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첫사랑 이야기는 혼자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 애 닳아 누군가에 슬며시 털어놓고 싶기 마련이다. 애잔하거나 아름다운 각자의 추억을 담아 굳게 닫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는 일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우리를 웃기고 울린 ‘첫사랑 이야기’ 공모전에 접수된 작품은 모두 765편이었다. 그 중 예심을 거쳐 53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아스라한 세월의 뒤안길,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사연도 있었고, 풋풋하고 달콤한 현재 진행형의 스토리텔링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풋사랑 이야기에서부터 알츠하이머로 잊어버린 기억 속에서도 애달픈 첫사랑의 추억을 반추하는 가슴 먹먹한 사연도 있었다.
아련한 세월,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 힘들게 살면서도 가슴 설레게 하는 동화 같은 사연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상큼 발랄한 유화이거나 제2의 ‘소나기’라 불러도 좋을 수채화 같은 글이 마음을 빼앗았다. 첫사랑 이야기는 청순하거나 어설프거나 미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진솔한 수기이기 때문에 더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때문에 글 이랑으로 쉽게 빠져 들었고, 가독성 덕분에 원고를 읽는 일 자체가 즐거웠다.
대상작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구순을 앞둔 ‘엄마 박옥희 ’여사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딸)의 구성진 글 솜씨가 뛰어나 독자들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딸이 들려주는 엄마의 이루지 못한 순애보는 너무 슬퍼서 감동적이었다.
“자정이 되면 남준 씨가 저 전깃줄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온다.” 창문 선반에 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서 치우려고 하자 손사래 치며 말리신다. “그 사람 옷차림이 하도 허술해서 옷 한 벌 사 입으라고 놔뒀으니 그대로 둬라.”
사랑을 하면서도 부모의 반대로 가슴에 묻고 살던 첫사랑을 지워진 기억 너머로 또렷이 되새기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대상작으로 밀기에 손색이 없었다.
- 본심 심사위원 박상재 (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
^^맹영숙 선생님 작품 회원작품실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
맹영숙
어머니의 여든일곱 번 생신 축하를 위해 서울 동생 댁에 갔다.
밤바람이 찰 것 같아 창문을 닫으려고 하니 어머니가 닫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자정이 되면 남준 씨가 저 전깃줄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온다”한다. 처음은 무슨 말 뜻인지 얼른 분간이 안 돼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아흔 연세를 앞두고 ‘알츠하이머’ 증세가 짙어졌는데 남준 씨의 이름은 물론이고 한국전력에 다녔다는 것도 또렷이 기억한다. 하도 신기하고 이상해서 “남준 씨는 어떤 분하고 결혼해서 사나요?”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나 때문에 결혼을 못했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열린 창문 선반에는 돈이 수북 놓여 있었다.
‘웬 돈이에요?’ 돈을 집으려고 하니 “아서라, 그분의 옷차림이 하도 허술해서 옷 한 벌 사라고 놔두었으니 그대로 둬라” 한다.
진주 이모는 우리 집에 오면 인물이 출중하다는 남준이란 분과 어머니 박옥희 여사의 젊은 날의 얘기를 곧잘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장독대 앞에 붉게 펐다가 입을 앙다문 분꽃, 그 꽃 냄새가 솔솔 났다.
옥희는 남강물이 흐르는 진주에서 출생하여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옥희는 백 목련을 닮은 흰 얼굴의 참한 처자였다. 날아가듯 검은 기와 큰 대문에 태극무늬가 아로 새겨져 있는 집에서 살았다. 대문이 열리면 우물가 작약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수런거리고 있었다. 그 집에서 옥희는 칠 남매의 둘째딸이었다. 가녀린 손끝은 십자수를 잘 놓았고 음식을 만드는 데도 솜씨가 유다르다.
호주인 의료 선교사가 진주서 베돈 병원을 설립하여 마을에 안주했다. 옥희는 그 병원에 간호사가 되었다. 의사에게 칭찬을 받는 간호사였고, 환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여기서 자연스레 기독교를 접하게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흰 가운을 입은 모습은 ‘백의 천사’ 같다고 찬사를 받곤 했다.
다리 건너 큰 감나무가 있는 집은 옥희 친구 미자 집이다. 미자의 작은 오빠가 남준이었다. 그 오빠는 한전에 근무하였고 외모가 준수하여 겸허한 성품을 지닌 성실한 사람이었다. 남준은 옥희를 좋아했다. 땅에 걸어 다니는 것조차도 아까운 분이라고 동생 미자한 테 종종 말을 하였다한다.
베돈 병원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옥희는 점점 바빠졌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고 밤별을 머리에 이고 퇴근하였다. 부연 안개가 낀 새벽녘에 집을 나서면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방울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몇 미터 간격을 두고 남준의 자전거는 옥희의 새벽길을 밝혀 주었다. 병원 정문에 이르면 자전거에 내려 정중하게 “오늘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인사를 한다. 늦은 밤 퇴근길에는 남준이가 퇴근하고와 병원 근처서 기다린다. 새벽처럼 옥희의 밤길을 자전거 불빛으로 안전하게 집까지 동행하여 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반듯한 남자, 남준이었다. 이런 소문은 빠르게도 퍼져 어머니 귓전에 딸이 연애질 한다는 말이 바람처럼 들어 왔다.
집안 망신이라며 노발대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미자 집안이 탐탁지 않았다. 큰아들이 좌익사상에 물들어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옥희는 근무도 못하고 사랑채 방에 갇히고 말았다. 이를 알게 된 남준은 옥희 집 주위를 돌며 안타까워했다. 비를 맞기도 하고 식사도 그르며 배회하다가 끝내는 독감에 걸렸다. 사랑을 잃은 절망은 폐렴으로 전위되어 마침내 들어 눕게 되었다. 고열이 심하여 사경을 헤매면서 마지막 길에 옥희를 보고 싶어 했다. 미자는 애를 태우며 오빠의 부탁을 못 들어줘 어쩔 줄 몰라 했다. 옥희는 부모님을 거역할 수 없었고 방문 문고리에 자물쇠가 잠겨 나갈 수도 없었다.
시나브로 나뭇잎이 단풍으로 변하여 떨어지는 만추다. 헐벗은 나무 사이로 찬바람이 감겨들어 겨울을 재촉하는 길목에 섰다. 병상에서 남준은 옥희를 부르며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마지막 숨을 거뒀다.
오색기를 든 상여는 하얀 종이꽃을 소복이 얹었다. 상여 앞에서 저승의 노래를 선소리꾼이 구슬프게 처량한 목소리로 노래하면 상여를 맨 소리꾼들이 복창을 한다. 선소리꾼 손에서 흔드는 요령은 가신님을 더 슬프게 한다. 남준이가 누운 상여는 옥희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날 상여를 구경나온 사람들은 남준의 죽음을 몹쓸 상사병이라고 수근거렸다. 남준이가 누운 상여는 이집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옥희는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세상을 한탄하며 몸부림쳤다.
미자가 오빠의 사십 구제를 지낸 뒤 옥희를 찾아왔다. 오빠가 숨지고 난 뒤 왼쪽 와이샤쓰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이 나왔다며 내놓았다. 옥희의 증명사진이었다. 옥희는 놀랐다. 알고 보니 막내 동생을 통해 얻은 사진을 남준은 마지막 가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그의 사랑이 안타깝다.
한평생 살며 말수가 적은 옥희, 내 어머니였다. 여든이 넘어 어느 날부턴가 감췄던 보물 창고 문을 개방 하는 듯 입에서 봇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맡아 연극하듯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얻어 모노드라마의 주역이 되어있었다. 어머니는 흘러간 지난날의 기억만은 또렷하였다. 잊고 살아야 했던 사람을 당신의 흐린 정신 속에서 다시 환하게 빛을 발하며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아려오는 슬픈 순애보가 아닌가. 지금은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당시는 남녀 간의 만남은 당사자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야했다. 나는 다행이 어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 어머니께 더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는 단아한 모습으로 주일날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예배참석을 위해 거실 의자에서 며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가 나와 보니 어머니는 잠든 모습으로 눈을 감고 교회가방을 안고 계셨다. 살짝 흔들었더니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주일날에 잠자듯 가고 싶다.”고 생전에 노래하시던 어머니의 염원이 당신의 기도로서 이루어졌다.
작약 꽃이 향기를 발하며 함박으로 피어났다가 질 무렵, 어머니는 어린 아이 같은 눈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