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보상국의 불운한 백화공주
한편 마음여린 성승 삼장으니 동굴속에서
재자들을 생각하며 슬피 울고 있었다.
팔계야! 너는 어느마을에 신심이 두터운 분을 만나서
식사나 하는지 모르겠구나.
오정아! 너는 또 어디로 가서 팔계를 찾고 있느냐?
만나기나 했느냐? 너희들은 내가 요마한테 잡혀서
이런 막심한 재난을 당하는 걸 알기나 하느냐?
아아 어느때에야 너희들을 만나
이 큰 재난을 벗어나서 영산으로 가겠느냐?
삼장이 이렇게 슬피 울고 있는데 동굴 안쪽에서 한 부인이 나와서
삼장이 묶여있는 말뚝을 부여잡았다.
"스님은 어디서 오신 분이십니까?
어째서 이런 곳에 묶여 있나요?"
삼장이 울면서 퍼뜩보니 여인은 서른살쯤 되어 보였다.
"나는 죽을 운명이기에 이집에 온 모양이요..
먹고 싶으면 잡아 먹으면 그만일것을 새삼 묻는 것은 무엇이요/"
"전 사람을 잡아 먹는 마귀가 아니에요.
저희집은 여기서 서쪽으로 삼백여리 떨어져있어요.
그곳에 보상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전 그곳 국왕의 셋째 딸이랍니다.
어릴때는 백화수라고 불렀지요.
십삼년전의 팔월 한가위날이었어요.
달 구경을 하고 있는데 저 요마가
한줄기 광풍을 타고 화서 절 채왔지요.
그 뒤로 요마와 부부가 되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지만
]이 사실을 서울에 알릴 길이 없고
부모가 그리워도 만날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디서 오시다가 저놈에게 잡히셨어요?"
"소승은 서천을 경을 가지러 가는 사람이지만
발 가는대로 걷다가 그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요마는 내 제자 두 사람까지 잡아서 함께
쪄 먹겠다고 으르대고 있는 중입니다.
"호호. 그러세요. 스님! 염려 하실 것 없어요.
스님이 경을 가지러 가는 분이시라면 도와 드릴 수가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그 보상국이 여기서 서쪽으로
스님 가시는 길에 있어요.
저희 편지를 부모님께 전해 주시겠다면 전 그놈에게 말해서
스님을 놓아 드리도록 하겠어요."
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틀림없이 전해 드리겠습니다."
왕녀는 곧 안으로 들어가더니 편지 한 통을 써서 봉한다음
도로 나와 삼장을 묶어놓은 줄을 풀고 편지를 건내 주었다.
삼장은 편지를 손에 들고 말했다.
"목숨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을 벗어나 보상국을 지나가게 되면
틀림없이 국왕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되었으니
양친께서 제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양친이 제 말을 믿지 않으시더라도
부디 소승을 나무라지 말아 주십시오."
"그건 염려마세요.
부왕께서는 사내자식이 없고 딸이 셋 있을 뿐이예요.
이 편지를 보시면 반드시 이 딸을 만나려 하실 거예요."
삼장이 편지를 소매속에 넣고 왕녀에게 인사를 한뒤
바깥으로 나가려니까 왕녀가 이를 말렸다.
"정문으로 나가지 못해요. 지금 크고 작은 요정들이 문밖에서
기를 흔들고 고함을 지르고 북과 징을 치며
대왕이 당신 제자들과 싸우는 걸 돕고 있어요.
그러니 뒷문으로 나가세요.
만약 대왕에게 잡히면 앞뒤 가리지 않고
스님을 죽일 거예요. 제가 대왕한데 가서 잘 말하겠어요.
만일 대왕이 스님을 놓아 준다면
스님의 제자들은 대왕이 지시하는 대로 스님을 찾아 갈테니
함께 떠나도록 하세요."
왕녀는 삼장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뒷문으로 나갔지만
혼자는 갈 수없어 문밖에 있는 풀 숲속에 숨었다.
왕녀는 한 꾀를 생각하고 급히 정문 밖으로 나갓다.
크고 작은 요괴가 좌우로 쫙 갈라지는데
잇달아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팔계와 오정이 황포와 공중에서 싸우고 있는 한 고비였다.
"황포랑!"
왕녀는 소리높어 남편을 불렀다.
요마는 이 소리를 듣거니 팔계와 오정을 팽개치고
구름을 낮추어 칼을 쥔채 왕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제가 아까 침상에서 자는 데 꿈에
금 갑옷을 입은 신이 나타났어요."
"금갑옷을 입은 신이라?
그 신이 어째서 우리집을 찾아 왔을까?"
"제가 어릴 때에 축원을 드린 일이 있어요.
좋은 낭군을 만나면 명산 서부로 찾아가 스님께 재를 올리고
보시를 하겠다고요.
그런데 당신을 만나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동안
그걸 깜박 잊고 있었어요.
아짜 꿈에 신이 와서 서원한 걸 지키라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비로소 서원을 생각하고
깜짝놀라 깨어보니 남아일몽이었어요.
그래서 급히 화장을 하고서 말씀 드리러 오는데'
아 저 말뚝에 스님 한 분이 묶여 있더군요.
부탁이에요. 제 낯을 봐서 자비를 베풀어 그 스님을 놓아주세요.
그러면 저의 서원을 지키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어때요?"
"아이구! 오랜만에 다정하긴..
무슨 긴한 이야긴가 했더니 그런 일이구만.
그야 뭐 어렵겠어! 사람을 먹고 싶으면
다른 곳에서 몇놈 채오면 되지뭐!.
까짓 중 놈이랴 아까울 것도 없어.
제 갈데로 가라지 뭐!"
"당신이 뒷문으로 그를 내보내세요."
"참 시끄럽게 구네. 앞문 뒷문 가릴게 없이
그냥 내보내면 되지."
요마는 칼을 쥐고 큰 소리를 쳤다.
"여! 저팔계 난 이제 그만 싸우겠어.
네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마누라
낯을 봐서 네 스승을 용서해 주겠다. 내가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뒷문으로 가서 네 스승을 찾아서 서방으로 가거라.
하지만 다시 한번 내 경계를 침범하면 그때는 용서치 않겠다."
팔계와 오정을 그 말을 듣고 귀문관에서 라도 놓여난 기분이었다.
그들은 말을 몰고 집을 지고 도망치듯 파월동을 돌아
뒷문에 와서 불렀다.
"스승님!"
"어?"
삼장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시덤불 속에서 대답하자
오정은 숲속 오솔길을 헤치고 들어가
스승을 일으켜 황망히 말에 태웠다.
팔계는 앞서고 오정은 뒤따르면서 솔밭을 빠져 한길로 나섰다.
팔계와 오정이 투덜거리는 것을
삼장이 다독거리고 달래면서 새벽길을 떠나고
저녁에 자면서 여행을 계속하여 어느덧 이백구십리를 갔다.
삼장이 고개를 들고 보니 앞길에 커다란 성이 보였다.
바로 왕녀가 말한 보상국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세 사람은 관 옆에 있는 역에 쉴곳을 정한 다음
삼장은 궁문 앞까지 걸어가서 접대를 맡은 관원에게 말을 건넸다.
"전 당나라에서 온 중인데 국왕폐하를 배알하려고 하니
전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문관이 듣고 곧 섬돌 아래에 가 상주했다.
"폐하 당나라 고승이 폐하를 알현하고자 왔나이다."
국왕은 당나라가 대국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나라에 고승이 왔다는 전갈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곧 모셔들이라고 명령했다.
삼장이 섬돌 아래서 천자를 뵙는 무도산호=
발을 구르며 만세 부르는 예법-의
예를 드리니 양쪽에 늘어서 있던 문무백관들이 모두 감탄을 했다.
"참으로 큰 나라에 사시는 분이리라 예의 범절이 밝으시고
일거수 일투족 거동에 위엄이 넘치십니다그려."
국왕이 삼장에게 물었다.
"장로께서는 무슨일로 우리나라에 오셨오?"
"소승은 당나라 천자의 어명을 받들어 서방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 이옵니다.
통관 문첩을 가지고 왔는데 폐하의 나라에 당도 했기에
인을 받고자 감히 들어 왔나이다."
당나라 황제폐하의 통관문첩을 가지고 있다면
과인에게 보여 주시겠소?"
삼장은 문첩을 공손히 펼쳐
어정에 서안위에 놓아드렸다. 문첩에는
남선부주 대 당국의 하늘을 받들고
운을 이어받은 천자는 문서를 내린다.
생각컨데 박덕한 짐은 황통을 이어받아
신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기에
조석으로 조심한다.
전자에는 경하의 늙은 용을 구하는 데
실수한 예가 있었는지라
천제의 꾸지람을 입고 삼혼칠백이 곧 무상하게 되어
지부에 놀았으나 명이 끊어지지 않았고
명군에 방송 회생함을 입었노라.
이에 느껴 그 후 선회를 베풀어 망자를 구하는 도량을 세웠노라.
온갖 재난을 구하시는 관세음보살께서
금신을 나타내시어 서방에 부처님 계신 곳에 참경이 있으니
부처님을 배알하고 경을 구하여 유명의 망자를 건지어
고혼을 제도하라는 지시가 계셨다.
이에 특별히 법사 현장을 보내어
멀리 천산을 지나 경계를 구하게 되었다.
만일 서방제국에 이르면 좋은 인연을 끊지말고
첩을 보고 지나게 하기를 바란다. 이에 쓰노라.
대대당정관 십삼년 수길일
어전문첩
이라 쓰여있고 그 위에는 아홉군데의 옥새가 찍혀있었다.
국왕은 이를 보더니 역시 옥새를 누르고 수결을 해서
삼장에게 건네주었다.
삼장은 배사하고 문첩을 건사한 뒤 다시 아뢰었다.
"소승이 입조한 것은 첫째는 인을 받자는 것이고
다음으로 폐하께 보내는 편지를 부탁 받고 왔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편지인고?"
국왕이 물었다.
"폐하의 셋째공주께서는 완자산 파월동의
황포괴라는 자에게 잡혀 있습니다.
그분이 마침 소승을 만났기에
소승에게 편지를 부탁하셨습니다."
국왕은 이 소리를 듣고 슬픔의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삼십년전 공주가 실종된 일 때문에 여러신하가 파직을 당하고
내외 궁전의 비자와 태감 가운데 사형당한 사람이 부지기수라
공주가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은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라안을 샅샅이 뒤졌고 온 성안의 백성을 고문도 했으나
간곳을 알지 못했소.
요괴가 채갔을 줄이야 꿈 엔들 생각했겠소.
오늘 이렇게 공주의 소식을 들으니 눈물을 참을 수 없구려."
삼장이 소매속에서 편지를 꺼내 올리니 국왕은 그것을 받아서
봉투에 평안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고
손이 저려서 뜯지를 못하였다.
국왕은 한림원 학사를 전상으로 불러서 편지를 읽으라 했다.
학사는 전에 올라가고 전 앞에는 문부백관이 전 뒤에는 후비궁녀들이
다 귀를 곤두세웠다. 학사가 봉투를 찟고 읽기 시작했다.
불효녀 백화수 머리를 조아리면 절하고 올리나이다!
대덕부왕 만세의 용봉어전과 삼궁모후의 소양궁하에
그리고 조정에 문무현경 앞에서 삼가 올리나이다.
소녀는 다행이 궁중에서 태어나 지중한 사랑을 받았사오나
두분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지 못하고
효행을 다 하지 못하였나이다.
생각하오면 십삼년전 팔월 한가위날 밤
부왕의 높으신 분부로 궁마다 주연을 베풀고
명월을 구경하였나이다.
모두가 더없이 즐거워하고 있을 때 한가닥 항풍이 불거니
금빛눈에 푸른얼굴 푸른머리를 기른 마왕이 나타나서 소녀를 잡아
구름을 타고는 사람도 없는 깊은 산중으로 데리고 갔나이다.
그 동안 소녀는 자식을 둘 두었으나 모두 요마의 씨 이나이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차마 낯을 들고 말할일은 아니기에
부끄러워 여쭙기 민망하오나 다만 소녀가 죽은 뒤에라도
아바마마께서 사정을 모르실 것이 걱정이 되나이다.
소녀 요마를 원망하고 부모님을 사모하며 지내던중 때 마침
잡혀온 당소의 성승을 뵙게 되었나이다.
소녀는 눈물로 글월을 써서 스님께 주어 도망가시게 하옵고
이 글을 부왕께 드릴 것을 부탁하여 그 간의 사정과
소녀의 심중을 여쭙나이다.
부왕께서는 부디 측은히 여기시고 이 완자산 파월동으로
용맹한 장수를 보내시어 황포를 잡으시고 소녀를 궁중으로
데려가 주시도록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마음 총층하와 난필로 올리오니 너그러히 용서하옵소서
더욱 자세한 사연은 일후 배알하는 자리에서 여쭙겠나이다.
역녀 백화수 부왕전에 거듭 머리 조아리며 올리나이다.
학사가 편지를 다 읽자 국왕은 소리내어 크게 울었다.
삼궁의 후비들도 역시 눈물을 흘리고
문무백관들도 하나같이 애처로워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국왕이 제신을 향해 물었다.
"누가 병마를 거느리고 가서 짐을 위해 요마를 잡고
공주를 구해오겠느냐?"
몇번이나 물었으나 누구 한사람 나서는 자가 없었다.
모두가 허수아비같은 무관 문관 이었다.
국왕이 눈물을 쏟으니 신하들은
일제히 땅에 엎드렸다.
"신하들이 충성심은 있으나 구름을 타고 용과 호랑이를 부리고
불과 바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요마와 싸워
백화수공주를 구할 사람이 어디 있겠누?"
벽화수 공주를 누가 마귀의 소굴에서 구해올것인지
다음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