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현tv 인터뷰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선종과 밀종의 비교 부분에 대해 더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선종에서는 복덕자량을 어떻게 쌓는지 궁금합니다. 밀종에서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통해 지혜자량과 복덕자량을 구족하여 부처의 법신과 색신을 이룬다고 하는데요. 선종의 참선을 통해 지혜자량을 쌓아 법신의 원인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참선으로 복덕자량까지 쌓아 색신의 원인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p.s. 선종과 밀종의 뿌리가 같다는 말씀에 반쯤은 공감이 가고 반쯤은 약간 의문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밀교 중에서도 티벳 닝마빠 족첸 전승과 선불교 간에 분명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사점 가운데 일부는 뿌리가 같다기보다는 일종의 수렴진화 현상이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어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답변입니다.
조현TV 인터뷰에서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대해 설명하다가, 보충설명이 길어져서 선불교와 밀교와 샤먼 얘기까지 꺼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불교를 밀교와 동일시 한 것은, 선불교나 밀교 모두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등법(傳燈法)이기 때문입니다.
밀교를 수행의 최정상에 두는 티벳스님들의 경우 불법승 삼귀의에 스승에 대한 귀의 한 가지를 더 추가하여 사귀의(四歸依)를 한다고 합니다. 이 때의 스승이 바로 제자에게 관정을 주는 라마입니다. 무속에서 신어미에게 내림 굿을 받아서 신딸로 등극하여 샤먼의 역할을 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물론 선불교의 경우 제자에게 파격의 지혜로 인가를 하고, 밀교의 경우 스승의 자비와 지혜가 제자에게 전수되기에 , 세속의 복락을 추구하는 무속적 샤먼과는 그 질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스승에게서 제자로 그 맥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샤먼, 밀교, 선불교의 방식은 유사합니다.
티벳불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영국출신의 인류학자 Geoffrey Samuel은 자신의 저술 <CIVILIZED SHAMANS: Buddhism in Tibetan Societies>에서 티벳의 라마를 '문명화된 샤먼'이라고 규정합니다. (작년 1학기에 경주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수업에서, 이 책의 내용 중의 일부를 수강생들이 분담 번역하여 발표였습니다.) 샤머니즘과 밀교에는 유사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고려시대 3대 화상 가운데 하나인 지공화상(1300-1363)은 인도출신인데, 19세에 남인도에서 법을 이어받아 선종에서 서천 108조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에 선불교가 있었을 리가 없기에 이는 허구일 것이라는 것이 현대 학계의 통설입니다. 그러나 지공화상이 인도에서 밀교의 사자상승 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해석할 경우 이런 전법의 스토리가 진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에서 복덕자량에 대해 물으셨는데, 선불교의 경우 별도로 복덕자량을 쌓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밀교의 경우 방편승이라고 부르듯이, 그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부처의 삼신 가운데 보신과 화신(색신)을 성취하기 위한 복덕 자량의 축적 방법에 할애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선불교와 밀교는 다릅니다.
제가 말하는 선불교와 밀교, 샤먼의 공통점은 복덕자량이 아니라 '사자상승의 전등법'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답변을 마무리하면서, 깨달은 선승의 경우 부처일까? 아라한일까? 보살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해 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1.깨달은 선승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지혜가 열려서 돌아가셨다면 아라한입니다.
2. 깨달은 선승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지혜도 갖추었지만, 수많은 제자를 두었고 후세에도 영향력이 크다면 그 분은 부처와 같은 분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이 바로 그와 같은 분입니다.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춘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생애와 어록이 실린 문헌을 <법보단경>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붙일 수 있는 <경>자가 붙습니다.
3. 깨달은 선승이 돌아가실 때, 내생에 어디에 태어나겠다고 발원을 하셨다면 그 분은 보살입니다. 아라한이나 부처와 같이 무여의열반의 적멸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대 우리나라 선승 가운데 이런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요컨대, 인도불교적으로 평할 때, '깨달은 선승' 중에는 부처도 계시고, 아라한도 계시고, 보살도 계십니다.
샤머니즘과 밀교와 선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불교학계의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선과 족첸의 유사성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얘기하지만, 티벳불교계에서는 선의 영향을 극구 부인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객관적 조망 역시 앞으로 불교학자들의 연구 과제입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CIVILIZED SHAMANS>도 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샤머니즘, 밀교, 선불교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밀교는 여러 신비체험에 대하여 기맥의 변화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 현교와 마찬가지로 공성의 증득과 자비의 실천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 등이 샤머니즘과 구분되는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불교가 교외별전의 가르침이다보니 교종처럼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뚜렷한 구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발심과 이후 행적에 따라 조사들께서도 각기 다른 승의 과위를 얻지 않으셨을까 짐작해봅니다.
쌈예논쟁의 여파로 티벳불교에서는 선종과 엮이는 것 자체를 극도로 기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이 이해도 되고, 후에 족첸이나 마하무드라 전승도 까담빠의 전승과 결합하여 차제를 강조하는 인도불교 틀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후대로 갈수록 선종과 차이를 보이니 무리하게 엮을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마하연 화상 이전에 훨씬 전부터 선종과 족첸이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달마대사와 지공화상 등이 불교를 익혔던 남인도, 스리랑카 일대는 대승 밀교가 번성했던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마대사가 중요시 여겼던 능가경의 설법무대가 스리랑카의 말라야산이며, 역시 닝마빠의 마하요가, 아누요가가 말라야산에서 금강수보살에 의해 설해진 점, 능가경에서 밀교와 마찬가지로 여래장 사상과 의성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티벳불교 일부 유파에서는 달마대사를 빠드마삼바와의 화신으로 보고 있다는 점 등등..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지만 정황상 의심해볼 여지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ㅎㅎ
밀교 중 지관쌍운의 명상법은 선종의 형태로 중국화되어 전래되고 기맥명점 수행은 모종의 이유로 전래되지 않거나 중도에 실전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봅니다..
티벳 사람들은 Padampa Sangye가 12년간 중국에 머물며 선을 가르쳤는데, 그가 바로 보디달마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파드마삼바바의 화신이고 바로 전생에는 까마라실라였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파드마삼바바가 티벳불교와 중국불교를 모두 이끌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의 활동시기는 11세기인데, 달마는 5세기 무렵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데, 티벳사람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빠드마삼바와, 까말라쉴라, 파담빠 상계, 보리달마는 모두 그 행적이 분명치 않은 인물들입니다. 관련된 기록과 전설, 민담, 일대기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기에 믿기 힘든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쪽이 좀 더 바람직한 접근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담빠 상계 일화가 티베트인들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이미 기존 불교 경전에 수명 연장, 의식의 천이(遷移), 여러 분신의 화현 같은 신통력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수명을 자재하게 연장하는 신통은 <디가 니까야(長部)>의 「대반열반경」같은 초기 경전에서부터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붓다는 사신족(四神足)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1겁(劫) 동안이라도 세상에 머물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자재(命自在)의 신통은 대승경전은 물론이고 밀교에서도 금강신(Vajra body) 개념이나 무량수불 같은 장수본존 수행의 형태 등으로 등장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장수본존의 성취로 수백년 이상의 긴 수명을 얻은 수행자들의 일화들이 전해집니다.
까말라쉴라, 파담빠 상계, 보리달마 셋 모두에게선 "잘생긴 본래 몸에서 못생긴 다른 몸으로 의식을 옮긴 후 미처 본래 몸을 찾지 못하고 못생긴 다른 몸으로 살게 되었다"는(혹은 그 반대)
공통된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역시 믿지 못할 전설일 수 있지만 지금은 실전된 티베트 밀교의 의식전이법에는 죽은지 얼마 안되어 손상되지 않은 시신에 자신의 의식을 전이시키는 동쥭(grong 'jug)이라는 수행이 있습니다. 아직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포와('pho ba)와 함께 대표적인 티베트 밀교의 의식전이법으로 알려진 동쥭이 실제 행해졌는지,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리달마와 관련하어 동쥭과 유사한 일화가 전해진다는 점에서 보리달마와 밀교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