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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무엇을 소원하고 있습니까?/딤전 2:4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2:4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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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조상호목사
시중에 이런 유머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노부부가 결혼 30주년 기념일을 자축하고 있는데, 한 요정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동안 두 사람의 금슬이 좋았으니,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주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먼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워낙 가난해서 세상 구경을 못했어요. 세계일주 여행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네요.” 요정이 지팡이를 흔들자 세계일주 항공권이 나왔습니다. 다음은 할아버지 차례입니다. 60세인 할아버지가 뜻밖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난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군.” 요정이 지팡이를 흔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60세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기 직전의 90세 할아버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크든지 작든지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은행에서 빌린 비싼 모기지를 갚는 일입니까? 아니면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일입니까? 아니면 세계일주입니까? 아니면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9888’(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고생하다가 죽는다는 의미)입니까? 1,000만 불 짜리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소원입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원하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도 소원이 있으십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창조한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도 소원이 있으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과 다른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학 2:8)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소원하시는 것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하나님께도 간절히 소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소원인 줄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에 대한 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은 ‘모든 사람’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보편성(universality of the Gospel)’의미하며,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별, 피부색, 연령, 인종, 신분 등과 상관없이 만민이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민이 구원받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소원은 다른데 있지 않고 영혼구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wish)이며, 하나님의 뜻(will)인 줄로 믿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 보면, “주 야훼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맹세하시면서 까지 악한 짓을 일삼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또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범죄한 모든 인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나중에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집을 방문할 때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든지, 계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든지,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해서든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을 합니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친척을 만나기 위해서든지, 영어연수를 위해서든지, 관광을 위해서든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영혼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2,000년 전 영혼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열두 해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주시고,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문둥병자를 고쳐주시고, 눈이 멀어 아무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가지고 2만 명 이상을 먹이시는 등 수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일은 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일도 결국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로마제국으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이라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오해했습니다.
어느 시골 늙은 아버지 집에 오랜만에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워서 비싼 돈을 들여 정수기를 설치해주고 갔습니다. 하루는 정수기 회사직원이 정수기를 정기 점검하기 위해 찾아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수기 보러 왔습니다.”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는 그 직원에게 “정숙이? 당신이 뭔데 정숙이를 찾는겨”하며 직원 앞을 막아섰습니다. 당황한 직원이 “저 그게 아니라, 정수기 필터 교환하러 왔는데요.”라며 더듬거리자 더욱 화가 난 할아버지가 이렇게 야단을 쳤습니다. “아 글쎄 우리 정숙이는 집에 없은께, 얼른 집에서 나가랑께” 하고는 직원을 쫒아 버렸습니다. 정수기 회사 직원이 나중에 알고 보니 정숙이는 할아버지의 시집간 둘째 딸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물을 깨끗하게 걸러주는 정수기를 시집간 자기 딸의 이름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이 할아버지처럼 오해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민족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장에 보면,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신다는 소문이 갈릴리 지방에 넓게 퍼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른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예수님인 혼자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음에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칭찬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오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을 위해 2,000년 전 세상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은 영혼 구원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 이하를 보면, 레위라고 불리 우는 마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 즉 세무공무원으로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와 죄인들과 같이 가장 천대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업무를 보기 위해 세관에 앉아 있는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벌입니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잔치에 참석하신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그 때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예수님이 누구를 부르러 오셨다고 합니까?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의인을 만나기 위해 오시지 않고, 죄 짓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영혼구원을 가장 기뻐하신다
그래서 잃었던 영혼이 구원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크게 시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 이야기, 잃은 드라크마 이야기, 탕자 이야기 등 세 가지 비유를 가지고 당신이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잃은 양 이야기를 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셈에 밝지 못하고 계산을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마리보다 99마리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우리 안에 들어있는 99마리의 양은 놓아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부모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신지체아들을 잃어버린 한 어머니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모성애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간 길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산시에 살고 있는 박인숙입니다. 2001년 1월 29일(월) 오후 2시경 경북 경주시 보문단지 내 한국콘도에서 사랑하는 저의아들 김도연(정신지체 1급)이 없어졌습니다. 도연이는 경남 마산시 소재 경남혜림학교 중학부 3학년에 재학중 이었으며 겨울방학동안 어느 정신지체 봉사단체에서 주관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왔습니다. 그러던 중 봉사교사의 제의에 따라 1박 2일 일정으로 경주 보문단지로 수련 활동차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1월 29일 경주보문단지내 한국콘도에 도착하였으나 선생님의 실수로 인해 저의 아들 도연이 잃어버렸습니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 찾아 헤매었으나 실종 20여일 이 지난 현재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이다 보니 더욱 마음이 찢어집니다. 너무나 불쌍한 우리 도연이를 좀 찾아주십시오.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도연이는 정신지체 1급으로 배가 고파도 구걸 할 줄도 모르며 훔쳐 먹지도 못합니다. 음식 옆에서 그냥서서 입에 넣어주기만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의미 없는 시선과 그저 힘이 있으면 계속 앞만 보고 가는 습관이 있으며 추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지칠 때까지 걷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스스로 차(버스나 기타)를 탈 줄도 모르며 '어~~' 소리 정도만 낼 수 있고 싱긋 웃기도 합니다. 이 추운 엄동설한에 어디에 가 있는지 안타깝고 애통할 뿐입니다....... 성하지 못한 신체와 정신으로 어디에 버려져 있는지 정말 기가 막히고 답답하기 형용할 수 없습니다. 부모 마음이야 다 같겠지요? 저의 아들 도연이는 지금 얼마나 엄마와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단 몇 분의 시간도 너무 안타깝고 고통스러워 이렇게 용기를 내어 여러 선생님들께 간곡히 도움을 청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수많은 프로그램 중 어느 프로든지 자막방송이라도 내보내 주신다면 그 은혜 정말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저희 가족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하루빨리 도연이를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합니다. 비록 제 아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정신지체 1급의 중증장애자이지만,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소중하고도 귀한 아이입니다. 고맙습니다. 2001년 2월 20일. 경남 마산시 구암동. 김도연 어머니 박인숙 올림.“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어머니는 여전히 잃어버린 아들을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 세월이 약이라는 위로로 살아 왔지만 7,8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은 무엇에 의지할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일까? .... 씁쓸한 마음을 어떻게 할까, 보고 싶은 도연이는 온대간대 없는데.... 그래도 죽기 전에 한번 볼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2008년 2월5일“
위에 보면 자식이 실종된 후 자식을 찾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거나 사업을 그만 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잃어버린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전단지를 돌리며 실종된 자녀를 찾아다니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녀가 하나가 아닌 둘이나 셋 이상이 되는데도, 집안에 있는 자녀보다 실종된 자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미아보호시설을 찾아다니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은 놓아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서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물론 목자가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99마리의 양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그 ‘한 마리’의 양에 대한 애뜻한 마음 때문에 그 ‘한 마리’를 위해 산과 들로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추측컨대 그 실종된 양은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무던히도 목자의 속을 썩이는 양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목자는 그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은 후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큰 잔치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2010년도 6월27일), 2010 월드컵축구 16강전에서 우리 한국팀이 우루과이에게 2대1로 아깝게 패하였지만, 온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모인 것은 물론이고 수백만 명의 군중들이 도시 곳곳마다 모여서 열광적인 응원을 했습니다. 어이없게 전반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루과이 선수에게 골을 허용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선수들이 골 넣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전에 이청용선수가 골을 넣자, 온 국민이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천국에서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를 소개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벌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한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영혼구원은 큰 상을 받게 한다
이처럼 영혼구원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하늘의 상도 큽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자기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담되는 설교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1위가 전도설교였다고 합니다. 전도설교를 들을 때, 가장 부담을 느끼고 짜증이 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가장 부담되는 설교가 전도설교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강단에서 전도설교가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를 괴롭히며 스트레스를 주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부담스럽고 짜증을 내는 성도도 있는데, 그 이유는 전도를 단순히 의무와 사명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할 때 주어지는 복과 영광은 대단합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영혼을 구원한 사람은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나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가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돈에 관심을 쏟기보다, 먼저 영혼구원에 관심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데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주일 오후 <샘지기 & 팀지기 연합모임>에서 8월8일 우리 교회 창립17주년 감사예배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우리교회 창립 기념주일이기 때문에 생일파티를 열어 즐겁게 보낼 수도 있지만,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나, 믿었다가 잠시 신앙생활을 쉬고 있거나, 하나님을 떠난 분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초청하자는 의미에서 홈커밍데이로 정했습니다. 이 홈커밍데이는 교회를 자랑하기 위한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 부서가 참여하여 장기자랑을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도 홈커밍데이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 제가 12년 전 우리 교회에 부임한 이래 초창기에는 1년에 두 차례를, 아마 2000년부터는 1년에 한 차례씩 홈커밍데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홈커밍데이에 초청되어 복음을 듣고 결신을 했습니다. 결신한 분들이 다 우리교회에 등록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숫자가 계속해서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지난주 회의에서 제가 “OOO집사님, OOO집사님, 등이 홈커밍데이에 초청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생활을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더니, 회의에 참석한 분 가운데 두 분이나 본인들도 몇 년 전 홈커밍데이에 초청되어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 동안 하나님께서 홈커밍데이를 통해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구체적으로 <2010년도 홈커밍데이>를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시다가 초청하고 싶은 분이나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의 이름이나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분들이 떠오르면 주보와 함께 나누어드린 <태신자작정카드>에 기입하셔서 제출해주시면 위해서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일에 제출하셔도 좋고, 그 다음 주일에 제출하셔도 좋고, 제출하신대로 새벽기도회 때, 금요집회 때, 주일예배 때 등 시간 나는 대로 제출한 분들의 초청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나누어 드릴 초청장을 활용하여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초청을 많이 하신 분들과 초청을 많이 한 샘에게 소정의 전도상을 드리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드리는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하는 이 일에 동참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가까이에 있는 분들 가운데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분들을 구원에 이르게 함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집에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딸이 시집가는 날 아침, 신부 어머니는 잠시 미장원에 들렸습니다. 원래 간단하게 머리를 다듬기 위해 미장원에 갔는데, 미용사가 “사모님, 퍼머를 하는 것이 어떠세요? 퍼머 하시면 정말 잘 어울릴 텐데“라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머리에 퍼머약을 바른 채, 각종 여성잡지를 이리 저리 뒤적이며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미장원에서 보냈습니다. 딸의 결혼식장에서는 신부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아서 여기저기 수소문하느라, 딸의 결혼식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3시간 만에 퍼머가 이쁘게 나왔다고 좋아하던 이 아주머니는 ”아참, 내 정신 좀 봐. 오늘이 딸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지.“라고 외치며, 뒤늦게 딸의 결혼식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딸의 결혼식은 끝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아줌마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십니까? ‘정신 나간 아줌마’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삶의 목적을 잊어버리면 이 ‘정신 나간 아줌마’와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2,000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제안한 한 물질과 인기와 권력, 이 세 가지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소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바라기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