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즐겁게 사는 비결/전 3:22
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
"So I sa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than that a man should enjoy his work, for that is his lot; who can bring him to see what will be after him?"(Ecc 3:22)
일을 즐겨하고 있는가?
"애덤 킹! 희망을 던져라."(2001, 북하우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실 겁니다.
금년도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를 했던 두 다리가 없는 장애아 애덤 킹이란 소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애덤 킹의 양부모인 찰스 로버트 킹과 다나 윌리엄스 부부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찰스 로버트 킹과 다나 윌리엄스는 고등학교 시절 클래스메이트로 19세에 결혼해서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금년 50세의 부부입니다. 로버트 부부는 결혼 후 5년 반이 지난 24세 때에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로버트가 공군에 복무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첫 아이 매튜를 낳고, 둘째 아만다는 버지니아 공군 기지에서 낳았고, 셋째 제시카는 캘리포니아에서 낳았습니다. 큰 아이 매튜가 8살, 둘째 아만다가 5살, 막내 제시카가 두 살 되던 해인1986년, 결혼한지 14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다나 부인은 남편과 함께 입양을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 같으면 자기 아이 셋을 기르기도 벅찬 시기에 이들 부부는 엄청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다나 부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홀트 복지 재단의 설립자인 해리 홀트 여사가 한 말을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
1987년에 첫 아이 데이빗을 입양했습니다. 한국 이름으로 김중원이란 생후 3개월 된 남자 아이였습니다.
1989년 8월에 두 번째 레베카를 입양했는데, 역시 생후 4개월 된 한국 여자 아이였습니다.
1991년 9월에 세 번째로 리나를 입양했습니다.
리나는 인도의 변변치 못한 고아원에서 자란 8살 된 여자 아이였는데, 두 다리를 가슴 쪽으로 안고 두 손으로 기어다니는 장애아였습니다. 신체만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이라고는 접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고, 변기나 문화 시설은 물론 거울조차도 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야생마같이 울부짖는 IQ 50의 아이를 끌어안고, 로버트 부부는 울면서 달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리나의 두 다리를 수술해서 걷게 만들었습니다. 리나는 현재 말하는 것은 물론 몸치장까지 할 줄 아는 18세 소녀가 되어 있습니다.
리나 때문에 애를 먹는 중에 네 번째 아이 새라를 입양했습니다.
새라는 병원에서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복합 장애아였습니다. 의사의 진단 결과 뇌수종, 뇌성마비, 엉덩이뼈 탈골, 아악골 일탈, 눈 이상, 내반족(內反足), 간질, 발작, 정신 지체 등의 병명이 나왔습니다. 다나는 이 갓난아이를 보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새라는 세 살이 되기까지 11차례의 수술을 했습니다. 뇌 수술 두 번, 골반 교정 수술 네 번, 다리 펴는 수술 세 번, 눈 수술, 귀 수술 등등. 새라는 여섯 살에 첫 보조 기구를 붙잡고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첫 걸음을 떼는 날 다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새라를 입양한지 일년 반 후에 다섯 번째 아이 피터를 입양했습니다.
피터는 생후 15개월 된 정신 지체 장애아였습니다. 새라 때문에 지쳐서 이제는 정신 지체가 차라리 났겠다 싶었습니다.
1995년 10월 여섯 번째 아이 애덤 킹을 입양했습니다.
4살 된 한국인 남자 아이였는데 역시 걷지 못하는 장애아였습니다. 두 다리를 생기다가 말았고, 양 손가락은 4개씩 밖에 없는데 그나마 둘씩 붙어 있었습니다. 로버트 부부는 애덤의 수술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두 다리를 수술해서 무릎 아래 관절을 분리해버리면 의족을 해서 걸을 수는 있는데, 절단을 하자니 그나마 붙어 있는 다리 모양을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결단을 했습니다. 두 다리를 절단하고 손가락을 분리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로버트 부부는 애덤의 잘라낸 다리를 본인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에게 안녕이란 인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애덤은 현재 의족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7년, 애덤 킹을 입양한지 일년 반만에 일곱 번째 아이 조나단을 입양했습니다. 조나단은 뇌 손상을 입은 흑인 장애아입니다.
1999년 말 여덟 번째 아이 윌리엄을 입양했습니다.
윌리엄은 14주나 미리 태어난 조산아입니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765g에 불과했고, 생후 9일 만에 한 쪽 팔을 절단했습니다. 그밖에도 허파가 오그라들고 간도 손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다나 부인은 이 아이를 신속하게 돌보기 위해서 입양 절차를 밟기 전에 위탁모가 되어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위탁모가 되려면 많은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데, 윌리엄 때문에 그 과정을 밟았습니다.
2001년 아홉 번째 아이인 경빈이를 위해 입양 절차를 밟아 입양했습니다.
경빈이는 뇌 세포가 죽어가면서 뇌가 약해지는 PVL이라고 하는 희귀병 환자입니다.
저는 로버트 부부의 얘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을 쉬임 없이 계속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어떤 일에 열심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일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일을 하기도 합니다. 명예를 위해서 일하기도 합니다. 성공을 위해서 일하기도 합니다. 책임감 때문에 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버트 부부가 하는 일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돈 때문에 일급 장애아들을 줄줄이 데려다가 씻기고 공부시키면서 기를 수 있겠습니까?
책임감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할 수 있겠어요?
제아무리 큰 명예를 준다 해도 빡빡한 살림에 남의 아이들을 아홉 명이나 데려다가 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로버트 부부는 무슨 이유로 그 엄청난 일을 했겠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그 일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배로 난 아이"나 "마음으로 낳은 아이"를 똑 같은 자녀로 품고 있습니다. 아이 하나 하나를 입양할 때마다 출산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공항에 마중나와 아기를 받아 들고 얼싸 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장애아이들을 돌보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습니다. 자식 기르는 기쁨이 그들을 지탱시킵니다. 결혼 20주년 기념일 날 부부는 각기 다른 병원에서 지새웠습니다. 입양아인 리나와 새라가 각기 다른 병원에서 동시에 수술을 했기 때문입니다. 돈 많고 여유가 있어서 양자를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양부모가 되려면 참으로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자격증을 따야만 합니다.
수십 시간의 특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정부 관리들과 면담을 해야 하고, 재정 상태와 심리 조사에 합격해야 합니다.
정부 기관을 통해서 입양하려면 신청하고 2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로버트 부부가 한국에서 입양할 때에 한 사람당 평균 4500달러가 들었습니다. 여행 경비를 포함하면 9000달러에서 10000달러가 소요됩니다.
주택 문제도 있습니다.
로버트 부부는 방 네 개 짜리 개인 주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3식구를 위해서 그 집을 개조했습니다. 차고를 개조해서 방 두 개를 늘리고, 현관을 늘려 방 하나를 더 만들어서 일곱 개로 개조했습니다.
가장 싼 곳에서 대량으로 구입해도 한 달 식비만 400달러가 넘습니다.
미국에서 중산층이면 골프를 치고 여행을 즐기는 것이 보통인데 로버트씨 부부는 대부분을 반납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통해 가장 큰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로버트 씨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도 자선 사업을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사회적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드리자는 뜻도 아닙니다.
어떤 힘들고 엄청난 일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큰 짐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입양을 원하는 자들에게 다나 부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공명심이나, 책임감, 혹은 동정심으로 시작하지 말라! 기존의 자녀들과 조화시킬 확신이 서 있는가? 정말로 부부가 함께 그 일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당하기를 원하는가?" 로버트와 다나 부부는 아이들 기르는 것을 자신들의 일상 생활로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삶의 길이요 행복의 길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가?
자기 일에 즐거워하라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3:22)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것이 그의 분복이다! 이 말씀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두 가지의 중요한 멧세지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마다 주어진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자기 일"이란 단어와, "분복"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분복( )"이란 말의 뜻은 "할당", "상속", "부분" 등의 의미가 있는 말로 영문 성경에는 portion, share, part, territory, lot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RSV 성경에 보면 "lot"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제비뽑기, 혹은 제비뽑기로 할당된 몫을 가리키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생 길이 있고 그것은 사람이 바꿀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시37:23) 우리는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자신은 똑똑하지 않은데 똑똑하게 살려는 사람, 자신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특별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 부자로 살 사람이 아닌데 부자로 살려는 사람,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 미인이 아닌데 미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 지도자 감이 아닌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 유명해 질 수 없는데 유명해 지려는 사람, 미국인이 아닌데 미국인이 되려는 사람, 학자의 소양이 없는데 학자가 되려는 사람, 예술가적 재능이 없는데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 이 세상은 온통 자기 아닌 자기를 위해 미치고 있습니다. 도적질, 강도질, 사기질이 왜 나옵니까? 자기 형편대로 살지 않고 남의 형편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선 내 삶을 내 삶으로 인정하세요.
그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무명하면 무명한 대로, 머리가 나쁘면 나쁜 대로, 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성공했으면 성공한대로, 실패했으면 실패한 대로 자신의 삶을 인정하세요. 한국인이면 한국인으로, 학생이면 학생으로, 여자면 여자로, 남자면 남자로, 직장인이면 직장인으로, 사업가는 사업가로, 현재 내 모양 내 소유 내 능력대로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인줄로 인정하세요. 내 인생을 내 인생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삶이 시작됩니다. 중년이 되면 사람마다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런가? 좀더 나은 길은 없었는가?" 말짱 쓸 데 없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참모습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둘째로,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습니다.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오직 한 차례의 연기로 끝나버립니다. 게다가 자신이 하는 연기의 진행과정을 전혀 모릅니다. 오늘 말씀 후반절이 바로 그 말입니다.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내 인생이 어떻게 돼 가는지 다시 보게 해 줄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한 번 사는 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아왔든지 남은 인생이나마 즐겁게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낙심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나는 이미 다 베린 인생인데, 어느 세월에 다시 행복한 삶을 만든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즐거움의 의미를 모르는 분들입니다. 즐거움이 꼭 사회적 성취에서만 오는 겁니까? 공부를 잘 하고, 유명해지고, 잘 생기고, 똑똑한 사람만 즐거운 겁니까? 앞서 말씀드린 로버트와 다나 부부는 가장 큰 행복을 아이들에게서 얻고 있습니다. 장애 아이들은 기쁨을 모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즐거워하고, 더 잘 웃습니다. 오히려 정상인들이 잘 웃지 않고 우중충합니다.
저는 가끔 신혼 시절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합니다. 결혼 선물로 친구들이 흑백 텔레비전 한 대를 선물했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선풍기 한 대를 사 놓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첫 아이 낳고 옹알이 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녹음을 다 해 놨습니다. 둘째, 셋째 아이를 낳고 한창 뛰어다닐 무렵에는 길에 버려진 폐 자전거를 주워다가 이리 저리 떼어 붙이고 페인트 칠을 해서 선물로 줬습니다. 아이들이 고물인지 신품인지 알게 뭡니까? 하루 종일 신나게 타고 놀았지요. 비싼 장난감이 행복이 아닙니다. 연을 만들어 함께 날리고, 썰매를 만들어 태우고, 개울에서 피라미를 같이 잡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큰 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인생에 큰 일 작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린 아이들에게는 걸음마 배우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청각 장애인에게는 남의 말소리 듣는 것만도 가장 큰 일입니다. 위를 절단한 환자에게는 한 끼의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것만도 큰 일입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는 건널목 하나를 건너는 것이 큰 일입니다. 시각 장애인에게는 낮과 밤을 구별하는 것만도 큰 일입니다. 인생에는 매 순간이 다 중요한 시간들일 뿐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앉아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큰 일이요,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하는 것도 큰 일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작은 일들을 통해서 많은 기쁨을 얻습니다. 언젠가 제 아내가 길에서 몇 천원짜리 공구를 사 갖고 와서 제게 내밀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줄 알고 사왔어요. 당신은 작은 것에 즐거워하는 것이 꼭 애들 같아서 좋아요."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작은 것들입니다. 주머니칼, 1000냥 하우스에서 산 다용도 삽, 시골 장날 산 고무신, 성덕 동산에 잡아다 놓은 붕어들....계절마다 하늘이 변하는 것, 석양의 구름 빛깔,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북한산의 모습, 잡초가 자라고 야생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 모든 것이 나를 즐겁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즐겁게 살아갑니다. 내가 만일 "내 집 장만"을 기대한다든지, 자식들의 특별한 출세를 기대한다든지, 혹은 목회자로서 터무니없이 큰 교회를 꿈꾼다든지, 큰 교회 건물에 매달린다든지, 유명해지기를 기대했다면 나는 항상 기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큰 일을 한다고 떠벌리든지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작은 일일뿐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평가는 동일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마25:21,23) 먼저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자신의 모든 삶을 즐거움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서는 솔로몬이 노년에 쓴 책입니다. 전도서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입니다. 전도서의 특징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가 "해 아래서"라는 단어입니다. "해 아래서"란 말은 하늘 위를 바라보지 못하는 지상 세계를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는 불행한 인생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습니다.(전1:9) 따라서 기대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혀 날뛰지만 세월 지나면 다 죽어 지옥에 떨어지고 역사의 무덤 속에 묻혀버릴 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전2:3-10) 재물, 쾌락, 사업 성공, 권력, 지식, 재능, 여자....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뭡니까?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11,16,22-23)
오늘 말씀에 담긴 솔로몬의 일차적인 의도는 분명합니다.
허망하고 짧은 인생이니 즐겁게나 살자는 것입니다. 태양 아래 살아가는 인생은 다 허망합니다. 성공한 자도 실패한 자도 똑 같이 죽습니다. 왕도 죽고 천민도 죽습니다. 유식자도 죽고 무식자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자도 죽습니다. 유명한 자도 죽고 무명한 자도 죽습니다. 잘난 사람도 죽고 못난 사람도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지옥가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마주 앉아 천하를 도모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웃기는 일입니다. "천하"는 뭔 말라 죽은 "천하"입니까? 자기 집안도 제대로 못 꾸려가는 사람들이! 해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현명한 것은, 그나마 주어진 짧은 시간들을 그것이 내 인생인줄 알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염세주의에서 벗어나고 낙천적으로 살자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의 진정한 의도는 아닙니다. 염세주의보다 낙천주의가 훨씬 현명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낙천적인 태도만으로는 즐거운 인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정말 즐겁게 살려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참 신앙 안에 들어오지 않고는 자기 인생을 알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떠나기 전에,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에, 하나님을 빨리 찾아야 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인생을 보는 눈이 떠집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거쳐 온 삶의 과정, 그것이 바로 나의 인생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의 환경, 그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살아야 될 나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삶을 살려고 하지말고 내 삶을 사세요. 내 인생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 밖에 걸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인생에는 큰 일 작은 일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중요하고 덜 중요한 시간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시간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 매 순간을 진지하고 즐겁게 사세요.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순간들을 즐겁게 보내세요. 그럴 때에 성공적인 삶이 부수적으로 올 겁니다.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