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네번째 문집 출간 사인회를 하며)
유옹 송창재
그때도 아침엔 이슬이 가득했다.
비라도 왔던 것처럼.
간밤에 빗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킨 밤 잠깐 깊은 숙면에 비가 왔었나?
일찍 털고 일어나 자주 걷던 들길에 나가 보았다.
이른 나락들은 누런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늦은 나락들은 이제 막 꽃이 졌지만, 푸르러 이제 곧 누렇게 될 것이다.
추석이 오면
이른 벼들은 베어서 햅쌀밥을 먹을 수 있다.
맑은 아침이면 자주 걷던 그길 이었다.
아침 산책길로 마음에 들어 좋아했던 길이 바로 이 길 이었다.
아무도 없는 한가하고 너른 들판에
이르게 잠깬 해오라기들만
유유히 여유롭게 날아
작은 하얀구름 조각 두어쪽이 내려와서 모이를 찾는 듯한 하늘이 너무 높아 좋고, 아침 바람이 상쾌하고 들길이 맑아서 곱다.
그때는 이른 봄이었다.
이곳을 구입하여 새를 기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하여서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이른 봄에 하는 공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며 일들을 했지만...
그 불속에서 작은 희망과 예쁜 미래를 키워 보았었다.
찬란하거나 큰 것은 아니었다.
새를 길러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우스웠고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는 아니었다.
자연과 더불어 최소한의 삶으로 평안한 마음의 쉼을 구하고자 하며 살았다.
아침마다 들길을 따라 목장까지 다녀오고...
그러나 그 길은 그대로인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다.
그 길, 그 풍경들 목장에서는 아직 잠에서 덜깬 그때의 숨소리들이 들리건만,
그 바람은 그때의 시원한 상쾌함이 아니고 발걸음도 무거워 걸음마다 눈앞이 흐려진다.
겨우 20년인데
이슬에 찍혀 눈에 보이는 포장길 위의 발자국들은 힘이 없어 희미해 보인다.
가다보면 아예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다.
굵은 발자국이 아쉬워 다시 이슬을 찍어온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내 발자국을 확인해야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항상 그대로건만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고…
그래서 잘못이라고들 한다.
세월이 가면 사람이 철이 좀 들라는 말이~~~
나는 철이 덜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철은 들 수가 없고 들기도 싫다.
그냥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
이슬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늘 오후면
내 책속에 작은 글들로 박힌 네번째의 나의 철들을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길에서도 많은 사색이 걸음따라 절룩거리며 따라왔었다.
개울가 밤나무의 밤송이는 그때의 나와 저의 속내를 철갑에 가두고 있다.
아직은 무섭게 가두어 누구라도 건들면 가시를 박아넣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며칠 후 추석이 지나면 쩍 벌어져 제 속을 거침없이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
작은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반짝이는 빛으로.
그것이 나의 철듦일까?
전부는 아니다.
긴 장대로 흔들어 주어야 벌어질 속들도 있고
아무도 모르게 풀속에 묻혀 썩어가는 밤톨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먹이가 되어서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그렇게 쌓여 무거워지건만 발자욱은 그림자도 없어 찍히지도 못한다.
이제는 더 가벼워져 날아갈 날개를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