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말씀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나의 제자(弟子)..에 관한 어서말씀들 연재 9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5.28 조회수: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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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하건대 말법유포(末法流布)의 때에 생(生)을 이 토(土)에 받고, 이 경(經)을 믿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재세(在世)보다 유다원질(猶多怨嫉)의 난(難)이 심(甚)할 것이라고 쓰였느니라. 그 까닭은 재세(在世)는 능화(能化)의 주(主)는 부처이고, 제자(弟子) 또한 대보살(大菩薩)과 아라한(阿羅漢)이니라. 인천(人天)·사중(四衆)·팔부(八部)·인비인(人非人) 등(等)이라 할지라도 조기조양(調機調養)해서 법화경(法華經)을 듣게 하셨는데 역시 원질(怨嫉)이 많았었다. 하물며 말법(末法)인 지금의 때는 교기시각(敎機時刻)이 당래(當來)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스승을 찾아보면 범사(凡師)이고, 제자(弟子) 또한 투쟁견고(鬪諍堅固)·백법은몰(白法隱沒)·삼독강성(三毒强盛)한 악인(惡人)들이니라. 고(故)로 선사(善師)를 원리(遠離)하고 악사(惡師)에게는 친근(親近)하느니라. 게다가 진실(眞實)한 법화경(法華經)의 여설수행(如說修行)의 행자(行者)의 사제단나(師弟檀那)로 됨에 있어서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은 결정적(決定的)이라. 그러므로 이 경(經)을 청문(聽聞)하기 시작한 날부터 생각을 정(定)할지어다, 황멸도후(況滅度後)의 대난(大難)의 삼류(三類)가 심(甚)할 것이라고. 그런데 나의 제자(弟子) 등(等) 중에도 이전(以前)부터 청문(聽聞)했으면서도 대소(大小)의 난(難)이 왔을 때는 새삼스레 놀라고 혼이 빠져서 신심(信心)을 저버렸느니라. 미리 전부터 말하지 않았느뇨. 경문(經文)을 우선(優先)으로 하여 유다원질황멸도후(猶多怨嫉況滅度後)·황멸도후(況滅度後)라고 조석(朝夕)으로 가르친 것은 이것이니라. 내가 혹은 추방(追放)을 당하고, 혹은 상처(傷處)를 입고·혹은 두 차례의 감죄(勘罪)를 받아 원지(遠地)로 유죄(流罪)됨을 보고 들을지라도 이제 새삼스레 놀랄 만한 일이 아니거늘.
물어 가로되, 여설수행(如說修行)의 행자(行者)는 현세안온(現世安穩)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삼류(三類)의 강적(强敵)이 맹렬(猛烈)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 때문에 이번에 구횡(九橫)의 대난(大難)을 당하셨느니라, 과거(過去)의 불경보살(不輕菩薩)은 법화경(法華經) 때문에 장목와석(杖木瓦石)으로 맞고·축(竺)의 도생(道生)은 소산(蘇山)에 귀양가고, 법도삼장(法道三藏)은 얼굴에 화인(火印)을 찍히고, 사자존자(師子尊子)는 목이 베어지고, 천태대사(天台大師)는 남삼(南三)·북칠(北七)에 적시(敵視)당하였고,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육종(六宗)에게 미움을 받았었다. 이들 불보살(佛菩薩)·대성(大聖) 등(等)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그토록 대난(大難)을 만나시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사람이라 말하지 않는다면 어느곳에서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사람을 찾으리요. 연(然)이나 지금의 세상(世上)은 투쟁견고(鬪諍堅固)·백법은몰(白法隱沒)인데다가 악국(惡國) 악왕(惡王) 악신(惡臣) 악민(惡民)만이 있어서 정법(正法)을 배반(背反)하고 사법(邪法)·사사(邪師)를 숭중(崇重)하므로 국토(國土)에 악귀(惡鬼)가 난입(亂入)하여, 삼재(三災)·칠난(七難)이 성(盛)하게 일어났느니라. 이와 같은 시각(時刻)에 니치렌(日蓮)이 불칙(佛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야말로 시(時)의 불상(不祥)이로다. 법왕(法王)의 선지(宣旨)를 어길 수 없으므로 경문(經文)에 있는 대로 권실이교(權實二敎)의 싸움을 일으켜서 인욕(忍辱)의 갑옷을 입고, 묘교(妙敎)의 검(劍)을 차고, 일부팔권(一部八卷)의 간심(肝心)·묘법오자(妙法五字)의 기(旗)를 높이 들고 미현진실(未顯眞實)의 활을 당겨서 정직사권(正直捨權)의 화살을 활시위에 메우고, 대백우거(大白牛車)에 올라타고 권문(權門)을 마구 부셔서 저리로 밀어 붙이고, 이리로 몰아놓으며 염불(念佛)·진언(眞言)·선(禪)·율등(律等)의 팔종(八宗)·십종(十宗)의 적인(敵人)을 공격하니 혹은 도망치고, 혹은 뒤로 물러서며 혹은 사로잡힌 사람은 나의 제자(弟子)가 되었다, 혹은 반격하고 공격해서 항복시키곤 하였지만, 적(敵)은 다세(多勢)이고, 법왕(法王)의 한 사람은 무세(無勢)이므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싸움은 그치지 않느니라. 법화절복(法華折伏)·파권문리(破權門理)의 금언(金言)이므로 마침내 권교(權敎) 권문(權門)의 무리를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절복(折伏)하여 법왕(法王)의 부하(部下)로 삼고, 천하만민(天下萬民)·제승일불승(諸乘一佛乘)으로 되어 묘법(妙法)만이 유독(唯獨) 번창(繁昌)할 때, 만민일동(萬民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부는 바람이 가지를 흔들지 않고,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으며, 대(代)는 희농(羲農)의 세상으로 되어 금생(今生)에는 불상(不祥)의 재난(災難)을 없애고 장생(長生)의 술(術)을 터득하여, 인법(人法) 공(共)히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이(理)가 나타날 때를 각자(各者)는 보시라. 현세안온(現世安穩)의 증문(證文)은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라.
물어 가로되, 여설수행(如說修行)의 행자(行者)라 함은 어떻게 믿는 것을 말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당세(當世)·일본국중(日本國中)의 제인(諸人)·일동(一同)으로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사람이라 함은 제승일불승(諸乘一佛乘)이라고 개회(開會)하고 나면 어느 법(法)도 모두 법화경(法華經)으로서 승렬천심(勝劣淺深)이 있을 수 없느니라. 염불(念佛)을 부름도 진언(眞言)을 갖는 것도 선(禪)을 수행(修行)함도·통틀어 일체(一切)의 제경(諸經) 및,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를 수지(受持)하고 부름도 모두 법화경(法華經)이라고 믿는 것이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등(等) 운운(云云). 내가 말하노니 그렇지 않노라, 결국(結局) 불법(佛法)을 수행(修行)하려면 사람의 말을 채용(採用)하지 말지니라. 오로지 우러러 부처의 금언(金言)을 지켜야 하느니라. 우리들의 본사(本師)인 석가여래(釋迦如來)는 초성도(初成道)의 처음부터 법화(法華)를 설(說)하려고 생각하셨지만 중생(衆生)의 기근(機根)이 미숙(未熟)하였으므로 우선 권교(權敎)인 방편(方便)을 사십여년간(四十餘年間) 설(說)하시고, 후(後)에 진실(眞實)인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셨느니라. 이 경(經)의 서분(序分)인 무량의경(無量義經)에서 권실(權實)의 경계(境界)를 명시(明示)하여 방편(方便) 진실(眞實)을 구분(區分)하였으니, 소위(所謂) 이방편력(以方便力)·사십여년(四十餘年)·미현진실(未顯眞實) 이것이니라. 대장엄(大莊嚴) 등(等)의 팔만(八萬)의 대사(大士)는 시권(施權)·개권(開權)·폐권(廢權) 등(等)의 유래(由來)를 터득 분별하여 영해(領解)해서 말하기를, 법화경이전(法華經已前)의 역겁수행(歷劫修行) 등(等)의 제경(諸經)은 종부득성(終不得成)·무상보리(無上菩提)라고 단언(斷言)하셨느니라. 그리고 난 후(後)에 정종(正宗)인 법화(法華)에 이르러 세존법구후(世尊法久後)·요당설진실(要當說眞實)이라 설(說)하신 것을 시초(始初)로 하여 무이역무삼(無二亦無三)·제불방편설(除佛方便說)·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내지불수여경일게(乃至不受餘經一偈)라 금계(禁戒)하셨느니라. 이로부터 이후(已後)는 유유일불승(唯有一佛乘)의 묘법(妙法)만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성불(成佛)케 하는 대법(大法)이며, 법화경(法華經) 이외(以外)의 제경(諸經)은 일분(一分)의 득익(得益)도 있을 수 없는데, 말법(末法)인 지금의 학자(學者)는 어느 것이나 여래(如來)의 설교(說敎)이므로 모두 득도(得道)하리라고 생각하여 혹(或)은 진언(眞言)·혹(或)은 염불(念佛)·혹(或)은 선종(禪宗)·삼론(三論)·법상(法相)·구사(俱舍)·성실(成實)·율(律) 등(等)의 제종(諸宗)·제경(諸經)을 멋대로 믿고 있느니라. 그와 같은사람을 약인불신(若人不信)·훼방차경(毁謗此經)·즉단일체세간불종(卽斷一切世間佛種)·내지기인명종(乃至其人命終)·입아비옥(入阿鼻獄)이라고 정(定)하셨느니라. 이러한 규정(規定)의 명경(明鏡)을 근본(根本)으로 해서 일분(一分)도 어기지 않고, 유유일승법(唯有一乘法)이라고 믿는 것을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사람이라고 부처는 정(定)하셨느니라.
여설수행초(如說修行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50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