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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둘째 종합: 이접적 종합 또는 등록의 생산]
앙티-외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
-들뢰즈와 가타리, 최명관, 민음사, 1994(원 1972) 608쪽.
- Deleuze et Guattari,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Minuit, 1972, p. 494.
제1장 욕망하는 기계들 Les machines désirantes 7- [몸의 기능]
1 욕망하는 생산(La production désirantes, 7-15, 15-. [자연-생산]
2. 기관들 없는 신체 Le corps sans organes - 15-22 (번 25-)
[자본의 생산=산업], [자연-산업],
* 이 반생산은 §2의 소제목으로 적당하다. 자세히 보니 편집자의 실수 인 것 같다. 반생산은 마지막 단락의 주제이다. 그래서 우리가 단락제목(sous-titre)을 단락에 맞게 재배치한다.
** 기관 없는 신체에 대립되는 충만된 신체가 있다. 이 충만체에는 땅, 전제정, 자본들이 속한다. 이 자본은 사회체(socius)의 한 한 표출된 표면의 모습이다. 사회체의 다양한 형식의 변형과정에서, 원시 사회는 땅으로, 고대 국가에서 전제정으로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자본으로 등장한다. 맑스는 이[사회체]에 관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이것[충만체]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고, 노동의 자연적 또는 신적 전제[가정]로서 나타난다. 이것은 이 때문에 생산력들 그 자체들에 스스로 대립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생산작업에 덮치며, 생산력들과 생산인자들이 분배되는표면을 구성한다. (40LKD)
반(反) 생산은 자연 생산과 다른 방식일 것이다. 마치 엔트로피의 역행처럼, 반생산은 평준화와 반대로, 제 각각이 자기 할당(몫)이 있듯이, 생명체 또는 사회체의 특이성들의 총체성은 반생산을 할 수 있다. 기존 생산이 정해진 방식과 방향 그리고 고정된 배열과 배치가 있다면, 반생산이라 부르는 것은 배열과 배치도 다르고, 삶의 양식과 양태도 달리 만들고 있다. 어쩌면 기존에 대한 저항이며, 리좀이 한꺼번에 소통되는 한에서 혁명을 수행할 것이다. / 그런데 들뢰즈는 산업사회에서 반생산을 다룬다. 자연생산이 연결이라면, 산업생산은 우선 이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파라이노이아 환자의 입말과 손발이 안맞듯이, 그럼에도 소비의 형식에서 산업생산은 생산된 모든 것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고 등록시키고 있다. 그 지배력이 자본이 자기 흡수하는 잉여를 알고 있다. 이접임에도 사회 속에 소비를 시키는 것이다. (59RMA)
다른 한편, 자연 생산 시절에는 집이나 성내에서 바깥으로 산보(다른 삶으로) 나가는 이는 삶에서 이탈자(pervert, 타락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도 삶고자 하는 한 방법이었다. 산업사회에서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 시골 주변을 멀쩡한데도 어슬렁거리면, 실패자(pervert, 도착자)처럼 볼 수도 있다. 사회통신망 시대에 어디로 가는 CCTV에 잡히게 되어 있는데, 전혀 다른 곳을 어슬렁거리는 노마드도 있을 수 있다. 자본제국에서 이탈할 곳이 없이 짜여진 그물망에서 다른 통로 찾아 연결, 이접, 연접을 하려는 삶은 놀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놀이는 노름이 아니고, 투자는 투기가 아니며, 자유는 임의 재량이 아니다. 리좀들 사이의 접속은, 하늘에 번개를 치듯이 인민들 속에서 벙개를 하듯이, 미로를 만드는 것이다. 혁명은 미로의 연결이 벙개처럼 이루어질 때 갑자기 다가 올 것이다. (59RMC)
1.2.1. 반발과 편집증 기계 - Répulsion et machine paranoïaque 15 (25)
욕망하는 기계들과 기관없는 신체 사이에 분명한 충돌이 있다. 기계들의 연결마다, 기계들의 생산마다, 기계들의 소리마다, 기관들없는 신체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기관들 밑에 역겨운 애벌레들과 구더기들 그리고 그것을 유기체가 되게 하면서 그것을 잡치거나 압살하는 신의 작용(l’action d’un Dieu)을 느낀다. (15)
아르또의 시 “그 신체는 신체다 / 그것은 홀로 있다 / 그리고 기관을 필요치 않는다 / 그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다” (15)
이른바 근원적 억제(refoulement)은 바로 이런 것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우리는 믿는다. 즉 그것은 하나의 반대 투자(contre-invertissment?, 역공급, 逆供給)가 아니라, 기관 없는 신체에 의한 욕망하는 기계의 반발(répulsion)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앞 문장]이 편집증적인 기계(machine paranoïaque)가 의미하는 것이다. (15)
타우스크(Tausk 1879/1880-1919, 자살)가 편집증적 기계를 자신의 신체의 단순한 투사로 그리고 생식적 기관들의 단순한 투사로 볼 때, 우리는 따를 수 없다.편집병에 걸린 기계가 욕망하는 기계들의 생산의 진행과 기관없은 신체의 비생산적 정지가 대립할 때 당장 발생한다. (15)
그러나 자체로 편집증적 기계는 욕망하는 기계의 분신(avatar)이다. 그 기계는 욕망하는 기계와 기관없는 신체의 관계로부터 결과한다. (15-16)
[왜 욕망하는 기계가 외피적으로 편집증적 기계로 먼저 나타는 것처럼 보일까?(56RLG)]
1.2.2. 욕망하는 생산과 사회적 생산: 어떻게 반생산이 생산력을 차지하는가
-Production désirante et production sociale : comment l'anti-production s'approprie les forces productives
만일 우리가 중단되지 않는 과정 속에서 기관들 없는 신체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는 데 대한 관념[생각]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욕망하는 생산과 사회적 생산사이의 평행관계(un parallèle)를 보아야 할 것이다.그런 평행은 현상학적이다.그 평행은 두 가지 생산관계의 자연과 연관에 대해서도, 두 가지생산관계가 효과적으로 있는지를 아는 것의 문제에 대해서조차도 미리 속단할 게 아무것도 없다. (16)
사회적 생산의형식들은비생산적이고 비출산적인 지위, 과정과 짝을 이룬 반(反, anti)생산적 요소,사회체(socius)로서 규정된 충만체 [등]를 함축한다. 이것[충만체]은 땅[토지]의 신체, 전제정의 신체, 또는 자본일 수도 있다.맑스는 이[충만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충만체]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고, 노동의 자연적 또는 신적 전제[가정]로서 나타난다.이것은 이 때문에 생산력들 그 자체들에 스스로 대립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생산작업에 덮치며, 생산력들과 생산인자들이 분배되는표면을 구성한다. (16)
간단히 충만체로서 사회체는 모든 생산작업이 등록되는, 하나의 표면을 형성하고, 등록의 표면으로부터 흘러[유출]나오는 것 같이 보인다. 사회는 생산의 과정을 등록함으로서 자기 자신의 망상(délir)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망상은 의식의 망상이 아니다. (16)
자본은 그저 자본가의 기관없는 신체이며, 오히려 자본주의 존재의 기관없는 신체이다. .. 자본은 유동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화폐를 화석화[석회질화] 한다. ... 기관없는 신체가 그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스스로 발아하여 우주의 끝까지 뻗는다. .. 그 자본에 기계들과 작동자들(les agents)이 걸려있다. (16)
맑스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처음에는 자본가들이 으레 노동과 자본의 대립의식, 그리고 초과노동을 수탈하는 수단으로서 자본의 상용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이 모든 생산을 지배하는 등록의 표면 역할을 수행함고 동시에 마술에 걸린 뒤집힌 세계가 금방 출현한다(잉여가치를 공급하거나 또는 실제로 생기게 하는 것이 등록의 권리이다.) (17) [이런 설명 이후]
[맑스(Marx) 인용] “상대적인 잉여가치가 자본주의의 특유한 체계 속에서 발전하고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이 증대함에 따라, 노동의 생산력들과 사회적 연결들은 생산과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으로부터 자본으로 넘어가듯이 보인다. 이리하여 자본은 이리하여 그럭저럭(bien) 불가사의한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모든 생산적 힘은 자기(자본) 가슴 속에서 생겨나며, 자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17)
1.2.3. 차지함 또는 끌어들임, 그리고 기적을 행하는 기계 - Appropriation ou attraction, et machine miraculante [기적 기계] [차지함: 사적으로 소유, 전유, 가로채기, 횡령, 착복.]
기관없는 신체는 욕망하는 생산으로 방향을 바꾸어(se rabattre sur.. 덧씌워), 그걸 끌어당기고 전유한다. ... 유인 기계가 반발기계의 뒤를 잇고 또 뒤를 이을 수 있다. 기적적인 기계가 편집증적 기계 다음에(après) 나온다.여기서 “다음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두 기계는 공존한다. 그리고 이 서글픈 유머(l’humour noir)가 떠맡은 일은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이 없는 듯이 또는 모순이 전혀 없었던 듯이 꾸미는 것이다. (17)
기관들은 신의 광선들을 자기에게 끌어들이는 재판장 슈레버의 신체 위에서 재생되고 기적을 받는다. 아마도 편집증에 걸린 낡은 기계는 조롱하는 목소리의 형태로 존속하는데, 이 목소리는 재판장의 기관들 특히 항문이 받은 기적을 제거하려 한다.
편집증자가 정치경제학을 행한다는 것이 사실인 한에서 애정관심(sexualité)은 경제(아낌)의 일이다. (18)
- [이 표현은 한편 형이상학적, 다른 한편 신학적 표현인데, 크리스트교 신학이 자연의 자기 창조를 신학으로 옮겨 놓을 때 쓰는 방법이 아닐까?] - [산업사회에서 편집증기계(이데아) 다음에 반발기계(사물)이지만, 편집증에 종속되는 한에서는 속성화되지 않는 것은 제거되는 것이 아닌가. 산업사회에서 소비되지 못한 것은 제거되는 것이다. 산업화의 기계에 적합하지 못한 소비는 버려지는 것과 같다.(59RMA)]
1.2.4. 둘째 종합: 이접적 종합 또는 등록의 생산
- La deuxième synthèse : synthèse disjonctive ou production d'enregistrement
...이건 ...이건- Soit ... soit
단지 그 생산[산업생산]은 그것이 생산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등록되지 않는다. 또는 오히려 생산은 생산하는 진행 속에서 스스로를 생산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외견상 객관적 운동 속에 스스로를 재생산하지 못한다. ... 등록의 생산 법칙은 생산의 생산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생산의 생산법칙은 연결적 종합(connective) 또는 절단(couplage)이었다. (18) [1.1.4. 와 1.1.5.]
기관들 없는 신체 위에 기계들은 그 수만큼의 이접점들(de points de disjonction)처럼 들러 붙는데, 이 점들 사이에 새로운 종ㅎ바들의 그물 전체가 짜여지고 또 이 점들은 표면을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 짓는다. 분열증적인 “..이자 ..이자(soit ... soit., 이거나 이거나)”가 “그리고 나서(et puis, 다음에)”를 이어 받는다. (18)
둘 사이의 모든 선언적[이접적] 종합은 미끄러운 표면에서 마찬가지이다. 또는(ou bien, 이거나)는 교환불가능한 항들 사이의 결정적 선택들을 표시하며, ..이자(soit)는 차이들 사이에 가능한 교환체계를 지칭한다. (18)
[베케트에 있어서] 말하는 입과 걷는 발들에서 그러하다.“그는 아무 말 없이 멈추어 서게 되곤 하였다. 결국에는 그가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었거나,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었지만 말하기를 그만 포기했거나‥…다른 두드러진 경우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금방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말이 금방 계속된다.... 금방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한참 있다가도 말을 계속하지 않는다. 또 조금 있다가 걷기 시작하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8-19)
- [직류전기는 1882년에 런던과 뉴욕에서, 교류전기는 189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우리는 전기의 영향이 문화전반에 미친 영향을 주목한다. (42LKH)]
등록의 선접적 종합은 생산의 연결적 종합을 되 덮기에 이른다. 생산과정으로서 과정은 기입[등록]절차로서 절차를 이어간다. 오히려 사람이 욕망하는 생산의 연결적 노동을 리비도(libido)라 부른다면, 이 에너지의 일부는 선접적 기입의 에너지(Numen)로 변형된다고 말해야 한다. 에너지의 변형. 그러나 무의식의 문제로 생긴 모든 애매함은 겉보기에만 종교적인데, 어째서 이 새로운 에너지 형태의 에너지를 신적 또는 누멘이라 부르는가? 기관들 없는 신체는 신이 아니다.오히려 아즈 그 반대다. (19)
여기에서 슈레버의 신과 대화하는 이상한(낯선) 보고서들이 나온다. 그에게 묻기를 “당신은 신을 믿는가? 우리는 칸트식 또는 슈레버식 으로 대답해야만 한다. 당연, 그러나 선언 삼단논법의 대가를 믿듯이, 이 삼단논법의 선천적원리를 믿듯이(모든 실재성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실재성의 총체Omnitudo realitatis라고 정의된 신) (19)
- [서구에서 신(야훼, 알라)보고 니가 누꼬 라고 물었다면 또라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은 누꼬 라고 묻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망상에 시달리지 않는다. 서구는 그 신이 완전한 이자(soit), 모습을 본 듯도 한 것이자(soit), 나에게 기(氣)를 느끼듯이 느낀 것이자, 믿지 않는 남들은 잘 알 수 없는 어떤 것이자, 등으로 만들면서도 상위에 절대자를 만들면서 망상에 시달린다.]
1.2.5. 정신분열증의 계보 - Généalogie schizophrénique
신적인 것(divin), 이것은 선접[이접]적 에너지의 특징이다. 슈레버에게 있어서 신적인 것은 그가 자기 자신 속에서 자기를 분할하는 이접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망상에서 또한 망상일반에서 선접적 종합의 중요성을 힘차게 표시했다. “그러한 분할은 완전히 편집적 정신병의 특성이다. 히스테리는 응축시키는 일을 하는데, 이에 반하여 이 병들은 분할하는 일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정신병들은 무의식적 상상작용 속에서 실현된 응축화들와 동일화들을 정신병적인 요소들로 새로이 분해한다.” (19-20)
욕망의 등록은 외디푸스적인 항들을 통하여 행해지는가? 이접들은 욕망하는 계보의 형식이다. 그런데 이 계보는 외디푸스적인 것이며, 외디푸스적인 삼각형화 속에 등기되었는 것인가? 또는 외디푸스가 시회적 생산의 요청 또는 귀결이 아닐까? (20) [아니다. 예로서 몰로이를 보라..]
욕망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중에, 몰로이(Molloy)는 경찰관에 다음과 같이 심문 받는다. “당신 이름은 몰로이 이지요 라고 경찰이 물었다. 예 금방 생각이 났습니다. 라고 내가 말한다. 당신 어머니는? 이라고 그가 묻는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녀의 이름도 몰로이 입니까?라고 경찰이 묻는데, 내가 그녀가 몰로이 입니까라고 말하니 경찰이 그래. 나는 되새겨본다. 경찰이 당신 이름이 몰로이 지요. 내가 그래요 하고 말한다. 경찰이 당신 어머니 이름도 또한 몰로이 이지요라고 말한다. 나는 또 되새긴다.” (20)
정신분석가는 슈레버의 상위의 신 아래에는 아빠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하위의 신 아래에는 왜 형을 발견해야 하지 않겠는가를 말한다. 분열증자는 가끔 참을 수 없게 되어 자기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어달라고 요구한다. (20) .
사람들은 재판장 슈레버가 프로이트에게 답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예, 예, 예(그래요), 말하는 새들은 처녀들이에요. 그리고 상위의 신은 아빠이고요, 하위의 신은 제 형이에요. 그러나 부드럽게 그는 모든 말하는 새들로부터 처녀를 다시-임신시켜요, 상위의 신으로부터 그의 아버지를, 하위의 신으로부터 형을 다시-임신시켜요, 그 모든 신적인 형식들은, 이 형식들이 외디푸스 삼각형의 아주 단순한 항들과 기능들 하에 뚫고 지나감에 따라서, 복잡하게 되고 또는 오히려 단순화되기를 탈피한다. (21)
Je ne crois à ni père | 나는 아버지도 믿지 않는다.
ni mère | 어머니도
Ja na pas | 나는 아냐
àpapa-mama | 아빠-엄마의 것이 아냐.
1.2.6. 반생산 32- L'anti-production 21
욕망하는 생산은 선형-이항 체계를 형성한다. 충만체는 계열 속에서 셋째 항으로 도입되고, 그 특성을 중단하지 않는다: 2, 1, 2, 1 ... 된다. ... 무관충만체는 반생산으로 생산되며, 말하자면, 부모[가정적] 생산을 함축하는 삼각형화의 모든 시도를 거부하기 위해서만 있는 그대로 개입한다. (21)
그래, 내가 나의 아버지였고 그리고 내가 나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앙또냉 아르토가 “나(Moi), 나는 나의 아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자아이다”고 말한다. 그 분열자는 자신에 고유한 기준점의 양식을 마음대로 처분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는 사회적 규준에 맞지 않는 또는 규준을 우스운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만, 이 규준에 맞는 등록의 독특한 규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21) [아르또는 불경한 자인가?] [‘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고 나아가 어머니고 누이다’라고 하면 예수가 불경한가?]
심지어 이 규준이 배제하려 했던 모든 이접들을 이 규준에 다시 틀어넣기까지 한다. 아돌프 뵐플리(Adolf Wölfli, 1864-1930)의 삽화들은 큰 시계들, 터빈들, 발전기들. 천구-기계들, 가옥-기계들 등을 등장시키고 있다.그리고 이것들의 생산은 연속되는 층들 또는 구역들을 지나 가장자리로부터 한 가운데로 가도록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하는, 또 그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설명(explication)”은 삽화 자체에 포개지는데, 이 대 그것은 “파국(catastroph)”적 또는 “몰락(chute)”적 선들의 형태들 취한다. 그리고 이 선들은 나선들(spirales)로 둘러싸인 이접들이다.분열증자는 항상 뒤뚱거리지만 바로 선다. (22)
분열증자(Schizo)는 항상 뒤뚱거리지만 방금 바로 선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즉 모든 이접에 있어서 모든 측면이 동일한 사태(chose, 사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관-기계들이 기관들 없는 신체에 매달려도 소용없다는 이야기이다. 기관들 없는 신체는 어디까지나 기관들이 없는 채 있으며, 보통의 유기체로 되지 않는다. (22)
기관없는 신체 위에 모든 것이 일어나며, 등록된다. 심지어 작동자의 교접(성교), 신적 분할, 격자형 계보학, 계보학의 상호교환도, 모든 것은 창조되지 않는 신체 위에 마치 사자의 갈기 속에 이들(蝨, 슬)처럼 있다. (22)
(옮3:25 56RLB)(7:04, 56RMA) (7:08, 56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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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역사가, 사회학자, 경제학자, 기자, 혁명이론가. 공산주의 혁명가. Marx, Le capital, III, 7, ch 25(Pléiade, II, p. 1435)
1842 슈레버(Daniel Paul Schreber, 1842-1911) 독일 판사, 스키조프레니아로 유명하다. “슈레버(Schreber)의 예 1911(51세때)”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 신경과 의사, 정신분석가. Freud, Cinq psychanalyses, tr. fr. [1935], PUF, p. 297.
1864 뵐플리(Adolf Wölfli, 1864-1930) 스위스 화가, 삽화가, 작가. 청소년성애 범죄자(pédocriminalité)로 죄를 받다. W. Morgenthaler, "Adolf Wölfli", tr. fr. L'Art brut, n°2. [L'art brut n° 2: Adolf Wölfli, MORGENTHALER W. 1964,].
1879 타우스크(Victor Tausk 1879-1919, 자살)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 유대인 정신분석학의 첫 세대. Victor Tausk, "De la genèse de l'appareil à influencer au cours de la schizophrénie", 1919, tr. fr. in la Psychanalyse, n°4. : Tausk: R2 x. 가 편집증적 기계를 자신의 신체의 단순한 투사로 그리고 생식적 기관들의 단순한 투사로 볼 때 우리는 따를 수 없다. (15)
1882 모르겐탈러(Walter Morgenthaler, 1882-1965), 스위스 정신과의사이자 정신치료사. Un patient mental en tant qu'artiste (Adolf Wölfli), 1921(Berne)
1896 아르또(Antonin Artaud, 1896–1948) 프랑스 작가, 시인, 시각예술가, 수필가, 극장주. 반 고흐 사회의 자살(Van Gogh le suicidé de la société, 1947) (9)
1906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아일랜드 소설가, 드라마 작가. 말론 죽다(Malone Dies, 1958): Malone meurt)에서 마담 페달이 분열증환자를 산보에 데려간다. (9) “Assez”, in Tetes-mortes, Minuit, 1967, pp. 40-41.
1918 알뛰세 (Louis Althusser, 1918-1990) 프랑스 철학자, 공산당원. Lire le Capital, 1965(Louis Althusser, Étienne Balibar, Roger Establet, Pierre Macherey et Jacques Rancière.)
1938 마슈레이(Pierre Macherey, 1938-) 프랑스 철학자, 스피노자 전문가.
1942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1942-) 프랑스 철학자.
*
아르브뤼(Art Brut, 1945-)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미술로, ‘원생미술(原生美術)’로 번역된다.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1945년에 만들어낸 용어.
실재성의 총체Omnitudo realitatis.
I. The Classical Meaning of the Kantian Formula: The Supremely Real Being
II. “Reality,” “Possibility,” and “Quiddity” in the Work of Christian Wolff
III. Existence as a Complement of Possibility, Existentia as Actualitas
IV. Realitas, Realities, and Negations
V. The Kantian Thesis: Being as Positing
(56RMA)
*참조***
풀(1968)
- 김수영(金洙暎, 1921-1968) - 김수영 시인의 <풀>은 1968년 『창작과 비평』가을호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김남주(金南柱, 1946-1994)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는 않았다
오월은 왔다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바퀴와 개머리판에 MADE IN USA를 새긴
전차와 함께 기관총과 함께 왔다
오월은 왔다
헐떡거리면서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두부처럼 처녀의
유방을 자르며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벌집처럼 도시의 가슴을 뚫고
살해된 누이의 울음을 찾아 우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를 뚫고
총알처럼 왔다 압제의 거리에
팔이며 다리가 피묻은 살점으로 뒹구는
능지처참의 학살로 오월은 오월은 왔다 그렇게!
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일어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오월의 무기 무등산의 봉기는
총칼의 숲에 뛰어든 맨주먹 벌거숭이의 육탄이었다
불에 달군 대장간의 시뻘건 망치였고 낫이었고
한입의 아우성과 함께 치켜든 만인의 주먹이었다
피와 눈물 분노와 치떨림 이 모든 인간의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학살의 야만과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나는 풀잎으로 ‘풀잎’은
피의 전투와 죽음의 저항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학살과 저항 사이에는
바리케이트의 이편과 저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오월의 광주에는!
-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朝鮮民族解放戰線,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되어 15년형 선고를 받고 9년째 복역 중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옥하였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그는 10년 간 옥중에서 250여 편의 저항시를 남겼다. 옥중 시(詩) 중의 한 편일 것이다. (56R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