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별
염창중학교 20233 김유진
이 책을 내가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난 '지은이'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였다. 당시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친구와 싸우기도 하며 지내는, 지구상의 30억 명의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나는 친구들과 민들레를 찾아다니며 후후 부는 놀이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 때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민들레를 한 번에 모두 불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상 나는 그 누군가보다도 내가 '특별'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믿음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확고한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폈을 때 나는 이 책 속에 어떤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난 학교에서 모든 글은 주제가 있으며 책을 읽을 때는 그 주제를 찾아가며 읽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난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찾지 못했다.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딘가에서 어린 왕자는 행복할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오는 내가 이 책을 다시 뒤적거렸을 때, 나는 놀랐다.
「벌써 내가 어른이 되었단 말야?」
난 이제 몇 시간이고 민들레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풍선을 보고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무언가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로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어른이 됐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였다. 진짜 '아이'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남기려 애쓰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의 무언가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비밀하나를 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어린 왕자를 정말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들뿐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순수함을 벌써 조금 흘려버린 나로서는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급한 숙제를 할 때, 또는 시험 전날, 아무리 좋은 책이라며 건네줘도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즉 나는 종종 약간의 여유 또는 보아구렁이 그림보다 좀더 속세 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모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어린 왕자의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랑'이 묻은 인간 사이의 참다운 관계의 중요성이었다. 인간 사이의 참다운 관계… 그리고 사랑.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싸매고 봐도 모르겠던 단순하고도 깊은 책의 의미가 정작 주위에 도는 이런 흔한 주제였다는 사실이 좀 어이없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다. 우리 인생에서 믿을 수 있는 진실한 인간 관계와 사랑-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몇이나 있을까. 가장 흔한 것, 하지만 가장 귀한 것, 그것을 이 책은 말해 주고 있다.
어린 왕자는 꽃을 자신의 별에 내버려두고 7개의 별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게 된다. 그 여행 속에서 그는 세상의 가장 멍청하고 바보 같은 어른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린 왕자가 느낀 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언론에서 떠도는 어른들의 모습은, 순수를 조금 잃은 아이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사의 부끄러운 단면인 것이다. 권세에 들떠 모든 지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왕, 겉으로 드러난 감언이설의 달콤함에 물든 허영심에 빠진 사람, 끝없이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술꾼, 소유하기만 할 뿐 소유물건에 어떠한 유익도 되지 않는 실업자, 잠도 자지 못한 채 명령을 수행하는 가로등 켜는 사람, 남의 말에만 의존하여 책을 만드는 지리학자. 어린 왕자와 나와 생떽쥐뻬리는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른들의 모습에 많은 실망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이 보이는 보아구렁이를 그려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어린 왕자 같은 이를 '한심한 이' 또는 '바보'라고 한다. 철도의 전철수나 약장수 같은 사람들은, 턱없이 순진하고 턱없이 시적인 이 아름다운 소년이 빠르게 돌변하는 시대에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정신 없을 정도로 휙휙 돌려버린 것은 누군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만든 것으로 인해 인간이 망가져 버린 그런 세상에서 어린 왕자는 올 곧이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싶어한다.
그런 어린 왕자는 결국 사람이 아닌 여우에게서 이 여행의 진짜 의미를 찾게 된다(그것은 정말 그렇다. 사람들은 우리를 늘 속이지만, 자연은 우리를 속이는 법이 거의 없다.). 왕이나 허영심에 빠진 사람, 지리학자나 술꾼들을 만난 것보다도 더 큰 '의미'를.
'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너무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란 뜻이야'
이 부분은 '어린 왕자'의 어떤 부분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동시에 내가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 꽃을 길들였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들을 길들이고는, 설레여 하기도 하고 갈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우는 어린 왕자와의 이별을 아파하면서도 황금 빛 밀밭을 보며 행복해 한다! 그렇게 천천히 난 '길들인다'의 의미를 헤아려 보았다. 나는 무엇을 길들였을까. 나는 무엇에 길들여졌을까? 지금 내 옆에서 웃는 내 친구가 나를 길들였을 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내가 쥐고있는 샤프를 길들였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 하굣길 골목의 담벼락에 길들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인간 관계에서의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일상에서 사라져 보아야만 그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지은이는 고민한다. 양이 과연 꽃을 먹었을까, 어린 왕자는 꽃을 잘 지키고 있을까, 그의 별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그것이 그다지도 중요하다는 걸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그리 어려운 단어로 된 것도 아니고, 별로 긴 문장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도 굉장히 긴 여운을 주게 만드는 말이었다. 왠지 모르게 어린 왕자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른이 되지 말아. 속물 같은 버섯이 되지 말아'
이것은 내가 다시금 지나가던 길에 핀 민들레꽃에 주의를 돌리게끔 만들어 줄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생떽쥐뻬리는 1944년 코르시카로 비행하던 중 실종되어 그 종적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이 대단히 시적이고, 아름다웠던 사람이 독일군 정찰기의 폭격에 격추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분명 비행기를 타고 그대로 어린 왕자의 별로 날아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양의 굴레를 그려주지 않은 것이 많이 걱정되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왕자가 뱀에게 물려서 꼭 이 지구에서 죽은 것같이 보인 것처럼, 그도 실종되어 이 지구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더 빨리 그곳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어린 왕자가 그에게 5억 개의 작은 방울들을 주고 그의 별로 떠났듯, 그도 우리에게 순수함과 세상 속에 약간의 여유로움을 남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에게는 연구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가지게 될 거야'
어린 왕자의 말처럼. 나도 오늘같이 맑은 밤엔 누구도 갖지 못할 나만의 별을 찾기 위해 창문을 열어 보아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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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써놓았던 독후감인데요,
우선 이 것부터 한번 올려볼께요^-^
그리고 저는 현재 고2입니다^-^....뭐 고3이랑 다름없긴 하지만요;
첫댓글 와,, 정말 글 잘 쓰시네요. 저도 어린왕자를 감명깊게 읽었었기 때문에, 호기심에 파티플레이님의 글을 읽어보게 되었어요.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나다니, 오늘은 제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