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 117 cm, 국립 미술관, 폴란드 크라코프)
앞서 올린 비제 르브렁의 자화상과 비교하면 근대 화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훨씬 강해졌음을 볼 수 있다.
이십오 년 전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오르세인지 어디선지 이 그림을 보고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던 생각이 난다.
침착하고 사려 깊은 눈빛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난 여름 드레스덴 알베르티눔에 갔더니 이 그림이 걸려 있어서 와락 껴안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안나 빌린스카 보다노비츠(1857–1893)는 폴란드인으로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 오늘날에는 우크라이나에 속한 즐라토폴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1882년 뮌헨을 거쳐 파리로 갔고 쥘리앙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보자르는 아직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새로 생긴 사립 미술학교는 여성에게도 기회를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1892년 파리에서 만난 폴란드 인 의사 보다노비츠와 결혼하고 바르샤바로 돌아갔다. 미술학교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활동을 펼치려 하던 차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서른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죽는 바람에 이 자화상이 대표작이 되었다. 19세기 말 자연주의 기법에 충실한 그림이다. 거의 모노톤으로 색상 처리를 했고 앞치마를 걸친, 일하는 복장으로 자신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