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禪詩)감상
★여기에 실린 글은 석지현 스님이 엮으신 선시(禪詩)에서 발췌 했습니다.
옛절(古寺)
중묵종형(仲默宗瑩)
험한 산 소나무 골짜기
다 쓰러져 가는 암자하나
산허리에 걸린 길은 실날 같은데
안개비 속에 지워질 듯 지워 질듯....
봄잠에
맹호연(孟浩然)
봄잠에 문득 깨었네
처처에 새 우는 소리
지난 밤 비바람에
꽃들은 다 져 버렸네
승방(僧房)
왕창령(王昌齡)
종려나무 꽃 뜰에 가득하고
이끼는 한가로운 방으로 드네
피차가 서로 말이 없나니
공중에는 천상의 향이 흐르네
석양(석양)
왕유(王維)
빈 산에 사람 없고
들리느니 말소리뿐
지는 햇살 숲 깊이 들어와
푸른 이끼 위에 비치고 있네.
목련(辛夷)
왕유(王維)
나무 끝에 연꽃
산속에 붉게 피었네
개울 옆 인적 집가에
제 홀로 피었다 지네 피었다 지네.
새 우짖는 물가
왕유(王維)
사람은 한가롭고 계화(桂花)는 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산은 비었네
달 뜨자 산새 놀라서
봄물가에서 우짖고 있네.
산중(山中)
왕유(王維)
개울 맑아 돌이 희게 나왔고
하늘 추워 붉은 잎 드무네
산길에는 원래 비가 없는데
허공 푸른 빛깔이 옷깃 적시네.
정야사(靜夜思)
이태백(李太白)
미인이 주렴을 들어올리네
깊이 앉아 눈썹을 찡그리네
다만 눈물 흔적 보일 분
누굴 원망하는지 알 수 없네.
백로(白鷺란
이태백(李太白)
백로, 가을물에 내리네
외로 날아 서리 내리듯 하네
마음이 한가로워 날아가지 않고
모랫가 홀로 마냥 서 있네.
자견(自遣)
이태백(李太白)
술을 마주하여 어느덧 날이 저물어
꽃잎이 옷 가득 떨어졌네
취기(醉氣)에 일어 계월(溪月)을 밟고 가나니
새들 돌아가고 사람 또한 드무네.
산중문답(山中問答)
이태백(李太白)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 말에
대답 대신 웃는 심정 이리도 넉넉하네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인간 세상 아니어라 별유 천지네.
은자가 사는 곳
배적(裵迪)
해지자 솔바람 일고
돌아오는 길 풀 끝에 이슬 말랐네
구름 그늘은 발자국에 고이고
나뭇가지 풀잎은 옷자락을 알리네.
가을강(江行無題)
전기(錢起)
편한 잠에 조각배는 가볍고
바람이 자 파도는 잔잔하네
갈대 숲 저 언덕은
밤토록 가을소리로 붐비네.
가을밤(秋夜寄邱員外)
위응물(韋應物)
이 가을 밤 그대 생각에
시 한수 읊조리며 마냥 서성이네
빈 산에 솔방울 떨어지나니
그대 응당 잠 못 이루리.
밤비(夜雨)
백거이(白居易)
귀뚜라미 울다 문득 멈추고
남은 등불 깜박이며 졸고 있네
창밖에 밤비,
파초 잎이 먼저 듣고 있네.
밤배에 앉아(舟中夜坐)
백거이(白居易)
비 갠 못가엔 맑은 경치 많고
다리 아래 서늘한 바람이 오네
가을학 한 쌍 배 한 척이여
밤 깊어 달빛 속에 서로 벗하네.
강설(江雪)
유종원(柳宗元)
천산엔 새의 자치 끊기고
만길엔 사람 흔적 멸했네
외로운 배 도롱이 쓴 노인강
한강(寒江)의 눈발 속에 홀로 낚시대를 늘이네.
은자를 찾아서(尋隱者不遇)
무본가도(無本賈島)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네
다만 이 산속에 있긴 하지만
구름 깊어 그 있는 곳 알지 못하네.
풍교야박(楓橋夜泊)
장계(張繼)
달 지자 까마귀 울고 서리는 하늘에 찬데
강풍(江楓)과 고기잡이 불, 선잠에 졸며 바라보네
야밤에 종소리 객선(客船)에 이르네.
가을 새벽(秋曉)
도전(道全)
단풍잎 바람 불고 풀잎 물결 이는데
구름 무거운 하늘가, 기러기 행렬른 낮네
어느 곳 수촌의 사람 이리도 일찍 일어났는가
노 젓는 소리 달을 흔들며 다리 밑을 지나가네.
오솔길은(失題其二)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오솔길은 깊고 먼 곳으로 나 있고
칡덩굴 처마에 안개구름 쌓이네
산사람 저 홀로 대작할 적에
꽃잎이 날아가다 술잔과 마주치네
말을 채찍해 옛 성을 지나가네(無題三)
한산(寒山)
말을 채찍해 옛 성을 지나가다니
허물어진 저 모습 나그네 마음 흔드네
높고 낮은 성벽은 헐었는데
크고 작은 무덤은 누구누군고
외롭게 흔들리는 다북쑥 그림자
길게 우는 무덤 곁 바람 소리.....
슬프다, 어찌 모두 이런 풍경뿐인가
오래 두고 남을 하나 없네.
산의 달(山月)
석옥청공(石屋淸珙)
돌아와서 발을 씻고 잠이 든 채로
달이 옮겨 가는 줄도 미처 알지 못했네
숲속의 새 우짓는 소리에 문득 눈 떠 보니
한 덩이 붉은 해가 솔가지에 걸렸네.
산거(山居)
감산덕청(감山德淸)
봄 깊어 빗발 지나자 꽃잎은 져 날리니
상큼한 그 향기 옷깃에 스미네
한 조각 이 마음 둘 곳이 없어
지팡이에 기대어 저 구름을 바라보네.
자작극(不聞聞)
삼산등래(三山燈來)
소나무 밑에 잠시 이르렀다가
그윽한 개울을 지나가네
헛발 디뎌 엉덩방아를 찧나니
가는 고마다 한 바탕 자작극(自作劇)을 연출하네.
개었다가 비 뿌리다(卽事)
원감충지(圓鑑沖止)
개었다가 비 뿌리다 하늘은 찝찝한데
따뜻한 듯 쌀쌀한 듯 이 봄 또한 심란쿠나
문 닫고 홀로 누워 황혼에 이르나니
먼 절의쇠북 소리 창벽에 와 부딪네.
암자는(閑中偶書)
원감충지(圓鑑沖止)
암자는 천 봉우리 속에 아득히 숨어
골이 깊고 험하여 이름조차 알 수 없네
창을 열면 다가서는 산빛이요
문 닫으면 스며드는 개울소리네
비 오는 날(雨中)
함허듣통(涵虛得通)
무성한 구름잎들이 산집을 지나가네
나뭇가지 절로 울고 새들은 분주하네
눈 뜨자 컴컴한 속에 빗발이 지나가나니
향 사르고 단정히 앉아 저 푸름을 바라보네.
옛 절 지나며(
청허휴정(淸虛休靜)
꽃 지는 옛 절문 깊이 닫혔고
봄 따라온 나그네 돌아갈 줄 모르네
바람은 둥우리의 한(鶴)그림자 흔들고
구름은 좌선하는 옷깃 적시네.
산사를 찾아서(訪山寺)
취미수초(翠微守初)
암자에 이르기 전 땅거미 깔리나니
자던 새 날아 나무숲 깊이 들어가네
황혼은 지금 산길을 적시나니
아득한 저 봉 너머 머언 종소리.
밤을 주으며((拾栗)
허백명조(虛白明照)
허기진 창자에서 우레 소리 들리어
밤알을 주우려고 구름 속에 들었네
석양의 산빛 붉어 비단 같은데
가을비에 젖고 있는 실날 같은 낙엽 소리.
산을나오며(出山)
백곡처능(白谷處能)
걸음걸음 산문을 나오는데
꽃 진 후에 작은 새 우네
안갯골 아득한 길을 놓친 채
일천 봉 빗발 속에 홀로 서 있네.
용정강 지나며(遇吟)
경허서성우(鏡虛惺牛)
용정강 낚시 늘인 노인장에게
고개 돌려 길의 가라지는 곳 묻네
노인장 말이 없고 산 더욱 저무느나
어디서 물소리만 쓸쓸히 들려오나.
옥류정(玉流亭
원광경보(圓光鏡峰)
옛 절에 천추의 달은 비치는데
산의 전자에 나그네 지팡이 머무네
환(幻)과 같고 거울 같나니
옥은 흘러가고 물은 흐르지 않네.
봉산 산거 다섯(鳳山 山居 五)
기타대지(祈陀大智)
향을 피우고 소나무 아래 홀로 앉아 있나니
바람 불어 찬 이슬이 옷깃 적시네
어느 땐 선정에서 깨어나 개울로 내려가서
새벽달을 병에 떠서 가지고 돌아오네.
산중에서(山中偶作)
무문원서(無文元選)
찬 상에 앉아 고금을 탄하나니
푸른 등 마주하여 백발의 시름이 이네
창 앞의 하룻밤 파초에 내린 비역
강호의 무한한 마음 다 적시었네.
잡시 둘(雜詩 二)
대우양관(大愚良寬)
이끼 덮인 오솔길, 꽃은 안개처럼 자욱하고
깊은 산새 소리 베짜는 듯 섬세하게
봄날 기나긴 하루 해가 창에 비치느니한
한 가닥 향연기는 실오라기처럼 곧게 오르네,
옛 절에서(投宿)
대우양관(大愚良寬)
옛 절에 서 하루밤을 묵나니
밤토록 빈 창에 기대어 있네
너무 맑고 차가워 꿈이 맷힐 겨를이 없어
오롯이 앉은 채 새벽종을 기다리네.
이별(送別)
왕유(王維)
말에 내려 술잔을 그대여
묻노니 어디로 가려는가
그대는 말하네
장부는 큰 뜻을 얻지 못하여
저 남산 기슭에 돌아가 묻혀 살려 하네
다만 가노니 더 이상은 묻지 말게
그 곳엔 흰구름만 겹겹 샇일 뿐.
사람을 보내며(送人)
왕건(王建)
물가 정자에서 술잔 거두고
말이 다하자 각각 동과 서로 갈리네
고개 돌리매 서로 보이지 않으니
가을비 속에 수레는 멀어져 가고 있네.
변사형가시다(
진각혜심(眞覺慧諶)
올 때도 나보다 먼저 오더니
갈 때도 나보다 먼저 가네
아득한 길 홀로 떠나가시는가
나 어찌 여기 오래 머물러
이 뜬세상 하룻밤 나그네거니
가고 머문 자취 돌이켜봐도
털끝만큼도 남은 것은 없네
원선자 보내며(送願禪子)
청허휴정(淸虛休靜)
표표히 날아가는 외기러기듯
그대 찬 그림자 가을하늘에 지네
저문 산비에 지팡이 재촉하고
먼 강바람에 삿갓 기우네.
부휴에게(浮休子)
청허휴정(淸虛休靜)
따날 때 말없이 서로 보나니
계수열매 어지러히 지고 있네
소매를 날리며 문득 돌아가니
온 산엔 속절없이 희구름만 이네.
홍진사에게
허정법종(虛靜法宗)
문 앞의 그대를 서로 보나니
지는 꽃잎 쓸지를 않네
봄바람 그 심정 알고
개울가 풀잎을 흩으며 가네.
그대 보내고(用前韻奉呈水使沈公)
초의의순(艸衣意恂)
그대 보내고 고개 돌린 석양의 하늘
마음은 안개비에 아득히 젖네
오늘 아침 안개비 따라 봄마저 가고
빈 가지 쓸쓸히 꽃잎 지며 드는 잠.
한 연못의 연잎으로(翠微山居)
충막(沖邈)
한 연못의 연잎으로 옷은 이네 넉넉하고
저 산의 송홧가루로 식량은 충분하네
세인들에게 나 있는 곳 알려진다면
이 풀집 옮겨 더 깊이 들어가리라.
날 저물어(夜
석범승(釋梵崇)
날 저물어 지팡이 재촉하여 돌아오는 길
솔바람은 길을 따라 길게 들려오네
물 깊어 소리 끊겼다 이어지고
산은 어두워 검푸른 빛이네
쇠북 소리 바윗가에 은은하고
이슬 내려 풀내음 짙네
밤은 이리도 깊었는가
빈 회랑(回廊)에는 달빛 하얗게 젖어 있네.
절창(絶句)
원감충지(圓鑑沖止)
숲이 무성하여 새소리 매끄럽고
골이 깊어 사람 발길 끊겼네
내 꿈은 폭포에 떨어져 돌아오고
내 눈은 날아가는 저 구름가에서 끊어지네.
발을 걷으며(閑中雜영
원감충지(圓鑑沖止)
발을 걷으며 성큼 산빛이 다가오고
홈대의 물소리 높낮이로 사람 드문데
두견이 홀로 제 이름을 부르네.
금강 나루터(錦江津吟)
원감충지(圓鑑沖止)
석양빛 산 그림자 모랫벌에 드리울 제
떨어진 삿갓, 지팡이 짚고 나루터에 이르렀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산 빛은 아득하네
이 가을빛 쓸쓸함을 어이 견디리.
준상인에게, 일곱(贈峻上人二十首中其七)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팔만 봉우리에 달은 기울고
새벽기운 안개에 섞여 뜰에 내리네
어젯밤 비에 등나무 꽃은 다 시들어 가고
한 줄기 봄바람에 토란잎은 고개 드네
솔방울 창을 때리고 구름은 집에 들어오고
이끼는 섬돌에 파랗고 대나무는 돌계단을 뚫네
이 세상의 나이로는 몇 살이나 되었는가
빈 숲에는 산새만이 속절없이 울고 있네.
준상인에게 열둘(贈俊上人二十首中其十二)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밤의 난간 외로운 탑에 달은 배회하고
인적 없는 봉창을 바람이 여네
나비의 꿈속에서 달은 더욱 높아지네
밥 그릇 하나 물병 하나로 무심하게 늙어가며
만수천산 떠돌다가 뜻을 얻고 돌아오네
속인들은 이런 경지 알지 못하니
봄바람은 파랗게 이끼를 키우네
우상인에게(送午上人游方)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등나무 지팡이 하나로
바람 따라 어디로 가는가
첩첩산 잎 지는 나무숲이요
푸른 이끼에 짚신이 다 낡았네
떡갈나무 잎은 산길에 가득하고
온갖 새소리 들려오네
해가 지면 흰구름 속 문빗장 두드리니
산의 중턱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네.
산집(題知上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달은 밝아 그림 같은 산집의 밤
홀로 앉아 내 마음 가을물 같네
누가 내 노래에 화답하는가
물소리 길게 솔바람에 섞이네.
나그네((山行卽事)
매얼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 고치는 곳
작은 냇가 봄물에 가마우지 목욕하네
푸른 산도 다한 곳 돌아갈 길은 멀어
지팡이 어깨에 메고 하염없이 서 있네
풀집(草屋)
청허휴정(淸虛休靜)
풀집은 세 군데 벽이 없고
늙은 중은 대침상에서 조네
푸른 산은 반쯤 젖어 있는데
성근 빗발이 석양을 지나가네.
동명관에서(존
사명유정(四溟惟政)
잎바람 소리에 자던 학은 놀라운
달 높은 물가 나무 들까마귀 흩어지네
잠 못 드는 밤,저 멀리 은하는 기우는데
홀로 뜰을 서성이며 국화를 매만지네.
비 듣는 밤(雨夜作)
사명유정(四溟惟政)
기나긴 가을 밤 비가 오나니
섬돌 위에 쓸쓸히 밤비 듣는 그 소리
삼십 년 나그네의 꿈이여
향로에는 연기 사라지고 등불 하나 깜박이네.
나그네(
백은 혜학(白隱 慧鶴)
낙엽은 땅에 가득 쌓이고
찬 기러기 울음소리 허공을 가르네
이 가을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되리
고향에 가서(
청허휴정(淸虛休靜)
하나(-)
삼십 년 지나 고향을 찾아오니
사람은 없고 집은 무너지고 마을은 황폐했네
청산은 말이 없고 봄 하늘 저물어 가나니
멀리서 아득히 두견새 우네.
둘(二)
한 무리의 계집아이들 창 틈으로 날 엿보고
백발이 된 이웃노인 내 이름을 묻네
어릴 적 이름을 대고 서로 잡고 우나니
하늘은 바다 같은데 달은 이미 삼경이네.
젓대 소리 들으며
부휴선수(浮休善修)
찬 바람은 밤 시간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구슬픈 젓대 소리
나그네 시름을 일깨우는 다시 고향생각을 아득히 이끌어 오네
고향의 산에는 깊은 시름만 간절하고
눈 위의 달빛에 머언 정이 열리네
홀로 앉아 까닭 없이 수심에 젖나니
부는 저 바람에 매화는 지고 있네.
섣달 그믐날 밤에(
사명유정(四溟惟政)
정처 없이 떠도는 송운노인이여
그 모습 그 뜻과는 전혀 다르네
이 한 해도 오늘 밤에 다하는네
만리 나그네길 어느 날에 돌아가리
옷깃은 오랑캐땅의 비에 젖고
시름은 옛 절의 사립문에 닫히었네
향을 사르고 앉아 잠 못 드노니
새벽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네.
가고 감에 흔적 없어
향엄지한(香嚴智閑)
가고 감에 흔적 없어
올 때 또한 그러하네
그대 만일 묻는다면
해해 한 번 웃겠노라.
탄생 (無題)
대혜종고(大慧宗고
이 노인네 태어나서부터 수선을 떨어
마치 미친놈처럼 일곱 걸음 걸었네
수많은 선남 선녀 눈멀게 하고는
두 눈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여러 해 동안 돌말이(無題(
야보도천(冶父道川)
여러 해 동안 돌말이 빛을 토하자
쇠소가 울면서 강으로 들어가네
허공의 고함 소리여 자취마저 없나니
어느 사이 몸을 숨겨 북두에 들었는가.
대그림자가
야보도천(冶父道川)
대그림자가 뜰을 쓸고 있네
그러나 먼지 하나 일지 않네
달이 물밑을 뚫고 들어갔네
그런나 수면에는 흔적 하나 없네.
산집 고요한 밤
야보도천(冶父道川)
산집 고요한 밤 홀로 앉았네
누리 한없이 적막하여라
무슨 일로 저 바람은 잠든 숲 흔들어서
한 소리 찬 기러기는 울며 가는가.
천길 낚싯줄을
야보도천(冶父道川)
천길 낚시줄을 내리네
한 물결이 흔들리자 일만 물결 뒤따르네
밤은 깊고 물은 차가워 고기는 물지 않나니
배에 가득 허공만 싣고 달빛 속에 돌아가네.
이 한 구 절
월봉책헌(月峯策憲)
내 가슴에 있는 이 한 구절
그대에게 읊어 주려 해도 불가능하네
그것이 도대체 무슨 글귀냐고 묻는다면
바람에 처마끝 풍경이 운다고 말하리.
월송대사에게
천경해원(天鏡海源)
달빛 들어 솔바람 희고
솔잎은 달빛에 물들어 차갑네
그대에게 지혜의 검(劍)을 주노니
돌아가 달빛과 소나무 사이에 누워 지내라.
산비 그윽한 곳
용담조관(龍潭조冠
산비 그윽이 내리는 곳
새소리 지저귀는 때네
마음물결 일고 지는 것 돌아보나니
노송의 가지에 바람이 움직이네.
관성에게
보월거사 정관(普月居士 正觀)
있는 듯 없는 듯 유무가 아니니
언어도 진리도 아무것도 소용없네
안개 걷힌 가을물, 저 끝없는 곳에
물결은 잠드는데 배 한 척 가네.
진종일
남포소명(南浦紹明)
진종일 쓸쓸하니 찾아오는 사람 없네
섬돌에는 이끼요 풀만 키로 자랐네
이렇듯 냉정하게 문을 닫아걸었거늘
천성인들 어찌 엿볼 수 있으리.
작은 연못
남포소명(南浦紹明)
개울물 그 맑기 남빛 색인데
산 그늘과 물빛이 내 눈에 차갑네
여기에 이르러 친히 볼 수 있다면
바람 한 점 없는 곳에 파도는 치리.
자화상
영명연수(永明延壽)
‘ 영명의 뜻 ’을 알고 싶거든
문 앞의 저 호수를 보라
해가 뜨면 반짝이고
바람 불면 물결이 이네.
노는 밭
야옹동(野翁同)
밭이랑은 일찍이 갈아 본 적 없고
종자라곤 뿌려 본 일조차 없는 이 밭뙈기
그러나 지금 가을걷이 한창이니
절반은 청풍이요 절반은 구름이네.
텅 빈 마음 속에
백운경한(白雲景閑)
텅 빈 마음속에 연민의 정 일으키고
모양 없는 빛 속에서 형체가 보임이여
자유로운 이 경지 알고 싶은가
꽃 지고 새 우는 저 봄 소식이네.
이 천지간에
장주 나한(장州羅漢)
이 천지간에 일없는 길손이요
사람 가운데 돌중이 되었네
그대들 비웃거나 말거나
내 생애는 이런대로 당당하다네.
봄에는 꽃 피고
작자미상
봄에는 꽃 피고, 가을에는 달이요
여름에는 맑은 바람 겨울에는 눈이 있네
그대 마음 이와 같이 넉넉하다면]
이야말로 인간 세상 좋은 시절이네.
옳거니 옳거니
작자미상
옳거니, 옳거니,
이누리 종횡무진 발길대로 가다가
틀렸거니, 틀렸거니
지팡이 둘러매고 길 바람에 춤추네.
밤 뱃전에서
청허휴정(淸虛休靜)
바다는 날뛰어 은산이 찢어지고
바람은 머물어 푸른 옥이 흐르네
뱃전은 천상의 집과 같나니
앉아서 달과 별을 거두네.
계우법사에게
소요태능(逍遙太能)
불 속에 핀 붉은 연꽃 헌옷 위에 내리는데
나무하는 저 아이 광주리 가득 담아 돌아가네
소리 없는 이 옛 가락 뉘 감히 따라 부를 건가
저 개울가 돌 계집이 실 웃음을 웃고 있네.
집집마다
소요태능(消遙太能)
집집마다 문밖은 장안으로 가는 길이요
곳곳마다 굴 속에는 사자가 앉아 있네
거울마저 깨 버려서 아무것도 없으니
새소리 두서너 음이 꽃 가지에 오르네.
문수의 얼굴
소요태능(消遙太能)
흰구름 끊긴 곳, 푸른 산이요
해가 지는 하늘가 새는 홀로 돌아오네
세월 밖의 그대 모습 언제나 뵈오니
목련꽃 피는 날에 물은 흐르네.
배은망덕
소요태능(消遙太能)
달빛물결 절벽에 부딪고
솔바람 맑은 소리 보내오네
여기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배은망덕이다 배은망덕이고말고
수류
무경지수(無竟子秀)
불조의 자취를 모두 없애 버리고
종횡무진 검을 휘둘러 죽이고 살리네
흐름 따라 묘를 얻으며 자유롭게 가나니
백로는 천 점의 눈송이로 밭에 내리네.
원명선사에게
한암중원(漢岩重遠)
망망한 큰 바다 물거품이요
적적한 산중의 떠도는 구름이네
이것이 내 집의 무진보(無盡寶)이니
오늘 남김없이 그대에게 넘겨주노라.
기풍은
몽창소석(夢窓疎石)
가풍은 동서남북 걸림 없으니
술집과 시장바닥에 법의 깃발 세우네
성인도 필요 없고 범부도 관심 없어
두 눈썹 짙게 다만 늙어갈 따름이네.
나무돌이 설법하고
기타대지(祈陀大智)
나무돌이 설법하고 사람이 듣나니
바람이 우우 찬 숲을 흔들어 낙엽은 뜰에 가득하네
담벽에 사람은 없지만 거기 귀가 있나니
등롱과 노주가 또한 귓속말을 주고받네
그림 속의 다리
기타대지(祈陀大智)
양쪽 언덕엔 푸른 안개요 산빛 예 있어
달빛 흐르는 강은 물소리도 사라졌네
붓끝에서 생각 이전의 길이 점 찍혀 나오나니
무지개다리 위에 사람하나 가고 있네.
봉산 산거 셋
기타대지(祈陀大智)
명예와 이익의 사슬에 묶이지 않고
안개와 수석 속에 내 자취를 파묻네
다리 부러진 무쇠솥에 산나물 삶으면서
고인의 가풍을 따라 산에 묻혀 살고 있네.
청계화상에게
절해중진(絶海中津)
세상만사 조석변이니
내 일찍 이 같음을 깨달았네
청산에 높이 누웠나니 띠풀집 처마 아래
저 흰구름조차 이 마음 엿보기를 허락지 않네.
산 속과 시장바닥
절해중진(絶海中津)
아아 미친 구름(구름)이
미친 바람 타고 있는 줄 누가 알리
아침에는 산 속이요 저녁에는 시장이네
내가 만일 봉(棒)을 휘두르고 할(할)을 쓴다면
덕산과 임제는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지 못하리.
진짜 스승
일휴종순(一休宗純
입으로는 지리를 지껄여대는 이 속임수여
권력자 앞에서는 연신 굽신거리네
이 막된 세상에서 진짜 스승은
금란가사를 입고 앉아 있는 음방의 미인들이네.
음수(淫水)
일휴종순(一休宗純)
꿈에 취한 꽃동산이 눈먼 미인이여
베개 위의 매화꽃, 갓 터지는 수줍음이여
입안 가득 맑은 향은 그대의 애액(愛液)이니
황혼과 달빛 속에 번져가는 신음소리.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정수혜단(正受慧端)
덧없어라 죽음이여, 간 이는 다시 오지 않나니
연연한 슬품 속에 오네
아아, 그 누가 이 애하(愛河)의 깊이를 알 수 있으리
그 모습 그릴수록 정은 정을 불러 끝없는 정 솟아나네.
야삼경 달 지자
단하자순(丹霞字淳)
야삼경 달 지자 앞뒷산이 밝은데
엣길은 아득히 이끼 자국 덮였네
황금의 자물쇠 흔들어도 드러나지 않나니
푸른 파도 마음의 달 속에 토끼 한 마리 다리네.
달 속에 옥도끼
단하자순(丹霞子淳)
달 속에 옥도끼 잉태하는 밤이요
해 속에서 금까마귀 알을 품는 아침이라
시커먼 곤륜산이 눈 위로 가니
몸짓마다 유리그릇 깨지는 소리.
추운 달
단하자순(丹霞子淳)
추운 달 외로이 먼 봉우리에 걸리면
넓고넓은 저 호수에 달빛 덮이네
고기잡이 노랫소리 해오라기 깨웠으나
갈꽃 차고 날아간 그 흔적 없네.
세존승좌
천동정각(天童正覺)
일단의 이 진풍경을 똑똑히 보라
은밀한 조화의 할미가 북을 놀려서
옛 비단결에 봄의 모습 짜 넣는네
저 봄바람이 이미 누설했음을 어이 하리.
산향기 어지러이
삽계 ㅇ 익(삽溪ㅇ益)
산향기 어지러이 길에 가득 날리네
이름 없는 꽃들이 풀숲에 흩어지나니
모를레라 봄바람 머언 이 뜻은
꾀꼬리 저 아니면 뉘에게 울게 하리.
서재에서
왕유(王維)
옛 기와에 젖는 가랑비여
깊은 집 낮은데도 더디 열리네
앉아서 이끼빛을 보고 있나니
그 파란 기운이 옷에 오르네.
먼 산 종소리
전기(錢起)
바람은 산 밖으로 종소리를 보내고
운하(雲霞)는 옅은 물을 건너네
종소리 다한 곳을 알고 싶은가
새의 모습 사라진 곳, 저 하늘 끝이네.
우물
전기(錢起)
복사 꽃 우물에 비쳐
샘 밑은 온통 붉은빛이네
뉘 알리 ,이 우물 밑으로
무릉도원 가는 길 있는 줄을.
물가에 나가
위응물(韋應物)
물가에 나가 그윽이 풀을 보나니
나뭇가지 깊은 곳 꾀꼬리 우네
봄 물결 비를 띄워 저녁 무렵이면 급하나니
나루터엔 사람 없고 배만 홀로 매여 있네.
봉정사
장호(張祜)
달빛 밝기 물 같은 산마루의 절,
우러러 하늘 보며 돌 위를 가네
한밤, 깊은 화랑엔 말소리 멎고
솔가지 움직이며 학(鶴)의 소리 들려오네.
만사를 물어도
첨본(詹本)
만사를 물어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이 산중에서 그저 한잔 술과 벗하네
바위를 쓴 다음 솔바람에 앉으니
녹음이 두건과 옷깃에 가득하네.
어떤 사람이
한산(寒山)
어떤 사람이 한산의 길을 묻네
그러나 한산에는 길이 없나니
여름에도 얼음은 녹지 않고
해는 떠올라도 안개만 자욱하네
나 같으면 어떻게고 갈 수 있지만
그대 마음 내 마음 같지 않은걸
만일 그대 마음 내 마음과 같다면
어느덧 그 산속에 이르리라.
나는 어젯밤 꿈에
한산(寒山)
나는 어젯밤 꿈에 집에 갔었네
아내는 베틀에서 베를 짜고 있었네
북을 멈출 때는 무슨 생각 있는 듯
북을 올릴 때는 맥이 없어 보였네
내가 부르매 돌어보긴 했으나
멍히 앉아서 나를 알아보지 못했네
아마 서로 나누인 지 오래 됐기 때문이지
귀밑 머리털도 옛 빛이 아니었네.
꽃을 보며
지현후각(知玄後覺)
꽃 피니 가지 가득 붉은 색이요
꽃 지니 가지마다 빈 허공이네
꽃 한 송이 가지 끝에 남아 있나니
내일이면 바람 따라 어디론지 가리라.
승방
왕창령(王昌령
종려나무 꽃 가득하고
이끼는 한가로운 방으로 드네
피차가 서로 말이 없나니
공중에는 천상의 향이 흐르네.
대숲
왕유(王維_
대숲에 홀로 앉아
거문고 뜯고 길게 소리 내어 읊네
깊은 숲 사람들 알지 못하니
발근 달이 와 서로 비추고 있네.
원정
이백(李白)
미인이 주렴을 들어올리네
깊이 앉아 눈썹을 찡그리네
다만 눈물 흔적 보일 뿐
누굴 원망하는지 알 수 없네.
영철상인 보내며
유장경(劉長卿)
어두워 가는 죽림사
머언 종소리 저무네
어깨 멘 삿갓 석양빛 물드나니
청산에 홀로 아득히 돌아가네.
쓸쓸한 모래톱에
유장경(劉長卿)
쓸쓸한 모래톱에 저녁연기 걷히나니
가을 강에서 달을 보네
모래톱에 한 사람 있어
달빛 속에 외로이 물을 건너네
봄의 옛집
잠삼(岑參)
양원(梁園)의 해질 무렵 갈가마귀 어지러이 나니
눈에 잡히는 건 쓸쓸한 두세 채의 집뿐
정원의 나무 집주인 떠난 줄 미처 모르고
봄이 오자 예절의 꽃을 활짝 피웠네.
은자에게
무본가도(無本賈島)
이미 백각봉으로 돌아가 숨었나니
산은 멀리 늦은 하늘을 보네
석실(石室)에 마음은 고요하고
언 연못엔 달 그림자 남았네
가는 구름 조각되어 사라지고
고목에서 마른 가지 떨어지네
한밤에 누가 풍경 소리 듣는가
서봉(西峰)의 절정은 춥네.
왕자가 젓대를 불자
허혼(許渾)
왕자가 젓대를 불자 대(臺)에 가듣하니
옥저 소리 구르는 곳, 학(鶴)이 배회하네
옥저소리 멎자 학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산 아래 벽도(碧挑)나무엔 봄이 절로 열리네.
망호루
소식(蘇軾)
먹구름 산을 덮기 직전
흰 빗발 구슬 뱃전에 쏟아지네
구슬은 산산조각 바람에 흩어지고
강물은 마치 하늘 같네.
이정권님께 감사 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詩人의 마을
선시(禪詩)감상.
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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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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