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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라의 열쇠 -- "조현-조울-우울을 품다." 원문보기 글쓴이: 촛불 (대구)
약으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참고] 이 글은 제가 쓴 글 "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글주소는 https://cafe.naver.com/saraskey/469
저는 앞에서 발병을 ‘금이 간 집’에 비유했습니다. ‘금이 갔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첫 발병 시에 생긴 문제와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나타나는 문제가 서로 조금 다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전문가들 간에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첫 발병 시에 무엇을 문제라고 보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문가들은 문제를 ① 주요 증상, ② 부수 증상, ③ 증상 이외의 문제들로 구분합니다.
① 주요증상이란 당사자가 보이는 문제가 조현병인지, 조울증인지, 또는 우울증인지 등으로 구분하여 감별진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증상입니다. 오늘날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을 ‘뇌의 질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진단별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떠한 신체적인 검사법도 갖추지 못했고, 단 하나의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현재로서는 원인에 따라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가장 두드러진 증상이 무엇인지를 관찰하여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로써 정신병증상을 두드러지게 보이면 조현병, 조증증상과 우울증상을 반복적으로 보이면 양극성장애(흔히 말하는 조울증), 우울증상만 보이면 우울장애 등으로 진단을 내립니다.
② 부수증상이란 진단을 내리는 데 사용되지는 않지만 당사자가 보이는 여타의 증상들입니다. 예로써 거의 모든 당사자들은 진단이 무엇이든지 간에 흔히 불안증상, 우울증상, 분노증상, 수면장애증상 등을 호소합니다. 당사자 본인이나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주요증상보다도 오히려 부수증상 때문에 더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③ 주요증상이나 부수증상이 아닌 기타의 문제들 때문에 당사자와 가족들이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가정불화, 대인관계에서의 갈등, 사회적 고립, 공부를 못 따라가거나 직장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것, 자존감과 자부심의 손상, 자아정체감의 손상, 경제적 빈곤, 사회적 낙인, 희망의 상실 등의 문제입니다. 당사자와 가족들로서는 주요증상이나 부수증상보다 오히려 증상이 아닌 기타의 문제들이 더 고통스러운 경우도 흔합니다.
1) 약으로 되는 것
조현병-조울증-우울증으로부터 낫기 위해서는 약으로 되는 것과 약으로 안 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조현병에는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합니다. 항정신병 약물은 정신병 증상을 억제해주는 약물들입니다. 정신병증상에는 망상, 환각, 지리멸렬, 기이한 행동, 그리고 음성증상, 이렇게 5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이 5가지 증상 중에서 2가지 이상의 증상을 6개월 이상 보일 때 전문가들은 조현병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위의 5가지 정신병 증상들 중에서 망상, 환각, 지리멸렬, 기이한 행동, 이렇게 4가지 증상을 양성증상이라고 합니다. 양성이란 포지티브(+), 즉 더하기(+)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사고, 감정, 또는 행동이 존재하거나, 일반인들에게는 경미한 정도로 나타나는 사고, 감정, 또는 행동이 심하게 나타날 때 이를 양성증상이라고 합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양성증상은 그것이 증상임을 쉽게 눈치 챕니다.
항정신병 약물은 양성증상을 억제해주거나 경감시켜 줍니다. 제가 보기에 양성증상을 보이는 당사자 10명 중에서 8~9명 정도는 그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4가지 양성증상은 각각 다음과 같은 증상입니다.
① 망상(delusion)
이것은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생각을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망상의 종류는 망상의 내용에 따라 구분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과,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을 자신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는 관계망상이 가장 흔합니다. 그 다음으로 자신이 특별한 임무를 지닌 위대한 인물이라고 믿는 과대망상이 흔합니다. 그 외에 신체망상, 조종망상, 피조종망상, 사고전파, 사고주입, 색정망상 등도 흔합니다. 망상은 대화나 설득으로 교정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② 환각(hallucination)
아무런 감각자극이 없는데도 어떤 감각을 경험하는 것을 환각이라고 합니다. 환각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우리가 지닌 5가지 감각기관에서 모두 가능하며 그것이 느껴지는 기관에 따라서 환시, 환청, 환후, 환미, 환촉이라고 합니다. 조현병에서는 환청이 가장 흔하며, 그 다음으로 환시가 흔합니다.
③ 지리멸렬(incoherence)
당사자의 말에 조리가 없고 두서가 없어서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어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전문가들은 지리멸렬이라고 하는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횡설수설”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당사자가 말을 횡설수설하는 것은 말하는 그 순간에 생각이 뒤죽박죽 혼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사자에게 사고의 논리적 흐름에 문제가 있는 사고진행의 장애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사고장애에는 사고진행의 장애와 사고내용의 장애가 있는데 지리멸렬은 사고진행의 장애이고, 망상은 사고내용의 장애입니다.
④ 기이한 행동(bizzare behavior)
당사자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괴한 행동, 기이한 행동, 와해된 행동, 혼란된 행동 등으로 표현합니다. 혼자서 중얼거리거나, 혼자 실실 웃거나,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거나, 똑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거나, 부적절한 자세로 뻣뻣하게 가만히 있는 행동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망상, 환각, 심한 불안감이나 공포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울증의 정식 진단명은 양극성장애입니다. 이 진단은 당사자가 시기에 따라서 조증증상을 보일 때도 있고 우울증상을 보일 때도 있는 경우에 내려집니다. 조증증상 또는 우울증상이 있을 때 망상, 환청, 지리멸렬, 기이한 행동 등의 조현병 양성증상이 일시적으로 동반되기도 합니다.
정신병 증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조증기간 또는 우울기간에만 일시적으로 동반되는 경우에는 조울증으로 진단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조울증 증상을 보이면서 동시에 조증기간 또는 우울기간이 아닌 시기에도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조울증과 조현병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조현정동장애라고 진단합니다.
조울증에는 항조증 약물을 처방합니다. 항조증 약물은 조증증상만 억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상도 억제해 줍니다. 따라서 조증기간이 끝났다 하더라도 우울기간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항조증제(항조증 약물)를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조울증을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여 항우울제(항우울 약물)를 투여하면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됩니다. 항조증제와 항우울제는 그 작용기전이 서로 정반대입니다. 따라서 조울증 환자가 우울증으로 오진되어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재발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조울증과 우울증의 오진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우울증을 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조울증을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시던 분들 중 10~20% 정도는 후에 조울증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전체 조울증 당사자의 40% 정도가 처음에는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받았다고 하며, 조울증이라고 제대로 진단받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조울증과 우울증 감별진단의 경우, 오진율이 이렇듯 높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진단받고 현재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계신 분들은 한 번쯤 자신이 조울증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신질환의 경우 주치료제 이외에 보조치료제를 추가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보조치료제는 당사자의 수면장애, 불안, 우울, 분노 등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주치료제와 보조치료제에 더하여 부작용 방지제가 추가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당사자들이 복용해야 할 약의 종류와 양은 증가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행적으로 주치료제 자체를 과용량으로 처방할 뿐 아니라, 보조치료제와 부작용방지제도 너무 많이 첨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적인 기준의 2~3배 정도의 양을 처방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조속히 시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용량 처방은 당사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재활과 재기를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즉 당사자들로 하여금 약에 절어서 맥을 못 추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그들이 의욕을 잃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약물은 주요증상과 부수증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이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10명 중 8~9명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1~2명의 경우에는 약물용량을 아무리 증량하여도 여전히 심한 증상이 잘 억제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약물만으로 증상을 잡으려 하게 되면 약물을 과용량 처방하게 됩니다. 약물 이외의 방법을 약물치료와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용량 처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주거나 경감시켜주고, 스트레스 대처능력을 높여주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지원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며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과용량 약물치료와 입원치료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당사자의 재활과 재기를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약물치료는 용량을 낮춰야 하고 입원치료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흔히들 입원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입원은 심리적 안정을 방해합니다. 더욱이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생활의 연속성이 끊어지며, 사회 재적응이 점차 어려워집니다.
심리적 안정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가정방문진료입니다. 당사자가 활성기 증상을 보일 때 전화 한 통만 하면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여 진료하고 즉석에서 투약하거나 주사를 놓아주는 것이 최선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그러한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는 진단 및 치료 모두 대형의료장비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굳이 병원에서 진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정방문진료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가 정신과 영역입니다.
국가가 의료진을 공무원으로 고용하여 보건소 또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배치하면 됩니다. 정신과의사가 인원도 부족하고 인건비도 비싸서 국가가 고용하기 어렵다고요?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신과 약물을 정신과의사만 처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신과 약물이 잘못 처방하면 사망하는 무슨 극약입니까? 왜 정신과의사만이 처방권을 가져야 합니까?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는 100여종 되는 정신과 약물은 일반의사도 처방할 수 있고, 간호사도 처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심리학자도 처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정신과 약물의 처방권을 완화하면 가정방문진료가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2) 약으로 안 되는 것
약이 모든 증상에 다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음성증상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음성증상에 효과적인 약물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음성증상은 심리상담과 사례관리, 그리고 가족지원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주변사람들이 당사자를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꾸준히 함께 해주면 개선됩니다. 음성증상에는 주변사람들의 정성이 곧 약입니다.
음성이란 네거티브(-) 즉 빼기(-)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있는 사고, 감정, 또는 행동이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경미한 정도로만 나타날 때 이를 음성증상이라고 합니다. 음성증상은 가족들이 조현병 증상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당사자가 우울해졌다거나 게을러졌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성증상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간에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미국 아이오와(Iowa) 대학의 앤드리슨(Nancy Andreasen)은 음성증상을 아래의 5가지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
① 감정표현의 결여(blunted affect)
얼굴표정이나 목소리에 변화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동의 둔마’라고 합니다. 얼굴표정이 경직되어 있고 무덤덤하며, 목소리는 높낮이가 없이 단조롭습니다. 신나는 이야기를 할 때나 슬픈 이야기를 할 때에도 무덤덤한 표정과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가족들로서는 당사자의 감정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당사자의 감정이 얼어붙었거나, 황량하게 메말라 버린 듯한 느낌이며, 당사자가 아무런 감정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② 언어의 빈곤(alogia)
말이 전혀 없거나, 한두 마디로 끝냅니다. 새로운 화제를 꺼내지 못하며, 화제를 꺼내더라도 계속 이어가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하여 예, 아니오 정도로 대답하고, 간신히 한두 마디를 덧붙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대화 도중에 종종 말이 끊어집니다. 말하다 말고 당사자가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종종 상대방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 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다 말았는지 잊어 버려서, 재차 질문하곤 합니다. 타인들로서는 말이 이어지지 않아서 환자와의 대화가 재미가 없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③ 무감동(apathy)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개인적인 경험이나 정신병적인 경험) 등에 무관심합니다. 일에 대한 동기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수, 양치질, 머리빗기, 옷갈아입기, 목욕, 이발 등 일상적인 간단한 일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잠만 잡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TV도 보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 있는 자리를 피합니다.
④ 무쾌락(anhedonia)
즐기려 하지 않습니다. 취미활동이나 놀이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좋아하던 일들도 하지 않습니다. 영화보기, 노래하기, 게임하기, 운동, 산책, 친구만나기, 전화하기 등 흔히들 하는 오락이나 취미생활, 여가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TV보기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활동만 합니다. 당사자가 즐기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로서는 억지로 어떤 활동을 같이해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⑤ 주의집중 결함(inattention)
보통사람들도 주의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따라서 다소의 주의집중 부족을 음성증상이라고 하지는 않으며, 심한 주의집중 결함만을 음성증상으로 봅니다. 주의집중에 결함이 생기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며, 쉽게 주의가 분산됩니다. 따라서 당사자는 몇 분 이상 대화를 유지하지 못하며, 책을 읽어내지 못하고,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합니다. 한 가지 일을 십 분 이상 계속해서 하도록 하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혼자서 엉뚱한 짓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결국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하거나 방에서 나가 버립니다. 주의집중에 결함이 있는 당사자는 흔히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기억력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따라서 이 경우 당사자의 주의집중에 결함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당사자들에 따라서는 양성증상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음성증상만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두 가지를 다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양성증상은 흔히 몇 달 사이에 또는 수일 만에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며, 적절한 약물치료를 하면 수개월 내에 경미한 수준으로 경감됩니다. 이에 비해 음성증상은 수 년 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됩니다. 이때 가족들은 당사자가 바보스럽고 둔해 보이고 게을러 보여서 속상해 하지만, 그것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성증상은 또한 양성증상으로 인한 병이 만성화됨에 따라 2차적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만성 조현병 당사자들 중 상당수는 양성증상보다는 음성증상이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이 같이 있는 경우에, 발병초기에는 가족들의 신경이 온통 양성증상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음성증상이 있더라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양성증상은 ‘해’에 비유할 수 있고, 음성증상은 ‘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음성증상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해와 달이 함께 있으면 달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입원치료 후 당사자의 양성증상이 가라앉으면 가족들은 비로소 당사자에게 음성증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그것이 원래부터 있던 음성증상인지 발병 이후에 2차적으로 음성증상이 시작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성증상 외에도 약으로 안 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욕구좌절 경험과 부정적 기억과 같은 심리적 좌절경험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마음의 상처들’입니다.
현대의학은 조현병-조울증-우울증의 발병을 뇌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으로 봅니다. 즉 뇌의 신경전달물질 작용에 이상이 생긴 상태로 봅니다. 이러한 설명의 영향으로 흔히들 조현병-조울증-우울증을 단순히 뇌의 문제라고 생각하여 심리적 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심리적으로 볼 때 발병은 “힘들다.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당사자는 발병 이전에 수많은 욕구좌절을 경험합니다. 당사자에게는 그 욕구좌절경험들이 누적되어 있고 그와 관련된 부정적 기억들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좌절경험과 부정적 기억들이 이후로도 두고두고 당사자를 힘들게 만듭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발병하면 당연히 그의 ‘마음의 상처’를 살펴봐줘야 합니다. 그가 더 이상 이전의 힘들었던 삶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배려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 정신의학계는 발병을 ‘뇌의 혼란’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화시켜버리고 마치 약물치료만으로 그들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약물치료란 어떤 면에서 술을 마시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힘들어서 ‘더 이상 이렇게 못살겠다.’고 부르짖는 사람에게 ‘술 한 잔 마셔. 그러면 괜찮아져.’라고 말하고 매일처럼 술을 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고는 그를 이전의 삶 속으로 다시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당사자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은 심리상담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자들은 당사자를 직접 상대하며 치유해주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족교육과 가족상담을 통해 가족들이 당사자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잘해낼 수 있도록 준비시켜줘야 하며 자문해주어야 합니다.
가족들은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심리학적 소양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하며, 바람직한 대화법을 익혀나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가족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해야 하며, 가정화목을 이뤄내야 합니다.
당사자들은 투병과정에서 수많은 심리적 좌절과 심리적 상처를 경험합니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신보건 시스템은 당사자들에게 “약(藥)주고 병(病)주는” 시스템입니다. 위의 그림에서와 같이 당사자들은 발병 이후 투병과정에서 수많은 부정적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① 강제입원/강제투약에 따른 모멸감/수치심/배신감/무력감
② 자기결정권의 침해
③ 자존감 손상
④ 정체감 손상
⑤ 사회생활 적응실패에 따른 대처 자신감 상실
⑥ 가치감을 느낄만한 역할의 부재
⑦ 대인관계에서의 고립
⑧ 희망의 상실
강제입원과 강제투약 경험은 발병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경험입니다. 당사자들은 모멸감, 수치심, 배신감, 무력감 등을 느끼며, 자존감 손상을 경험합니다. 조현병이라는 병명만 말해주고 이 병에 대해 별 다른 부연설명을 해주지 않는 방식이나 ‘뇌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설명방식도 당사자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며, 열등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장기입원은 당사자들을 사회로부터 단절시키며 그들의 사회재적응을 방해합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3)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약물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뇌의 병’으로만 설명하려 하고 약물치료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이는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설명하려는 태도이며, 문제해결을 충분히 해낼 수 없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본 입장과도 맞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편으로는 생물학적인 존재이지만, 또한 동시에 심리적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이고, 영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생물-심리-사회-영성 모델(bio-psycho-social-spiritual model)이라고 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현대의학은 정신질환 또는 정신건강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여러 차원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로써,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정신건강이란 사회경제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 이상의 것이다. 정신건강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삶에서 발생하는 정상적 범위의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으며, 생산적으로 일을 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고, 개인이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안녕의 상태이다.” (World Health Organization, Strengthening mental health promotion. (Fact sheet, No. 220). 2001, p.1)
이러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는 조현병-조울증-우울증 치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정의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의 조현병-조울증-우울증 치료는 다른 모든 요소들은 도외시한 채, 약물치료와 입원치료만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초발 당사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필수적인 서비스는 아래의 여섯 가지 항목이라고 생각합니다.
① 약물치료
② 가정방문진료
③ 심리상담
④ 정보제공 (예로써, 약물교육, 정보수록소책자, 리커버리워크북 제공)
⑤ 가족지원 (예로써, 가족교육, 가족상담, 가족모임지원)
⑥ 동료지원 (예로써, 동료지원가 제도의 법제화, 동료지원가 의무고용)
아울러 모든 당사자들을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이 적극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① 동료지원가 운영 재기지원시설의 설치 (예로써 쉼터, 각종 문화시설 등)
② 주거시설, 재활훈련시설 및 직업재활시설의 확대
③ 직업재활 기회의 확대
④ 편견해소와 인식개선
저는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약물치료와 입원치료 위주인 현재의 우리나라 정신보건시스템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초발 당사자들에게 약물치료 이외에 어떤 도움이 필수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지를 인식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당사자들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지 확인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내용 참 좋습니다~!
배정규교수님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동영상도 잘보았지만 이렇게 글로정리된내용을 보게되니 당사자 부모로서 병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교수님 동영상 꾸준히 보며 힘든시기를 견디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것은 아이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습니다.요즘은 저에게 마음속 얘기도 자주합니다. "이전에 자기는 어땠고. . . .지금은 .....하다." 등등
모두 교수님 동영상을 발병초기에 알게된덕분이라 여깁니다.
늘 감사합니다~~
네~~ 따님과 함께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명심하고 공부하면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의내용 글내용
모두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동영상 강의와 정리하신 글 내용 모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 식구 모두가 환우라 병원서 약만 타다먹은지 몇십년 째인데요
병원에서 늘 별 달리 상담은 받은적도 없고 약을 타기위한 처방전을 받기위한 통과의례로 통행세를 내기위한 제도적인 부분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해주시는 건 별로 없고 저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고(물어 보았으나 별 뾰족한 대안이 없는 답변일관)
의사들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 상담도 받지 않고 진료 시간이 고작 3분정도인데 늘 정신요법료란 항목의 진료비를 내는 것이 참으로 불합리 하다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