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워싱턴DC까지 승용차로 가려면 너무 먼 거리입니다. 장시간 힘들게 운전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박목사님과 저는 길을 나섰습니다. 유학중인 박영실 목사님(총신신대원 교수)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런 정도의 시간이라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1981년에 총신을 졸업하고 광주에 동산교회를 개척했을 때 그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총각집사로 임명을 받고 유년주일학교 부장집사를 맡았던 동역자. 미국으로 떠난지 몇 해 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파김치와 김밥을 준비했습니다.
박목사님이 한국에 있을 때 좋아했다며 제 아내가 담가준 김치였고, 박목사님 사모님이 준비한 김밥이었습니다. 밤새워 가야하는 길이니, 가는 길에 김밥에 그 맛있는 고향 김치를 먹을 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최재휴 형제도 동행했습니다. 시카고 시내를 빠져나가면서 손가락 젓가락으로 김치와 김밥을 먹었습니다. 경찰 검문이라도 받으면 냄새가 날가싶어 문을 열고 냄새를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복사해 간 찬양을 내놓았습니다.
참으로 많은일 있었지요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그러나 나의맘 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넘치네
슬픈일도 있었구요 괴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의맘속에는 언제나 감사함 넘치네
친구여 오세요 예수님 품으로 그모습 그대로
거듭난 인생이 아닌가...
찬양을 하는데 눈물이 자꾸 자꾸 흘렀습니다.
나도 박목사님도 재휴 형제도 울었습니다. 미국에서 신학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하고있지만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겪었을 어려웠던 일들. 아내와 자녀들 앞에 약한 사람으로 보여질까싶어 가장답게 가장(?)해야 했던 수많은 일들.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냈던 모교회 목사님을 만나니 마음에 쌓였던 것들이 봇물처럼 터졌을 것입니다. 그 찬송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서 성장한 몇 분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해 겨울.
우리들의 오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도고온천에서 하룻밤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촛불을 켜고 기타에 맞춰 찬양하며 기도하던 그 밤에 선배인 나는 저들의 고생을 훤히 내다보며 격려 했고, 젊은이들은 주의 종으로 겪어야할 광야훈련을 결단했습니다. 촛불에 비춰진 얼굴들은 눈물범벅이었습니다. 그 때 불렀던 그 찬양 악보를 가져갔던 것입니다.
박목사님이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에서 공부하면서
가족이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그 시기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힘들고 어려울 때면 목사님과 함께 지리산 등산을 추억합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빵빵한 배낭을 짊어지고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던 돌계단.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숨이 차는 가파른 길을 애써 외면하고 발길이 닿은 길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크고 작은 돌을 하나하나 밟고 오르고 또 오르니 노고단이었습니다. 시원한 산바람에 땀을 닦았습니다. 목사님. 묵묵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 길이 힘들었습니다.
계단과 돌길을 두 시간이 넘게 걸으면 엄청 지쳐버렸습니다. 매년 지리산을 가지만 그 길은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금년 여름 어느 날. 나 혼자 화엄사 계곡을 찾았습니다. 비교적 등산객이 적어서 자연풍광을 즐기기에 좋은 곳입니다. 화엄사 위쪽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대구에서 왔다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길을 안내해주다가 그와 길동무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20년 전에 걸었던 그 길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역시 그 길이 제게는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두 시간이 넘어서야 눈썹바위에 이르고 조금 더 올라 노고단 아래 큰 길에 도착했습니다. 땀을 닦고 핸드폰으로 박영실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박목사님, 노고단 돌계단. 그 길 있지 않아? 나 오늘 그길 올라왔어. 확실히 징하구만. 당신이랑 와야하는데...’ 하며 ‘허- 허- ’ 웃었습니다.
종종 당일치기로 지리산에 다녀옵니다.
성삼재에 차를 세워두고 노고단을 지나 임걸령 샘터까지 다녀옵니다. 옹달샘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을 쪽박으로 마시면 뱃속까지 시원합니다. 생기가 회복되고 마음까지 시원합니다. 나무 아래 앉으면 굽이굽이 흘러가며 농사를 지어주고 어부들을 품어주는 섬진강이 보이고, 시원한 바람은 세속에 더러워진 마음까지 씻어줍니다. 외로운 산마루에 피어있는 원추리꽃이 깨끗합니다.
천왕봉 1915미터에서 역사를 회고합니다.
1907년으로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심령부흥운동과 1915년 일제의 기독교교육 대폭제한까지를 생각나게 하는 숫자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지리산. 나도 오염되지 않은 목사이고 싶습니다. 지리산 산행은 이래저래 유익했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