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都農)이 상생하는 언니네 텃밭
김근례(동글씨)
나는 요즘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독립하면 귀촌해서 살고 싶은 생각을 가다듬어 가고 있다. 그 방편의 하나로 여행생협을 준비하고 있다. 시골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내 눈길이 머물고 좋은 이웃이 있는 곳에 정착할 계획이다. 가끔씩 산과 들로 산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온다. 텃밭도 가꾸고 꽃밭도 만들고 싶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초까지 시골에서 자랐기에 농촌의 정서가 살아있는 것일 게다.
작년 말에 강동시민연대 주관인 “도시농업학교”에 신청하여 두 차례의 강의 교육과 농촌 체험나들이를 하였다. ‘지구를 구하는 먹을거리’라는 주제로 전국여성농민총연합(이하 ‘전여농)에서 농촌사업으로 활발하게 하고 있는 『언니네 텃밭』을 소개하였다. 언니네 텃밭은 일반적인 생협과 차별성이 있다.
즉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의 농사라는 점은 같으나 비닐하우스 등의 인위적인 방법은 쓰지 않고 제철농사만 고집한다. 소농들이 다양한 품종을 재배함으로서 우리 땅과 기후에 잘 적응하는 토종씨앗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고 이로써 식량주권도 확보하는 셈이다.
또 다른 교육은 ‘도시농부 체험나들이’였다. 지역은 횡성. 6살배기 꼬마부터 중학생, 이들을 데려온 엄마로 구성된 일행은 시민연대 관계자의 인솔 하에 방문한 곳은 한우 농가였다. 지붕만 있는 4개의 축사에 수 십 마리의 누런 황소와 송아지가 큰 눈을 껌뻑이며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아이들은 소에게 볏짚을 주느라 정신이 없고 소도 마다하지 않는다.
안주인은 서글서글하고 웃음 가득한 큰 눈으로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오느라 출출하겠다며 호박을 넣은 겨자색 가래떡을 권했는데 따뜻하였다.
우리 일행은 뒷산 호랑이골과 박쥐굴을 산책 겸 다녀와서 점심을 먹었다. 바람 없고 양지바른 마당에 비닐 돗자리를 깔아 교자상을 놓고 상 주변에 헌책더미, 고무다라이, 플라스틱 박스, 토막난 통나무 등을 의자삼아 둘러앉았다. 상 위에는 김장하고 남은 속이 노란 배추 속과 막장, 호박묵과 양념장, 솥에서 막 퍼온 흑미밥과 다슬기 된장국이 올라왔다.
옆에서는 이 집 주인장이자 마을 이장님이 바비큐 그릴에 숯불로 한우를 구웠다. 아이들은 밥상에는 관심 없고 숯불에 모여 앞 다퉈 고기를 주워 먹고, 엄마들은 상에 둘러앉아 처음 먹어보는 쫀득한 호박묵과 칼칼한 양념막장 맛에 감탄하며, 막장과 된장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하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고기로 배를 다 채울 즈음 엄마들에게도 구운 고기가 돌아왔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나는 평소 육식을 적게 먹으려 노력해 왔으나 산지에서 먹는 한우등심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한우 산지 값이 폭락하여 한 마리에 3백50만원이라 한다. 10명이서 소 한 마리 잡아도 될 성 싶었다. 비싼 사료 값 때문에 새끼를 낳아도 반갑지가 않다고 이장님이 고개를 내젖는다. 맛있는 소고기가 농장주에게는 깊은 시름을 안기고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비싸서 사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썰매 타러 가고 엄마들만 남았다. 해가 기울자 쌀쌀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기로 하였다. 안주인은 언니네 텃밭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해 1년 동안 유기 농사를 배우고 있다. 직접 만들었다는 신맛의 붉은색 연꽃 차를 나누며 제철꾸러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여농은 여성농민들에게 친환경농사로 바꾸도록 설득하고 교육하여 생산자공동체를 조직하여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전국 12개 지역의 공동체가 있으며 준비 중인 곳도 여러 곳 된다.
소비자가 매월 10만 원을 납부하면 주 1회씩 재배한 먹을거리(제철꾸러미)를 집까지 택배로 공급해 주는 농산물 직거래다. 회원이 사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텃밭공동체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두부와 유정란은 사계절 기본 품목이며 생산량이 많으면 많이 넣기도 하고, 겨울철에는 말린 나물종류나 장아찌 등 저장식품을 담는다. 게다가 전통 농경문화가 담겨있는 절기 음식을 되살려 내기도 한다. 동지에는 팥죽거리를 담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과 나물이 담긴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전통방식의 음식을 맛 볼 수도 있다.
또한 텃밭공동체에서 장려하는 농사체험은 소비자 회원의 권리이자 의무로 생산지를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작물을 심어보기도 하고 수확물을 거두는 체험을 해봄으로서 농사의 소중함을 배우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며 이해의 폭을 넓힌다.
언니네텃밭 회원인 한 할머니는 평생 자기 통장이 없었는데 지금은 통장에 돈 불어나는 재미로 산다며 활짝 웃으셨다. 여성농민들이 자기 먹을 것만 재배 해오다가 텃밭공동체가 조직되면서 농사를 더 짓고 이것저것 다양한 품종도 재배하게 되었단다. 몸은 좀 고달파도 농가 소득을 올리고 덤으로 농사짓는 재미도 맛보게 되었다. 이로써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은 생명력이 담긴 제철의 안전한 먹을거리로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고 교류하는 상생의 길이라 믿는다. 정말로 소중한 가치는 소농인 여성농민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하며, 우리 농촌의 지속가능한 농사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토종씨앗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이 일에 동참하고 적극 홍보하여 그 규모가 커질 때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도 더 이상 농민과 농촌을 홀대하지 못하리라. 한미 FTA발효로 머지않아 수입 농산물이 활개 칠 것에 대비해야 되지 않겠는가. 언니네텃밭 공동체로 농촌 품앗이 여행을 기획해도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손에는 딸기잼, 유정란, 호박가래떡, 더덕2뿌리가 들려있었다. 아직도 우리 농촌의 인심이 살아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첫댓글 흙내음 한 껏 마시고 오셨군요! 물품 가운데 호박 가래떡 맛이 어떨까 궁금하네요~~
옅은 겨자색에 아주 약간의 달근한 맛 이었어요.
떡국으로는 흰떡이 제맛일 것 같고...별미로 먹어 봤다는 경험에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지역이 어디인가요. 경기도까지도배달이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