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록」은 일본 축구를 주제로 그린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2018년 월드컵 16강에서 일본이 패배한 직후이다. 당시 패배의 원인으로 능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부재가 지적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축구협회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현실에서도 일본 축구는 우리나라와 달리 역사적으로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평가됐으며, 「블루록」은 이러한 일본 축구계의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작품 속에서 일본 축구협회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찾기 위해 전국에서 300명의 청소년 스트라이커를 모아 블루록이라는 특수 훈련 시설에서 극한의 경쟁을 시킨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선수들은 월드컵 우승을 이끌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탐색을 하고, 기존의 정체성을 깨고 새로운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겪는다.
블루록 vs. 축구왕 슛돌이: 개인주의와 팀워크의 대조
이와 대조되는 작품이 1993년 방영된 「축구왕 슛돌이」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협력과 팀워크를 강조하며, 개인과 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팀워크의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스포츠 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블루록」은 개인의 경쟁적 성장을 우선시하며, 팀워크보다 개인주의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이는 30여 년이 지나며 동일한 스포츠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팀 스포츠로서의 축구 vs. 극한의 개인 경쟁
이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는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개인주의적 성장과 자기 중심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축구는 팀워크와 협력이 필수적인 종목이며, 각 선수는 자기 포지션에 맞는 임무를 수행하며 팀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블루록」은 이 틀을 과감히 깨고, 오직 개인의 능력과 경쟁을 강조한다. 300명의 최전방 공격수만 모여 경쟁하는 과정에서 포지션과 역할의 개념은 무의해지며, 팀워크보다 개인의 능력과 결과만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동료를 자신의 목표를 위한 도구처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에고이스트(Egoist)의 미화와 심리적 영향
작품은 끊임없는 경쟁을 미덕으로 삼으며, 극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중심적 사고를 강조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기애적 성향(narcissistic traits)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극 중에서 등장인물들은 이기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보일수록 더 강한 선수가 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이나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욕구만을 우선시하는 에고이스트(egoist)의 태도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설정은 성과 중심 사회에서 나타나는 경쟁 심리를 반영하며, 심리학적으로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과 관련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경험한다. 블루록 내에서 순위에 따라 차등 대우를 받는 시스템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자신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과 비교하며 불안과 강박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낮은 순위에 있는 선수들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며, 끊임없는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된다.
실패의 용납 불가와 생존 경쟁의 문제점
「블루록」은 선수들에게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한 자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남은 소수의 선수만이 정점에 도달할 기회를 얻고, 이 과정은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경쟁은 반복된다. 이는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성과 중심 사회의 경쟁 구조와 유사하다.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려는 강박적인 태도는 때로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블루록의 시스템은 마치 다수가 소수의 성장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조장하며, 과도한 경쟁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심리적 부담을 간과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뤄낸 성과만 강조한다.
작화 특징
캐릭터의 눈으로 투영되는 감정과 성격은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투사검사의 해석방식으로 적용해 보자면,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으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도 않아 보였다. 어느 캐릭터든 불안감이 높고,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스트레스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으며, 때로는 무감정해 보였다. 강한 집중력을 표현하지만, 이면에는 공포와 불안감, 트라우마와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작가의 이전 작품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카네시로 무네유키는 항상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며 경쟁과 생존을 이야기하지만, 「신의 뜻대로」에서는 공포를 느끼는 인간적인 존재로서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불안과 혼란을 보여주었고, 「블루록」에서는 강박적이고 불안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그리며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본능적 욕망'을 중심으로 극한의 경쟁을 견디는 개개인을 그렸다.
심리학적 분석: 자기 실현과 성장의 이면
「블루록」 속 등장인물들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과 연관될 수 있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최상위 욕구로 자기실현을 제시하며,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블루록」의 선수들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면, 개인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몰아붙이고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게 된다. 경쟁에 집중하다 보니 동료와 감정적 교류가 줄고 인간관계가 단절되며, 갈등이 반복된다. 경기중에는 타인을 도구로 여기거나 불신하고 업신여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경쟁 안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골을 넣는 비결로써 미화시킨다.
「블루록」이 던지는 메시지
「블루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해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발굴하는 성장 스토리를 넘어, 성과 중심 사회의 경쟁 논리와 그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돌아보게 만든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강한 의지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잔혹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정신적 부담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초래할 것인가?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바로 "성공을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경쟁해야 하는가?"이다.
블루록의 그들처럼 우리도 현실의 삶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이르는 자아실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행복한 자아실현의 방식은 오직 에고이스트가 되는 것뿐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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