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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1922~ 2010)
「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 비로소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노령에도 사회활동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있는 표본으로 여겨져 왔으며, 2010년 사망했다.」 ■ 노란 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 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 내달았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걸어가는 사람 형상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스팔트의 검은 표면 위에 칠해진 하얀 줄무늬를 밟으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줄무늬를 얼룩말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에 그것처럼 얼룩말을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안달이 난 운전자들은 클러치를 밟은 채 당장이라도 출발할 태세였다. 차들은 곧 내리 꽂힐 채찍을 의식하며 신경이 예민해진 말처럼 앞뒤로 몸을 들썩였다. 보행자들이 길을 다 건너도 차의 출발을 허락하는 신호등은 몇 초 뒤에야 켜진다. 어떤 사람들은 언뜻 하찮아 보이는 이런 지연 시간에다가 이 도시에 있는 신호등의 숫자 수천을 곱하고, 거기에 노란 불을 거쳐 색깔의 불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곱해 보면, 그것이 교통 체중,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병목 현상의 가장 심각한 원인 가운데 하나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침내 파란 불이 켜졌고, 차들은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 차선의 선두에 있는 차가 멈춰서 있었다. 기계적인 고장이 발생한 것 같았다. 눈이 안 보여, 남자는 절망감에 젖어 되풀이해 소리쳤고, 사람들은 그가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떤 여자가 말했다. 가끔 그런 일이 있어요. 조금 지나면 다시 보일 거예요. 간혹 신경이 말썽을 일으키곤 하거든요. 누가 우리 집 앞까지만 데려다 주면 됩니다. 아주 가까운 곳 이예요. ~~~그럼 차는 어떻게 하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차는 인도에 갖다 세워놓으면 돼. 눈이 먼 사람은 누가 팔을 잡는 것을 느꼈다. 오시오, 날 따라오시오. 눈이 먼 남자는 두 손으로 눈을 가져가며 휘저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마치 안개 속이나 우유로 가득한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멀면 검게 보인다고 하던데. 글쎄, 하지만 나는 모든 게 하얗게 보이는 걸요. 동행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집에 당신을 돌봐줄 사람이 있소. 눈이 먼 남자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아직 퇴근을 안 했을 겁니다. 나는 오늘따라 좀 일찍 퇴근했는데, 그만 이런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 부인이 올 때까지 말동무나 해드릴까. 상대가 너무 열의를 보이자 눈이 먼 남자는 갑자기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눈이 먼 남자는 천천히 문을 닫으며 되풀이 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 편한 확실성 밑에서, 불확실성이 쏟아내는 음울하고 괴로운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서 꽃 병 조각을 주워 모으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짜증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계속 구시렁거렸다. 직접 치우면 안되나. 나 몰라라 하고 자빠져 잠이나 자고 말이야. 그러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바람에 남자는 흥분했다. 눈을 뜨는 순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여자는 가까이 다가오다가 핏물이 든 손수건을 보았다.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머,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요. 난 눈이 멀었어. 앞이 안 보여. 차는 옆의 이면 도로에 있어. 의사가 물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비슷한 일이라도. 아뇨.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서른 여덟입니다. 어떤 장애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요. ■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도둑은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 곧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른 걸음도 못 가서 눈이 멀고 말았다. 안과의 마지막 환자는 그 마음씨 좋은 노인이었다. 대기실에 있을 때, 갑자기 눈이 먼 가엾은 남자의 입장을 편하게 해주는 말을 한 사람이었다. 노인은 그의 하나 남은 눈에 나타난 백내장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 날짜를 잡으러 왔다. 검은 안대는 빈 구멍을 가리고 있었으며, 안과에 온 이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 의사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병원에 이상한 병에 걸린 환자가 나타났어. 심리적 실명이나 흑내장의 변종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증상이 확인되었던 전례는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병이에요. 흑내장인가 뭔가가, 아내가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문외한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명을 하여 아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나서, 의학 서적들을 꽃아 놓은 책꽂이로 갔다.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의 병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가벼운 결막염을 앓고 있었는데 의사가 처방한 안약 몇 방울이면 금방 나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지요. 며칠 동안 잘 때는 안경을 벗도록 하세요. 의사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여자는 매춘부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기의 사회적 관계라는 그물의 복잡성, 낮이든 밤이든,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어쨌든 그 복잡성 때문에 우리는 성급하고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이 여자가 돈을 대가로 남자들과 함께 잠자리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자가 안과를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그녀는 의사가 처방한 안약을 사러 약국에 들어갔다. 직원이 어떤 사람들은 색안경을 쓰고 다녀야 하다니 얼마나 불공평하냐고 말했을 때,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오늘은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다. ■ 경찰관은 자동차 도둑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 신중하고 동정심 많은 공권력의 집행자는 자기가 지금 팔을 잡아 안내하는 사람, 여느 경우처럼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 걸려서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 팔을 잡고 있는 사람이 사실 상습적 범죄자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도둑의 아내가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을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여자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남편이 도둑질을 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경찰관은 집을 수색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차만 훔치는 사람이고, 차라는 물건은 침대 밑에 감출 수 없는 크기를 가졌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경찰관이, 이 사람은 눈이 멀었습니다. 잘 돌봐주십시오. 경찰관이 그냥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집까지 데려다 준 것임을 알았을 때,여자는 마땅히 마음이 편해졌어야 하지만, 남편이 엉엉 울며 그녀의 품에 안겨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그들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심각한 재난이 찾아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역시 경찰관 함께 부모의 집까지 갔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눈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눈이 멀었다, 라고 말을 하게 되느니, 차라리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의사는 아내가 일어났을 때 자는 척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다. 보건 당국에, 보건부에 알려야 해. ~~~이게 무슨 전염병으로 판명이 나면 무슨 조치를 취해야 돼. 방금 경찰에 갑작스러운 실명 사례 두 건이 접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보건부야, 삼 십분 내로 나를 데리러 구급차가 올 거래. 당신이 예상했던 일인가요. 그래, 대충.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모르겠어, 아마 병원이겠지. 가방을 싸야겠네요. 옷도 몇 벌 챙기고, 그리고 다른 물건들도 준비해야죠. 의사가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그런 걱정을 하지 말아요. 이어 그녀는 구급차에 올라타 남편 옆에 앉았다. 구급차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 사람만 데려가야 하오. 그게 내가 받은 명령이오. 어서 내려주셔야겠소. 여자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너도 데려가야 할 거예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 어쨌든 치료법이 발견되거나 이 병의 발병을 예방할 수 잇는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더 이상의 전염을 막기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격리하자는 것이었다. ~~~장관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두 개의 병동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눈이 먼 사람들을 한쪽 병동에 가두고, 보균자들은 다른 병동에 가두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지역은, 말하자면 무인지대로 삼아서, 보균자들 가운데 눈이 머는 사람은 이 지역을 통과해 이미 눈이 먼 사람들에게로 가게 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겠군. 무슨 문제입니까. 장관님, 그런 이동을 감독해야 할 직원을 배치해야 할 텐데, 그걸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소.감독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잇습니다. 장관님, 어째서. 조만간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지만, 보균자들 가운데는 실제로 눈이 머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장관님, 그럴 경우 틀림없이, 아직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을 내쫓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맞군. 그리고 이미 눈먼 사람이 자기네 쪽으로 느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훌륭한 생각이로군. 감사합니다. 그럼 진행하라고 명령을 내릴까요. 그러시오. 텅 빈 정신병원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의사와 그의 아내였다. 정신병원에는 경비병도 있었다. 당신은 눈이 멀지 않았잖아, 당신이 여기 있게 할 수는 없어. 그래요, 맞아요, 나는 눈이 멀지 않았어요. 그럼 당신을 집에 보내라고 할거야. 당신이 나하고 함께 있으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 할거야. 그렇죠, 하지만 며칠 내로 나도 눈이 멀 게 분명해요. 다른 눈 먼 사람들은 함께 도착했다. 그들은 집에서 차례로 체포되었다. 맨 먼저 차를 운전하던 남자, 그 다음에 차를 훔친 남자,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소년. 진정하세요, 전염병을 두고 누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내가 착한 사람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지만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내 귀중한 눈을 가지고 있을 텐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의사가 물었다. 남들 앞에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 있는 사람들이 그가 오줌 누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줌 누는 소리가 경망스럽게 들리며, 다른 소리와 혼동되지 않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 ■ 눈을 떠야 해, 의사의 아내는 생각했다. 밤에 몇 번 잠을 깼을 때, 그녀는 감긴 눈꺼풀을 통해 병실을 간간히 밝혀주고 있는 침침한 불빛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빛을 발하는 다른 존재가 있었다. 동트는 첫 햇살일 수도 있었다. 그 우유의 바다가 이미 그녀의 눈을 삼켜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열까지 세고 난 다음에 눈을 뜨기로 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두 번 했음에도, 열까지 두 번 셌음에도, 두 번 다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은 아직 멀지 않았구나. 그녀는 중얼거렸다.
적이 거기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를 바랄 뿐 다른 희망은 없지. 적, 무슨 적, 아무도 이곳으로 우리를 공격하러 오지 않는데, 설사 우리가 밖에서 도둑질과 살인을 한 사람들이라 해도, 아무도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체포하지는 못할 텐데. 차를 훔친 저 남자도 평생 이렇게 자신의 자유를 확신해 본 적이 없을 거야.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곧 우리가 누군지도 잊어버릴 거야. 우리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 사실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
그녀는 자면서 웅얼거리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이어 회색 담요를 덮고 있는 다른 시커먼 형체들, 더러운 벽,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텅 빈 침대들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 역시 눈이 멀기를 바랐다. 사물의 눈에 보이는 거죽을 뚫고 들어가 내적인 면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그 눈부신 불치의 실명상태에까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새로 도착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친절하게 말을 걸고, 그들의 침대로 안내하고, 그들이 알아야 할 사실들을 알려 줄까. 잘 들어요, 이 침대는 왼쪽 칠 번이에요. 이건 오른쪽 사 번이에요~~~ 그래요 여기에는 여섯 명이 있어요. 우린 어제 왔어요. 그래요, 우리가 먼저예요. 우리 이름은, 사실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이 남자들 가운데 하나는 차를 훔쳤어요. 그리고 그 차를 도둑맞은 사람도 있어요.
오후 중반에 다른 병동에서 쫓겨난 사람 셋이 더 들어왔다. 하나는 병원 간호사였는데, 의사의 아내는 바로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차를 훔쳤기 때문이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야. 그게 내 가장 큰 실수야.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저 아래서, 도둑이 팔꿈치에 의지해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다친 다리에는 느낌이 없었다. 통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사슬 난간을 잡으며 기듯이, 침대 틀을 잡고 잠자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나아갔다. 다친 다리는 가방처럼 끌고 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직접 가야 하오. 그들도 내 꼴을 보면, 내가 심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거요. 나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갈 거요. 눈이 먼 사람들을 위한 병원도 있을 테고 ~~~거기서 내 상처를 치료해 줄 거요.
보초는 추위를 피해 초소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뭔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안에서 누가 나오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삽 같은 걸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아주 어렵게 주검을 안마당으로 가지고 들어와, 쓰레기와 낙엽 사이에 눕혀놓았다.
다행히도 도둑은 바짝 말랐다. 원래 뼈만 남은 사람이었는데 다가, 요 며칠 동안 굶다시피 하여 더 말라 있었다. 그래서 무덤은 그와 같은 크기의 주검이 둘은 들어갈 정도였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없었다.
총을 발사한 군인 하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내뱉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저기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는 그날 어둠이 다가올 무렵 보초 교대 시간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우리는 계속 그들을 감시하다가,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행동을 하면 그대로 쏴버리면 된다. ■ 속이 비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 눈먼 재소자들 가운데 일부는 동이 트기 한참 전에 눈을 떴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는 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생체 시계인지 뭔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이 환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이쿠, 이거 늦잠을 잤구나, 하다가, 곧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코고는 소리를 잘못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책을 봐서도 아는 것이고, 또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아는 것이지만, 자기 의사에 의해서 일어났든 아니면 필요에 의해서 억지로 일어났든, 일찍 일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곤히 자고 있는 꼴을 못 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그럴 것이, 잠을 자고 있는 눈먼 사람과 눈을 떠보았지 소용이 없는 눈먼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그래요. 죽은 사람이 무려 아홉 명이오. 군인들은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난 군인들이 무서운데.
이제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이제 그들은 계단 꼭대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외쳤다. 날 좀 도와주시오. 물론 그는 군인들이 자기에게 총을 겨누고, 자신이 삶과 죽음을 가르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거기 하루 종일 있을 건가, 이 눈먼 박쥐 같은 인간아. 상사가 말했다. 약간 초조해하는 목소리였다. ~~~~군인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죽일 수도 있고, 또 명령만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명령이 있을 때만 발포해. 상사는 소리쳤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냥 계속 걸어와,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란 말이야. 정문 너머에서 병사 하나가 짐짓 우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눈먼 사람은 일어서서 세 걸음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었다. 말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쪽으로 계속 걸어오라는 말은 계속 가라는 말과는 다르다.
앞서 보건부는 국방부에 통보를 했다. 승합차 네 대를 보내겠소. 그게 몇 명이오. 이백 명쯤 될 거요. 그 사람들을 다 어디에 수용한단 말이오.
■ 많은 사람들이 새로 도착함으로써 적어도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잊머이 생긴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말하자면 심리적인 것이었다.
일호 병실은 가장 오래되고, 따라서 그 동안 실명 상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질서가 잡혔기 때문인지 몰라도, 식사 후 십오 분이 지나자 바닥에는 더러운 종이 조각하나, 놓고 간 접시 하나, 커피나 우유 찌꺼기가 남아 있는 그릇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거두어 들였다. 작은 물건은 큰 물건 안에 넣고, 더러운 것은 덜 더러운 것 안에 넣었다. 위생을 위한 합리적인 규칙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행위를 강제하는 기초가 되는 정신 상태는 즉석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현재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이 병실의 경우에는, 병실 맨 끝에 있는 눈먼 여자의 교육자적인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안과 의사의 부인인 이 여자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그녀가 이 말을 자주 되풀이 했기 때문에,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그녀의 충고를 하나의 금언으로, 격언으로, 교리로, 생활규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객기를 몰던 두 조종사가 동시에 눈이 멀어버리는 바람에 비행기가 땅에 추락하여 화염에 휩싸이고,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 처음에 이 병실의 눈먼 사람들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을 때는 두세 마디만 나누면 낯선 사람도 불행을 같이 겪는 동반자로 바뀔 수 있었다.
무려 이백사십 명이 모여 살게 되자, 비교를 하고, 이미지를 만들고, 비유를 하는데 제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곳의 더러움은 제대로 묘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난 평생 사람들 눈을 들여다보며 살았어.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거야.
한 번에 다 내는 것이 좋다. 그걸 가지고 너희가 얼마나 먹을 자격이 있는지 평가하겠다.
의사의 아내는 가위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손이 닿는 제일 높은 걸 이를 골라 가위를 걸어두었다.
그녀는 가위를 가져오기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편 얼굴도 좀 괜찮아 보일 것 같았다. 알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살다 보면, 남자가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면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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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깡패들의 손아귀에 잡혀 하루를 보내는 동안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은 줄곧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뉴스를 전달해 주었다.
그녀는 가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에 것 에 대해 좋은 핑계를 찾아냈다. 그랬다가는 이곳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나에게 졸라댈 거고, 나는 하루 종일 턱수염 다듬어주는 일만 할 거 아냐. ■ 당국은 눈먼 사람들을 모아 이곳에 가두면서 전혀 인도주의적인 배려를 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스무 명 정도가 간신히 먹을 만했던 배급 량이 이제 열 명의 허기도 채우지 못할 절도로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눈먼 깡패들은 여자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우리에게 여자들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예상치 못했던 이 요구 때문에, 그 말을 들은 당황한 병실 대표들은 즉시 병실로 돌아가 명령을 전달했다.
온다, 온다. 안에서 외침 소리, 낄낄거리는 소리, 실없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 나흘째 되는 날, 깡패들이 다시 나타났다.
의사의 아내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문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의사의 아내는 천천히 다가가, 침대를 빙 돌아 두목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앞의 눈먼 여자는 그녀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의사의 아내는 천천히 가위를 들어 올렸다. 두 개의 단검처럼 목을 꿰뚫을 수 있도록, 가위의 양날을 약간 벌렸다. 바로 그때, 막 찌르려는 찰나, 눈먼 두목은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녀는 한 남자의 가슴에 가위를 꼿으며 생각했다. 이 놈은 살기 힘들겠군.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어서 가요. 어서 갑시다.
어떤 여자가 깡패 두목을 찔러 죽였다는 것, 총이 발사되었다는 것, 의사는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아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에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
그들은 대오를 갖췄다. 약속대로 용감한 여섯 사람이 앞에 나섰다. 그 가운데는 의사와 약국 직원도 있었다.
불에 타 죽는 것 보다 총에 맞아 죽는 게 낫소.
의사의 아내가 소리쳤다. 제발, 당신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를 내보내줘요, 쏘지 말아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군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아무 사람도 없다. 너무 이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점점 심해지는 빗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을 연 가게도 있지만,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불 빛도 없다
네, 아마 그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었나 보오. 지금은 모두 눈이 멀었소. 도시 전체가, 나라 전체가, 아직 눈이 보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소. 왜 집에서 살지 않는 거죠. 이제 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 그들은 옷을 입고 신발을 씻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몸을 씻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정도로도 벌써 다른 눈먼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네 부모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너를 데려간 다음날 네 부모를 데리러 사람들이 왔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눈이 보였는데. 우선 나는 이곳에 있는 아파트들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다 긁어 모았어. 상할만한 건 바로 먹어 치웠지. 나머지는 보관하고. 지금도 남은 게 있나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물었다. 아니, 다 먹었어. 갑자기 노파의 보지도 못하는 눈에 불신의 표정이 드러났다.
엄격히 말해서 눈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알을 뽑아냈을 때도, 그것은 그저 아무런 활력이 없는 두 개의 둥그런 물체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시각적 웅변과 수사를 전달하는 것은 눈꺼풀, 속눈썹, 눈썹이다. 사람들은 보통 눈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지금은 어떻게 사세요. 의사의 아내가 물었다. 거리에는 죽음이 휩쓸지만, 뒤뜰에서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우, 노파는 수수께끼처럼 대답했다. 무슨 뜻이죠. 뒤뜰에는 양배추도 있고, 토끼도 있고, 닭도 있지, 또 꽃도 있고, 꽃이야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거죠. 때로는 양배추를 뜯어 먹고, 때로는 토끼나 닭을 잡아 먹지. 그럼 그걸 날로 먹나요. 처음에는 불을 지피곤 했지만, 이제는 날고기에도 익숙해 졌다우.
그녀는 오늘은 다른 잠자리를 찾아 나설 필요 없이,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의 집에 머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 일곱 순례자는 천국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미안하지만 층계참에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올 수 없냐고 물었다.
의사의 아내가 말했다. 옷을 벗으세요.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요. 우리 옷은 신발만큼이나 더러워요. 옷을 벗으라고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물었다.
나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려고 태어난 사람일 뿐이에요. 여러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죠. 나는 느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어요.
바로 그때, 마치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놀라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 내부에는 이름이 없는 뭔가가 있어요. 그 뭔가가 바로 우리예요.
하늘 전체가 거대한 구름이었다. 비는 억수로 퍼부었다. 발코니
바닥에는 그들이 벗어놓은 더러운 옷들이 있었다. ■ 이틀 뒤에 의사가 말했다.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지금이야 우리가, 그러니까 병원이나 내가 아무 쓸모 없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시력을 회복할 테고, 그때를 대비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정말로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은 실명이라는 거죠.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눈은 멀지 말아야 해요. 의사의 아내가 말했다. ■
다음날, 침대 속에서 의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남은 음식이 별로 없어요. 다시 나가야 해요. 오늘은 그 슈퍼마켓 지하 창고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현기증 때문에 머리가 붕 떠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는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심장에 일곱 개의 칼이 꽃 혀 있었고, 눈에는 역시 하얀 붕대가 덮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눈을 가린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이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조각의 눈에는 하얀 천을 묶어 놓았고, 그림의 눈에는 하얀 물감으로 두텁게 붓 칠을 해놓았다. 어떤 여자는 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밤늦게, 기름이 거의 바닥난 램프가 깜빡 거릴 때, 두 번째로 시력을 회복한 사람은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였다. 그녀는 시력이 안에서부터 다시 켜지는 것이 아니라,밖에서부터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눈을 계속 뜨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나 신중해야 했다. 모든 경우가 똑같지는 않으니까.
이제 여기에 눈이 보이는 사람이 벌써 세 명이다.
다음날 새벽녘에 세 번째로 시력을 회복한 사람은 의사였다.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시력을 회복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의사와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
[Review]
지루한 여름 장마 같은 책이다. 노벨 문학상 작가의 책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읽고 나서도 우울한 기분만 남는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신호등을 기다리던 차 안에서 갑자기 눈이 먼 사내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였다. 그를 도와주던 사람도 진료를 해주던 의사도 전염병처럼 눈이 멀어 버리고 도시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당국은 피해를 본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여객기를 몰던 두 조종사가 동시에 눈이 멀어버리는 바람에 비행기가 땅에 추락하여 화염에 휩싸이고,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본문)
사람뿐 아니라 수도가 끊어지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 사용하던 기계들이 작동을 멈추고 거리에는 오물만 쌓여갔다. 서로서로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모든 윤리와 도덕질서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오직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기에만 급급 한다. 수용자들이 늘어나면서 보급품을 서로 훔치고 그 중 어떤 자들은, 빼돌린 보급품을 통제하며 사람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군인들은 자신들도 눈이 멀게 되는 것이 두려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보지만, 한계를 느끼고 절망한다. 결국, 폭동이 일어났고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는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그녀는 먹을 것을 구해주고, 사람들을 각자의 집으로 데려갔으나 가족은 이미 떠났고 집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의사의 집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사람들은 그곳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거리에 쌓인 오물이 씻겨나가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빗물에 몸을 씻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의 후기 작품(1995년)으로 유추해 본다면 칠십이 넘은 고령이었다. 그는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책을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해주는 두 번째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 해 198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2010년 사망했다. 1922년 포르투갈 출생. 가난한 용접공, 1947년 <죄악의 땅>으로 등단, 신문사 정치 평론가, 군사 독재 정권에 항거로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국외로 추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작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고, 포르투갈 지성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추앙을 받았다. 무신론자이며, 말년에는 종교를 비판하는 책(1991년) <예수의 제2 복음>으로 보수 정부와 갈등을 빚은 후 스페인 영토인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해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문체가 평이하고 논조의 단조로움으로 재미는 없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스페인어 권 문학의 특징과 장 문체로, 굳이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루하다. 문학성은 있으나 철학적인 내용을 간파하지 않으면 읽기 힘든 책이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위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악하다고 볼 때, 문병은 악을 가리는 안경과 같다. 안경을 통해서 볼 때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안경은 정교한 원리에 따를 때만 의도한 결과를 얻게 된다. 안경은 잘 못 만들어질 수도 있고 또 각 사람에 따라 모두 적합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 그런 안경, 모두에게 적합한 이상적인 안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이렇게 근거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마지막 소절에서 모든 사람이 눈을 뜨는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그 동안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 부인이 눈이 멀게 되는 암시를 주는 대목은 독자를 조롱하는 것 같다.■ (본문) 그녀의 코를 파고들고 눈을 자극하는 비참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자, 그렇게 단단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용기가 부서지면서, 점차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겁쟁이야. 그녀는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소심한 선교사처럼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나을 거야.
눈 먼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이 어떤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싸움이란 건 언제나 실명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지. 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정말로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은 실명이라는 거죠.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눈은 멀지 말아야 해요. 의사의 아내가 말했다.
다음날, 침대 속에서 의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남은 음식이 별로 없어요. 다시 나가야 해요. 오늘은 그 슈퍼마켓 지하 창고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거리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현기증 때문에 머리가 붕 떠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는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날은 세끼 식사를 다 한 덕분에 몸들은 편안했다. 만일 이런 식으로 계속 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최악의 불행에 빠졌을 때도, 그 불행을 인내로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는 선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선이란, 처음의 불안한 예측과는 달리, 식량 공급을 단일한 집단에게 집중시켜 할당과 분배를 맡기는 것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뜻이다. 일부 이상주의자들이, 비록 자신의 고집스러움 때문에 굶는 일이 생긴다 해도, 자기는 자기 나름의 수단으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항변한다 해도 말이다. 모든 병실의 눈먼 사람들 다수는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미리 돈을 내면 결국 형편없는 음식이 나오게 된다는 일반적인 사실도 잊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 의사의 아내는 벽에 걸린 가위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생각했다. 내 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눈 때문에 그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아야 했고, 이럴 바에야 차라리 눈이 머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의사와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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