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화)_고전16.13-24_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주께서 주신 아침을 맞이합니다. 밤사이 더러워진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나의 생각과 마음이 온전히 주께 집중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먹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오늘 바울은 마지막 인사를 하며 다섯 개의 명령형 권면을 합니다. 그 첫마디는 ‘깨어 있으라(Γρηγορεῖτε)’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서는 것(to stay awake, be watchful)’입니다. ‘경계상태에서 계속해서 만반의 준비태세 가운데 있는 것(to be in constant readiness be on the alert).(BDAG)’입니다. ‘이 육체가 낮에 깨어있든지, 밤에 잠이 들든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live with him;살전5:10)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있는 것(to remain fully alive)’을 말합니다.(BDAG)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이므로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의 유혹 속에 빠지지 않도록 늘 영적 경계를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주께서 다시 오실지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마24:42, 25:13, 막13:35) 깨어있지 않으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시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마26:41, 막14:38) 나팔소리가 울릴 때 깨어 있는 자는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지 않은 상태로 예수님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눅12:37, 계16:15)
두번째는 믿음에 굳게 서라 입니다. 이성 중심의 헬라철학에 편승되지 말고 부활의 복음과 사도들에 의해 전승된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주님 주신 믿음에 굳게 서서 깨어 있는 사람은 주님을 맞이하여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는 ‘남자답게 강건하라’입니다. 이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용기를 상징합니다. 바울은 13장과 14장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유약함을 버리고 이교도 문화의 압박과 교회 내부의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영적인 성숙을 갖추라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영생의 소망을 품고 늘 담대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입니다. 영생의 소망을 품고 깨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까다롭지 않고 사랑으로 행하는데, 바울은 이렇게 깨어서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들을 소개됩니다.
먼저는 스데바나의 집입니다. 그의 “집”은 아가야 지방에서 “처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는데,아내와 노예들 그리고 해방된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하여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의 집은 모임장소로 활용되었고, ‘순종하라’라는 표현으로 보았을 때, 스데바나는 말씀사역의 책임까지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지식을 자랑하고 은사를 내세우던 고린도교회 사람들 가운데서 십자가의 본을 보이며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으로 섬김으로써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NICNT)
포르투나도는 “복된” 또는 “행운의”라는 뜻을 가진 라틴 이름인데, 특히 노예나 해방된 사람들 사이에서 흔했던 점으로 보아 그는 로마에서 신분이 낮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가이고는 “아가야 출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 역시 노예나 해방된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이름의 유래가 현재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이 세 사람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바울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사람은 교회에서 인정받은 일종의 “공식 대표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노예”가 “형제”가 되고, 또 교회와 교회를 연결하는 대표단이 되는 이 새로운 수평적 관계는 당시 수직적 구조의 로마적 세계관을 뒤집는 급진적인 모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입니다.(NICNT)
이어서 소개되는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유대인 출신의 해방 노예였는데, 로마에서 개종한 후, 추방되어 바울과 함께 천막을 만들면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던 개척 멤버입니다. 지금은 이 부부가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고린도에 따뜻한 인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희생, 복음 확장에 대한 비전, 바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봅니다. 그리고 점차 세계 교회로 확장되는 가운데 다양한 지역의 신앙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봅니다.
바울은 20절에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다섯번째 명령을 합니다. 당시 입맞춤은 동등한 신분끼리 나누는 인사였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인이나 노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서로 입맞춘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고 한 가족이 된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 다툼으로 나뉘어져 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게 입맞추라고 명령하며 다시 한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것을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바울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두려운 심판의 경고를, 신실하게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구원이 완성될 것을 소망하며, 그리스도의 은혜와 목회자로서의 사랑을 담아 축복하며 편지를 끝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신분을 모두 내려놓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서로를 돌보며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섬김의 모습을 보인 초대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며 알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고 서로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믿음의 선배들이 살아간 이야기가 나의 믿음을 더욱 굳게 서도록 한다. 무엇보다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행한 그들의 놀라운 행보가 나의 현재의 삶을 부끄럽게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이 행하시면 누구든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누구든 노예가 될 수 도 있으니,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있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귀한 자녀이며 모두가 한 형제/자매이고 한 가족이다. 위 아래도 없고, 더이상 주인도 노예도 없다. 그저 거룩하게 입맞추며 서로 문안할 뿐이다. 우리 더함교회에 주께서 이러한 일을 행하시길 원한다. 정말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 누구라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원한다. 돈 많은 사람도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도 와서 한 형제가 되길 원한다. 자녀를 괴롭혔던 부모도, 부모에게 시달렸던 청소년도 와서 영생을 주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기 원한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복음을 통해 주의 영생을 살아가는 공동체로 우리 더함교회를 세워주옵소서. 모든 이가 와서 마음에 시원함을 느끼게 하옵소서. 자신의 당을 짓는 사람은 누구든 나가게 하옵소서. 오직 서로 거룩하게 입맞추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