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준 목사
전도서는 이스라엘왕 솔로몬이 기록한 책입니다. 솔로몬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왔던 사람이며 왕이 왕이 된 후에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누려 본 사람입니다. 이런 솔로몬이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지혜와 비결을 이야기한 것이 바로 전 9:입니다. 이 시간 솔로몬이 이야기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지혜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성공적인 삶의 지혜(9:1-6,11-12)
솔로몬은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어 주는 지혜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가지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리고 있는 성공에 대한 것과 솔로몬이 말하는 성공은 약간은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합니다. 흔히 현대인들은 성공이라 하면 돈을 많이 번다든가? 높은 지위에 오른다던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지는 것처럼 외형적인 것들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말하는 성공은 말 그대로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의 성공을 말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얻었다고 해서 성공적인 인생이라 말할 순 없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솔로몬보다 더 가졌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더 있겠습니까?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치들을 좇아 살다 보면 인생 전체를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얻어야 할 세가지 지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은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이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전 9:1)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솔로몬이 자신이 가진 지혜를 다 동원하여 열심히 연구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들의 미래는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롭게 살아간다고 해서 그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지혜롭다고 해서 자신의 10년후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일의 승패도 결국은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운명론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시 37:24절을 보면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때로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약속합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기서 ‘아주’라는 말은 아주 재미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신앙의 사람들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넘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의 삶을 붙드시고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에스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 7: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즉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후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을 알고 깨닫고 인정하며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삶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삶이요, 이것이 바로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첫번째 열쇠인 것입니다.
2) 인간은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사람은 죽음 앞에 설 때 진실해진다고 합니다. 장례식에 참석하면 숙연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평상시엔 죽음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삶을 아무렇게나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온갖 죄악된 행동들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2-6절에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살전 4:13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죽음에 대한 지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죽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이라도 기독교인은 이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오늘 내가 주님 앞에 서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준비하며 살아야합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것을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라 합니다.
3)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사실입니다(3절).
솔로몬은 본문에서 인간이 죽음을 망각하고 사는 것처럼 자신들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3절에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악하게 살아갑니다. 딤후 3:13에 보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악한 자들이 점점 더 악해지는 것입니다. 속이는 사람들의 수법도 날로 더해가고 결국 자신도 남에게 속임을 당하고 마는 현실,
공장의 기업주가 생산 원가를 줄일 생각으로 산업 폐수를 몰래버릴 생각을 하면 이것은 악한 생각이요, 그것을 비가 오는 날 밤에 몰래 버리면 이것은 미친 행위입니다. 무엇에 미쳤는가? 돈에 미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온 나라가 물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 (1994.1.19) 조선일보에 낙동강 물에 307종의 오염 물질이 있는데 그 중에 발암물질이 9종, 농약성분이 40여종이나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기주의 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부패의 현주소입니다.
2. 이러한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양식에 관한 교훈입니다.
(전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특별히 요즈음에는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물과 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하며 사는 때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실 때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내가 깨끗한 물과 양식을 먹기를 원하듯이 다른 사람도 그럴게 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나는 깨끗한 물을 먹기를 원하면서 더러운 폐수를 마구 하천에 버린다면 나도 역시 다른 사람이 버린 더러운 물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독교인은 그 모습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전 9:8)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유대인은 사람의 외모를 말할 때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인은 외모도 중요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기독교인은 외모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외모보다 마음과 성품과 생활도 깨끗하고 정결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정에서의 삶의 태도입니다.
(전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드신 인간관계가 부부관계요, 가장 먼저 만드신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정이 인간 삶에 가장 우선이요,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하나님 나라가 축소된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된 자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하며 자녀된 자는 하나님을 섬기듯 부모님을 섬기며 공경해야 합니다. 타락되어진 세상과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일차적인 장소가 바로 가정입니다.
넷째로 자신의 손에 주어진 일을 힘을 다하여 하라고 교훈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자신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놀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고 건강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감사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 비록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것이요 여러분의 삶의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보게 하는 세가지 열쇠는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도 구원도 재물도 역사도 일의 성패도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또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양식을 먹고 마시기 위하여 창조질서를 보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그 삶의 모습과 태도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가정 천국을 실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손에 주어진 일에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진실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