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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2부에 이어서 3부 교제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정착해서 하나님의 집을 야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는 변화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삶의 변화의 과정을 주셨는지를...
이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들과 똑같은 맥락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야곱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믿는 자들이 정말 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교제의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우리 창세기 35장 7절 8절 말씀을 한번 읽고 시작할까요.
7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제가 2편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다 라는 것은 제단은 그리스도 신약
성경에서는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제단은 드리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의 간섭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루시는 일을
통해서 정말 감사하고 친히 그 간섭하심에 따라서 어떠한 놀라운 예기치 못한 어떤 인간의 환경을
변화시키시고 복을 내리시고 도우시고 보살피시고 살피심으로 말미암아 직접적으로 관여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하는 일이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에 가나안 땅 루스 땅에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고 라고
창세기 35장 6절 7절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야곱이 창세기 33장20절에 보면 세겜에서도 제단을 쌓았다고 나오는데요
엘엘로헤이스라엘 이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양쪽에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어요.
이스라엘의 엘도 하나님 이라는 뜻이 있죠 이스라엘은 왕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왕이라는 뜻이죠.
엘엘로헤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하나님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겜에서 제단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야곱이 정말 모든
소유를 취하게 하여서 그 성 앞에 천막을 치고 안주하는 삶의 환경을 조성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고 싶어서 헌신해서 드린 것은 야곱 한 사람 자기 자신을 위한 제단이었다.
그러나 이 벧엘 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라고 하시고 그곳에서 디나가 겁탈 당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히 보호하여 주셔서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을 한 사람도 상하거나 해함 받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을 보호 하시고 안전하게 벧엘에 도착하게 함으로 말한 제단을 쌓게 한 일은 전체적인 모든 식구들 야곱에게 속한 모든 이스라엘 이라는 야곱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집이었기 때문에 바로 벧엘에서 야곱이 제단을 쌓고 드리는 헌신은 하나님의 진정한 집을 위한 바로 그런 헌신이었다.
그래서 10절에 그의 이름을 더 이상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으며
그리고 11절에 바로 이어서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충족해 주는 하나님이라는 걸
너 이제야 알겠지 그러고 나서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라 여러 왕이 나올 것이다
씨도 줄 것이다." 이렇게 야곱에게 말씀하시고 언약하셨을 때
이 야곱이 자기와 언약하신 그 하나님을 기념하여서 돌기둥을 세운 다음에 거기에 기름을 붓고
전제물을 먼저 부었어요 순서가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사건을 나타내는 것인데요.
그래서 그 이름을 그제서야 벧엘이라고 하였다 라고 35장 15절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제가 지금 얘기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겜에서 드리는 헌신은 야곱 한 사람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드린 것이에요 자기 자신의 모든 소유를 빼앗기지 않고 라반 삼촌으로부터 피할길을 주시고
에서로부터 죽을 위기에서 구원해 주시고 소유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가족들도 다친 자들이 없어요 해함 받거나 상함 받은 자들이 없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세겜을 통해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는데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개인의 하나님 자기 자신의 헌신 자기 자신을 위한 제단을
드린 헌신은 자기 한 개인이 야곱 한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 였지만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드린 헌신은
모든 자들 이스라엘에게 속한 모든 자들 그래서 10절에 너의 이름을 이제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하나님 안에 속한 개인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체적인 우리 모두에게 공급해 주신 하나님
그래서 모든 자들이 우상을 벗어던지고 정결하게 되고 의복을 벗어 버리고 또 귀걸이를 벗어버리게 된
이 모든 사람 이스라엘에게 속한 자들에게 모든 행위를 한 그것은 하나님의 집 전체에...
왜 ? 그 하나님의 집은 이러한 삶을 산 자들이 거함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영원한 도성이기 때문에
바로 엘벧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엘벧엘은 벧엘에서의 하나님은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체적인 이스라엘 안에 있는
하나님이다 이런 뜻입니다.
엘벧엘 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야곱이 이끌고 있는 모든 전체적인
우리의 하나님의 집에 또 하나의 하나님이 있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내가 놀라운 얘기를 할려고 그러는데 이렇게 됐을 때 이 엘벧엘 이라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전체적인 우리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이라고 합시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라는
이 엘벧엘 이라는 신성한 칭호를 야곱에게 계시해 주신 다음에 바로 이룬 일이 뭐냐면 이런 자들
이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 "아니 ! 하나님이 하나님 집에 계신데 또 그 집 안에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강조를 하고 계시는 그렇게 계시의 칭호를 보여주시고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바로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죽게 하십니다.
이게 죽게 하신 이유가 있어요 이것을 사람들은 그냥 읽고 말아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벧엘 아래 쪽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 되었다.
그 나무의 이름이 알론 바굿 이것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해를 못해요.
알론바굿이 있어가지고 알론바굿이 뭐예요. 통곡의 상수리나무 통곡의 도토리 나무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있으므로 드보라가 그래서 죽은것이구나 이 말씀이 오! 할렐루야 정말 감사합니다.
알론바굿 내가 이 얘기를 하려고 지금까지 이렇게 서론을 이 한 얘기 하려고 한거에요
이 드보라 얘기와 엘벧엘 얘기하려고 내가 지금까지 4시간을 보낸 거예요.
보세요 간단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내가 설명을 드릴게요
8절 말씀은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고 칭했더라 리브가의 유모가 죽었어요.
아~ 보세요 보십시오 지금 이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가 곁에 있습니까
안 계시죠 예 없습니다. 헤어졌다가 이제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갔을 때 자기 어머니 리브가는 이미 죽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곁에 없습니다.
이미 모든 삶이 자기가 가장 의존하고 의지하였던 그 어머니 리브가까지도 지금
자기 곁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 리브가는 야곱이 돌아오기 전에 죽었음이 틀림없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주권적인 일에 의해서 정말 이른 나이에 일찍 죽음을 당한 것을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야곱 곁에 가장 소중했던 어머니도 곁에 있지 않고 그리고 자기 형제였던 에서까지도
헤어지는 일이 생기고 지금 이 현 시점에서 드보라는 야곱의 리브가와 같은 존재입니다.
리브가와 같은 존재자 어머니와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에요.
무슨 얘기인지 아십니까? 드보라는 유일하게 야곱이 의존하고 의지하면서 정말
그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리광을 떨고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속 사정 까지도
그냥 아뢰고 자기의 치부까지도 드러내고 의논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자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예요.
그런데 8절에 보면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가 유모 드보라였습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뭐냐 창세기35: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시지도 않은
아~ 내가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부정한 모든 더러워진 하나님의 집에 조금도
있어서 아니될 이방 신들과 정결하게 하는 일 옷을 바꾸는 일 귀고리를 제거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라고
선제적으로 준행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변의 성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서 공포심을 갖게 한 그들이
아무도 뒤쫓아 온자들이 없게 합니다.
이 놀라운 벧엘에서의 체험을 가진 그 순간에 그때에 가장 야곱에게 소중하고 가장 자신이 의존하고
의지하였던 유모 드보라를 하나님께서 취하셨고 데려감을 당합니다.
그러면 저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세상 삶의 가운데 있었던 우연한 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다 이루어지는 일들이에요
여러분들이 깨닫기 위해서는 인생을 많이 살아보셔야
하얀 머리가 되다 보면 그제서야 조금 아시게 됩니다.
우리에게 펼쳐진 모든 삶의 조그마한 일부터 세세한 일부터 정말 대대적인 큰 일들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지 않으신 것이 없을 정도로 인간 세계의 삶의 역사는 그렇게
그렇게 바람이 처마밑을 돌듯이 계속적으로 영원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의지할 때에 가장 소중하고 위안이 될 드보라를 하나님께서 죽음을 당하게 하십니다.
데려가신다는 얘기에요 하나님께서 너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그 땅에서 니가
그곳에 거주 하여야지!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아야지! 이렇게 얘기를 하셨을때
야곱은 내가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를 정결케 해야 되고 하나님의 집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지 라고 신성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거듭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립니다.
이방신들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고 귀고리를 버리고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서 적들을
무섭게 하여서 하나도 뒤쫓아오게 하는 자들이 없이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삶 속에 관계하시고 간섭하시고 친히 개입하셔서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우리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조차도 과거에는 의존한 자들이 있었어요
의지할 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자기가 필요할 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할 때 얘기할 수 있었던
그러한 가장 소중한 존재자인 유모 드보라를 하나님이 취하셔서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이와 같은 드보라들이 있어요 매우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얼마나 필요했을까요.
이 드보라는 야곱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연장자이고 삶의 경험이 많은 어떤 면에서 선생님이고
어떤 면에서는 유모이고 어떤 면에서는 어머니 같고 어떤 면에서 아버지 같은 이러한 유모를
우리 곁에서 취하셔서 떠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이와 같이 소중한 존재자들이 있어요.
얼마나 많이 야곱이 유모 드보라를 소중히 여겼냐면 알론바굿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 나무의 이름이 뭐예요? 알론바굿 통곡의 나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얼마나 소중했으면 울었다 라는 것을 통곡했다 라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고 그만큼 애정이 있었고
그만큼 관심이 있었고 그만큼 자기에게 소중한 존재자 였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통곡이며
울음이에요 그렇게 울어본 적 있습니까?
저는 우리 아버지 돌아가실 때는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우리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는
속으로 외면적으로는 눈물을 흘린 적이 없어요.
속으로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참으로 진정으로 유일하게 세상에서 나를 아껴주시고
집중하시고 주의하시고 관심을 가지셨던 그 어머니를 내 삶에서 취하셨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는 눈물이
연민이 생각이 나면서 기억이 나면서 울게 된 경험이 1년 반인가 전에 저에게 있었습니다.
통곡의 상수리 나무 얼마나 소중했을까요.얼마나 사랑했을까요.
얼마나 삶의 깊이 그가 관여했으면 야곱의 삶에 있어서 자기 곁을 떠난 그 드보라 유모를 위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하면서 울었을까요.
우리 주위에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드보라 들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러한 대상들이
그러한 사람들이 그러한 어떤 것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들어보세요
우리가 참 하나님의 집 벧엘 이라는 곳에 들어오는 순간에 하나님은 인위적으로 자동적으로
의도적으로 우리들의 가장 소중했던 유모를 빼앗아 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우리 곁에서 가장 소중한 드보라는 어떤 것들이 될 수도 있고요
어떤 대상들이 될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람들이 될 수 도 있고요 어떤 것들이 될 수 있어요.
가장 소중할 때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의지하고자 할 때 가장 그 기쁨을 만족하고 이제
하나님의 집안에서 뭔가 이제 유쾌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고 진정한 행복 참평안과 안전을 도모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그쯤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드보라를 데리고 갑니다.
참 하나님의 참 교제 생활 벧엘이라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유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거를 깨우치면 얼마나 여러분들의 삶의 영적인 힘이 영적인 인식이 제대로 진리의
빛이 비쳐지는지 모릅니다.
참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참 교제 엘벧엘 하나님의 집이 아닌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그 속에 구중궁궐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드보라가 있는 한
그에게 의지하고 그에게 의존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부탁하고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드보라가 있는한 하나님의 집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 엘벧엘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이 유모이고 아버지 이고 어머니 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 드보라를 연연해 하고 아직까지도 나를 위로해주고 나에게 친절을 제공해 주고 나에게 이로움을 주고 유익을 주고 나에게 배고픔 채워주고 나를 동정해주고 나를 위해서 대신 심부름을 해주고 나를 위해서 옷을 준비해 주는 그런 자들을 아직도 우리는 필요로 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한
우리들은 벧엘의 하나님의 집은 찾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은 만날 수 없어요.
그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한 우린 아직도 연단되지 않은 것이에요.
벧엘의 바깥에 하나님의 집 바깥에서 서성거리고 주위를 배회 하는 자를 보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 삶의 주위에 이러한 나를 위해주고 나를 달래주고 나를 위해서 유익함을 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심부름 해주고 나에게 유익을 줄 드보라와 같은 어떤 때는 어머니와 같은
때로는 선생 같은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때로는 유모 같은 때로는 심부름 꾼인 하녀와
같은 이런 자들을 우리들은 좋아해요.
그것을 곁에 두고 있는 한 하나님의 집은 볼 수 있지만 너희가 진실로 진실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하나는 볼 수 없다.
하나는 들어갈 수 없다 볼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들어가가는 것이 중요해요 들어가서 그 하나님이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드보라가 있는 한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대면 하여서 만나서
교제할 수 없고 그분이 내 안에 들어와서 살아서 내가 그분 안에 들어가서 먼저는 내가
그분 안에 들어가서 그분과 교제를 나눔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그분이 내 안에 살아져서 삶을
표현을 해야 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드보라가 있는한 유모가 있는한 나를 위해 주고
유익을 주고 달래주고 필요할 때 필요를 채워주는 엘샤다이 대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는 어느 일정
제한적인 상태에서 필요를 공급해 주는 그런 자들이 있는한 진정한 엘샤다이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소유할 수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 성경에 나오는 것은 단순한 얘기가 아니에요.
저는 한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있는 거에요 이제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생명의 말씀
생명의 씨가 들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왜? 드보라 유모가 죽은 게 뭐 대단하다라고
죽어서 벧엘 아래쪽 상수리 나무 밑에 죽어서 장사 지냈고 그 나무의 이름이 알론바굿이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이 귀한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 책에 이런 말씀들이 기록돼 있을까요
이거는 예수님의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필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빛을 비춰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아직도 유모와 같은 드보라를 찾고 있을 가능성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그 드보라를 두세 명 갖고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많게는 10명 가지고 있어요 왜 내가 필요로하니까
나에게 필요를 제공해 주는 그런 대상이니까 그런 어떤 것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니까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벧엘 하나님의 집에는 가게 할 수 있을지 그것이 있어도 가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드보라가 있는 한 하나님의 집을 찾아가는데 함께 갈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은 안 된다라는 얘기예요.
우리를 돌봐주는 것 우리를 위해서 위로해 주고 우리의 필요를 제공해 주는 것 엘샤다이
와 같이 어느 정도까지는 해줘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진정한 엘샤다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만족시켜주시는 참 하나님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잡을 수가 없어요 소유할 수가 없어요. 함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가 되기 위하여
주님과 그 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구중궁궐 깊숙이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곁에 있는 드보라와 같이 우리의 필요를 제공해주는 드보라를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젖을 공급해주는 유모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를 동정하고 달래주는 그런 드보라들을 하나님께서는 취해 가실 것입니다.
환경을 갖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를 동정해 주고 우리를 위해서 심부름 해 주고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그 드보라 라는 유모가 있는 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엘샤다이 하나님 엘벧엘 하나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 환경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생애 속에 존재하는 드보라와
같은 유모들을 취해가실 것입니다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제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는 놀라운 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 엘벧엘이라는
그 하나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 그게 중요해요
그 끝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우상을 집어던져 우상을 파묻습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바꾸는 이런 일들이 이방 신들을 버리고 귀고리도
상수리 나무 밑에 묻어 버렸습니다.
강건해 지지 않으면 도토리 나무밑에 도토리는 강건함을 나타내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맺습니까 도토리 상수리 나무 한번 보세요.
얼마나 생명력이 넘치는지 그곳에 강건한 생명력으로 그것을
감추어 영원히 사장시키지 않으면 묻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는 가장 가까운 보이는 우상 이방 신들 멀리서 가져온 거예요.
가만히 보세요. 이방 신상들은 멀리서 가져온 것이에요.
그다음에 귀고리 사람 몸에 붙어 있는 거예요. 자기를 미화시키고 치장하는 거예요.
그걸 묻어버립니다 세 번째 뭐가 땅에 묻혀집니까? 무엇이 장사 지낸바 됩니까
유모 이게 중요해요 유모는 자신의 삶의 일체예요. 자기의 삶의 일부분이에요.
귀고리만 해도 자기 삶의 일체이지만 이것은 떨어진 것들 중에 일체예요.
분리된 것 중에 일체예요. 이것과 이건 달라요 그러나 유모 드보라는 자기의 생명 자기의 삶의 일체가
되기 때문에 유모를 땅에 묻혀지는 첫 번째 뭐에요 우상 두 번째 귀걸이 세 번째 유모를 땅에 묻혀서
장사 지낸 바 되어서 어디? 상수리 나무 밑에 그리고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통곡을 합니다.
8절에 보면 통곡을 하는 것이 바로 알론바굿이라고 이렇게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상수리 나무를 본 적은 없지만 이것은 보통 우리가 알기로는 그 도토리 나무
상수리 나무 하여튼 열매가 많은 것만은 분명 해요.
이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나라 상수리 나무처럼 열매가 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열매가 많은건 분명해요 아무튼 이 상수리 나무는 신과 생명의 번성을 얘기합니다.
수없이 달린 그 열매를 통해서 번성하는 삶의 생명력이 충만한 번성하는 삶을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자면 이방 신들을 묻어버리고 자기를 정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옷을 깨끗하게 하고 자기를 미화하고 치장하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자기의 부족함과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운 모든 것을 가리는 무화과 나무잎으로 가려지는 그리스도를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그것을 무화과 나무 잎 대신에 귀고리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치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치장하는 거 그거는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 것으로 자기를 감추는 행동이기 때문에
우상과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제가 이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이방 신들과 자기 자신을 미화시킨 귀고리들 그리고 자기의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필요가 있고
자기의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던 이 드보라 라는 유모들은 옛 생활 안에 묻혀져야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묻혀지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어떤 번성하는 예수님과 같은 포도나무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삶이 나타나기 위한 마음의 어떤 표시로 그 상수리 나무 아래 옛 생활 안에 완전히
그것이 장사 지낸바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드보라와 이방 신들과 그리고 귀고리 들이 상수리 나무 아래 묻혀졌다라고
8절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벧엘 아래쪽 상수리 나무 밑에 장사 지낸바되었다.
장사되었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상수리 번성 번창하는 생명의 능력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바로 상수리
나무 아래 그 밑에는 우상들 그러한 귀고리들 그러한 우리들에게 필요가 되고 공급이
되고 우리의 모든 삶에 모든 제공의 공급원이 되었던 그런 드보라들이 묻혀져 있다 라는거예요.
이게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가 달린 바 되어서 그러한 것이 장사 지내 진바 되어야 된다라는 얘기입니다.
상수리 나무처럼 위에는 번성하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죽은 옛생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우상 단지 같은
이방 신들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고 더 관심 두고 주의하고 집중하였던 그런 것들과
자기를 감추고자 했던 무화과 나무 잎으로 대신하고자 했던 귀고리들 그러한 드모라와 같은 유모들이
그 안에 장사 지낸 바 되어야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과 그제서야 교제를 나눌 수가 있다
라는 얘기입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는 그런 십자가 나무 아래 우리가 장사 지낸바 되지 않으면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참 하나님 우리가 연합을 이루고 일체를 이루고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이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계시는 살아 사시는 이런 삶의 경험을 우리가
그 십자가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이러한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런 어떤 대상들 사람들 어떤 것들 또 나를 감추고자 하는 무화과 나뭇잎 대신에 나를 들쳐내면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무서운 그런 것들을 귀고리를 통해서 장신구들을 통해서 나를
내어보이려는 미화시키는 치장 하려는 그런 것들 또 많은 나에게 진정한 참 도움을 주었던
그런 드보라와 같은 유모들이 십자가 아래 이렇게 장사 지낸 바 되지 않으면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빼앗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우상 하나님보다도 더 관심을 두고 더 우선하고 더 주의하고 집중을 갖는
그런 것들을 버리는 일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에요.
우상들을 버리는 이런 일들 하나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일들을
이렇게 제거하는 일들은 어느 정도는 가능해요.
그런데 그보다 좀 어려운 일들이 나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더러움과 부정함을 감추기 위해서
치장하고 미화하는 귀걸이들을 없애는 이런 일들.. 그래서 사람들이 아파트 얘기를 하고 박사학위
내가 있느니 없느니 어떤 사람은 박사인데 왜 박사라고 얘기하지 않느냐고 나는 강 박사라고
나 박사니까 박사라고 불러달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자기 자신을 치장하고 미화시키는 기분이 다르거든요
어떤 그런 재산상의 모든 것들 아파트 차 요즘에 차도 벤츠나 제네시스 이런 거 아니면
사람을 인정을 해 주지 않는데요 이게 다 자기 자신을 미화시키는 귀걸이인 것이거든요
하나님을 상실한 자들은 그 무화과 나무 잎으로 가려서 임시방편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고자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상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곁에서 임재하시면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임재하신다면
그리스도가 상실되어진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내 안에 함께 사는 자가 된 그러한 자들이라면
그러한 무화과 나무 잎으로 나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그런 행동들이 전혀 필요가 없어요.
저는요 자전거 타고 산에 가고 자전거 타고 시장에 이동하고 왔다 갔다 하고 그러지만
하나도 내 자신을 내가 어제 머리가 너무 길어가지고 이제 날씨가 좀 따뜻해지니까
모자를 안 쓰면은 바깥에 머리가 드러나기 때문에 머리를 깨끗하게 이렇게 이발을 했어요.
그 정도로 꾸미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아름답게 치장해 주고 미화 시켜주는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가 상실되지
않고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사람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나를 미화하고 치장하고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그냥 하나의 배설물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우상들을 버리고 귀고리 들을 없애는 자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이제 다가오죠
멀리 있는 우상들을 버리고 가까이 있는 몸의 일체가 된 귀고리들과 장신구들을 버리고 삶의
일체가 된 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제공해 줬던 유모 드보라를 하나님이 죽게 하셔서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 그것을 묻힌 바 되게 묻혀지게 합니다.
보이지 않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에요.
우리 편에서 참된 정결케 된것이 아니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편이 아닌 우리 자신의 편인 야곱에서부터가 아닌 하나님 편으로부터 엘벧엘로 하나님의
집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기 위하여 정결케 하시는데 우상을 버리고 장신구와 귀걸이 우리를
미화 시키게 하는 장신구들을 버리게 하고 유모를 취하게 하고 죽게 하는 이 일들은 하나님 편으로부터의
정결케 하신다는 얘기에요 하나님이 해주셔야 돼요
마음으로 감동을 해 주셔야 이방신들을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님보다도 우선하고 가치 있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어떻게 우리가 버릴 수가 있나요.
그러면 미워해야 되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나요.
그것이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이라니까요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면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시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시면 생명의 숨을 주시면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시면 정결케 하는 마음을 감동케 하여 주셔서 그 일을 버릴 수 있도록 강건함을 주시고
그래서 상수리 나무가 있는 거에요 강건함 번성과 충만함을 주세요.
그리고 유모까지도 우리가 버릴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유모를 드보라를 어떻게 버립니까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 있게 손 들어보세요
없어요 못 버립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이 뺏어 가십니다.
하나님께 하시는 일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드보라를 죽일 수 있나요 드보라 당신이 있으면 안되니까 빨리죽어 그럴수가 있나요
안됩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취해가십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이 빼앗아 가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방신들을 버리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귀고리들과 더러운 것들과 의복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목욕하게 하시고 모든 것들을 엘샤다이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교제를 나누게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 하지만
불필요한 것 마치 복을 주는 것 같지만 참다운 복을 주지 않는 이 방 신들 드라빔 귀고리 자기를 감추는
그런 것들 유모들 다 하나님은 필요하지만 하나님보다도 더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참 하나님을 공급해
주는 자신을 공급해주고 자신이 사랑해 줘서 모든 것을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두 우리가 필요하는 것들 다 뺏어가십니다. 다 취해가십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고 우리가 많이 의존하고 많이 의지하는
그런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상수리나무 아래 장사지낸바
되어야 됩니다.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 빼앗아 가십니다.
여러분 이 말을 잘 인식하세요 우리가 버릴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놓지 않으니까 뺏어 가실 것입니다.
이게 눈물이 나는 얘기예요. 빼앗어가시는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고 그가 크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
상수리 나무처럼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이 번성하고 많이 성장하고 많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
바로 상수리 나무 아래 그것을 보이지 않게 영원히 묻힌바 되어서 취해 가셔서 장사 지낸바되게 하시고
그래서 드보라가 묻힌 그 상수리 나무 아래에는 드보라가 묻혀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벧엘 아래 라고
그렇게 써 있는 거예요.
그래서 8절에 보면 읽어보세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이 벧엘 아래라는 것이 상수리 나무 아래는 유모 드보라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필요가 됐던
공급원이 됐던 모든 의존적인 존재였던 그 유모가 묻힌 그 상수리 나무 아래는 다름 아닌
벧엘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 라고 일부러 써 놓은 거에요
이것은 우리가 드보라들을 하나님께서 취하셔서 야곱 스스로가 그렇게 드보라를 인위적으로
묻힌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빼앗아 가심으로 말미암아 버리게 했던 거예요.
이렇게 버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벧엘 아래에 상수리 나무에 그 드라빔과 귀고리들과 특별히
자기에게 모든 생명의 일체가 되어서 공급원이 되고 필요가 되고 의존적인 존재자가 되었던
유모 드보라들을 묻는 것은 그가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가 되는 교제를 나누는 일에 아직도 부족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그가 부족하지 않았다 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했을 테지
그런데 그가 상수리 나무 아래에 벧엘 아래에 그를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은 그 야곱의 체험이
그 모든 야곱 안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모든 전체적인 이들이 그런 엘벧엘 이라는
그 7절 말씀에 야곱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단계 그 과정 그 수준에 높이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뺏어가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 까지도 야곱과 야곱안에 있는 이스라엘을 변화시켜서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단체적인
그 가족들 전체를 만들려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여러분들은 보일까 이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여러분 곁에 가장 소중한 자를 어느 날 취해 갈수도 있어요.
어떤 것일 수도 있어요. 어떤 대상들일 수도 있어요.어떤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취해 갈 때 여러분들은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밖에 없는 피눈물을 또 흘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그런 높은 영적인 수준에
다다르지 않으면 이러한 우리의 삶의 환경의 생애에 우리의 이러한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들을
취해가시고 나를 치장하고 나를 드러내고자 하고 내가 이런 일을 하기에 내가 부끄러운데 내가 이게
창피한데 그래서 미화시키려는 그 귀고리들을 쳐다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귀고리들을 보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추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 귀고리가 무거울 정도로 크게 해서 이거 진짜 돈도 많이 비싸겠지 진짜로 그런 것을
하면서 진짜 참 모습이 아니라 거짓 모습을 보게 하여서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게 하려는 그런 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 드보라를 가지고 있는 이상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단계 수준 과정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그것들을 우리가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다는 거 나의 삶에 하나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자꾸 잃어버리게 하고 빼앗아가고 제거해버리고 사라지게 하는 이런 일들은 여러분들을 할렐루야!
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가게 하려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엘벧엘에 도착하게 하여서
제단을 쌓게 하기 위한 것이 십자가에 달려서 그 드보라 유모와 그 우상들을 장사 지낸바 되게 하여서
여러분들을 친히 온전히 계시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론바굿 비록 우리가 통곡하며 눈물 흘리며 상수리 나무 아래 묻혀진 그 드보라 유모가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그 드보라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사라져버린 하나님을 드보라를죽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라져버렸던 하나님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드보라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은 나타날 수가 없어요.
드보라 유모가 내 곁에서 제공해 주는 한 엘샤다이의 하나님을 내가 체험할 수가 없어요.
엘샤다이 진정한 하나님을 공급하는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 엘벧엘 그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을 내가 만나서 그 계시 가운데 하나가 되는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죽은바 되어
사라져 버려야 사라졌던 하나님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죽어야 사라지는 거예요. 장사 지낸바 돼야 새로운 어떤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그런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바로 전 단계인
벧엘 하나님의 집 아래 묻혀 있습니다.
벧엘 아래 여기 보세요. 벧엘 아래쪽 거기 써 있잖아요.벧엘 아래 쪽이 뭐예요.
엘벧엘이 진정 우리가 구원의 길의 마지막 구원의 결정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 귀고리 우상의 것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가치 여기는 관심갖는하는
것들 더 아끼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 이런 것이 있는한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내가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상수리 나무 아래 묻혀지게 벧엘 아래 묻혀지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완전히 묻게 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그 드보라 까지도
죽게 했을 때 엘벧엘 하나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서 그제서야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다.
“야곱” 더 이상 더 이상입니다. 여기 이 말씀 중요해요 더 이상 이제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제 니가 변화된 자이니까 이스라엘 이라 하라 전체적인 하나님 하나님을 이긴자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리고 11절에 나는 모든 것을 충족해 주는 엘샤다이 하나님이시다
통곡의 그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알론바굿 이라는 그 8절에 그 나무의 이름을 알론바굿 통곡의 나무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소중한 자를 잃어버렸을 때에 정말 고통과 아픔이 있었지만 그 고통과 아픔은
새로운 하나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새로운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력을 주실 수 있는 그분을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통곡에 외형적으로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의 문제로 이렇게 다가오게 한 그러한
상수리 나무 이지만 그것에 매달려서 완전히 죽은 바 되어서 사라지게 하고 장사지낸바 되었을 때
엘벧엘이라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일을 통해서 그렇게 취해 가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드보라는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결케 함을 위해서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 드보라를 취해가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 위하여
두 사람 똑같이 공급해 주는 자가 있어서는 안 돼요 유모라는 뜻이 뭐예요.
공급해 주는 자예요. 엘샤다이 공급해 준다는 뜻이 잖아요.
그런데 둘 다 공급해 주면 우리는 실제적으로 눈 앞에 보여지는 유모 드보라를 더 관심 두게 하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길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유모 드보라를 장사 지낸바 되게
하여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이제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애들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라고 영으로 임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계속적으로 있으셨지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자신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씨름하기 전에도 씨름을 하고 난 후에도 그 숙곳 에서도 세겜에서도 그리고
이 벧엘에 와서도 하나님은 결코 야곱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할렐루야!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드보라 우리의 삶에 필요로 하는 우리를 위해 제공해 주고
우리의 위로가 되고 가장 소중한 존재자인 공급을 해주고 심부름을 해주고 모든 나의 일을 대신해 주는
생명의 일부분과 같은 유모 드보라가 있는한 야곱은 항상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어린아이에서 소년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로 그렇게 성장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삶이 필요로 하는데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손에 붙잡고 있는 그걸 놓아버리기를 싫어하는 그것이 내 삶 속에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그 엘벧엘 이라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버리고 장사지내는 일에 대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기 위해서 야곱이라는 사람을 이스라엘 하나님의 왕자로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놓지 못한 그러한 일들 때문에 엘벧엘 벧엘의 하나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그것을 만나기까지 그런 많은 과정들 많은 단계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벧엘에 가기 전 아랫부분에
있기 때문에 아래 여기 분명히 아래 라고 써 있잖아요.
아직도 벧엘에 가기 전 아랫 부분에 있기 때문에 드보라가 그것을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빼앗아갈 수 밖에 없으셨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서 장성한 자로서 모습을 보여야 되는데
자꾸 아이에서 소년 그 어린아이처럼 유약한 연약한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그 자리에 연약한 자들로서 계속 아기들로 돌봄을 당해서도 안되고 유모라는 뜻이 뭐예요.
아기들로 어려서 자기 할 일을 자기 스스로 못해 나이가 들어서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요
치매가 들어서 못 하는 수도 있고 근데 유모라는 뜻이 뭐예요.
이게 분명히 성경에 리브가의 유모라고 써 있어요.
유모가 뭐예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일을 못해서 유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돌봄을 받아야 될 아이들과 같은 유약한 연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빼앗아 감으로 말미암아 엘벧엘 장성한 자로서 청년으로서 정말 단단한 말씀
이런 교제의 말씀을 통해서 굳건한 음식을 먹게 하기 위해서
"이건 이런 것이니까 너무 연연해 하지 말아라 라는 것을 알려줌으로 말미암아"
세겜에서 벧엘로 세겜에 가기 전에 숙곳 오두막집 초막을 짓는 그러한 초막을 짓고
세겜에 도착했지만 그 성 앞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지만 떠날 생각을 안 하니까 자꾸 연약한
유약한 자로 머무르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벧엘로 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디나 사건을 주시고
디나 사건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주어서 이것이 이런 뜻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디나 사건을
허용하시고 이런 마음의 고통들과 아픔을 통해서 엘벧엘로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하나님
베들레헴 이라는 그 벧엘이라는 베들레헴의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온전한 교통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많은 열매를 맺고 크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 참 교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유모 드보라를 내곁에서 취해 가셨구나 할렐루야!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놀라운 탄성을 지를 때 여러분의 영혼은 살게 될 것입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연민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벧엘에서의 꿈은 하나님의 집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방 세계에 물들어 있던 그 야곱을 밧단아람 에서 20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더러움으로 세속적인
것에 세상적인 것에 물들어 있었겠어요.
그 냄새나고 부정하고 더럽고 정말 추한 그런 모든 것들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우상신들을 버리게
하고 옷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갈아 입게 하고 귀고리들을 없애으로 말미암아 그 변화된 그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의 나무에 장사지낸바 되어서 죽게 하실 것이라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편으로 볼 때 참된 정결케 함이지만 우리의 그 드보라를 죽게 하신 하나님 편으로부터의
참된 정결케 하심입니다.
이 우상들과 이 귀걸이들과 자신들이 목욕을 하고 의복을 빨게 해서 옛 생활을 버리게 하고
이 귀걸이를 없애게 하는 것은 이 야곱 스스로가 한 일이에요.
이거는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빨고 귀고리를 버리는 일은 야곱과
그 야곱에 속한 모든 이스라엘이 한 일이에요.
이건 달라요 스스로 한 일이에요.
그런데 드보라를 죽게 한일은 야곱편에서 이스라엘 편에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일이라니까 그건 우리가 한 일이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할 수 없어요. 이게 달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기 위해서 유모 드보라를
자꾸 자라서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그런 건축하는 일에 그렇게 쓰임을 받아야 되는데
자꾸 그곳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취해가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취해가신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은혜입니다.
엘벧엘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구중 궁궐의 깊숙이 감춰져 있는 그분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드보라를 취해 가시는 거에요. 할렐루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3부 마지막 말씀인데 굉장히 깊이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마 많이 묵상을 하셔야 깨달아 지시리라 여겨 집니다.
많이 되새김 하셔서 어린아이 에서 멈춰있지 마시고 소년으로 청년으로 자꾸 성장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