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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하나님이 행하신 일
사도행전21:17~20
2003년 1월 18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설교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21: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설교: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으로 은혜 가운데 J국선교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염려하며 기도해 주신 여러 성도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사역을 보고하였듯이 오늘은 지난 한주간의 선교보고를 하는 것으로 말씀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이번 선교여행은 어느 때보다도 보람있는 여행이었고 사역이었습니다. 제가 간 곳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J국의 한성의 수도로 인구는 약 600만 명이며 그 면적은 훨씬 넓은 도시입니다. G성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땅만한 곳이었습니다. 몇 번 중국을 다녀왔으나 다녀 올 때마다 놀라는 것은 중국의 도시들이 놀랍게 발전을 계속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큰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고 전에 없던 고급 아파트들도 많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J에서 <다마스> 같은 고물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가니 처소교회가 있는 시골 동네가 나왔습니다. 인근 도시에 나가는 버스가 하루 두 번 밖에 안 다니는 아주 벽촌이었습니다. 목회자 반 지도자 훈련은 공안당국과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가르쳐야하기 때문에 아주 한적한 시골을 택하여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하는데 이번 공부는 그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곳도 마음을 못 놓습니다.
마을이라야 전체 6, 70여호가 되는 조그만 마을인데 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옥수수 농사입니다. 집집마다 옥수수가 천지인데 전부 사료용 옥수수라고 합니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장춘에서부터 연변에 이르기 까지 수백 수천만평의 대지가 거의 옥수수 농사를 짓습니다. 기후가 춥고 수리시설이 안돼 있고 강우량이 적어 벼농사나 기타 작물은 극히 일부분만 짓는다고 합니다.
기온은 여름은 30도 까지 오르고 겨울은 최고 영하 37도 까지 내려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도착한날 영하 20도라 하는데 귀가 얼어붙고 코털이 얼어붙어 돌아다니기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숙소와 교회가 약 300미터정도 떨어졌는데 그곳을 하루 몇차례 다니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1)교육환경
제가 가르친 그 목회자반은 NTS신학교안에 설치된 반으로 이동 교육을 하는 반입니다. 이번에 교육한 장소는 그 목회자반의 목회자가 시무하는 교회겸 가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 먼저 나오고 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억자 식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하나씩 있습니다. 한쪽은 여자들이, 한쪽은 남자들이 차지해 앉아 수업을 받는데 책상도 걸상도 없고 방석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20명이 수업을 받는데 먹고 자면서 밤낮 수업을 받습니다. 일종의 합숙훈련 같다고 보면 됩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90분 수업이 7시간으로 강행군하는 교육입니다. 밤늦게 끝나면 여자들은 옆 집 숙소에 가서 자고 남자들은 그곳에서 잡니다.
부엌엔 이쪽저쪽 큰 가마솥 두 개를 걸려있고, 시골교회 목회자 부인집사님과 성도분이 식사봉사를 합니다. 춥기에 부엌문을 닫고 옥수수대공을 아궁이에 넣어 밥을 하고 국도 끓이고 모든 음식을 아궁이 위에 걸친 두 손에서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부엌뿐 아니라 교회겸 살림집방인 강의실까지 연기가 가득합니다. 나는 목이 아파 강의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들은 익숙해 그런지 아무렇지 않은가 봅니다. 그 연기 자욱한 부엌에서 강사 통역 포함 26명이란 많은 사람 밥을 금방 해내고 설거지도 금방 끝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냉장고도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만드는지.. 그들의 음식은 우리와 좀 맞지 않았고 그래서 이곳에서 가져간 일회용 국거리를 끓여 먹으며 식사를 했습니다.
2. 수업 받는 현지 목회자들
이들은 삼자교회 목회자들과 그 삼자교회의 산하의 처소교회, 그리고 숨어서 개척하고 숨어서 운영되는 가정 교회 목회자들입니다. 삼자교회란 自立 自治 自傳이란 중국정부의 정책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정부에서 허가내준 교회들입니다. 그 목회자들은 신학을 배운 적이 없고 교회 나온 경력이 좀 된 사람중 열심이 있고 가르칠만한 사람을 택하여 설교자로 세우는데 대부분 집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목회하는 교회는 크게는 1000명 이상 모이는 교회도 있고 700명, 300명 모이는 교회도 있고 대부분 100명이상 모인다고 합니다.
삼자교회는 정부에서 허가해준 교회인데 실은 어용기관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목사가 있고, 교회당도 있고, 성경찬송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 같아도 실은 올바른 기독교회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구원론도 명확치 않고 복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天國간다는 식입니다. 이 삼자교회 목사가 되려면 정식으로 정부에서 인정하는 정식 신학교에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신학교를 가지 않고, 갈수도 없고 우리 한국 목사님들이 운영하는 신학교에 몰래 와서 성경을 배우고 돌아가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으면서 사명감이 생기고 은혜를 받지만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정부가 인정하는 신학교 교육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운영하는 신학교를 몰래 해야 하는가? 정부 정책으로 외국인이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이 하면 괜찮은데 외국인이 하면 ‘사상침투’로 봅니다. 중국에 해로운 사상, 나쁜 사상을 가르친다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의 한 단면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목사님들이 몰래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하신학교인 것입니다.
3. 목회자들의 지위
이들이 교회 돌아가면 목회자로 대우받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이들은 목회만 전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직업이 있습니다. 주로 농업이 그들의 직업입니다. 이들의 위치도 교인들과 똑같은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례도 한 푼 받지 못합니다. 그냥 똑같은 교인인데 설교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나 우리나 똑같은 교인인데 왜 사례를 해야 하는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역자이면서도 실상 교역자의 권위도 없고 대우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들이 이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은혜를 받고 나면 아주 딴 사람이 됩니다. 복음을 바로 깨닫고 뜨거워진 그들이 자기 교회로 돌아가 자기 교인들을 막 변화시킵니다.
이들이 얼마나 뜨겁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지 말씀을 가르치던 우리 목사님들이 다 놀라고 은혜를 받습니다. 아멘도 그냥 아멘이 아닙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멘!!” 하는데 열정도 그런 열정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나 신학교에선 그런 열정을 눈 씻고 보아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번 강의한 목사님들이 안가고 못 배깁니다.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열심일 수가 없습니다.
4. 음식문제
제일 힘든 것이 음식이었습니다. 먹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청결이 꺼림칙해서입니다. 한족 여인인 평신도 목회자 부인이 요리를 맡아 하는데 이거저거 요리하면 먹을 게 많겠건만 메뉴를 보면 매일 그 음식 그 반찬입니다. 김치도 담가 먹을 줄 모르고 마늘장아찌도 담가 먹을 줄 모릅니다.
제가 몇 번 중국을 다녀왔기에 동행한 목사님들께 반찬과 국거리를 준비하라 하여서 우리 강사들은 크게 불편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물고기 찜한 것인지 올라오고 저희가 돈을 주어 닭 8마리를 사다가 삶아 내놓는데 그들은 그것을 간장을 찍어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상추가 계속 나와서 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국거리 일화용을 가져간 것이 없었다면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식사가 준비하는 부엌을 내다보면 가관입니다. 그곳이 출입구이기에 어쩔수 없이 보게 되는데 밥맛이 뚝 떨어집니다. 생선 요리하는 것을 보니 정말 못 먹겠습디다. 생선을 몇 번 씻어야지 않습니까? 이건 그게 아닙니다. 생선 주물럭거리는 물을 보니 완전 구정물입니다. 설거지하는 것을 봐도 밥 못 먹습니다. 그릇이란 그릇을 전부 솥에다 넣고 물 붓고 닦는데 퐁퐁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빗자루 같은 솔로 솥을 딲고 물을 부어 바가지로 떠내고 거기다 다시 물을 부어 물을 끓여 그물을 식수로 내놓고 또 그 물에다 다 휘둘러 대고는 다른 음식을 만듭니다. 부엌에 설거지용 그릇이 따로 없습니다. 주방 기구라는게 아주 간단합니다. 솥 두 개로 해결합니다. 그 흔한 주전자 하나 없고 곤로나 부르스타 하나 없습니다.
물도 나쁩니다. 집집마다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물을 좀 가라앉히면 밑에 침전물이 부옇게 쌓입니다. 물은 가려먹어야 한다고 한 박스 사가지고 간 물이 있어 몇일은 염려하지 않고 먹었는데 너도 나도 그물을 먹겠다고 하니 3일만에 떨어졌습니다. 4일째부터는 그 솥에서 끓인 물이 식탁에도, 강대상에도 올라오는데 영 꺼림직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먹었습니다. 그래도 되게 추워서 그런지 괜찮았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그들은 맛있다고 먹는 것을 보면서 감사했고 또 그런 환경 속에서 은혜 받는 저들을 생각하면 감사했고 은혜가 됐습니다.
5. 화장실 어려움
우리나라 60년대 그대로 입니다. 퐁당식인데 누가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밖에서 엉덩이도 부분부분 보이고 얼굴도 대충 알아볼 수 있으며 문짝도 없습니다. 그래서 강의실로 사용하는 집의 화장실은 겁이 나서 이용할 엄두도 못냈으나 꼭 아침을 먹어야 볼일을 보는 습관 턱에 이틀을 사용했는데 얼마나 힘든지요? 30여명이 들썩거리는 집인데 거 교수가 앉아 있는데 학생이 오면 어떡합니까?
날씨는 영하 15도에서 20도, 그러니 바지를 내리고 일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을 해보세요. 잠바 옷을 벗고 일을 봐야 하는데 추우니 그럴 수도 없고 얼른보고 얼른 딲고 나와야 하는데 잘 딲이지도 않습니다. 왠 줄 아세요? 고사이 얼어붙어서 그렇답니다.
밤에는 영하 25도나 되는데 한 밤중에 소변보려면 중무장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다 주어 입고, 마당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대문 밖으로 나갑니다. 다시 담을 끼고 화장실까지 한참 가야 합니다. 문짝은 없고 벽이 대신 막아 줍니다. 큰일이라도 볼라치면 최대한 참을 때 까지 참고 견뎠다가 한번에 밀어내기(?) 한판으로 속전속결하고 와야 한다는 지혜도 생겼습니다.
6.숙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우리 강사 숙소라고 방 내준 집의 친절이었습니다. 신학교를 관리하며 통역하는 전도사님 장인 댁인데 처남 신혼부부를 부모님과 합방하게 하고 내주는 것이었습니다. 신혼부부를 쫓아내고 우리가 일주일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내색도 없습니다. 말은 안 통해도 정성을 다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점심 때 불 때주고, 저녁에 불 때주고 새벽 3시경에 일어나 불을 때줍니다. 불을 땔때는 연기가 방까지 들어와 기침도 하곤 했으나 덕분에 영하 20여도의 추위에서도 따듯히 잘 수 있었습니다.
7. 수업광경
이 목회자반 학생들은 일년에 두 달 6월과 10월에 방학기간을 줍니다. 이때 옥수수를 파종하고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달 동안 한달에 두주씩 몇 달은 한주씩 모여 집중 강의를 받습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까지 수업을 받는데 총 17주를 그런 식으로 3년을 한답니다.
수업시간이 어떤 줄 아십니까? 강행군입니다.
새벽 6시부터 90분 강의를 받습니다. 7시 30분에 수업 끝나면 아침식사 그리고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받습니다. 강의 끝나면 점심시간. 다시 2시부터 3시 30분, 4시부터 5시30분 두타임을 강의. 저녁 먹고 7시부터 8시 30분, 8시 40분부터 10시 까지 강의를 받습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결석도 없고 불평도 없습니다. 정신없이 강의를 기록하고 입으로는 아멘을 외칩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근처 목회자들도 몇 명 있으나 굉장히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몇 시간 차를 타고 오기도 하는데 M에서 오는 두분의 여 목회자도 있었습니다. 기차로 여섯 시간, 그리고 J시에 와서 두 세 시간 이렇게 먼 거리를 와서 수업을 받습니다. 여자들은 대략 30대에서 50대, 특히 40대 초반이 많은 데 많이 배운 사람들은 아니지만 아주 똑똑한 여성들입니다. 자식들이 있고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게 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놀란 것은 이들이 성경을 굉장히 많이 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구절을 물어보면 대답 못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찬송가는 고작 3, 40여곡 정도를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평신도들은 성경 찬송가가 없고 괴도 같은 것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외운다고 합니다.
찬송가는 악보 찬송가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무곡조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노래 말 위에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도는 1, 레는 2, 미는 3입니다. 화는 4이고 쏠은 5입니다. 그 숫자 보고 높게도 부르고 낮게도 부릅니다. 재미있죠?
제가 이번에 중국 가서 중국 찬송가를 배워 왔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찬송입니다만 중국어로 부를테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허등 언유 츠런 쮸즈 꿔어 쯔이네 딴워유
허등 쵠리 능쟝 완스 라이더 예수 쯔워 첸주
둬써 핑안 워먼 쭤스 둬써 퉁구 웬왕쒀
또스 인워이 워이쟝 완스 라이더 예수 쯔워첸주 (죄짐맡은 우리 구주)
8. 강사 목사님들
이곳까지 오셔서 강의하시는 목사님들, 이런 곳은 아무나 와서 강의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사비 한푼 못 받고, 자기 돈 들여서 비행기 표 끊고 돈 없애 가면서도 기쁨으로 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오는 것입니다. 저도 지난 성탄절에 새벽송때 들어온 쵸코파이 두박스를 가져갔습니다. 지난번 성탄절 새벽송 때 들어온 선물인데 강의 중간 중간 간식으로 나누어주는데 그것을 먹지 않고 가방에 넣는 분도 있었습니다. 왜 안 먹냐 물으니 집에 있는 아이들 가져다 줄려 한답니다. 옛날 국민학교 시절 옥수수 빵 생각이 나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강사들은 그곳에서 신학교 운영 위해 100불 헌금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까운 줄도 모르고 힘든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돈을 드려서라도 복음을 전하려는 한국 목사님들의 선교열정이 대단합니다. 어느 누가 자기 돈 들여가며, 시간 없애가며, 편리한 문화생활을 뒤로 하고 그 불편을 감수해내겠습니까?
무엇보다 이 일을 주관해 추진해나가시는 목사님, 얼마 전 우리 교회에 오신 권 목사님이 참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선교활동보다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S시에 신학교 1,2학년/ J시에는 지도자반/ 그리고 제가 간 목회자반/ 그리고 성경중학교/ 그리고 C시에 목회자반/ 이렇게 7개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 교세가 우리교회정도인데 그 엄청난 일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 중국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복을 주신답니다. 어떤 성도는 십일조를 몇백만원씩 하게 되는 체험을 하고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원하여 참여한답니다.
결국 그 교회에서 일년에 1억정도 선교비를 사용하시면서 이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목회자반 담당 전도사와 신학교 담당전도사 생활 책임지죠, 통역하는 젊은 신학생 생활 책임지죠, 그들에게 아파트 임대해 살게 하고 수업장소 임대하죠, 시골에 강의할 집 세 얻어야죠, 강사들 숙소 얻어야죠, 학생들 전부 다 먹이고 재워 주죠...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중국정부가 단속하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앞으로 2008년 올림픽을 치르게 될 중국이 보다 더 종교정책이 개방되어 기독교 복음사역이 자유로워지면 이 학교를 통해 배출되는 일꾼들이 대단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중국 12억 영혼들을 살리고 중국교회를 일으키는데 한 몫을 담당 할 것입니다. 그 엄청난 일에 저와 여러분이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저는 중국의 시골 목회자들에게서 장래 중국 복음의 비젼을 보았습니다. 비록 아직 가난하고 무식하고 뒤떨어진 생활을 하고는 있을지라도 주님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에는 우리들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난해서 못 배우고 못 먹고 추위에 떨 때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성경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니 주님보다 즐거운 것들이 많아졌고 은혜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신앙은 “악세사리”처럼 되었습니다.
어떤 선교학자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서쪽으로 움직인다”고요. 한 때는 구라파를 뒤덮었던 복음의 성령의 역사가 1700년대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더니 1900년대 아세아로 왔습니다. 그 중에서 한국으로 그 흐름이 넘어왔습니다. 이젠 한국에서 성령의 역사는 서서히 그 날개를 접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서서히 거대한 대륙, 중국으로 차츰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인 세계복음화를 위해, 특히 중국 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장안의 가족 여러분!
이제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어떤 선교학자의 말처럼 매일 3만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지구 역사 이래 최대의 구원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일을 구경만 하고 계실 것입니까?
어찌해야 할까요?
1) 기도로 도우시기 바랍니다. 새벽 기도 때, 개인기도 시간에...
2) 선교헌금으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매월 만원이라도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3) 가든지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마게도냐 사람 한사람이 바울의 환상 속에서 나타나 건너와서 도우리고 외쳤지만 오늘 우리는 살아 있는 실존인물들이 외치고 있는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4~50대 목회자들이 중국말로 외칩니다. 통역이 통역해주지 않으면 그냥 인사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언제 또 오실 것입니까? 꼭 또 오셔서 우리를 가르쳐 주세요.”하면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습니다.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하심에 누가 동참해야 할까요?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