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사르트르의 『구토』
1.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는 한 젊은 지식인의 인간과 ‘존재’에 대한 지적 탐색이 담겨있다. 프랑스 혁명 시대 인물 ‘드 로르봉’과 관련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부빌시에 온 로캉탱의 일상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는 드러난다. 로캉탱은 “나는 혼자서 철저히 혼자서 살고 있다. 절대로 아무에게나 말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받지 않고 아무 것도 줍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의 일상은 거리를 걷고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원이나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일상 중에 그는 ‘구토’를 느낀다. 첫 번째 구토를 지각한 것은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을 때였다. 사물과의 접촉을 통해 그는 존재를 자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구토’라고 표현했을 만큼 불쾌한 감정을 동반한 것이다.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2. 로캉탱의 구토는 다양한 형태로 계속 등장한다. 외부의 있는 것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행동에서 그것은 감지된다. 구토는 어쩌면 로캉탱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상징한다. 그는 현재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지만, 과거의 것들이 그에게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부빌의 명사들의 거만하고 왜곡된 이미지는 과거와 경험을 부풀리고 현실을 가리는 과장되게 표현한 죽어있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경험은 확실히 죽음에 대한 방어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권리이며, 노인의 권리이다.”
3. 현재의 중요성을 인식할수록 삶은 단순히 사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삶은 단지 사는 것과 모험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 머물거나 일상의 사건만으로는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모험적인 삶은 ‘순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그것을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모험의 감정은 확실히 사건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증명됐다. 모험이란 차라리 순간순간이 서로 얽히는 그 방법에서 생긴다.” 그렇게 순간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순간순간은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을 잡아 당기는 이야기의 결말에 의해 덥석 붙잡히고 각 순간은 그보다 앞서는 순간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4. 순간의 중요성, 현재와 존재의 의미가 부가되면서, 로캉탱의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도서관에서 만난 독서광과의 대화 속에서 그가 말하는 휴머니즘에 대하여 혐오하며,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드 로르봉’ 연구에 대한 무의미함을 자각하게 된다. 그의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광과의 만남에서 독서광의 말하는 휴머니즘이 얼마나 허위적인가는 같은 카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과는 관계없는 추상적인 젊음과 사랑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때 드러난다. 로캉탱은 독서광의 어떤 실체도 갖지 못한 추상적인 휴머니즘을 비난하는 것이다. “당신이 흐뭇해하고 있는 그것은 전혀 그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청춘’, 특히 ‘남녀의 사랑’,‘인간의 목소리’지요, 그것은 존재할 수 없지요. 청춘도, 성년도, 노년도, 죽음도.” 휴머니즘이라는 거짓된 포장은 결국 독서광이 도서실에 온 어린 아이들을 추행한 사건을 통해 증명된다.
5. 로캉탱의 인식적 모험은 공원에 있는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보면서 최고의 정점으로 향한다. 그는 뿌리의 모습을 보면서 존재의 부조리와 본질의 성격을 냉정하게 인식한다. 그것은 결코 고정되지 않는 우연성의 세계이며 명확하게 파악되는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며 인간들은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들과 맞닿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나에게 물었다면,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와서 사물의 성질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채로 부가되는 공허한 형체일뿐이다. 그러던 것이 이젠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추상적 범주에 속하는 무해한 자기의 모습을 잃었다. 그것은 사물의 반죽 그 자체이며, 그 나무의 뿌리는 존재 안에서 반죽된 것이다. 사물의 다양성, 그것들의 개성은 하나의 외관 하나의 칠에 불과했다.”
6.로캉탱은 오래된 연인과의 만남을 겪으면서 인생의 전환을 결정한다. 과거의 것들과의 연관을 끊고 현재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부빌시’를 떠나기로 했고 ‘드 로르봉’ 연구를 중단했다. 그가 새롭게 하기로 한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은 끊임없이 그에게 구토를 가져왔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재즈’ 연주와 같이 매일 매일 해체되고 죽어가는 소리들 배후에 남겨있는 젊고 힘찬 멜로디를 찾는 일과 유사하다. “인쇄된 말 뒤에, 페이지 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 그 무엇, 존재 위에 있는 그 무엇을 사람들이 알아내야만 할 것이다.”
7. 소설 <구토>는 사르르트의 자기 고백인지 모른다.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 선언문과도 같다. 그는 자신의 삶이 그저 그런 일상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 모험적인 삶, 그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순간순간을 연결지으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존재하는 것들 배후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인지 모른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찾는 것을 넘어 사물들과 만나는 인간의 주체적 행위를 강조하는 작업이다. 로캉탱은 사물과 만나 ‘구토’를 느꼈다. 그것은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무력감 또는 두려움일지 모른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구토 그 자체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능동적 행위를 통해 구토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현재의 나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경험과 과거의 힘은 낡고 무력할 뿐이다. 현재와 실존으로부터의 출발, 오래된 지혜인 ‘현재와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와 연결된 인간의 투쟁 선언이다.
첫댓글 - "현재와 실존으로부터의 출발, 오래된 지혜인 ‘현재와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와 연결된 인간의 투쟁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