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나누게 될 모든 말씀의 근원이 사람 곧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설교의 근거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당연히 ① 설교는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지식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죽은 영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이 분명 이해를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걸러내야 합니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② 하나님 말씀은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당연히 허물과 죄로 죽은, 지극히 죄 친화적인, 죄의 경향이 농후한, “나 곧 죄, 죄 곧 나”에 불과한 거기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기까지 한 나의 지식, 경험, 지혜 등을 철저히 지워내야 합니다. ③ 설교는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힘겹게 살아내고 하나님 앞에 선 성도들에게 절대로 두렵고 떨리는 협박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권면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없었던 힘과 용기가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지극히 자연스럽게 마치 솟구치듯 올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최후 승리와 관련된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은 당장 처해 있는 상황이나 환경이나 조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와 권면은 없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던 힘과 용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은 설교의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부르신 모세에게 성민 이스라엘을 위한 축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아론과 제사장 아들들에게 가르쳐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성민 이스라엘을 위해서 축도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축도할 권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그들에게 위임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목사도 그렇습니다. 축도할 권위를 갖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질 수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 권위를 위임해 주셨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과분한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절대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한편, 오늘 본문은 모세나 아론 곧 인간의 바람이 아닙니다. 소원이 아닙니다. 기대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와는”이라는 표현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축복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선포입니다. 동시에 당신 백성을 반드시 축복하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꺾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무조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Ⅰ. 첫 번째 축복
여호와께서는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너를 지켜 주기를 원한다.”(민6:24)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יְבָרֶכְךָ(예바레케카)”의 어근ברך(바라크)은 생명이 풍성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나고,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열매를 맺는 등의 축복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이 흔히 생각하는 물질, 건강, 승진, 합격 정도 곧 지극히 물질적인 축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축복입니다. 천문학적인 물질을 하늘 높이 쌓아놓고도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해도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했어도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한 가지도 없어도, 오히려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고, 무화과는 열리지 않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고, 우리에 있던 양 떼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목장에 있던 소 떼가 보이지 않아도 곧 수확이 전혀 없고, 재산이 완전히 다 사라지고, 생계까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친히 임하셔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해 주시는 여호와 때문에 환호성을 지를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춤을 출 수 있습니다. 마치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힘든 하루하루를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안전하게) 지켜 주기를 원한다.”라고 이어집니다. “지키다שמר(샤마르)”는 “보호하다, 보살피다, 돌보다, 파수하다.” 등의 뜻입니다. 단순히 사고를 막기 위해서 경비를 단단히 서 주겠다는 뜻은 물론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당신 백성을 세심하게 돌보고, 끝까지 보호하며, 신실하게 책임지고 또 인도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목자는 사나운 짐승들의 무차별적인 공격로부터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지셉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복은 받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돈을 벌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건강도 얻기보다 유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가정 역시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허락해 주신 축복을 끝까지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 이유입니다. 권사는 늘 큰 복은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이 지키시는 복만큼은 반드시 허락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년 후, 큰 홍수가 났습니다.
많은 집들이 파괴되었지만, 높은 언덕에 있던 권사의 집은 안전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운도 억세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권사는 웃으며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필요한 은혜입니다. 사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날 수도 있었습니다. 병이 더 커질 수도 있었습니다. 관계가 완전히 깨질 수도 있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지켜 주셨습니다. 받은 복도 많지만 지켜 주신 복은 훨씬 더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Ⅱ. 두 번째 축복
여호와께서는 “그(여호와)의 얼굴을 너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한다.”(민6:25)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얼굴פָּנִים(파님)”은 복수형입니다. 외면 곧 얼굴이 아니라 내면 곧 하나님의 임재, 성품, 관심, 사랑 등이 드러나는 전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코와 눈을 찾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하라.” 등의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 눈을 마주칩니다. 얼굴을 바라봅니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얼굴도 돌려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얼굴은 관계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당신 얼굴을 비춰주십니다. 관심을 기울여주십니다. 호의를 베풀어주십니다. 가까이 임재해 주십니다. 은혜와 생명의 빛을 비춰주십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만물이 소생합니다. 억지로 꽃을 피우라 하지 않아도 온갖 종류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갑니다. 하나님 얼굴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면 곧 하나님 빛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과 절망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제까지는 찾기 어려웠던 담대함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 베풀어주기를 바라십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120년 동안이나 묵묵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역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a)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은 자신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던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친히 임재하셔서 살아낼 수 있는 열심과 건강과 기회와 시간 등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도 하나님과 멀어졌다고 느끼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정적이고 제한적이며 호흡하고 있는 동안만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당신의 얼굴 곧 임재하심이라는 궁극적인 축복을 약속해 주신 이유입니다.
Ⅲ. 세 번째 축복
하나님께서는 “그(여호와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민6:26)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향하여 드사יִשָּׂא(이싸)”의 어근נָשָׂא(나사)은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존중하다, 관심을 기울이다.” 등의 뜻입니다. 어느 때나 그렇듯이 고대 근동에서 죄인은 왕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때, 왕이 그런 그를 보고 그냥 지나치면 끝입니다. 죽음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왕이 그의 얼굴을 들게 하고 바라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용서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 얼굴을 드시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받아들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였습니다. 처음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10:30)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제자에게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타락한 종교 장사치들처럼 경험하지도 못한 하나님을 설명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분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골1:15a)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이 잃어버린 하나님 얼굴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모진 고난과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그렇게까지 뜨겁게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얼굴을 보여 주셨습니다. 외면한 채 심판하는 두려운 얼굴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용서해 주시고, 받아들여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따뜻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기까지 한 얼굴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를 아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한걸음에 달려가던 아버지의 바로 그 얼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저와 여러분에게 샬롬을 허락해 주십니다. 샬롬의 어근שלם(샬람)은 “완전하다, 온전하다, 부족함이 없다, 깨진 것이 회복되다.” 등의 뜻입니다. 단순히 평안 정도가 아닙니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잠깐 좋아진 상태도 아닙니다. 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고, 절망과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던 저와 여러분 마음이 회복되고, 무너졌던 삶이 제자리를 완벽하게 되찾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세상 조건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함께해 주실 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한 명이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산길은 포장되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했습니다. 상당히 거칠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만드는 가파른 언덕도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물이 넘쳐흐르는 개울도 건너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불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안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가장 큰 복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걷고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Ⅳ. 진짜 축복
하나님께서는 “그들(곧 제사장들)은 이같이 내 이름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둘지니 나는 그들(곧 이스라엘 백성에게)에게 복을 주리라.”(민6:27)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소유와 보호, 책임과 권위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민 이스라엘을 당신의 거룩한 소유 삼으시고, 친히 보호해 주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선포하는 제사장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축복을 가르쳐주신 당신이 친히 축복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제사장들이 선포하지만, 실제로 선포된 축복을 현실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구현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축복하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이루어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샬롬을 허락해 주십니다. 진짜 축복은 돈도, 성공도, 명예도, 건강도, 인기도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친히 임재하셔서 필요한 복도 부어주시고, 은혜도 부어주시고, 샬롬도 부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여, 제게 복을 주시고 저를 지켜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얼굴을 제게 비추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얼굴을 제게 향하여 드셔서 제 삶에 참된 샬롬을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호흡하는 모든 순간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는 약속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받은 축복을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