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재 풍류다회]
ㅡ순암의 시를 새기며ㅡ
장미가 붉게 핀 초여름의 한낮이다. 광주 향토문화유산이자 순암 안정복 선생의 혼이 깃든 이택재(麗澤齋) 사숙당(思肅堂)에 들어선다. 이택재 길목은 고즈넉한 옛 고향의 숨결을 품고 있다.
사숙당 앞마당에는 수백 년간 풍파를 견뎌낸 느티나무가 초록색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담장 안에서 ‘이택재 풍류 다회’의 막이 오른다. 한옥의 부드러운 기와 곡선 사이로 선율이 흐른다. 메마른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듯 감미롭게 스며든다. 악기의 깊은 울림이 바람을 타고 느티나무 잎사귀를 흔든다. 앞마당은 순식간에 조선의 풍류방으로 변모한다.
멋을 더한 다락원의 정성스런 다례 시연이 이어진다. 찻잔에 따르는 물소리가 리듬이다. 단아한 몸짓으로 건네진 찻잔에서 은은한 향을 풍긴다.
순암 선생이 남기신 ‘사물 바라보기’의 구절을 음미한다. “새가 도움 달라고 말하나, 개구리는 누굴 위해 우는가. 오직 사람만이 사욕으로 날뛰니 계속 마음 다스리고 반성하면 그 이치가 점점 환히 보일 것이다.”
만물은 하늘의 뜻을 따른다. 욕심으로 가득찬 인간의 부끄러운 초상이 찻잔 위로 비쳐 보인다. 고운 춤사위와 신명 나는 민요 가락이 평화로운 이택재의 마당을 맴돈다. 지역 예술인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피워낸 ‘삶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전통이란 우리의 몸짓과 숨결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흐름임을 깨닫는다.
풍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 잡념들은 느티나무 아래 부는 바람에 모두 씻겨 내려간 듯하다. 이택재의 다도 풍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순리를 따라 느리게 살아가라는 오월의 가장 푸른 가르침이다.
오월의 푸른 기운
이택재 사숙당에
긴세월 느티나무
젊음을 자랑하네
초여름 붉은 장미가
계절 색깔 더하네
청아한 악기 소리
세월을 거스르고
다락원 맑은 차 향
가슴에 스며들어
이택재 옛 한옥에서
삶의 꽃이 피어나
만물은 순리대로
하늘의 뜻을 따라
허욕에 어두운 눈
스스로 자멸하네
찻잔 속 남은 온기가
우주 공간 데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