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리노 레스피기는 187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사인 아버지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2살 때인 1891년 볼로냐 음악원에 들어가 페데리코 사르티에게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세페 마투치에게 작곡, 고음악 전문가인 루이지 토르키에게 음악사를 배웠다.
1899년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학위를 취득한 레스피기는 그 후 러시아로 건너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의 이탈리아 오페라 공연 시즌에 오케스트라단의 비올라 수석으로 일했다. 러시아에는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사람인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그런 다음 이탈리아로 돌아와 음악원에서 작곡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레스피기는 1900년부터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해 연주회에서 발표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시절 그는 작곡과 연주를 병행했다. 볼로냐 무젤리니 5중주단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로 있으면서 1909년에 독일로 연주 여행을 가기도 했다.
1913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임용되어 볼로냐에서 로마로 이주했다.
이때 그는 로마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14년부터 유명한 '로마 3부작'의 첫 작품인 〈로마의 분수Fontana di Roma〉를 쓰기 시작해 1917년에 초연했는데,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4년, 레스피기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원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2년 후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 원장직을 그만두었다. 바로 그해에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듬해 아르투로 루치아니와 함께 《오르페오》라는 음악 교과서를 집필했다.
레스피기의 명성은 유럽을 넘어 멀리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두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1928년 11월 뉴욕 카네기 홀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토카타(Toccata for Piano and Orchestra)〉를 레스피기 자신의 피아노 독주와 멩겔베르크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초연했다. 이듬해에는 로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로마의 축제(Feste Romane)〉를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했으며, 1931년에는 보스턴 심포니의 위촉을 받아 악단 창립 50주년 기념 연주회를 위해 대편성의 주제와 변주곡 〈변용〉을 작곡하기도 했다.
1932년, 레스피기는 이탈리아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그 후 연주 활동과 작곡을 병행하다가 심장에 병이 생겨 1936년 4월 18일,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 로마의 소나무
1929년에 완성한 〈로마의 소나무〉는 로마의 유서 깊은 유적지의 풍광을 음악으로 옮긴 것이다. 제1곡 〈보르지아 별장의 소나무〉, 제2곡 〈카타콤베 부근의 소나무〉, 제3곡 〈자니콜로의 소나무〉, 제4곡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로마의 축제〉는 1929년 작이다. 제1곡 〈체르첸세스〉는 로마의 경기장에서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일어났던 피비린내 나는 학살 장면을 담은 것이고, 제2곡 〈50년제〉는 로마가 기독교의 수도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제3곡은 포도를 수확하는 계절의 즐거움을 그린 〈10월제〉, 제4곡은 예수가 세상에 나타난 날을 기념하는 축제의 현장을 그린 〈주현절〉이다.
레스피기는 로마의 풍광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예술의 영광도 음악에 담았다. 1927년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 〈봄〉, 〈동방박사의 경배〉, 〈비너스의 탄생〉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곡한 〈세 개의 보티첼리 그림(Trittico Botticelliano)〉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제1곡 〈봄〉에서는 경쾌한 춤곡과 금빛 광채를 발하는 트럼펫의 찬란한 음색 그리고 현악기의 섬세하고 현란한 트릴로 약동하는 봄을 생생하게 그렸다. 제2곡 〈동방박사의 경배〉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황금과 유황, 몰약을 예물로 바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동방교회의 성가 〈오소서 에마누엘〉과 어린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부르는 〈촛불 송〉이 나온다. 제3곡 〈비너스의 탄생〉은 지중해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바람에 밀려 해안으로 오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현악기들이 출렁거리는 물결을 묘사하는 가운데, 플루트가 비너스가 태어나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레스피기의 작품 중에는 고음악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이 많이 있다. 1921년에 발표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그레고리안 협주곡(Concerto gregoriano)〉과 1924년 작인 〈도리아 선법에 의한 현악 4중주(Quartetto Dorico per Archi P.144)〉, 1927년에 완성한 〈17세기 쳄발로 모음곡에 의한 '새(Gli uccelli)'〉가 이 분야의 대표작이다. 이 중 〈새〉는 16, 17세기에 나온 쳄발로 음악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행진곡풍의 당당한 선율로 시작하는 〈전주곡〉에 이어 〈비둘기〉가 나오는데, 이 곡은 프랑스 작곡가 갈로의 곡을 편곡한 것이다. 제3곡 〈암탉〉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쳄발로곡을 편곡한 것이다. 제4곡 〈꾀꼬리〉에서는 피콜로와 플루트가 꾀꼬리 소리를 낸다. 작곡가가 알려져 있지 않은 영국 버지날 음악을 편곡한 것이다. 제5곡 〈뻐꾸기〉는 파스쿠이니의 쳄발로곡 〈토카타와 뻐꾸기 스케르초〉를 편곡한 것인데, 목관악기가 차례로 새 우는 소리를 내고, 템포가 빨라지면서 플루트가 이 역할을 이어받는다.
제1부: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숲 사이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둥글게 둘러서서 춤도 추고, 병정놀이를 하며 행진하고 전투도 벌인다. 그들은 마치 해질 무렵의 제비들처럼 재잘거리고 소리치며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제2부: 카타콤베 부근의 소나무
우리는 카타콤베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 깊은 곳으로부터 비탄의 성가를 노래하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그 소리는 점점 고조되어 장엄한 찬가처럼 대기에 퍼지고, 다시 신비롭게 사라져간다.
제3부: 자니콜로의 소나무
산들바람이 대기를 흔든다. 보름달의 밝은 빛이 자니콜로 언덕에 서 있는 소나무들의 형상을 드러낸다. 나이팅게일이 노래한다.
제4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
아피아 가도의 안개 짙은 새벽. 비극이 서린 교외의 길은 고독한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희미하게, 쉼 없이 이어지는 끝없는 발자국 소리의 리듬. 시인은 과거 영광스러웠던 로마의 환영을 떠올린다. 나팔소리가 울리고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의 광휘 속에서, 집정관의 군대가 번화한 가도를 전진하고, 마침내 용감한 승전고를 울리며 카피톨리노 언덕을 올라간다.
연 주 : Orquesta Sinfónica de Galicia Orquesta ( OSG ) 지 휘 : Dima Slobodeniouk (1975년생, 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