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디오테이프 ‘카르멘’
1985년도 여름, 두 아들을 대동하고 와이프와 함께 파리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오랜 중동생활 덕분에 파리 시내 여행은 업무상이나 개인 여행으로 여러 차례 와본 경험이 있어, 나는 가이드 없이 식구를 이곳저곳 자랑스레 안내하면서, 가장의 위신을 한 끗 세우고 있었다. 그래도 집사람과는 두 번의 자식들과 같이 한 여행을 합쳐 네 번째 해외여행이니, 당시만 해도 가족과 함께하기는 힘든 유럽 여행이 오랜 세월 가족과 떨어진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날은 완전 가족만의 자유 시간으로 다른 투어 코-스 도 예약 해 두지 않고 샹드리제 거리를 거닐며 기념품이라도 하나씩 쇼핑할 예정이다.
유행에 앞서가는 최고급 상품이라도 살펴보면 어울리지도 않고, 값이 엄두를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귀국 시 세관 문제를 떠 올리면 외면 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명품이라도 살라치면 오히려 지금까지 머물다 온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도시 백화점 가격보다 비싸다. 그곳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부분의 수입 상품을 면세 화하고 있어, 선진 유명 브랜드 상품은 빠진 것 없이 가격 경쟁 각축전을 벌리고 있어서 그렇다고 알고 있다. 우리 일행은 쇼핑 대상을 각기 고르지도 못 하고 윈도우 아이 쇼핑만 하며 배회하고 있든 중 아이들이 먼저 각종 음악이나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상점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 유럽은 모두 PAL 시스템 테이프 뿐 이어서 살게 없어”
내가 먼저 아는 체하고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우디 현지에서 무수히 경험해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비디오테이프는 일찍이 일본과 미국의 NTSC TV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유럽의 TV기기에 맞춘 비디오테이프를 한국에서 틀어도 볼 수 없다.
그뿐 아니다. 당시에 비디오테이프의 선두 주자인 일본의 SONY 사가 테이프 규격을 베타막스 사이즈로 정해놓고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면서 우리나라의 비디오 기기는 NTSC방식의 베타 규격에 맞도록 제작되었다.
자연히 한국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고르기 위해서 비디오테이프는 NTSC방식의 베타막스 규격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유럽의 회사들과 다른 일본회사들이 SONY의 횡포를 벗어나기 위해 테이프 규격을 VHC 타입으로 정해놓고 경쟁한 결과, 대부분의 새로 나온 테이프는 양적으로 VHC 규격과 PAL시스템 테이프가 우세해 졌다.
차츰 세계 소비자들은 VHC규격의 비디오 기기로 바꾸면서 NTSC와 PAL시스템 혼용 가능한 테이프가 양산되었다.
몇 차례 유럽 여행에서 고국에 보내려 NTSC방식의 베타막스 규격의 테이프를 구입 해 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오늘도 의례 그러하리라고 여기며 쇼윈도를 들여다 본 순간 ‘앗’하고 탄성을 질렀다.
쇼윈도 샘플 박스에 전시된 여러 개의 테이프 중에서 딱 한 개가 베타 사이즈로 “비제-카르멘”이라고 오페라 이름이 쓰인 비디오테이프가 아닌가!
객지에서 좋아하든 클래식 LP판을 사 모으다, 카세트테이프의 성능이 좋아 지면서, 한 동안 열심히 그것도 독일 그라마폰 사나, 데카, 혹은 네덜란드의 필립 사 에서 양산되는 속칭 오리지널 카세트테이프 사 모으기 열을 올릴 때, 이미 테이프는 영화 필름을 대신 할 수 있는 영상 오디오 테이프시대로 접어들고, 여기에 영상을 넣은 음악이나 뮤지컬 공연 실황을 비롯하여, 단순 오케스트라와 유명 오페라 공연실황을 녹음 상영한 것과 더불어, 관련 볼거리 영상을 삽입한 음악 비디오테이프가 줄을 이어 음악 애호가를 유혹했다.
자연히 나는 영상이 들어 있는 클래식 모음곡이나 공연 실황이라도 영상과 함께 녹음된 오페라 곡을 찾고 다녔다.
오페라 공연은 대학시절부터 운 좋게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아타)와 푸치니의 라 보엠 을 비롯하여 그 후에 나비부인, 등의 공연을 볼 기회를 몇 번 만들었으며, 틈틈이 사둔 오페라 해설집과 LP판의 사진 설명 등으로 곡을 익히며 여가 시간을 즐겨 왔던 탓으로, 비디오테이프 구입 일 순위는 새로 나온 오페라 비디오테이프 이였든 시기에, 그것도 가족과의 파리 여행지에서 쇼핑거리를 찾아 배회 할 때 규격에 맞는 테이프를 발견 하였으니 무척 반가웠다.
“카르멘” 오페라는 그 유명한 서곡을 비롯하여,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 등 우리가 가장 귀에 익은 감미로운 아리아 선율이 많을 뿐 아니라, 비제의 “칼멘 조곡”이라는 이름으로 카르멘 오페라에 나오는 각종 서곡 간주곡과 아리아의 선율들을 기악곡으로 편집 수록하여 별도의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로 공급되어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황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고 공연 녹화 비디오테이프 관람도 당시에는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카르멘 스토리를 현대 사회의 것으로 변조한 영화 필름은 본 일이 있었지만 중간 중간 귀에 익은 효과 음향 이외에 음악 감상용은 아니었다.
내 손에 잡힌 Beta Hi-Fi Sterio라고 마크가 있는 테이프에는
RCA TRIUMPH FILMS PRESENTS
BIZET’S CARMEN A film by FRANCESCO ROSI
PLACIDO DOMINGO, JULIA MIGENES JOHNSON
이라고 쓰여 있다.
“이 테이프는 NTSC 시스템이 확실 합니까?
나이 많아 보이는 여 점원에게 다가가 던진 첫 마디다. 다행이 점원은 영어에 능통하다.
값을 물어보니 무척 비싸다. 달리 전시 된 것의 몇 배가 된다.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물어 봤다.
“ 이것은 미국서 특별 수입한 오리지널 테이프로 이곳에 수입품은 다른 것 보다 원래 값이 비싸다. 관광객 중에서 찾는 사람이 있어 틀별 주문 한 것인데 그나마 전시된 그것 하나뿐이다.”
설명을 들은 나는 두 말 않고 구입했다.
정황을 모르는 막내가 그 많은 테이프 중에 어린이 만하도 하나 같이 사달란다. 한국 가서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이해불능이다. 호통을 치고 어머니가 달래고 수습은 되었으나 이 테이프를 사는 기억이 잊을 수 없이 오래 간직된 이유기도 하다. 가족의 파리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여기서 접겠다.
테이프를 틀어본 나는 아연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면부터 강열한 색깔의 투우장 실황이 나오면서 유명한 서곡이 하이파이 스테리오 로 귀청을 때리는데 이 필름은 무대에서 상영한 단순 오페라 실황을 녹화한 것이 아니다. 야외 현지 촬영한 영화라고 봐야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음악은 카르멘 가곡에 충실이 따르면서 스토리를 현장 야외무대로 한 것은 물론 서곡, 간주곡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스페인 토속 풍경에 집시의 생활상하며 많은 출연진의 명연기는 어느 영화에 못하지 않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 뿐 아니다. 주인공들의 명창이나 조연들의 합창곡이 감미롭게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 여 주인공 카르멘으로 분장한 Julia Migenes의 연기는 혀를 내 두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요염한 춤 솜씨와 강열한 표정은 절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생각 되었다.
허벅지를 내 보이며 엉덩이를 내 두르고, 집시의 바람기를 온몸으로 표출하며 남자 주인공 호세(도밍고 분)를 유혹하는 ‘하바네라“는 이 필름이 아니면 그 진가를 알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돈 호세와 고향 어머니가 보낸 처녀 미카엘라 와 같이 부른 이중창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험준한 산길의 밀무역 아지트는 무대에서는 결코 표출 할 수없는 분위기를 보여줌은 물론 끝 무렵의 스페인 투우 장면 실황을 깃들인 것은 카르멘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훗날 다른 종류의 카르멘 영상 테이프를 봤지만 내가 구입한 것과는 비교 할 수 없이 관심 밖이 되면서 서울 집에 보관토록 했으며 그 후로는 다른 종류의 오페라 비디오테이프도 가급적이면 현지 야외 촬영의 것을 구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때부터 레이저 LP DISC 가 선을 보이기 때문에 마침 미국 유럽 등지에서 레이저 DISC 사 모으기 시작하여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푸치니의 “토스카’ ‘나비부인’ 등 여러 장의 현지 야외 촬영 오페라와 영상 음악 레저 LP판을 수집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레이저 DISC 영상 시대는 너무나 짧게 끝나고, DVD 가 그 편리성 때문에 음향기기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게 되고, 숫제 신형 TV세트를 구입 할 때는 비디오테이프와 DVD카세트를 볼 수 있는 비디오 기기가 필수로 첨가하게 되면서, 화면과 음향은 점점 질이 좋아졌다.
중동생활을 청산한 후 90년대 들면서, 내가 구입한 카르멘 테이프는 불행하게도 지하실 습기 많은 방에 방치 했다가 훼손시키고 말았다. 이것도 분명히 DVD로 재생되었을 것으로 믿고 백방으로 알아 봤으나 국내에서는 불가했다. 결국 미국의 인터넷 음반 공급처에 주문하여 DVD판으로 라 트라비아타 판과 함께 구입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카르멘 판만은 국내 비디오 기기로는 재생 할 수가 없다. 특허, 판권문제라고 했다. 할 수없이 용산 전자 상가에 신세를 지고 오디오 기기를 변조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카르멘 DVD 영상이나 음악도 음원거래법상의 문제로 인터넷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다른 현지 야외 촬영 오페라 DVD들도 무대 실황 복사 한 것보다는 극적이고 재미를 더 해주기는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이 카르멘 영상만큼 내 마음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작곡가 비제의 100주년을 맞이하여 카르멘의 오페라가 그 진가가 크게 상향되는 추세라고 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인기도 일위인 모양이다. 그래서 이 테이프를 홈피라도 소개 해 보고 싶지만 내 실력으로는 불가 하고, 보다 전문가 친구가 대신해서 이 영상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며 이 이야기는 끝을 내겠다.
아래사진은 미국아마존 보급사에서 구입한 DVD 카르멘 표지사진이다.


첫댓글 마에스트로 월주형! 감명 깊게 읽었읍니다.
越洲형, 한 마디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군요. 현대 오디오의 변천사까지 들려 주시니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사리게 해 주시네요. 아마 레이저CD는 현제 사용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무 짧은 순간이었고 DVD와 CD시대로 금방 바뀌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예송형, 미안합니다 제가 말한 레이저CD는 DVD를 의미 한 것 임니다. 수정 했으니 양해 하십시요. 아마추어가 들은 풍얼로 말하다보니 실수 연발 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