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그 때에 Date 2013.12.15
Text Ish 11,6-10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 성탄절은 빛의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시기 훨씬 전부터 하늘에서는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있어서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곳곳에다 성탄트리 등을 달아놓았습니다. 이 등을 볼 때마다 ‘이 빛이 첫 성탄절 날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처럼 나를 주님 계신 곳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많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으며 또한 빛으로 왔다고 하셨습니다.(요8,12 9,5 12,35-3 6) 빛은 당연히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빛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다는 것도 그 빛을 비추어주시려 오셨음이 분명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시간에 이 거룩한 주님의 빛이 어디를 비추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2. 오늘 읽은 성경구절은 “그때에”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여기 “그때에”란 이 땅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실 때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가 오시면 그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시는 메시야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6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예언서 곳곳에 메시야에 대하여 남겼습니다. 2,2-4에서는 메시야 시대의 성격에 대하여, 4,26에서는 ‘여호와의 싹’, 7,13-14에서는 동정녀탄생, 9,1-2에서는 어둠의 땅에 비추이는 빛, 9,6-7에서는 ‘한 아기’, 그리고 오늘 읽은 11장에서는 이새의 가지 혹은 뿌리에서 돋은 ‘한 싹’, 25,6-9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 26,19에서는 모든 인생들의 부활, 32,1-2에서는 장차 오실 왕의 통치, 35,5-6에서는 메시야의 기적 베풂, 42,1-2 이방인 전도와 구원, 53장 전체에서는 고난 받는 메시야, 60장에서는 세상의 빛, 62,2과 65,15에서는 메시야의 백성들이 새 이름으로 불릴 것, 등등의 예언들을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야의 탄생과정, 메시야의 성격, 메시야의 사역, 죽음과 부활을 통한 메시야 사역의 완성 등 모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구들은 메시야의 사역 활동에 대한 예언들입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오늘 설교 시간에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메시야의 사역, 즉 빛으로 오신 주님께서 그 빛을 어디에 비추어주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라고 하였고, 실제로 주님께서 오시어서 당신의 빛을 비추어주신 곳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오실 ‘그때’는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그 때를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때’는 메시야 시대를 말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오늘과 내일까지 모두를 포함합니다. 지금 말씀대로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이 만민의 기치로 세워져 있습니다. 열방, 곧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분이 기치로 세워지는 곳마다 영화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있으며 가정의 주님으로 모신 곳에는 “너와 네 집”(행16,31)이 구원 받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2013년 성탄절에도 여전히 비추고 있습니다.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적극적으로 그 빛에 마음의 창, 가정의 창을 열어제끼기만 하면 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망설이지도 마시고 빛으로 나아오십시오.
오늘 성탄절을 맞는 우리 성도들의 삶에도 이 거룩한 빛의 잔치가 일어나고 영화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3. 다음, 그 빛은 이리와 표범과 어린 사자들에게 비추어서 어린 양, 어린 염소, 송아지처럼 순하게 될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리와 표범과 어린 사자는 모두 육식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들을 먹잇감으로 삼고 사는 맹수들입니다. 성경에서 이 이리와 표범과 사자들은 모두 죄악에 오염되어 지각을 상실하고 부도덕해진 타락한 인간들을 비유하는 짐승들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옛날부터 이런 맹수 같고 짐승 같은 인간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런 짐승 표를 받은 사람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끔찍한 자연재해와 질병,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죄 등 무서운 일이 더욱 극악해져 간다고 하였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려 하기보다는 점점 그 악독함이 심해질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18)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19)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20)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9,18-21)
이들은 아무리 끔직한 재앙이 내리고 무서운 일을 당해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도 마음 문을 딱 닫아걸고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타진요 사건’이라고 있었지요. 그 ‘타진요’ 사람들을 보세요. 타블로가 졸업한 게 맞다고 그 학교에서 확인서를 보내줬는데도 자기들은 믿을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고 생 어거지를 부리다가 결국 감방신세를 지게 됐지요. 주님에 대하여, 신앙에 대하여서도 세상은 그런 태도를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 표를 받아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 중에도 있고 부자들 중에도 있으며, 높은 사람들 중에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있다고 했습니다.(계13,16)
1994년 추석 전 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지존파 6명의 사형집행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라며 세상을 증오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두목이었던 김기환이 죽기 전 보내온 편지가 공개됐었습니다.
“집사님 생각하면 제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인생을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죄에 대한 대가로 죽지만 세상에서는 죽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날 대신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을 생각하니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눈물만 흐릅니다... 이제 저는 회개하고 세례 받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깨달아서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하지만 봉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빛은 이처럼 짐승 같은 사람들에게도 비추고 있습니다. 지존파 강도나 타진요 회원들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짐승 표를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짐승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성탄의 빛은 비추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 모두가 이 추리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 얼마든지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그 빛이 그 심령에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나아오십시오.
4. 한 가지 더, 주님의 빛은 어둠의 세상에도 비추이지만,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는 곳에도 비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 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주로 만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선포하신 가버나움 회당에서의 첫 설교 내용은 가난한 자와 포로 된 자, 눈 먼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와 치유와 부요를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첫 설교 후,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자들, 불치병과 고질병에 신음하던 이들, 가족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있던 이들을 만나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니(말4,2) 죽었던 야이로의 딸,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들이 살아났습니다. 스스로를 전염병을 옮기는 세균이라 여기며 외딴 곳에서 병고와 외로움과 절망을 친구삼아 살던 문둥병자들이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똑같은 세상에 살지만 짐승의 표, 짐승의 사상, 짐승외 죄악, 짐승의 욕심, 짐승의 방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어린 양의 피에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하고(계7,14), 배에는 쓰지만 입에서는 꿀처럼 단 말씀을 받아먹으며(계10,10),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 짐승들과 싸워 이기는 자들(계12,11), 어린 양에게 속하여 영적 정절을 지키고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 따라가며(계14,4),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14,12)도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아서 달라진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찾아와 빛을 비추어주시는 주님을 거절하거나 반대로 받아들인 것 때문에 인생길이 달라졌습니다. 고통과 외로움과 허무와 파멸의 길을 걷다가 주님의 빛을 받아 새 삶을 살게 된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오른편에서 사형을 당한 강도도 있고, 남의 돈을 갈취하던 세리장 삭개오도 있으며, 그냥 돈 벌어 가족들과 한 세상 잘 살면 그만이라고 여기던 보통 사람 어부 베드로도 있습니다.
너무 힘겨운 문제에 부딪혀 정말 바늘구멍만큼의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절망 상태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빛은 비추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르지만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인생길에서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괴로움에 시달리는 분들에게도 주님은 은혜의 빛을 비추어주십니다. 어떻게 비춰주시냐고요?
어떤 교인이 사기를 당했습니다. 손해도 손해지만 그렇게 멍청하게 사기 당했다는 것이 더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들리는 소문에 그 사기꾼이 다른 사람에게 사기 친 이야기를 하며 자기를 천하의 멍청이라고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꼭지가 확 열릴 정도여서, 머릿속으로는 그 사기꾼의 팔을 비틀고 눈을 뽑고 온갖 할 수 있는 고문을 다 하면서 화끈하게 복수를 하고, 하나님께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이게 뭐냐며 불손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하나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최고의 복수극 시나리오가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 제게 사기 친 그 나쁜 인간 저보다 더 착한 놈 되게 해주세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 시나리오가 떠오르니 속이 시원해지더랍니다.
여러분, 이 성탄절에 여러분도 어떤 모양으로든 꼭 이 치료하는 빛을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