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비롯하여 미국의 대통령들이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주요 법안과 정책 등에 서명을 하는, 이른바 '결단의 책상'(The Resolute Desk), 원 발음에 가깝게 하면 '레절루트 데스크'가 되겠지만, 이 책상을 급하게 손질을 하기 위해서 옮기고 대신에 임시로 쓰기 위하여 다른 책상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yahoo!news의 Top Stories에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Trump Sends Resolute Desk for Touch-Up After Musk's Son Seemingly Wiped a Booger on it'
'머스크의 아들이 코딱지를 묻힌것 같아서 신속한 손질을 하기 위해 트럼프가 결단의 책상을 보내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슬라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를 신설된 정부효율부의 수장, 그러니까 장관으로 임명을 했지요.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다섯살 된 아들을 트럼프의 백악관 집무실에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지요.
이번에 책상을 옮기게 된 이유가 이 아들이 트럼프가 앉아있는 책상 곁에 서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고 있는 장면이 공개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을 트럼프는 사진에서 보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듯하였지요. 신임하는 일론 머스크의 아들이니 당장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서서 아들의 이 모습을 보지 못한 일론 머스크에게 뭐라고 하지도 못한듯 합니다.
평소에 결백증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가리켜서 '세균 공포증 환자'라고 할 정도로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코딱지인지 혹은 콧물인지를 자기 책상에 뭍혔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급하게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 책상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질하여서 다시 배치하도록 한 것입니다.
touch-up이란 말은, '재빠른 손질'을 뜻한다고 합니다. a booger(부거르)란 '코딱지'를 뜻하지만, '콧물'을 뜻하기고 하지요. 감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주요한 결정을 서명하는 책상에다가 코를 후비고 나서 그 손가락을 갖다 대었으니 아무리 관대한 사람일지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아이가 트럼프의 손자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랬더라도 결백증이 심한 트럼프 대통령은 똑같이 책상을 손질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와 관련한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결정돤 정책이나 법안에 대하여 서명을 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어떨까 싶습니다. 최종 결정권자로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과 그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이, 그 결단이 미국이라는 나라와 세계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의 번영과 행복에 관한 것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꺼이, 그리고 역사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서명을 할 것입니다.
비단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도 이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와 국가의 번영,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고심하고 기도하여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면서 집무실의 책상에서 결단해야 했을 일들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부디 그런 결단의 수고와 고통이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기도 합니다. 국민이 대통령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희생 제물이 되기로 결단하시기까지 예수님은 깊은 고뇌에 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에 시딜리시는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셔야 했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한 인간의 몸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속죄의 피를 흘리시고 인간의 죄값인 죽음을 당하셔야 했기에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그 자리가 바로 겟세마네 기도 자리였던 것입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태복음26:42)
얼마나 결단하기가 어려웠든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태복음26:38)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세번 간절히 기도하신 후에 마침내 결단하셨습니다. 자기 몸을 인류 대속의 희생 제물로 드리기로 최종 결심하신 것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26:46)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누가복음9:51)
인류 구원의 구주로서, 세상 만물을 새롭게 하실 구세주로서 그 길이 그냥 쉽게 가는 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고뇌에 찬 결단, 그리고 멸시와 박해의 고통이 따랐습니다.
고난을 이겨내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침내 승천하셔서 자신을 아주 버리신 줄 알았던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도 결단의 시간이 찾아 올 때가 있지요.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내 마음이 평안을 얻게 되면, 그 때는 결단을 내려야지요.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2)
*참고: germaphobe(저르머포브) - 신조어로서, '세균혐오자', 특히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제거하는데 집착하는, 일종의 결백증을 지닌 사람을 뜻함. 이러한 증상을 나타내는 명사를 가리켜서 germophobia, 형용사는 germophobic라고 함. 네이버 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