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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페블이 오래 전부터 광화문 네 거리를 지날때마다 교보문고가 내다 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현수막을 보게 되면 마음에 깊이 와 닿아 참 좋은 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되풀이
하며 지나곤 했다. 그리고 현대인 우리 모두가 정신적이나 지식적으로 요정도라도 자란 것 역시,
제도교육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특히 샌드의 경우는 신문덕택이란 생각이 더욱 강하다.
이와 관련, 최근 지상보도나 방송뉴스 및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자주 오르내리는 NIE(Newspaper
in Education : 신문활용 교육)란 다소 생소한 어휘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된 필자, 샌드 나름의
소견은 “사람은 신문을 만들고 신문은 사람을 만든다”가 너무 비약적이라면 "신문은 사람을 가르친
다” 는 정도를 염두에 두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며 살기를 권유한다.
冊속에 길이 있듯 인쇄매체 新聞 속에도 길이 있다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있다”의 대칭형으로는 “신문 속에 길이 있다.” 정도의 새로운 버전으로 변형하여 마음속에
새기며 요즘들어 전파매체에 잠식당하는 활자매체와 신문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더해가고 있다.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논리를 정립할 수는 없지만 편의상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이나 삶의 패턴 및 이용 기기
들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면 종전의 인쇄매체 즉, 활자매체 또한 영상매체 즉 전파매체로
주도되며 심화되고 있는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하겠으며 이에 반론의 여지가 없음 또한 분명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관념적으로접근하면 전자는 듣거나 만지거나 볼 수 있는 존재이고 후자는 반대로 듣거나 보거나
만질수 없는 존재로 구분된다. 디지털의 대표적인 도구인 컴퓨터를 예로 들면 컴퓨터 자체는 아날로그이지만 동작되어
처리되는 정보는 디지털이란 개념으로 차별화 된다.
‘0101011100111’ 따위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허구의 묘사적 개념일 뿐, 디지털이란 ‘실체가 없는 개념’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는 디지털 정보를 가진 아날로그로 정의지어 진다. 아날로그 쇠자석판을 돌리면 디지털로된 정보가 나오고 이는 사람과 물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기와 같이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정리되는 개념으로 다시 분류된다.
아날로그는 0과1이라는 신호 체계로 구성된 디지털과는 달리 전압이나 전류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표현한다. 사람의 목소리와 같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신호는 아날로그 형태이며 그 양을 계량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데이터 장비의 신호는 2진 펄스(Pulse) 형태의 디지털 신호로서 단속적이고 계수적인 점에서 아날로그와 구분된다.
예를 들어 시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시계와 시간이 계수로 나타나는 시계를 연상해 보자. 시침이나 분침은 연속해서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의 시간(양)을 표시해 준다. 그러나 숫자로 나타나는 시계는 시간의 표현이 단속적이며 계수적이다.
이때 바늘이 돌아가는 시계를 아날로그 시계, 숫자가 나타나는 시계를 디지털 시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아날로그란 형태나 개념이 진화하여 디지털이란 시스템으로 변화하기 보다는 각기 서로 상반된 기능을 가지고서도 별도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며 상호보완 역할을 한다는 측면도 성립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가설하에 활자매체와 전파매체의 관념적 접목을 필자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독자적 개념 정리를 해 본다.
DGT에 ANLG 밀리듯 電波가 印刷매체 우위 先占
따라서 이같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듯이 범람하는 영상매체나 인터넷 매체가 우위를 점하며 자웅을 다투는 오늘날 전시대적인 인쇄매체가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공존하며 상존하는 존재의 이유는 과연 무엇이며 매스컴이 갖는 교육기능적 역할이 막중한 차제에 활자매체가 도리어 전파매체를 압도하는 분야는 무엇일까 궁금하기에 바같 세상을 엿보는 탐구정신으로 필자가 종사하는 분야의 아날로그적 활자매체와 나아가 이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전방위 교육에 접목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신문활용교육(NIE)이 학교교육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인쇄매체는 매체의 기본이 되는 문자와 시각적 기호를 중심으로 한 속성을 가짐으로써 여러가지 목적에 어디서나 사용이 가능한 융통성이 뛰어나고 휴대하고 다닐때 특별한 장비나 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사용이 용이하며 자료를 찾는데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고 제작이나 구입이 저렴하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다. 인쇄매체(출판매체)자료는 읽기능력을 미리 갖춘 독해력을 요구하거나 인지적 과부하를 초래할 수도 있고 운반과 보관이 불편하며 실시간 전송이 불가능하며 정보의 검색이나 변환이 불편하고 또 인터넷 매체는 실시간으로 수정이 가능하나 활자매체는 일단 인쇄가 되면 수정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인쇄매체 固有 정보기능 영상으로 대체는 불가
한겨레의 ‘다매체 시대의 언어활동-영상매체 시대의 책’이란 제하의 ‘교과서 읽기’에 따르면 현대인은 텔레비전,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영상매체와 컴퓨터 통신매체의 급속한 발달 및 보급과 병행하여 고전적 정보매체인 신문도 함께 양적으로 엄청난 증가를 보이고 있지만 전자에 비해 후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이나 책을 읽기보다 텔레비전 화면 앞에 앉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편지를 펜으로 쓰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보내는데 익숙하다. 이러한 경향을 두고 볼 때 책이라는 형식을 갖춘 정보매체는 전자영상 매체로 완전히 대체되어 위축을 면치 못 할 것이란 우려를 피하기는 힘들다.
영상매체에 대한 메시지는 순간적으로 그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이 수동적으로 이루어지기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경제적인바 이런 점에서 영상매체는 책이 갖지 않은 장점을 지닌 데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순간적이고 단편적이므로 따라서 반성적이지 못하고 애매한 상태로서 메시지의 전달은 피상적이란 약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
활자로 된 신문이나 책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면 그것을 읽고 개념적 의미를 능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만큼 지적 긴장
이나 시간이 필요하고 따라서 비경제적이다. 또 전통적 매체에 의한 정보 전달에 치르는 대가는 충분히 보상되는데 이는
책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기호의 의미는 영상매체를 구성하는 기호인 이미지보다 정확도가 높으며 영상매체의 기호들이
언제나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구속되어 단편적으로 순간적인 파악을 요청하는 데 반해 인쇄매체에 기록된 기호들은 공식
적으로 전체적인 입장에서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따라서 그만큼 깊은 차원의 정보전달이 가능하다고 결론 냈다.
한편 이 연구는 인쇄매체의 두 가지 구성요소인 문자자료와 시각자료가 갖는 교과서적 의미와 그러한 의미에 의한 정보전달 기능은 그 성격상 어떤 상황에서도 영상매체에 의한 정보전달 기능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심지어 영상매체가 지배하는 문명은 피상적이고, 피상적 문명의 의미는 공허하며, 공허한 문명은 곧 문명의 죽음을 가져
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깊고 심오한 의미를 지닌 문명과 인간적으로 보다 충족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영상매체의 완전한 지배에 맞서 저항해야 할 것이라며 은근히 전투준비와 함께 선전포고(?)도 사주하는 대목도 덧붙였다.
한편 아무리 영상매체가 발달되더라도 의미있는 문명이 살아 있는 한 인쇄매체는 어떤 형태로던 살아 남을 것이란 낙관도 보탰다. 그러나 우리의 문명과 삶이 공허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인쇄매체의 기능을 의식하고 보다 나은 활자, 인쇄, 출판매체와 책을 더 많이 창조함과 동시에 책에 담긴 풍요롭고 깊은 가치를 발견하고 음미하는 습관을 잊지 않는 노력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제하에서는 영상매체에 잠식당하는 현실에서 대표적인 활자매체인 신문이나 책이 갖는
의미를 밝히고 영상매체와 인쇄매체의 비교를 통하여 각 매체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특히 인쇄매체 중 ‘책’이 갖는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글을 이해하려면 먼저 설득적인 성격을 지닌 논설문이라는 특성에 초점을 맞춰 글쓴이의 주장을 파악
해야 한다는 것.
영상매체 支配 문명의 意味는 피상적이고 空虛
정보화 도래에 따른 부정적인 전망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매체인 인쇄매체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영상매체가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다양한 매체를 어떻게 특성에 맞게 활용할 것인지,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필자의 눈에도 작금 정보화란 미명하에 홍수가 났다고 할 만큼 쏟아지는 광고물 전단지 신문 등등으로 정보란 어휘가 귀찮은 천덕꾸러기로 비칠 때도 있다. 물밀듯이 수많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넘쳐나지만 정작 쓸 만한 정보는 드물고 막상 필요한 정보는 찾기도 무척 힘들다.
인터넷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이 대개의 경우 소프트웨어가 아닌 인쇄매체의 책으로 발간되는 아이러니는 반어적이면서도 시사하는바 크며 흥미롭기까지 하다. 무엇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인지 분간이 힘들어 '정보가 많아질수록 의미는 적어진다.'는 부정적인 시각에도 눈을 돌려야 할 대목이다.
情報 많아질수록 意味 감소된다 부정적 시각도
정보의 ‘물신화(物神化)’. 정보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진실과 신뢰를 배제한 채 마치 상품처럼 유통되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다. 여기서 정보 자체는 도구와 조직의 대상으로서 여겨지기 쉬우며 진실과 신뢰는 더욱 불가능해 진다. 정보의 물신화에 맞서 진실과 신뢰의 가치를 지키는 일, 바로 이것이 신매체 시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로 설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긍정적인 전망은 디지털 혁명으로 가능해진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이 열어보이는 새로운 세계의 전망은 산업혁명에 비유될 만큼 가히 획기적인 정보혁명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에 의해 근대화가 완성기에 진입했다면 인터넷 혁명에 의해 지구촌의 인류는 탈 근대화를 맞게 됐다는 평가다.
전 세계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치를 앞세우고 확산되기 시작한 탈 근대화 운동은 탈 이성, 탈 서양을 외치며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을, 동일성이 아닌 차이를 강조하고 이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감성을 부각시키며 합리성 일변도에서 예술성과 영성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남성다움 대신에 여성다움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이같이 여려 영역에 걸쳐 사람사는 세상을 리드해 가는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잡지, 인터넷 등과 같이 대중에게 새로운 뉴스와 정보를 전달하는 시청각 매체의 등장은 현대사회에서 대중사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대중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수한 계층에 의해서만 누려졌던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대중매체를 통해 현대적 가치관이 급속히 전파됨으로써 대중들은 사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상업화 되고 선동적인 보도나 편파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대중들의 현실비판능력을 약화시키고 건전한 가치판단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특히 독재 또는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이나 특정계층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정보를 대중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대중에게 편협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중매체가 대중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정치권에 부당하게 이용 당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경고했다. 따라서 이처럼 사회기능적 역할이 막대한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뉴스 전달의 기능을 다 해 오던 대표적 활자매체, 신문이 비록 엊그제 일은 아니지만 고유의 전통적인 뉴스전달기능 외에 교재와 교육기능의 폭을 넓혀감은 물론 그 효과가 괄목할 경지에 이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大衆이 사회의 中心역할 왜곡된 정보제공은 禁物
단순히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거나 심심풀이로 읽고 보는 신문이 아니라 이젠 당당히 교과서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더 높여간다는 얘기다. 영상매체에 비해 전시대적인 아날로그형의 인쇄매체가 디지털형의 진화된 영상매체나 인터넷의 역할이나 기능에 못잖게 아니 더욱 비중있게 NIE 교육적 기능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문에는 매일 새로운 정보가 실리므로 이를 활용하면 유익하고 실용적인 학습이 가능하며 신문이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문의 특성을 교육에 반영해 지적 성장을 꾀하고 학습효과를 높이는 교육방법을 통틀어 일컫는 NIE는 크게 신문 구성요소인 기사를 활용하는 방법, 사진을 활용하는 방법, 시사만화를 활용하는 방법, 광고를 활용하는 방법과 신문의 형식 자체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종합적인 사고와 독해, 쓰기능력 및 논리성과 비판력을 증진시켜 거두는 교육효과는 대단히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필자가 옛 수습기자 시절 신문원론을 공부할 때 신문의 기능을 뉴스전달(Reporting), 교육기능(Education), 비판기능(Criticize), 레포츠(Leiports) 등 네가지로 대분한다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한데 아마 당시만 해도 신문이 갖는 교육 및 지식제공 기능이란 독자들이 잘 모르거나 생소한 분야의 지식을 지면을 통해 알려주는 단순한 기능에 그쳤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신문지상에 보도된 특정 기사 자체를 교과서 처럼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외에 직접 신문을 만들어 보는가 하면 주요 기획기사나 논설 등을 통해 이를 교재로 삼아 사고력과 창의력 증진은 물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며 정보나 자료의 검색, 분석, 종합,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과 교육을 현장 실습을 통해 체험시킨다.
그리고 NIE가 교육현장에 정착되고 보다 발전적인 활로 모색을 위해 열린교육의 도입 배경 및 NIE의 필요성과 활용방법을 시대적 사회적 상황변화와 새로 개정된 교육과정과 연관짓는 발전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신문特性 교육에 반영 知的성장 도모로 학습효과
NIE 의 정착은 곧 열린 교육의 발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인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되며 나아가 종이신문 즉 인쇄매체가 영상매체에 밀려나지 않는 방패막이로서의 작용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
현재 세계 각국의 NIE 진척 상황과 추진 주체를 보면 미국의 경우는 미국신문협회가 주축이 되어 각 신문사에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는 이에 협력하고 지원받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신문교육문화재단’이 주축이 되어 1998년에 신문협회로 부터 업무를 이관받은 이래 개별 신문사와 일선 학교가 별도로 협력, 독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또 영국은 신문협회 주도 아래 교육자율권을 부여받아 지역별 학교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노르웨이는 신문발행자협회 주축으로 소속 전문가를 양성후 전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배치하고 매년 교사 8천여명을 40시간씩 교육시켜 NIE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1987년에 이미 교육계획법을 제정, 초등학교 1년부터 고교 1년까지 NIE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초 도입단계에 불과하여 아직 뚜렷한 구심체가 없고 신문협회 등에서 세미나, 협회보 발행을 통해 NIE교육의 효과를 호소하는 정도이며 10여개의 일간 신문사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실시하거나 교육계가 교육과정에 NIE 수업시행을 명시하여 일선교사와 학부모가 자생적 연구회나 모임을 갖는 초보단계가 고작이다.
언론·교육계 함께 NIE 정착과 발전위해 노력해야
NIE 교육의 양대축인 언론계(신문사, 신문협회 등)와 교육계(일선학교, 교육당국 등)가 앞장서 가칭 ‘NIE지원센터’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관심있는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우선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기관이나 상시운영기구 등 구심체의 부재, 한국형 NIE 교육의 개발노력 부족, 현직교사 연수 프로그램 운영 및 내용의 미흡, 학력이나 대입과 연결지어 학부모의 지나친 기대, 교육당국의 이해와 관심 부족, 신문의 교재화 노력 등 개별 신문사의 관심과 이해 부족 등을 각개 격파해 나가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신문교재화 노력의 무관심, 지면제한, 마케팅 위주의 접근 등 상업성과 교육방법 및 내용의 체계화, 계열화, 전문화가 되지 않아 주제·내용·활용법 등이 단조로운 점과 학계나 전문단체의 NIE관련 연구의 미흡 등이 지적되고 있으며 심지어 ‘신문의 교육재료화’를 ‘신문을 교육한다’ 로 혼동하는 사례마저 적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인쇄나 출판매체는 다른 대중매체와 비교해 볼 때 가두나 책방이나 서점에 가 보면 신문이나 책이나 잡지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봐서도 메시지 즉 내용면에서도 어떠한 내용이든지 담아 낼 수가 있어 방송, 영화 등의 매체에서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제약때문에 다루지 못하는 내용들도 담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독자가 수퍼마켓에서 필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듯 자기가 원하는 매체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방송매체는 시간을 놓치면 다시 보기 어렵지만 출판매체는 독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돌려 볼 수도 있다는 장점을 NIE 교육을 통해 부각시킬 수가 있어 활자매체의 입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정확도와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는 앞서지만 정보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신속성이나 속보성에선 다른 매체에
뒤지며 또 매체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워 방송매체 처럼 안방에서 스위치만 켜면 되는 편의와는
대조적이다. TV나 인터넷 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접촉하기 어려운게 출판이나 인쇄매체의 단점이 아닐수 없으며 이의 보
강이 필요한 점도 제기된다. 어느 분야나 장단점이 있다는 양면성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이다.
그보다 전파나 영상매체와의 경쟁에서 유일하게 앞설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활자나 인쇄매체가 페이퍼리스의 타 매체
를 제압하고 압도할 수 있는 NIE 교육을 통한 실지(失地)회복은 미래의 활자매체 생존에 관한 중차대한 팩터라는 논리
에 필자는 전적으로 인식을 같이 하며 그간 많은 관심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인지과학의 대가인 '대니얼 윌링햄'이란 미 버지니아대 교수가 근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해력도 비판적 사고도
사실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다. 이런 배경지식을 쌓는 데는 신문읽기만 한 게 없다’고 갈파한 보도가 주목할만 하다.
캐나다의 심리학 대가인 스태노비치 박사의 ‘사람들이 지식을 어디서 습득하는가’에 관한 유명한 연구를 인용, 그는
“가장 좋은 정보원이 읽기였다. 일반적 지식습득에서 신문, 진지한 저널, 책 읽기가 TV시청이나 대화보다 훨씬 낫다고
나왔다. 종합적 배경지식을 얻기 위한 것으로, 꾸준한 신문읽기 만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NIE 활성화로 他媒體 잠식 失地 회복 계기 삼아야
이어 “뛰어난 리더(Reader)는 대개 규칙적으로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온 사람이다. 신문에 익숙한 아이는 다른 책 읽기에도 능하다. 어떤 주제든 신문을 통해 약간은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이 읽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된다. 반면 읽기가 부족하면 점점 더 읽는게 힘들어 진다. 지식습득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밝힌 대목도 필자는 스스로의 경우에 대입시켜 보며 크게 주목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점차 신문을 멀리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미국의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요즘 청소년과 예전 청소년의 읽기 양을 비교하니 단어 수는 요즘이 더 많은 걸로 나타났다. 문제는 텍스트다. 대부분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문서나 문자 메시지다. 신문·잡지·책 읽기는 줄었다. 문자 메시지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신문·잡지·책이 주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결론 지었다.
어쩌면 활자매체의 장점이나 우수성을 대변하고 깊이를 강조하는 연구결과라 하겠다. 마음의 비타민을 260만 독자에게 매일 아침 배달하는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의 고도원 이사장도 한때 절망의 계곡을 헤맬 때도 있었으나 그럴때일수록 손에서 신문만은 놓지 않았고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면 스스로가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며 “신문은 희망의 노트북이요 읽기를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진다” 자신이 오늘에 이른 밑거름과 바탕을 술회했다.
신문은 希望의 노트북, 읽기 멈추면 精神 황폐화
이같이 활자매체의 근간이 되는 신문을 통한 NIE 교육활동에 각별히 관심을 보이며 하루 일과를 신문읽기로 시작한다는 경상남도 고영진 교육감은 올 5월 문화체육관광부의 NIE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 발표를 환영하며 교과학습과 실생활체험을 직간접으로 연계하기 때문에 이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교육방법이라며 ‘NIE는 교과학습 극대화의 지름길’이라고 천명했다. 교육당국의 선견지명을 행정적으로 뒷받침 하는 사례로 봐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기업들의 성공스토리 전문작가이자 최근 교육계에서 새로운 교수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전문가 송원이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NIE+스토리텔링=최상의 포트폴리오’를 강조하며 새로운 교수법으로 신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 때 신문을 중요한 재료로 삼으며 신문엔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의 성공과 실패 스토리를 돋보이게 만들 기사들이 무궁무진하며 또 글의 구조나 내용면에서 모범이 되는 기사가 많아 이를 활용하면 나만의 스토리가 나온다”며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매우 긴 마라톤 경쟁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 하나고등학교(교장 김진성) NIE동아리 ‘이코노미아(Economia)’는 경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모여 이슈가 되는 경제문제를 신문에서 찾아 공부하고 토론하며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세미나를 열고 어린이 경제교실 멘토 활동을 벌일 만큼 열성적인데 이를 통해 ‘세계경제는 물론 나의 미래도 본다’고 했다.
충남 계룡 용남고등학교(교장 서원진) NIE동아리 R&L(Reader and Leader)도 장래 희망을 주제로 스크랩을 해서 이슈를 설정, 토론을 벌이며 현실적인 지식을 쌓고 있으며 신문은 사회와 호흡하는데 필요한 현장감 있는 지식 취득에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란 말은 신문은 사람사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여과없이 샅샅이 비춰주기 때문일 것이다.
5년째 운영되고 있는 서울 명덕외고(교장 강재용) NIE교육 토론반, CEDA(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는 학생들이 작성한 신문 읽기에서 토론할 주제를 골라 조별로 찬반 입장을 정하고 신문·책·인터넷 등에서 논거를 찾아 토론 전략도 수립하며 창의력과 비전적 사고력을 통해 신문으로 토론 능력을 키워 오고 있다.
이미 참여 학생들은 ‘우리는 청소년 논객(論客)’이란 자부심에 차 있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입시를 넘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단계로 NIE교육의 차원을 높였다고 한다.
科學·人文 모든 學問, 폭넓은 ‘읽고 쓰기’로 판가름
며칠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이성준)이 부산대에서 개최한 신문읽기 순회특강 ‘리더서 콘서트’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통섭(統攝)의 지식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과학분야이든 인문학이든 결국은 읽고 쓰기에서 판가름 난다'고 강조하며 읽고 쓰는게 인생의 황금열쇄라고 강조했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되듯, 20세기까지는 따로 놀았지만 “금세기부터는 여러 학문이 서로 만나고 함께 넓게 파야 심오한 진리를 탐구할수 있는 시대’라고 역설했다.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와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케메론을 거명하며 과학이건 인문학이건 생태학도 모두 알아야 하고 학문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한편 생활속의 한자 학습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는 서울 인신여중 전홍섭 교장은 ‘한자 많이 쓴 신문은 어휘력 교과서’라고 반기며 그 실제적인 방법으로 역시 신문에서 한자어 표기를 많이 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번 서해안 천안함사건으로 온 국민의 안타까운 시선이 쏠릴 때 ‘함수·함미·기뢰·어뢰' 라는 말들이 무수히 쓰였으나 대부분이 한글로 표기 됐던바 이를 함수 → 艦首, 함미 → 艦尾, 기뢰 → 機雷, 어뢰 → 魚雷로 쓰고 동시에 한자를 안다면 ‘함수’는 ‘군함의 앞머리 부분’을 가리키고 ‘함미’는 ‘군함의 뒤 끝 부분’을 말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됐을 것이라며 사람이 가지는 사고(思考)의 범위는 그 사람의 어휘력에 비례한다고 꼬집어 의미심장한 토를 달았다.
그래서 필자도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아직껏 아날로그 구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그 어느 쪽에도 다 서툴다. 하지만 젊은 시절 활자매체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한 예로 스타디움이나 체육관에 가기를 좋아해 응원을 하며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하고도 이튿날 꼭 조간신문의 스포츠난이나 스포츠 전문 신문을 보고 전 날 본 각종 게임의 플레이 장면 내용이나 스코어를 인쇄매체를 통해 재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흥미있는 경기에 유독 관심이 뻗쳐서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직접 관람을 하고도 경기내용과 결과를 의심해서인지 또는 활자매체가 더 정확하고 믿을수 있다는 편견이나 신뢰성 때문인지 여하간 활자매체를 통해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고 그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미래가 아무리 전파매체와 영상매체 및 인터넷 독주로 재편성 된다 해도 아날로그 개념의 활자매체, 인쇄매체, 출판매체 기능이나 역할은 NIE 교육 장르란 새로운 발전 분야를 논외로 하고도 이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신문’과 ‘잡지’는 단순한 뉴스전달 매체가 아니라 그 안에 길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믿으며 비관적으로 보기를 단연 거부한다.
각급학교 NIE 동아리 활동은 활자매체의 未來像
비록 말끔히 세련되게 정리는 덜 돼 있지만 친구나 동창이나 면식있는 지인들의 저서와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된 글과 기고한 논단이나 제언은 지금도 필자의 낡은 스크랩북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언젠가는 그들이 화들짝 놀라며 감사(?)를 보내오리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되돌아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러 신문에서 아직도 컴퓨터가 아닌 육필 수기로 베스트셀러 작품을 내고 있대서 화제가 되고 있는 소설가이자 자전거
레이서인 우리 동네 일산 사는 김훈 작가가 작년 ‘풍륜(風輪) 5호’란 자전거를 타고 스페인의 성지 산티아고를 달리며
“책속에 길? 길은 길바닥에 있다!”를 강조, 문학엔 삶의 구체성이 없어 자전거로 확인하고 온 몸으로 체험하며 영감의
페달을 밟고 있다는 르뽀를 읽고 역시 필자와 같은 시대를 사는 아날로그형 아니면 활자매체형(?) 같아 반가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를 패러디 해서 ‘사람은 신문을 만들고 신문은 사람을 만든다’를 삶의 모토나 교훈으로 삼고 평생을 배우고 익히며 신문을 스승으로 삼는 NIE교육이 계속 유지 발전되리라는 믿음이 확고하다면 적어도 나중에 난 자가 먼저 된다는 옛 말은 차안(此案)에는 결코 부재(不在) 하리라고 필자는 굳게 믿고 싶다. <끝 / 샌드페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