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b4zA-ByrJA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또 하나의 재미있는 단어와 어법을 가지고 함께 연구하고자 합니다. 성경의 어휘 연구를 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앞에서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각 단어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의미(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의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성경이 가진 독특한 의미)를 파악하고, 그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통하여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143번째 시간으로, 히브리어식 표현인 '아들'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어에는 '아들'과 관련하여 매우 독특한 어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우리식 표현으로 번역되어 버렸습니다만, 원래 히브리어의 어법은 '아들'을 활용한 표현입니다. 그 실제적인 예를 여러 경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어 글자로 '벤(Ben)'이 아들입니다. '벤' 다음에 명사가 오면 '~의 아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바르(Bar)'는 구약의 또 다른 언어인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고대 히브리어와 한 사촌쯤 되는 아주 비슷한 언어이며 문자는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르요나(바요나)', '바르디매오(바디매오)' 등에서 '바르'가 바로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는 '휘오스(Huios)'가 아들인데, 이 단어들 뒤에 특정 명사가 오면 히브리식 표현에 따라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해집니다.
모든 언어에는 각기 독특한 어법이 있듯이,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표현법을 이해하는 것은 그 언어로 기록된 문장을 올바로 해독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가 가진 특이한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아들'이라는 단어의 폭넓은 용법입니다. 이 '아들'이라는 단어 뒤에 속격(소유격) 명사가 오면 '~의 아들'이 되는데, 이때의 아들은 물리적인 아버지를 둔 일반적인 아들이 아니라 다양하고 독특한 속성을 상징하는 아들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구약을 기록한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고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헬라어이지만,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은 히브리인(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방식과 사고방식이 히브리식이기 때문에 언어는 달라도 같은 어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벤', 아람어 '바르', 헬라어 '휘오스'는 뒤에 오는 속격 명사와 함께 특별한 비유적 의미를 가집니다. 구체적인 예를 유형별로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손자나 자손, 후손을 가리킬 때도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창세기 29장 5절을 보면 야곱이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라고 묻고 사람들이 안다고 대답합니다. 우리말로는 '나홀의 손자'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벤 나홀(나홀의 아들)'입니다. 실제로 나홀은 라반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입니다. 원문은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관계상 손자가 맞기 때문에 우리말 번역이 잘된 것입니다. 이처럼 '벤'은 손자도 가리킵니다.
에스라 5장 1절에서도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이도의 손자 스가랴가..."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도의 손자'는 아람어로 '바르 이또(이도의 아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이도의 아들이지만 실제 계보상 손자이므로 번역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스가랴 1장 1절을 보면 더욱 명확합니다. "이도의 손자 베레가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가랴는 베레가의 아들이자 이도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는 이도의 손자도 '벤 이도(이도의 아들)'요, 베레가의 아들도 '벤 베레가(베레가의 아들)'로 둘 다 '벤'을 씁니다. 만약 우리말식으로 직역하여 "이도의 아들이요 베레가의 아들인 스가랴"라고 하면 한 사람에게 아버지가 둘인 것처럼 되어 말이 안 되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둘 다 '벤'을 써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신약의 마태복음 1장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에서 '자손'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휘오스(아들)'입니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책)"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아버지가 둘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어 '자손'으로 뭉뚱그려 아름답게 번역하였으나, 원문에는 '다윗의 아들(휘오스 다윗)', '아브라함의 아들(휘오스 아브라함)'이라고 아들이라는 단어가 두 번 쓰였습니다.
둘째, 종속된 사람이나 신복, 신하를 뜻할 때도 '아들'을 씁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유다 왕 아하스가 아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신을 보내며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왕의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벤 카(당신의 아들)'입니다. 진짜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당신에게 종속된 신하이며 신복입니다"라는 뜻을 지극히 낮추어 표현한 것입니다.
셋째, 어떠한 운명이나 상태에 처한 사람을 '~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무엘상 20장 31절에서 사울 왕이 다윗을 두고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할 자니라"고 소리칩니다. 이때 '죽어야 할 자'는 히브리어로 '벤 마웨트(죽음의 아들)'입니다. 죽음이라는 운명에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상 26장 16절에서도 아브넬 일행을 향해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고 할 때 원문은 '브네이 마웨트(죽음의 아들들)'라고 복수형을 썼습니다.
신명기 25장 2절의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이라는 구절도 원어로는 '임 벤 하코트(만일 태형의 아들이면)'입니다. 태형(곤장)을 맞아야 할 상태에 처한 사람이라는 뜻을 '태형의 아들'이라고 어법상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3장 15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며 "너희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옥 자식'은 헬라어로 '휘오스 게엔네스(지옥의 아들)'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운명을 지닌 자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2절에서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라고 하실 때의 '멸망의 자식' 역시 헬라어로 '휘오스 테스 아폴레이아스(멸망의 아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5절의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하신 말씀도 그렇습니다. 빛이나 낮이 실제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빛과 낮으로 상징되는 정직하고 밝고 거룩한 영적 상태에 속한 자들이라는 뜻의 성경적 표현입니다.
넷째, 특정 장소나 도시의 주민을 표현할 때도 '아들'을 씁니다.
시편 149편 2절의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에서 '주민'은 원래 '브네이 치온(시온의 아들들)'입니다. 도시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주민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에스겔 23장 15절의 '바벨론 사람' 역시 원문은 '브네이 바벨(바벨의 아들들)'입니다.
다섯째, 시간의 경과나 나이를 나타낼 때도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창세기 5장 32절의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라는 구절은 히브리어로 '벤 하메시 메오트 샤나(500년의 아들)'입니다. 노아가 500년이라는 세월을 품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2장 5절에서 유월절 어린 양을 택할 때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일년 된'은 히브리어로 '벤 샤나(1년의 아들)'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양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14장 12절의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에서 '아침의 아들'은 '벤 샤하르'입니다. 새벽빛에서 갓 태어나 빛나는 별(금성, 루시퍼)을 뜻하는 시적이고 시간적인 어법입니다.
요나 4장 10절에서 요나에게 박넝쿨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룻밤에 났다가'는 히브리어로 '벤 라일라(밤의 아들)'입니다. 밤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태어나 존재했던 대상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49장 20절의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라는 표현은 원어로 '브네이 시쿠라이크(네 사별의 아들들)'입니다. 네가 상실과 사별의 슬픔 속에 있던 기간에 얻은 자녀들이라는 의미를 '사별의 아들들'로 간결하게 칭한 것입니다.
여섯째, 미덕이나 악행의 특성을 강하게 띤 자들을 '~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사사기 21장 10절의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에서 '큰 용사'는 '브네이 하하일(힘의 아들들)'입니다. 힘과 용맹이라는 특성을 지닌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무엘상 2장 12절의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에서 '행실이 나쁜 자(불량자)'는 원어로 '브네이 벨리야알(벨리알의 아들들)'입니다. 악하고 무가치한 성정을 지닌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5장 18절에서 라헬이 산고 속에 죽어가며 갓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벤 오니'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이 슬픈 이름을 바꾸어 '베냐민', 즉 '벤 야민(오른손의 아들, 힘과 지지의 아들)'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스가랴 4장 14절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라는 대목은 원어로 '브네이 하이츠하르(기름의 아들들)'입니다. 기름 부음의 성령과 권능에 속한 자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나오는 "불순종의 아들들" 역시 헬라어로 '휘오이스 테스 아페이데이아스'이며, 불순종의 영적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오늘의 연구를 요약합니다.
아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벤', 아람어 '바르', 헬라어 '휘오스'는 단순히 육체적인 부모 자식 관계를 넘어 성경 안에서 매우 넓고 비유적인 의미로 확대되어 쓰입니다.
손자, 자손, 후손, 혹은 특정 지성이나 영토의 주민을 칭할 때 쓰입니다.
어떠한 사람의 소속이나 종속 관계를 나타내며, 신복이나 신하를 뜻하기도 합니다.
죽음, 지옥, 멸망, 혹은 빛과 낮처럼 어떠한 운명이나 영적 상태를 대변하는 특성으로 사용됩니다.
나이나 세월, 시간의 경과를 머금은 대상을 뜻할 때도 '~의 아들'이라 표현합니다.
용맹(힘의 아들), 불량함(벨리알의 아들), 슬픔(베노니) 등 지니고 있는 미덕이나 죄악의 내적 특성을 지칭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우리말 번역 성경에는 이러한 히브리식 어법들이 자연스러운 우리식 문맥으로 다듬어져 번역되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원문의 표현에 담긴 이 풍성한 '아들'의 용법을 이해한다면, 본문의 영적 의미를 훨씬 깊고 입체적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143번째 히브리식 표현 '아들'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은혜로운 어휘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정리
'아들'에 해당하는 성경 원어
히브리어 '벤(Ben)', 아람어 '바르(Bar)', 헬라어 '휘오스(Huios)'가 있으며, 성경 기자들의 히브리적 사고방식에 따라 비유적이고 광범위한 독특한 어법으로 사용됩니다.
계보와 혈연의 확장
종속과 영적 지위의 상징
자신을 극도로 낮추어 복종을 표할 때 '왕의 아들(신복)'이라 표현하며, '지옥의 아들(지옥 자식)', '멸망의 아들(멸망의 자식)', '빛의 아들(낮의 아들)'처럼 소속된 영적 상태나 최종 운명을 대변합니다.
시간과 지리적 소속의 표현
성품과 특성의 의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