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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강의] 강사 김삼배 - 인간 불멸 프로젝트
편하게 잘 쉬셨습니까? 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셨습니까?
그냥 평상시 어제가 오늘처럼 똑같이 그냥 별 생각 없이 눈을 뜨시고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그러신 분도 계실 테고요. 근데 조금만 좀 생각을 해보면 이 하루가 참 놀라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하루를 우리가 값을 치르고 맞이한 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거저 그냥 선물로 주어진 한 날입니다. 이 귀한 한 날을 시작하면서 눈을 뜨고 또 호흡을 하고 활동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내게 주신 선물이 이 하루가 선물이라는 사실을 조금만 생각한다면 감사할 조건이 참 많고 또 삶이 더 행복하고 새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침 시간에는 주로 조금 우리가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될 조금은 무게감 있는 내용을 연속으로 준비를 좀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은 조금 가볍게 우리의 일상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삶의 아주 작은 요소들을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으로 말씀을 좀 준비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제목으로 좀 말씀을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런 제목을 좀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인간 불멸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 용어를 아마 들어보신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 냉동인간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로버트 에틴거라고 하는 미국의 물리학자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인체를 냉동해서 보존하는 보존술입니다.
이분은 인체 보존술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분인데 2차 대전에 참전해서 전투 중에 아주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절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삶이 어떻겠습니까?
참 힘들었겠지요. 전쟁에 참여를 했고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서 몸에 다리를 절단을 한 그런 형편이니까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살다가 뭘 봤냐면 개구리의 정자를 냉동을 시켜가지고 가수면 상태 잠자는 상태로 유지한 뒤에 그 생채 생명을 다시 소생시키는 실험을 목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아주 깊은 나름대로 그 깊은 어떤 깨달음을 이렇게 얻고 마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사람도 질병에 걸렸을 때에 냉동을 시켜서 보존을 할 수 있다면 의술이 점점 발달한 뒤에 그 사람을 다시 깨워서 치료할 수 없을까 이 생각을 이분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걸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을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사람을 급속 냉동을 시켜서 의술이 발달한 뒤에 그 사람을 깨워가지고 다시 수술을 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그 일을 시도를 합니다.
물리학자니까 실험 정신이 얼마나 했겠어요? 그래서 이분이 그 일을 시작해서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 아이들 학교에서 실험을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이게 미국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실업을 한 겁니다.
금붕어가 보이지
저 금붕어를 드라이아이스에 급속 냉동을 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했겠어요? 냉동을 했으니까 죽을 거 같잖아요.
그런데 그 드라이아이스 된 완전히 얼린 금붕어를 다시 꺼내가지고 물에다가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보니까 어떻습니까? 다시 살아나지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가 여러분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인류를 어떻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갈망은 사실 이 생명 연장에 대한 건 인간의 본능적인 갈망이지요.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 방법을 방법이 가능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걸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도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습니다.
50년 된 냉동 인간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여러분 여기 미국의 알코 생명재단이라고 하는 재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알코아 생명재단에는 실제로 냉동된 사람들이 150명 이상이 냉동된 채로 잠들어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기 미국의 그 심리학자인 제임스 베드포드라고 하는 사람이 최초의 냉동 인간입니다.
지금도 잠들어 있습니다. 1967년에 이 사람이 간암 말기였습니다.
근데 실제로 그 당시에 20만 달러 1967년에 냉동 보관비입니다.
그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억 3천만 원 지금은 2억 3천만 원이 별로 그렇게 큰 돈이 아니지.
근데 67년도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1967년도에 2억 3천만 달러를 냉동 보관비로 지불하고 의술이 발달하면 다시 깨워서 치료하기 위하여 실제로 냉동을 시켰습니다.
이 알코생명재단이 1972년에 정식으로 등록을 합니다.
그리고 회원 수가 얼마냐 하면 천 명이 넘습니다. 여기는 아주 유명한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 가운데에 질병으로 더 이상 삶을 연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냉동된 채 있습니다.
여러분
일단 유엔 미래포럼은 이 우리에게 수명 연장 영생하는 이런 시대가 오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보고서에 저희는 수명 연장을 예측을 하고 있고 또 영생할 수도 있다라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엔 미래포럼이라고 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위원회가 있는데요. 이건 1996년부터 시행된 포럼입니다.
전 세계의 각 분야의 석학들 한 3천여 명이 모여서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그런 위원회입니다.
책도 나와 있습니다. 유엔 미래보고서라고 지금은 더 발달된 더 나은 이제 보고서가 있는데 2050 유엔 미래 보고서에 보면 놀라운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이 2011년 2월 20일자 타임즈에 2045년이 되면 이제 임모탈이다 더 이어 맨 비카스 임모탈 이렇게 제목이 나왔죠.
이제 2045년 되면 사람들이 영생할 것이다. 영생은 영생 프로그램이 있죠.
인간 불멸 프로젝트 해가지고 2045년이 되면 달라이라마하고 드미트리 이츠코프가 인간을 아바타로 만들어서 또는 인간의 브레인 지금 브레인을 만들고 있어요.
인간의 브레인을 만들어요. 인간의 미니 브레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미 모든 브레인 전체를 다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아주 조그만 부분의 브레인만 지금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이천삼십년 이천사십년이 되면 인간의 브레인을 만들어서 어디에 집어넣어요?
전혀 상하지 않는 로밭이나 그렇죠 이런 곳에 집어넣어서 나의 생각을 5천 년 만 년 동안 그러니까 내 브레인에 내 생각을 보존하는 게 영생입니다.
내 몸은 인간의 몸은 500년밖에 아무리 갈아 끼워 넣어도 못 쓴다 그래요.
이 레이커즈와일이 구글 의사입니다. 음성인식 기기를 발명했고 이 사람이 싱귤레리티 대학을 만들었는데 이 사람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그렇죠 영생할 수 있다라는 이런 주장들을 했고요.
이 분은 한국의 유엔 미래포럼 대표인 박영숙 씨입니다.
이 인터뷰한 내용들을 쭉 보면 지금 얘기한 것처럼 인간 불멸 프로젝트 다시 말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안이 뭐냐 그거를 연구해서 그걸 실현하려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영생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여러분 제가 올해 1월 1일날 저희 학회에 소속된 여러 목회자들과 함께 특별한 신년회를 가졌습니다.
그 신년회에 한 유명 국내 강사를 교수를 초청을 했는데 거기에 참여했는데 이분이 뭐라고 하냐면요.
앞으로 사람은 최소한 200년을 삽니다. 최소한 150년 이상 200년을 사니 그 삶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여러 연구 보고서나 통계를 가지고 쭉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람이 생각하기에 참 불가능한 것 같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도전합니다.
인간 불멸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불멸 프로젝트는 지금 이 시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이 됐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보면 제일 첫 부분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조금 뒤에 가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실상 인간 영생 프로젝트는요.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을 때에 죽지 않고 불멸하도록,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영생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인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이 과연 어땠을까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고 희망인데, 그 일이 사실상
사람이 고안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고안을 이미 하셨던 일입니다.
여기 사람이 처음 창조됐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제가 좀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그의 창조주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을 때 신장이 컸으며 완전히 균형이 잡혀 있었다.
그의 용모는 건강한 혈색을 띄어 불그스레하였으며, 생기와 기쁨의 빛으로 빛났다.
아담의 키는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키보다 훨씬 컸다.
하와는 아담보다 조금 키가 작았으나 그의 자태는 고상하였으며 아름다움으로 충만하였다.
이 무고한 부부는 아무런 인조 의복을 입지 않았으며, 그들은 천사들처럼 빛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이 빛의 두루마귀가 계속 그들을 둘렀다.
사람은 원래 정말 아름답게 정말 멋지게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키가 아담의 키가 한 3M는 됐을 것이다.
그렇게 추정합니다. 몸무게는 1톤 이상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균형 잡힌 아주 멋진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1982년도에 제가 그 대학이 82학번인데요.
대학에 이제 입학 원서를 서울에 내고 남산에 남산 타워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타워를 이렇게 원형으로 이렇게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제 앞쪽에 한 두세 사람 앞쪽에 미국 백인 부부가 이렇게 줄을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백인 부부를 보는데 제 눈이 밝아졌습니다.
왜냐하면 키가 저희보다 얼굴이 목 하나가 더 있는 거예요.
얼굴 하나가 더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자는 그 남자보다 조금 작아요.
근데 덩치가 얼마나 좋은지 아주 참 멋지게 잘 생기고 균형이 잡힌 그런 부부였습니다.
근데 그 백인 부부를 보는데 저도 키가 작은 편이 아니거든요.
보통 이게 서면 제가 조금 더 머리가 올라가는 편인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균형이 잘 잡혔는지 보고 제가 마음속으로 탄복을 했어요.
이야 백인들 정말 멋지구나
정말 잘생겼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진짜 사람이 멋있구나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여기 있는 말씀처럼 아담이 키가 지금 사람보다 훨씬 크고 덩치가 있고 잘 균형 잡히고 그 하와가 약간 작은데 그 아름다운 모습 건강미가 흐르고 아주 그 생기가 있고 기쁨의 빛이 있고 그다음에 균형지고 옷을 입은 것이야 이런 옷이 아니라 천사들처럼 환한 빛이 나는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리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니까 얼마나 생기발랄하고 혈색이나 안색이나 이 모든 게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저는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사람 자체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근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근데 시간이 좀 지나서 제가 이제 회갑이 지났는데 지나가면서 제일 아름다운 게 뭐냐고 물으면 꽃도 아름답지.
근데 정말 아름다운 건 사람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참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없다 그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원히 죽지 않도록 그렇게 처음에 만드셨어요.
근데 이 인간 불멸 프로젝트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동산을 만드시고 영원히 살게 해주신 다음에 수많은 아름다운 과일들을 많이 주셨는데, 그 동산의 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라고 하는 나무를 두셨어요.
그리고 모든 걸 다 자유롭게 하신 다음에 딱 한 가지를 정해놓으셨어요.
그게 뭐냐 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아라.
그걸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다 그랬어요. 근데 사단이 뱀을 통해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어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걸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렇게 유혹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단의 유혹하는 말을 듣고 두 말 중에 어느 쪽을 선택을 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그 사단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에 그도 먹은지라.
사실상 그 나무는 독이 있거나 뭐 그런 과일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를 시험하는 하나의 시금석이었어요.
영생을 하도록 만드시고 조건은 영생할 수 있는 조건은 딱 한 가지를 두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만드신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조건, 그 조건 하나를 가지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인간 영생 프로젝트를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그 계획이 파괴됐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게 된 겁니다.
여기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자가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내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내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을 다스릴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책임을 여러 가지 말씀하셨는데 그중에 여자분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을 때 왜 해산의 고통을 당하게 됐는지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래는 자녀를 낳을 때 이렇게 고통스럽게 낳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그다음에 남자들이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조금 다르지만 전통적인 우리 그 우리의 어떤 문화적인 것으로 보면 성경적으로도 그렇고요.
남자가 가정을 꾸리면 가정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인 아담에게는 네가 내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남자에게는 수고하는
수고의 일을 책임을 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당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둘 다에게 어떤 결과가 주어졌냐면 이런 결과가 주어졌어요.
내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일상에서 늘 쓰면서도 별 의식하지 못하고 쓰는 용어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에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뭐라고 하지요? 암흑의 어른이 뭐 했다고 그래요?
돌아가셨다 그러지 그런데 여러분 돌아가셨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사실은 사람의 죽음을 왜 돌아가셨다고 표현할까요?
그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많이 씁니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돌아갔다는 말이 뭡니까? 이쪽으로 갔다가 갔던 길로 다시 돌아온다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왜 사람이 죽었는데 돌아가셨다고 할까요?
그게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거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에요.
여기 뭐라고 그랬습니까? 내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내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러분 사람이 어디서 나왔냐면 흙에서 왔어요. 그래서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그게 죽음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만드신 영생 프로젝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깨어진 결과로 사람에게 주어진 사람이 져야 될 책임입니다.
그게 죽음이에요. 다른 성경 7절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 죄가 뭡니까? 하나님 우리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예배됨이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그 길,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라고 하는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영생을 꿈꾸는 데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 불멸 프로젝트를 유엔에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짜 영생을 꿈꾸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이 유럽 쪽에 여행을 가시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있어요.
이태리 가면 이태리의 외곽 지역에 가면 거기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 있는데요.
그중에 여기 산 칼리스토스라고 하는 그 지역에 가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여행객들이 들리는 여행 장소가 있는데 거기가 카타콤베라고 하는 곳입니다.
카타콤베는 우리 말하면 쉽게 말하면 무덤이에요.
무덤 우리는 봉분을 하고 산에다가 무덤을 하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은 어디에 대냐 하면 외곽 지역에 땅 속에 땅을 굴을 파가지고 그 땅 속에다가 안장을 했어요.
근데 그쪽은 주로 토질이 석회석입니다.
파기는 아주 쉬워요. 파서 일단 공기하고 접촉이 되면 시멘트 성분이 있기 때문에 다 굳어집니다.
굳어지면 시멘트처럼 아주 견고해져요. 그런데 AD 1세기 2세 3세기 요 AD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로마가 네로가 정신이 좀 이상돼가지고 로마에다 불을 질렀죠.
그리고 그 불지른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으려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를 시켜가지고 누명을 씌어버렸어요.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 그래가지고 핍박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그 핍박을 피해서 이 그리스도인들이 어디로 갔냐면 무덤 지하 무덤으로 들어갔어요.
로마인들은 무덤을 아주 신성시 여깁니다. 그래서 무덤을 함부로 이렇게 파괴하지 못해요.
그래서 1세기에서 4세기 동안에 그 그리스도인들이 지하 무덤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 지하가 말입니다.
수백 km입니다.
아주 그냥 거미줄처럼 다 이렇게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거기 피에 안에서 들어가면 군사들이 따라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어버려갖고 거기서 죽고 말아요.
그 정도로 엄청난 그런 지하 무덤이 지금도 있어요.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일부만 허용돼요. 제가 여러 해 전에 그곳을 갔는데 그때는 많은 부분을 이렇게 개방했어요.
근데 며칠 전에 제가 한 번 더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보니까 대부분 문을 다 막았어요.
그 맞고 거기 일부만 아주 지극히 일부만 공개하는데 이유가 뭐냐 하면 관광객들이 거기 들어갔다가 찾지 못해갖고 나오지 못해 갖고 죽은 사람들이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 막아놨어요. 그 내부가 어떠냐 하면 이렇습니다.
이렇게 아주 좁고 옆에는 이렇게 파 있어요. 옆에가 이게 파여진 곳이 다 무덤이에요.
시신을 거기다 안치하는 겁니다. 그중에 이런 무덤도 있어요.
여기는 가족 무덤입니다. 이렇게
그리고 아주 넓은 장소가 있어요. 넓은 장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근데 여기 들어가 보면 신기하게요. 아주 신선합니다.
건조합니다. 습하지 않아요 저 옆에 보이는 층층이 다 저게 무덤들이에요.
여러분 그 한 부분에 가면 이게 뭔지 아세요? 사람의 유골입니다.
수백 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안에서 은신처 피난처를 찾았어요.
그럼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거기서 나서 거기서 자랐습니다.
거기서 죽었습니다. 근데 그 햇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짧은 그저 불과 한 20년 30년 이렇게 살고 죽은 사람들로 불이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제가 여러 달 전에 갔을 때는 저 사람이 누구냐면 성체칠리라는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성악가였어요.
제가 갔을 때는 실제 미라가 있었습니다. 머리털이 그대로 있었어요.
근데 얼마 며칠 전에 가보니까 이렇게 그 비석으로 이렇게 이렇게 상을 만들어서 바꿔놨더라고요.
이 당시에 성악가가 그리스도인이 됐어요. 그런데 신앙을 포기하라고 하니까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래가지고 이 여인을 끓는 물에 집어넣었어요. 근데 죽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서 순교를 했습니다.
근데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갖다가 뒀는데 신기하게 썩지 않은 거예요.
진짜 가서 제가 봤을 때 미라처럼 그렇게 됐는데 머리카락까지 다 있어요.
썩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사람을 기념해서 성에 성체 진리라고 그래 가지고 이렇게 거기다 이렇게 해놨던 것을 직접 봤습니다.
이들이 왜 거기까지 들어갔을까요? 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시에 로마의 아주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 아주 많이 배운 학자들, 지식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핍박하면 핍박할수록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더 하나님을 믿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두 부류의 차이점이 뭘까요? 공통점은 두 쪽 다 냉동 해가지고 질병을 치료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영생하려고 하는 죽지 않으려고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이쪽에 이 정말 삶의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그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서 햇볕도 없는 곳에서 신앙을 끝까지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모두가 다 양쪽 편이 다 영생을 꿈꾸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추구하는 목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한쪽은 인간적인 과학을 의지해서 영원히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한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삶을 마칠지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소망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제가 생명의 공식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살아 있지. 근데 어떻게 산 사람이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영이 된지라.
이거를 수학이 아닌 산수로 풀면 흙 더하기 생기하면 생명이 되는 겁니다.
사람은 사실 흙에서 왔습니다. 근데 과학이 그걸 증명합니다.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인체의 구성, 원소하고 흙을 구성하고 있는 흙의 원소하고가 똑같습니다.
전혀 다르지 않아요. 같은 동질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게 흙과 사람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 흙을 이루고 있는 원소를 가지고 사람을 만드신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생기. 다시 말하면 생명의 기운 여러분 기가 있다고 그러잖아요.
기를 받아야 된다고 그러잖아요. 그 생명의 기운을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호흡하고 움직이며 사는 겁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공식이 있다면 사망의 공식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단순합니다. 아까 읽었던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 내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내가 취함을 입었으니라.
너는 뭐라고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럼 간단해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산 사람 생기를 가지고 산 생명 산 사람에게서 생기를 싹 거둬가면 그다음에 흙으로 흙만 남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흙에다가 장사를 지내는 겁니다. 지금은 화장도 많이 하지만 화장과 매장의 차이점은 시간의 차이점밖에 없어요.
매장도 시간이 흐르면 원서 보는 데서 흙이 되고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는 게 신비로운 것 같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그래서 생명과 사망의 공식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해줍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편에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와 호흡을 취하신, 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여러분 중국의 진시황제가 블루초를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지요.
근데 결국 어떻게 했습니까? 블루초는 없습니다.
뭐만 있을 뿐입니까?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사람은 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 그것이 무엇일까요? 인간이 냉동시켜가지고 사람을 건강하게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생명 연장을 성경이 가르칠까요?
성경은 그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에 사람은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 분명한 해법을 하나님은 제시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을까요? 여기 이렇게 기록합니다.
고린도서 15장에 보면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희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남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여러분 성경은 죽음 이후에 그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 부활할 수 있다.
다시는 죽지 않을, 다시는 병들지 않을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
이를 귀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리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라.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며 삽니다. 왜요?
어젯밤에 우리는 죽은 것처럼 잠을 잤어요. 죽음은 잠자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아유 피곤해 어제 얼마나 피곤했는지 근데 그 피곤이 싹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어떻게 했어요?
눈을 뜨니까 새가 지적이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너무 이 좋은 귀한 하루를 선물로 또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부활의 경험입니다. 성경이 그걸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제가 시간을 맞춰야 될 것 같은데요. 불멸의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마치면서 제가 영상 하나를 좀 보여드리고 마무리하려고 그럽니다.
1991년 어느 날 아침 박효진 장로를 비롯한 서울구치소 신후 회원들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사형장으로 모여들었다.
사형수 도영이를 데리고 나오는 일과 예배 드리는 일, 특히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는 시신 치우는 일을 신우회에서 맡기로 뜻을 모았던 것이다.
할렐루야 평온하고 당당한 외침을 따라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사형장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떨거나 두려워하거나 아니면은 최소한도 긴장하거나 이것이 인간의 가장 본래적인 모습이라고 저는 그렇게 알아봤는데 바로 등 뒤에 밧줄을 놓고 앉아 있는 사형수의 모습이 절대적인 평안의 모습입니다.
제가 사형장에서 그 현장을 바라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요.
법무부 장관님의 명령을 따라 오늘 윤도영 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서울구치소 소장의 온도가 있은 다음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인정심이 이어지고, 절차에 따라 이제껏 지은 죄를 읽어 나가려던 순간, 도영이가 갑자기 두 손을 치켜들었다.
지금 소장님께서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었던 죄였습니다.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 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또 제 귀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받은 영혼, 깨끗한 그대로 아버지 나라 갈 수 있도록 제발 그 더러운 죄를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우 회원들은 도영 가까이에 모여 먼저 임종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자리에서 서류를 챙기던 소장은 도영의 안구 기증서를 발견하고 직접 작성한 것인지를 묻자 도영은 마음이 바뀌었다고, 이제는 눈뿐만 아니라 장기와 몸을 모두 내놓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제 마지막 유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모두가 다 제가 믿는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유일한 그의 유언입니다.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그렇게 죽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서 나 몰래 기도를 해왔다.
여러분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게 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영혼이라고 하는 생명에 대한 시각이 달라집니다.
오늘 이 영생을 꿈꾸는 꿈꾸되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기초해서 영생을 꿈꾸고 우리보다 먼저 이 귀한 소망 가운데 살았던 역사의 수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도 믿음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사시기를 바라고 그 귀한 생명을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연장시켜주셨음을 감사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또 하루를 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에게 귀한 생명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주신 이 영원한 영생의 약속을 저희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함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 한 날과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모든 날들 동안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드립니다. 저희를 받아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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