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즌에 즈음하여
이인규/소설가
가을맞이에 시골은 꽤 분주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렇던 들판은 어느새 베어지고, 농부들은 그 자리에 다른 작물을 심는 등 농사일에 끝이 없다. 어쨌든 하늘은 높고, 말(馬) 대신 사람들이 살찌며, 바람은 선선하다 못해 쌀쌀해지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가 되면 농부 외에도 분주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일 년에 단 한 번, 각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 시즌이 왔기 때문이다. 빠르면 이달 중순부터 늦어도 다음 날 초순까지 그들은 이 황홀한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농부가 가을에 키우던 작물을 수확하듯 이 땅의 문학인을 꿈꾸는 그들 역시 자신이 공들여 썼던 작품의 결과를 수확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예비작가들의 꿈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모두 알다시피 몇 년째 출판계는 불황이고 이제 사람들은 기성 문학인들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은 이 현실에서, 등단을 꿈꾸는 예비작가들은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매년 주류 신문사에 시는 평균 1,000대 1, 소설은 최소 300~500대 1이라는 말이 있다. 지방 신문사도 조금 덜했으면 했지, 아마 마찬가지로 추정된다. 그만큼 지원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혹시 그들은 신춘문예에만 당선되면 일확천금을 벌고 이후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환상에 잡혀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땅의 관료들이나 시민들이 ‘작가’라는 직업을 끔찍하게 여겨, 온갖 지원을 다 해주고 대우를 잘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몇 년 전, 내가 사는 지역에 나처럼 귀촌한 소설가 두 명과 시인 두 명, 이렇게 다섯 명이 가칭 ‘귀촌 문학회’를 만들어 함께 참여하였다. 회비도 없고 정관조차 없는 가난한 문학회였지만, 서로의 글과 정보를 공유하며 그런대로 재미있게 꾸려나갔다. 하지만 시골살이의 분명한 한계, 생계에 달린 문제로 그만 흐지부지하게 되고 말았다. 소설가 중 한 명은 그 이듬해 자신이 살던 도시로 떠나가 버렸다. 신춘문예는 아니었지만, 권위 있는 문예지에 등단한 그는 이 기간에 첫 소설집을 내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결국 시골에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돈 안 되는 소설 이거, 계속해야 하나요?” 하며 마지막 술자리에서 그가 내뱉은 자조 섞인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거기에다 나머지 시인 두 명의 사정은 더 혹독했다. 시를 쓰며 틈틈이 군에서 마련한 중년 일자리에 참가하든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이게 아내들에게 이혼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결국 그 둘은 지역민 등 주위에서 ‘꿈꾸는 몽상가’ 취급받으며, 여기에 합세한 아내들의 반란으로 뜻깊은 귀촌 살이 중 차례대로 이혼당하게 되어 ‘귀촌 문학회’는 절멸하고 말았다.
그들과 비교하여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귀촌 후 해마다 쉬지 않고 작품집(장편소설 등)을 내고 있지만, 잘 팔렸다는 증거도 없고 또 그럴 일이 만무하다. 나 또한 한때는 아내로부터 이혼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도 안 짓는‘한량’이라는 비아냥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작심하고 전업 작가로 나선 이 땅의 작가들 사정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나는 올 12월 초에 ‘스토리 작가 이인규의 장편 퓨전 웹소설 시리즈 3권’을 e-book으로 출간한다. ‘K-교도소 생존자구출팀’‘지리산 디스토피아’‘짐승의 숫자 666’등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판타지·미스터리·추리 장르여서 조금 기대하고 있긴 하다.
이야기가 길었다. 앞의 사례가 다소 부정적이라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예비작가들의 기를 꺾어버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작가 생활을 해 본 경험자의 기우로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설령, 자신의 시나 소설 등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더라도 그대들의 나이가 젊다면, 섣불리 전업 작가로 나서지 말아 달라는 충고의 말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래저래 결전의 날이 왔다. 그간 지원자들은 자신의 엄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피를 말리며 자신들의 꿈을 향해 훌륭한 작품을 썼을 것이다. 부디,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 올해 마지막 '시민시대' 기고문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내년엔 더 좋은 콘텐츠로 만나뵐게요.
감사합니다.
* 위 세 작품집(K-교도소 생존자 구출팀, 지리산 디스토피아, 짐승의 숫자 '666')은 저의 장편 퓨전 웹소설시리즈로 곧 출간 예정입니다.
결정되면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이인규
-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 작품집 : 장편소설 '53일의 여정(23년 대한민국 소설 독서대전 선정작)' 등 다수
- 음반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비와 그대' 등 창작곡 8곡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