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에로이카(영웅교향곡)
에로이카(Eroica, 제3교향곡, 1804, 4악장 변E장조 작품번호 55)는 유럽에 근대 자유주의를 가져오게 한 영웅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에게 바칠 생각으로 베토벤이 작곡한 것,
그러나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1804년 12월, 민주정체의 집정관 지위에서 스스로 전제제도의 군주(황제)가 되자 ‘그 역시 권력욕을 만족시키려는 보통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크게 실망하고 이 악보를 찢었다고 한다. 원래 이 곡에는 <영웅교향곡-보나파르트를 상기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였었으나, 나폴레옹이 제위에 올랐을 때 여기서 그 이름을 삭제하고 다만 <영웅교향곡- 어떤 위인을 상기하기>로 고쳤다고 한다. 이 곡은 <영웅교향곡>보다도 이태리어의 영웅을 뜻하는 <에로이카>로 불릴 적이 더 많다.
한 가지 더 첨가할 것은 이의 제2악장에도 장중한 장송행진곡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이 <장송행진곡>도 쇼팡의 <장송행진곡>(1834)과 함께 오늘날도 많이 취주되고 있다.
12. 운명교향곡
베토벤의 제5교향곡으로서 그가 작곡한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白眉곡. 이 곡의 맨처음에 나오는 주제에 대해 베토벤 자신이 ‘이처럼 운명은 도어를 두드린다.’ 고 말한 데서 그 후 <운명교향곡>(4악장, 1807, C단조, 작품번호 67)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곡의 완성에는 1795년부터 1807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걸렸는데, 그간 그 자신은 귀의 질환, 연인과의 이별 등 인간적인 여러 가지 고통과 고뇌를 맛보았다.
이 제 5교향곡(운명)은 1808년 12월22일,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13. 전원교향곡
<전원교향곡>(Symphonie Pastrale, 제6교향곡, 5악장, 1806~08, F장조, 작품번호 68)은 베토벤이 38세때의 여름, 빈 교외의 농촌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곡한 것. 제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감정의 눈뜸, 제2악장 시냇가의 정경, 제3악장 마을사람들과의 유쾌한 단란, 제4악장 뇌우, 폭풍우, 제5악장 牧人의 노래- 폭풍우가 지나간 뒤 감사에 가득찬 즐거운 감정. 이것은 ‘繪畫보다는 차라리 감정의 표현’으로서 자연과의 접촉에서 받은 분위기, 정서를 묘사한 것이다.
이 곡은 앙드레 지이드(Andre Gide, 1869~1951)가 이 곡을 주제로 앞 못 보는 한 소녀의 순정을 그린 소설(1919)을 발표한 이래 한층더 유명해졌고, 어떤 나라에서는 이것을 번안하여 영화로도 만들었다.
작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삽입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이 곡의 밝은 곡조를 젊은 사람들이 특히 즐겨 듣는 것 같다.
14. 제9교향곡(합창교향곡)
이<제9교향곡>(Neunte Symphonie, 1822~24, Deks조, 작품번호 125)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완성된 것. 표제에 ‘실러(Schiller, 1759~1805) <환희송가(歡喜頌歌)>에 의한 종말합창가진 교향곡>이라고 쓰여 있는데서 또한 ’합창교향곡‘이라고도 한다.
이 웅대하고도 장엄한 교향곡이 완성됐을 때 베토벤은 이미 완전히 청각을 잃고 있어서, 1824년에 初演했을 때는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곡의 연주가 끝난 다음에도 한동안 악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여성합창단원이 그의 소매를 끌어 청중을 보게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원래 이 곡은 프러시아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바친 것으로서 교향곡역사와 서양음악사에서 찬란히 빛나는 금자탑으로 되어 있다.
15. 들장미
빈 소년합창단의 아름다운 합창을 곁들인 <들장미>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독자들은 서부활극의 권총이 난무하는 외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청량제주사를 맞은 것처럼 시원하고도 아름다웠던 일을 상기할 것이다.
가곡<들장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1815년에 슈베르트(Schubert, 1797~1828)의 독창곡에서 나오는 것이고, 둘째는 베르너(Werner, 1836~81)가 1879년에 작곡한 합창곡에서 나오는 것, 세 번째는 작곡연대가 알려지지 않은 하우프트만(Hauptmann, 1792~1868)의 합창곡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슈베르트와 베르너는 모두 괴테의 시를 소재로 이것을 작곡하였다.
16. 보리수
아름다운 가정음악영화 <보리수>가 공개된 이후, 경이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 영화제목과 같은 이름의 가곡 <보리수>가 있는 바 이것은 슈베르트가 작곡한 것. 만년의 l가곡들을 모은 ‘겨울의 여행’(1827, 작품번호 86)이라는 가곡집에 다섯 번째 곡으로 들어 있다.
이 가곡집은 그의 친구인 시인 빌헬름 뮬러의 연시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에 곡을 붙인 것. <보리수>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겨울날밤에 한 젊은이가 실연으로 상심한 끝에 그녀와 추억 많았던 샘터 옆 보리수를 지나 정처 없는 유랑의 여행길에 오를 때의 슬픈 심정을 노래한 것.
17. 미완성 교향곡
슈베르트의 제8교향곡은 제2악장 밖에 완성되어 있지 않고, 제3악장은 얼마간의 단편과 초고 뿐이며, 제4악장은 전혀 손댄 흔적도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발견됐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것을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부르게 된 것.
일설에는 ‘나의 연애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이 곡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이 악보에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곡은 이 천재적인 작곡가가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마다 마구 써 놓았던 수많은 악보 중에서 그가 죽은지 37년이 지난 1865년에 발견되어 초연된 것이다. 비록 미완성이긴 하지만 정연한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로 말미암아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되어 있다.
18. 백조의 호수
차이코프스키(Chaikovskii, 1840~ 93)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1876)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스크바의 帝室 가극장에서 처음 상연됐을 때는 훌륭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안무와 무희들의 실패와 실수가 많아서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뒤 페테프부르그에서 재상연됐을 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금은 발레음악 중에서 몇 곡을 골라 조곡(組曲)으로 편곡되니 것이 자주 연주된다.
차이코프스키는 처음에 법무성관리로 있었으나 1863년에 사표를 내고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 들어가 음악을 전공했다. 루빈쉬타인에 사사하고, 림스키-코르사코프, 발라키레프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중요 작품은 가극 : 에프게니 노네긴(1878), 장느 다르크((1879), 스페드의 여왕(1890), 발레곡 :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 교향곡 : 제4(1877), 제5(1888), 비창교향곡(1893), 환상곡 : 로미오와 줄리엣(1870), 기타 이태리 기상곡 등 다수가 있다.
19. 비창교향곡
옛날부터 클래식음악 입문생에게 레코드 상점의 주인이 첫 번째로 권하는 곡이라고 하면, 의례 차이코프스키의 제6교향곡 <비창>(1893, 4악장 B단조, 작품번호 74)이었다. 특히 제4악장을 ‘자살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이 곡을 처음으로 상연한지 9일 후(1893.11.6)에 갑자기 콜레라로 사망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자살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여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 고독, 우울, 절망감이 듣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될 만큼 열정적으로 호소하는 힘을 가진 곡으로서, 그가 죽은 후에 재연주됐을 때 청중은 연주가 끝나도 박수 보내는 것을 잊고, 한때 깊은 슬픔과 침묵에 잠겼고, 개중에는 슬피우는 사람까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차이코프스키의 作風은 러시아적 우수와 열광적 도취를 겸하였고, 게다가 유럽적인 우아성을 곁들인 것이다. 독일의 고전적인 樂理에 의한 절충적인 수법은 한때 러시아 국민악파의 젊은 세대로부터 비판도 받았지만, 외국에서는 그의 국제성과 풍부한 선율미 때문에 오히려 크게 환영받았다.
20. 신세계 교향곡
드보르자크(Dvorak, 1841~1904)는 보헤미아에서 태어난 민족주의 낭만파의 대표적인 작곡가. 프라하 음악학원 교수, 동 원장을 지냈고, 뉴욕에 신설된 국민음악학교의 교장으로도 있었다. 그의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제9교향곡, 1893, E단조, 작품번호 95)은 그가 미국에 체재할 당시에 완성시킨 것.
이것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요와 흑인연가에서 암시를 받아 작곡한 것으로서 보헤미아지방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을 그대로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것이고, 특히 이의 제2악장의 주제는 ‘歸路’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드보르자크의 작품은 고전 내지 낭만파 기법에 민족성을 색깔짙게 반영시킨 것으로서, 여기에는 체코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소러시아와 폴란드의 요소까지 반영시킨 범슬라브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에 있을 때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속음악까지 섭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