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km (서해 : 845.6km, 남해 : 817.7km, 동해 677.1km 누리 287.7km 합계 : 2,628.1km)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 지경리 - 문혜리 - 군탄리 - 내대리 - 동송읍 장흥리 - 오덕리)
봄이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꽃을 시샘한 기온이 철원에 도착하니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
생일을 맞이한 맏이 친구에게 따뜻한 황금을 선물하고 장정은 시작됐다.
토성리를 잠시 지나서 지경리로 들어섰다.
평화의 길이 아직 개통되지 않아서 남쪽으로 내려가 걷는 길은
주변에 농로도 없고 간신히 43번 도로 갓길로 걸어간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차들이 또 한 번 바람을 일으켜 얼굴을 또 때린다.
좌우 스트레이트 연타를 맞는 것같이 눈도 뜨기가 어렵다.
그리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계속되는 고갯길은 얼굴을 앞으로 내밀게 해서
바람 주먹을 피할 수도 없게 한다.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가는 수밖에.
문혜리로 들어와서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바람도 잦아지고
햇볕도 따뜻해지며 점점 상황이 좋아진다.
큰길을 피해서 옛날 길로 들어서며 좌우 연타는 사라지고 편안해진다.
잠시 내려가서 문혜사거리에서 문혜리 마을 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이제 계속 앞으로 나가면 고석정 방향이다.
군탄리와 내대리의 경계가 463번 도로 좌우로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아
살짝 군탄리로 들어섰다가 몇 걸음 가지 않아 바로 내대리로 들어선다.
바로 승일공원이 나온다.
승일공원을 지나면 1999년 새로 만들어진 빨간색의 한탄대교와
1958년 준공된 승일교가 나란히 한탄강을 건너고 있다.
승일교는 1948년 8월 그 당시 이 지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던
북한이 착공하였는데 전쟁이 나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전쟁 후 주한미국과 대한민국 국군이 1958년 12월 3일에 완공한 다리이다.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이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모양이 다르다.
지금은 차량은 새로 지은 한탄대교로 통행을 하고 사람만 지나가는 다리가 되었다.
또 국가등록 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한탄강이 아찔하게 보인다. 무척이나 높은 다리이다.
승일교의 이름의 유래는 한국전쟁 중 큰 공적을 세우고 북한에 포로로 잡혀간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설에는 북한이 착공하고 남한이 완공했다고
이승만(李承晩)의 承과 김일성(金日成)의 日을 따서 承日橋라고도 한다고 한다.
승일교를 건너 한탄강을 건너 동송읍 장흥리로 들어선다.
바로 임꺽정의 본거지였던 고석정 관광지가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석정부터 민통선이 있어서 걸어서는 갈 수 없던 곳이
민통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걸어서 한탄강을 구경할 수가 있게 되었다.
장정은 한탄강을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절벽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한탄강은 참 아름답다.
최근 설치된 물윗교(부교)가 보이는데 미리 알아보고 저리로 걸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탄강을 따라 계속해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서
안에서 보는 재미는 없지만 밖에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송대소에 도착하고 한탄강 은하수교를 만난다.
일반적인 현수교가 두 개의 주탑에 줄을 대칭으로 걸어서 만들지만
이곳은 하나의 주탑에 줄을 걸어 조금 불안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 날렵해 보인다.
바닥 밑으로 한탄강이 다 보여 아찔아찔하다.
다리 넘어 전망대가 보이지만 우리 장정은 직진이다.
강을 따라 계속 오르니 직탕폭포가 나온다.
날이 풀려 물이 시원하게 콸콸 넘쳐흐르고 있다.
아침에는 겨울이었는데 이제는 봄이다.
직탕폭포를 지나 오덕리로 들어서면서
한탄강과는 서서히 이별을 하고 오덕리 벌판을 지나 서쪽으로 간다.
벌판이 끝나갈 무렵 커다란 학저수지를 만난다.
저수지를 따라 얼마간 더 지나 오늘의 장정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