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洪氏는
學士公이 東來하시기 이전에는 東無洪姓이라 하여 동방에는 洪氏가 없다 하였다.
우리 南陽洪氏의 淵源은
서기643년(高句麗 寶藏王 2년, 唐 貞觀 17년, 癸卯)에 學士公(諱 天河)이
당나라로부터 東來하심으로 비롯된 것이니
우리나라 洪姓의 源流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洪姓에 대한 원류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洪氏는 그 뿌리를 달리하는 4개 系統의 洪氏가 있으니
共工氏가 共으로 다시 洪氏(기원전 2250년경)로 改姓한 燉煌洪氏가 있고
둘째는 宏氏가 唐 明皇(서기 712~762)의 諱자를 피해 洪氏로 改姓한 豫章洪氏가 있고
셋째는 弘氏가 唐 德宗(779~805 孝敬)의 諱자(唐高宗太子 李弘)를 피해 洪氏로 改姓한 常州 (毗陵비릉)洪氏가 있고
넷째는 翁處厚가 洪氏로 改姓한 六桂堂 洪氏가 있다.
(宋 초기 960년경) 이상 4계통의 洪氏 중 첫번째에 기록한
共工씨를 연원으로하는 洪氏 이외의 洪氏들은 모두 學士公이 東來하신 이후에 발생한 洪氏임으로
우리 南陽洪氏와는 무관한 洪氏이며 오직 共工氏를 연원으로 하는 燉煌洪氏만이 南陽洪氏의 源流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元和姓纂>에 의하면
共工氏之後 本姓共氏 因避仇改爲洪氏 라고 하였다.
洪氏의 뿌리인 共工氏의 연원은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제도에 金. 水. 木. 火. 土 五行을 각각 분담하여 다스리는 관리가 있었으니
水는 水力과 治水를 木은 木工業을 火는 火力을 土는 國土와 土木工業을 金은 金屬工業을 담당하는 제도이었다.
五行의 관리 중에 治水를 담당하는 관리를 共工氏라 하였으니 官名으로 姓을 삼은 것이다.
중국의 元華姓纂 萬姓統譜 氏族博考 등에 의하면 共工以水名官이라 하였고
또한 共工氏子爲后土 相傳上古有 金木水火土 五行之官 共工氏之子 句尤能平水土 爲土正后土之官 이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洪氏의 뿌리가 된 共工氏는
중국의 三皇시대부터 존재하여 "여와"씨와 경쟁하기도 하였고
전욱 "高陽"씨와 皇帝의 후계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하는 등 共工은 諸侯國중에 가장 강국이었다.
특히 堯임금 때
堯임금의 후계자로 추천되었던 共工씨가 비록 후계자로 선택은 되지 못하고
대신 禹舜이 선택되어 帝位에 오르긴 하였으나 舜임금과 비견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舜임금은 제위에 오른 뒤
政敵으로부터 제위에 위협을 느끼고 4대정적을 流放할때 共工氏를 幽州(河北省)로 放流하였다.
共工씨가 유주로 방류된 후에
工자 하나를 버리고 共씨로 하였다가 뒤에 避仇를 위해 共字에 삼수변을 더해 洪씨로 하였고
또 일설에는 共씨는 共工씨의 후예로서 共工씨는 水德으로 벼슬을 하여
世襲한 덕을 기려 共字에 水邊을 붙여 洪씨로 하였다는 共氏 水德之緖 遂爲洪氏 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