학 설립 동역회, 기독교학문연구회, 창조 과학회, 라브리 등―가 앞장서서 이 부문의 성경적, 학문적 기초를 확립하는데 전력할 것이며 연합적인 학술대회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누가회와 기독의사회의 뜻 있는 회원들은 이 사역에 흔쾌히 뛰어들어 다가올 21세기의 대변혁을 차분히 준비함으로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III. 나오는 말
이제 한 달이 채 못되어 새로운 밀레니움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새로운 천년대는 과거 그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 처할 것이며, 그 어떤 미래학자도 예언하기 힘든 예측불가능의 시대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의 접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신론과 무신론, 창조론과 진화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기독교적 관점과 세속적 관점, 성경과 과학주의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심해질 것 만큼은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세계관의 전쟁이며 신앙의 싸움터가 될 것이다. 인간복제와 유전자조작은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앙의 문제이며, 윤리적 잇슈라기보다는 영적인 쟁점인 셈이다.
새로운 천년에서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공중권세 잡은 자들, 사탄의 세력들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신앙적 재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사랑하고 새명을 소중히 여기는 모든 교회와 기독교지성인, 단체들은 전열을 가다듬어 인류의 마지막 위대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생명연대를 형성하여야 한다.
육체적 생명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생명의 주인이시며 연약한 태아의 생명으로 친히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명을 끝까지 수호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모두는 '생명지기'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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