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법신 보살(法身菩薩)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보살이라 하는가?
어째서 부처님을 예경하고 설법을 듣는가?
만일 부처님과 다르다면 어째서 한량없고 청정한 지혜가 있다고 하는가?
[답] 이 보살이 비록 법신의 경지에 이르러 노/병/사가 없으나 부처님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치 열나흘 날의 달을 보면 사람들은 혹은 꽉 찼는지 혹은 아직 꽉 차지 않았는지 의심을 내는 것과 같다.
보살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능히 부처가 되어 법을 설할 수 있으나 아직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달이 보름을 꽉 채워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과도 같다.
또한 한량없는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로 한량이 있는데 헤아릴 수가 없어서 그것을 한량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바닷물이나 항하의 모래 등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한량이 없다고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한량없음이 되지 못한다. 보살의 한량없는 청정지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하늘이나 인간 및 성문/벽지불들이 헤아리지 못하므로 한량없는 지혜라 하고,
보살이 무생도(無生道)를 얻을 때 모든 번뇌[結使]를 끊는 까닭에 청정한 지혜를 얻게 된다.
[문] 만일 이때에 이미 모든 번뇌를 끊었다면 성불할 때에는 다시 무엇을 끊는가?
[답] 이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가 될 때 나머지 번뇌를 끝까지 다 제거하여 실로 청정함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이 육신을 버리고 법신을 얻을 때 모든 번뇌를 끊고 청정해지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한 등잔으로도 능히 어두움을 제거하여 일을 할 수는 있으나
다시 큰 등잔이 있으면 더욱더 밝은 것과 같다.
부처님과 보살이 모든 번뇌를 끊는 것도 이와 같아서
보살들이 비록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었다고는 하나
부처님이 끊은 데다 견주면 아직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량없는 청정지혜를 얻는 까닭에 모든 법에서 뜻에 걸림이 없다’고 말한다.
- 대지도론/용수보살 지음/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
대지도론 85. 법신보살 & 부처님의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