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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복규의 성씨칼럼 영천이씨(寧川李氏) 시조 이능간(李凌幹)의 호는 송헌(松軒)이다. 전북 남원 출생인 그는 1320년(고려 충숙왕7) 반전별감으로 원나라에서 왕을 토번(吐蕃)으로 유배시킬 때 왕을 호위했다. 왕이 죽자 재궁(梓宮)을 모시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문하시중으로 있으면서 조적의 난을 평정하여 1등공신이 되고 영천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영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영천(寧川)은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일원에 위치했던 지명이다. 시조의 손자 이탕휴는 고려조에 한림학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역성혁명이 일어나자 자신이 살던 곳을 스스로 방화하고 자손을 고향으로 보낸다. 그때 그는 자손들에게 과거를 보지말 것을 당부했다. 이탕휴의 아들 이분은 부친의 훈계에 따라 벼슬을 하지 않았다. 현금(玄琴)을 즐겨 “천묵묵지묵묵아역묵묵"이란 곡을 지었으며 이 때문에 스스로 호를 묵옹이라 했다. 전북 남원군 이백면 초촌리. 주천면 용담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가 집성촌이다. 전북 임실군 지사면 계동에 시조 이능간의 묘가 있다. 한편 영천이씨(寧川李氏)는 한글 본관은 같으나 한문 본관이 다른 또 다른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있다. 전혀 뿌리가 다른 성씨이지만 한글 본관이 같아 구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95,473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영천이씨(寧川李氏)…94,491명, ▲영천이씨(永川李氏)…22,479명으로 각각 나누어 발표했다. 한편 영천이씨(寧川李氏)는 대부분 전북 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면 영천이씨(永川李氏)는 전국에 걸쳐있는 성씨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구가 적다. 한글과 한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사가 잘못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 성씨 전문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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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에 수치가 반대로 기술됨-----永川이씨=91,49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