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하였다. 『논어』에서 “공자는 利와 命과 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子는 罕言利與命與仁이러시다 - 자한편 제1장)”고 했는데 그것은 학문의 정도가 “중인 이상은 가히 위를 말할 수 있거니와 중인 이하는 가히 위를 말하지 못한다(子曰中人以上은 可以語上也어니와 中人以下는 不可以語上也니라 - 옹야편 제19장).”고 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告子는 웬만큼 학문적 수준에 올라 形而上學(形而上者를 謂之道요 形而下者를 謂之器라 - 『주역』 계사상전 제12장)을 논할 수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趙岐가 ‘告子’라는 이름을 편명으로 삼은 것은 弟子로서의 질문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앞서 공손추상편 제2장에서 고자의 부동심에 대한 맹자의 비판과 본편에 나오는 고자와 맹자의 문답을 놓고 볼 때 고자는 맹자에게 제자의 예로써 가르침을 청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易의 道를 人性에 적용한 맹자의 性善說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告子는 당대 제자백가들의 性惡說과 善惡混在說 혹은 無善惡說을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자상편 제1장~제4장).
性品인 性과 관련해서는 양혜왕상편 제1장 해설에서 이미 논했듯이 性은 모든 물건이 나오면서부터 내재된 것으로, 모든 물건에 物性이 있듯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人性이다. 사계절의 元亨利貞이라는 하늘의 덕목의 발현으로 生長收藏이라는 땅의 덕목이 이루어지듯이 하늘의 덕목과 땅의 덕목이 합하여 사람은 仁禮義智를 내재하게 된다는 것이 易의 이치이다.
그런데 告子는 나무그릇은 애초에는 없었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무를 잘라 구부리고 깎아서 그릇을 만들었듯이 人性에는 본래 仁義가 없었지만 사회적 필요에 의해 仁義를 강제로 만든 것이라고 보았다. 이 논리를 朱子는 荀子의 性惡說과 같다고 하였다.
荀子는 『荀子』 性惡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性은 惡하고, 그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지금 사람의 性은 태어나면서 이로움을 좋아함이 있고 이에 순하기 때문에 쟁탈함이 생겨나고 사양함이 없다. 태어나면서 미워함이 있고 이에 순하기 때문에 잔적이 생겨나고 충신이 없다.
태어나면서 이목의 하고자함이 있으니 소리와 색을 좋아함이 있고 이에 순하기 때문에 음란함이 생겨나고 예의문리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性을 따름은 사람의 情에 순함이니 반드시 쟁탈에서 나오고, 분수를 범하고 이치를 어지럽힘에 합하여 포악함에 돌아가기 때문에 반드시 장차 가르침을 본받아 교화됨이 있어야 한다.
예의의 도는 그런 뒤에야 사양함에서 나와 문리에 합하고 다스려짐으로 돌아간다. 이로써 보건대 사람의 性이 악함은 분명하고 그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人之性은 惡이오 其善者는 僞也라 今人之性은 生而有好利焉이오 順是故로 爭奪生而辭讓亡焉이라 生而有疾惡焉이오 順是故로 殘賊生而忠信亡焉이라 生而有耳目之欲이니 有好聲色焉이오 順是故로 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이라 然則從人之性은 順人之情이니 必出於爭奪하고 合於犯分亂理而歸於暴이라 故로 必將有師法之化라 禮義之道는 然後에 出於辭讓하고 合於文理하여 而歸於治라 用此觀之컨대 人之性惡은 明矣요 其善者는 僞也라).”
곧 순자는 악함이 먼저 하고 이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지기에 반드시 가르치고 나서야 예의의 도가 생겨난다고 했다. 고자의 뜻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맹자는 “亦將戕賊人하여 以爲仁義與아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는 必子之言夫인저”라고 비판했다. 위의 고자와 맹자의 문답은 마치 계강자와 공자의 문답과 유사하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를 물음에 “무도한 이를 죽여서 도 있는 데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을 때(季康子問政於孔子曰如殺無道하여 以就有道인댄 如何하니잇고), 공자가 “그대가 정사를 함에 어찌 죽임을 쓰리오. 그대가 선을 하고자 하면 백성이 선하리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오,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느니라(孔子對曰子爲政에 焉用殺이리오 子欲善이면 而民이 善矣리니 君子之德은 風이오 小人之德은 草라 草上之風이면 必偃하나니라 - 『논어』 안연편 제19장).”는 뜻과 같다.
仁義가 천지자연의 이치와 더불어 자연스레 하나가 됨을 南軒張氏(張軾)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인의를 함은 이에 그 性의 본연함이라. 친친으로부터 미루어 인에 이르면 가히 다 쓰지 못하고, 장장으로부터 미루어 의에 이르면 다 쓰지 못하니 다 그 본래 있는 바에 순한 것이지 바깥으로 한 것은 아니니라. 만약에 인의를 어긴다면 그 성품을 잃게 되니, 고자가 여기서 인성으로 인의를 삼는다는 것은 이 성품은 별도로 하나의 물건이 되기에 사람이 바로잡아 순하게 하여 인의를 삼는다면 그 잃음이 어찌 심하지 아니하랴?
(人之爲仁義는 乃其性之本然이라 自親親而推之至於仁면 不可勝用이오 自長長而推之至於義면 不可勝用이니 皆順其所素有而非外之也라 若違乎仁義則爲失其性矣하니 而告子 乃以人性爲仁義則是性別爲一物이니 以人爲矯揉而爲仁義면 其失이 豈不甚乎아)”
출처 : 孟子易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