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8
11월 11일, 2017
Niagara
Glen to the Whirlpool
Duration
of Hike: 4.5 hrs, Pace: 3.5km/ hr.
이불
속으로부터 탈출 (Step Out of Your Comfort Zone)
장 계 순
어젯밤에는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갔다.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은 아침이다. 미리 등록만
하지 않았다면 그냥 잠옷 바람으로 집안에서 뒹굴기에 십상인 날씨다. 서두르는 것을 싫어하고, 늑장부리기 잘하는 나를 재촉해서 길을 나섰다. 오늘은 Islington 지하철 부근에서 대기중인 스쿨버스에 올랐다. 내 옆에 앉은
여자 이름은 루시아, 40년 전 폴란드에서 이민 온 이혼녀다. 목소리가
또랑또랑하질 못해서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들어야 했다. 주 정부 환경청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환경보호를 위한 미팅에 참여하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단다. 달린 자녀도 없는 데다
남편까지 없으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좋겠다고 했더니, 어딜 가나 이혼녀나 과부는 부부 팀에 끼질
못하고, 참석하는 모임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전공이 Ecology라서, 산성비(acid rain)에 대해 연구팀에서 일했단다.
토론토 부르스트레일 클럽은 ‘go green’ 즉, 녹색환경운동이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다. 웹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종이 사용을 줄여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나무를 아끼고, 프린팅이나
우표 비용 절감 등,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것을 취지로 한다. 실제로 A 4용지 1만 장을 아끼면 30년생
원목 한 그루를 살릴 수 있다니, 웹페이지야 말로 이젠 불가피한 세상이 됐다. 하이킹 모든 일정을 웹사이트에서 확인, 등록하고, Hike a Thon 역시 그곳을 통해 기부금을 낸다. 은행이나 정부기관, 사기업 등, 모든 문화 단체도 웹페이지를 통해 절차를 밟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보면, 까막눈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경쟁력에서 그만큼 뒤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잠깐 졸다 보니 어느새 나이아가라 파크웨이로 접어들었다. 제 몸 가지에 붙은 잎사귀들을 낙엽으로 뚝뚝 날려 보내고 홀가분하게 서 있는 나목이 줄지어 서 있다. 어떤 구간은 낙엽 위에 살짝 언 얼음 때문에 갈 수 없어서, 네 시간
걷기로 했던 것이 세 시간으로 줄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흘러내리는 강에는 물고기가 많은지 낚시도구를
둘러멘 젊은 낚시꾼들이 우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잡은 물고기를 먹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놔준다고 한다. 450M 년 전에는 우리가 걷는 이 트레일이 바닷물 속에 있었단다. 그래서
화석도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그 주위에는, 큰 바위들이 이끼를 머금은 채 덩그렇게 드러나 있다. 장장 750킬로미터에 달하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코스 중에 하나인 이곳은, 열대 바닷속에 잠겨있었다던 그 자리에 36종의 파충류와 양서류, 53종의 포유동물, 90종의 물고기, 350종의 조류가 깃들어 살고 있다, 그 중에서 109종이 멸종위기라고 한다. 부르스트레일 클럽에서 2003년
8만 불을 기증한 것으로부터 시작, 지금까지 Hike A
Thon으로 계속 모금 중이다. 환경오염을 막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운동 즉,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쓰인다. 이 Hike A Thon에는 리더들이 참여해서, 각자 정해진 거리에 따라 우리가 자유롭게 기부금을 내는 형식이다.
길고도 긴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른 동굴과 절벽도 곳곳에 있어 절경일 뿐 아니라, 휘몰아치는 두 강이 만나는 Whirlpool에서 바라보는 광경도 장관이다. 오늘은 현충일(Remembrance Day),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을 던져서 나라를 위해, 또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병사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쓰러진 나뭇가지에 캐나다 국기를 걸어놓고, 어떤 군인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 그의 영혼은 어디쯤에서 머물고 있는 걸까?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산티아고 카미노 하이킹
리더를 만났다. 지적으로 보이는 키 큰 중년부인이 내 옆에 서 있길래, 하이킹에
자주 나오냐고 물었다. 토론토 시내에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공원을 찾아 매주 한 번씩 걷는다고 말하는
그녀는 ‘카미노 패밀리’ 웹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한테 산티아고 다녀온 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알아보던 중이었다. 산티아고를 가거나, 갔다 온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도와주는
그룹인데, “ Learn to Trust”가 슬로건이란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자꾸 무너져가는
요즘 세상, 내가 간절히 바라고 믿고 싶은 말이 바로 이 구절이다. 결코 신뢰를 저버리지 말아야 희망도
생긴다는 뜻이 아닐까?.
그녀는 4년 전에 다녀온 뒤로, 산티아고에
중독이 되어 세 번이나 연거푸 찾아갔다고 한다. 150여 명의 멤버가 있고, 매주 30여 명이 걸으면서 환경보호 캠페인도 겸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단다. 나는 뛸 듯이 기뻐서 그녀에게 웹사이트와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우리는
서로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다. 그녀는 은퇴했지만, 70대 남편은 정신과 의사로, 아직도 할 일이 많단다. 주로 감옥에서 출소한 범죄자나 옥살이를 하는 죄수들의 정신 상태를 돌보는 일을 하고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다닐 때마다 느낀다. 이제 산티아고 가는 길은 반쯤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점심시간을 함께 했는데, 그때 겪은 나의 부끄러운 행위를 고백해야겠다. 하이킹 하루 전에는
괜히 마음이 부산하다. 가게에서 돌아오면 반찬도 해놓아야 하고, 설거지도
대충 해놓고 다음 날 싸 갈 점심도 만들어야 한다. 달걀에다 시금치와 빨간 양파를 섞어서 scramble을 만들어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마땅한 통을
찾지 못해서 비닐 랩에 싸서 넣고, 사과도 비닐봉지에다 넣었다. 감기
걸린 며느리를 위해 만들었던 치킨 수프는 보온 통에 부어서 가지고 갔다. 아름다운 강물과 계곡을 바라보며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는데 산티아고 하이킹 리더와 그녀의 친구가 도시락통에서 점심을 꺼내는 것이다. 비닐 랩에다 싸온 내 베이글 샌드위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녀들 앞에서 돌연 민망해졌다. 매일 듣다시피 한 환경보호,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비닐
사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아무도 나를 지적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모범을 보여준 그 행동 때문에 얼굴을 붉히면서, “ 아, 비닐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고야 말았다. 하이킹도 좋지만, 쓰레기 발생을 줄이지 못한 내가 그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 앞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혼자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자연보호를 인식하지 않으면 무식한 현대인이 될 수밖에 없음을 뼛속까지 절감했다.
편한 집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이렇게 많은 도전과 마주친다.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이나, 내 옆자리에 앉았던 환경운동가나, 자연
보호에 앞장서는 산티아고 하이킹 리더나, 모두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더 건강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고, 벼랑으로
몰린 지구환경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숲을 찾으면 우리의
메마른 정서가 도로 살아날 수 있는 것처럼, 후세대까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연을 물려주려면, 우리가 깨어 있어 밖으로 나와야 한단 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불현듯
쓰레기 분리수거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아파트 10층에 사는 아들 내외가, 음식찌꺼기를 따로 버리기 위해 일층까지
내려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나 한 사람 편하기 위해서 쓰레기를 아무렇게 버린 것 조차, 아직도 이불 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아닌가 싶어서 깊이 반성하는 하루다.
첫댓글 계수님의 <걷기-8>을 읽으면서
아직도 이불 속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 끝마침 글 옆에서
많은 생각을하게 해 주신 계수님께
큰 박수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pinetree 님
저 역시 못 나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한 발짝 앞으로 가려면, 그만큼 따르는 댓가도 치뤄야 하더군요.
부족한 저에게 용기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