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적인 것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것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왜소하다고 느끼고 있다. 자신의 존재는 초라하고 세계의 변화를 선도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현대인들은 자유롭다기보다는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그에 따른 실천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왜소함과 초라함, 그리고 부자유를 일찍이 간파하고 동시에 통렬하게 비판했던 사상가가 바로 니체였다.
아마도 현대 사상과 철학에 니체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논란을 제공했던 사상가도 드물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니체 철학이야말로 현대 사회와 문화의 어두운 그늘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니체는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을 성찰하면서 현대의 사회와 문화를 반인간적, 비인간적인 것으로 이해하였으며 현대 사회와 문화의 반인간적, 비인간적 성격으로부터 현대인의 왜소함과 부자유가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니체의 현대 문화 비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저 유명한 두 개념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흔히 '아폴론적인 것'은 이성과 합리를 나타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감성과 열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는 그 자체로 틀린 것은 아니다. 양자의 구분 방식 중 하나는 분명히 이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 대 감성과 열정의 대립 구도만으로는 두 개념의 함의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두 개념은 인간에 내재한 여러 속성 중에서 대립된 두 경향을 드러내는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인 것이다.
니체는 문명의 발전이 세계를 '아폴론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의 확장이라고 보았다. 즉, 이성과 합리를 통한 세계 이해의 증대를 현대 문명까지의 발전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것은 말과 바꾸면 세계를 존재의 세계로 이해하는 경향을 확장이기도 하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실재와 가상의 이분법에 기초한 현대 문화는 '아폴론적인 것'이다. 그런데 '아폴론적인 것'은 세계의 실상과 본성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의 발전은 왜곡의 심화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란 본래 존재인 것이 아니라 생성이며, 이분법적 대립을 통한 세계의 인식은 작위적이고 잠정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를 통한 이분법적 인식은 편리하게 세계를 이해하는 핞 방편이기는 하지만, 그 세계 이해는 본래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가로막는 것이므로 소외의 한 형태라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세계를 생성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아니, 세계 자체는 근본적으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서의 세계를 받아들일 때, 인간은 왜소함과 부자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생의 의지를 긍정하고, 힘을 향한 의지를 적극 펼침으로써 인간은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서의 세계 혹은 의지의 자유가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충동의 무분별한 발현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현대 문화비판은 역사적 발전을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해소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폴론적인 것'과 평면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감싸면서 해소해 버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니체 사상이 어찌하여 수많은 지성인들에게 현대 문화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소중한 빛으로 이해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별론 : 아폴론 형과 디오니소스 형
투르게네프가 인간유형을 '햄릿 형'과 '돈키호테 형'으로 분류했듯이, 니체는 '아폴론 형'과 '디오니소스 형'으로 분류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의 '태양'의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아폴론'의 이미지는 '이성. 침착. 조화'이고, '디오니소스'는 '광기. 본능. 열광' 등의 이미지다.
니체는 1872년 그리스 비극을 논한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예술이 이처럼 대립되는 두 가지의 예술적 충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그리스의 회화와 조각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밝고 명랑한 아폴론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충동, 바로 디오니소스적 충동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갈등과 결합에 의해서 문화가 발생하며, 그리스의 비극은 양자의 결합에 의한 최고의 걸작이라고 간주했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존재의 일상적인 한계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가치를 추구하며, '극단으로 가는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아폴론적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용'을 지키며 광란의 분위기에서도 '자기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냉철함을 유지한다. 이성과 광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결국은 한 곳에 도달한다. 우리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밝고 높은 등대가 바로 진리의 세계다. 그곳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리는 너희의 빛,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첫댓글 디오니소스형 인간이라... 박카스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더 기억이 잘될 것 같아요...^^
^^;; 나름 좋은 아이디어네염 ~~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디오니소스적 심연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니힐리즘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