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4.02.11 주일 낮 예배
말씀: 마10:44-45
제목: 사람의 종이 되라-2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본문 봉독
세번째 수난예고(33절-34절)
막10: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은혜찬양: https://www.youtube.com/watch?v=sNs7pYjKfT4
오늘의 본문 말씀은 주님의 지상사역의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목숨을 담보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댓가로 치루기 위하여 여기에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들어가는 말씀 -본문의 배경
오늘의 본문 말씀의 앞절, 33~34절에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예고가 제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3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34)."
마가는 세 번째 수난 예고에서 앞에 나온 두 번의 수난 예고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마가가 기록한 세 번의 수난 예고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 번째 수난 예고
사형을 언도 받음/ 십자가에 달려 처형됨/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함.
2) 두 번째 수난 예고
주님께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넘겨질 것을 예고하심.
3) 세 번째 예고
주님께서 이방인(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고하심
주님께서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을 것 예고.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고난에 대해 세 번째로 말씀하시는데도, 35~40절에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42~45절을 통해 “나의 마시는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43,44절)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고 친히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내용: 예수님의 가르침~ 겸손과 섬김을 실천하라(42~45)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44절에는 나의 삶의 목적에 대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시고 나아가서 나의 삶의 최종 목표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마가복음10:45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목적은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삶의 방향설정입니다. 그리고 목표는 목적이 정해졌을 때 내가 바라는 그 목적물 즉, 대상이 목표입니다. 달리기 선수가 되려면 일단 뛰어야 된다는 목적이 있는데, 실상 그 속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 ,즉 일등이라는 타겟을 발현시키려는 목적물이 바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즉, 목적(目的, Goal)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목표(目標,Objective)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입니다.
- 누구나 이 세상의 주인공이 자기자신임을 부인하는 자는 없다. 즉 자기 자신의 우주의 주인공입니다.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국민을 섬기려고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요, 국민을 섬기려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눈만 뜨면 보좌관이다 비서관이다 하는 것들이 주인님 주인님 하면서 섬기는 모습으로 눈을 뜨고 눈을 감습니다. 그러니 그들 눈에 국민은 잘 차려진 밥상이고 자기가 뛰는 무대위의 소품입니다. 표를 얻기 위해 구걸하다시피 머리를 조아릴 때가 엊그제인데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국민 앞에 만세부르는 순간부터 이제 왕이 되는 것들입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주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35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행하시기를 원하나이다
36분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하기를 원하느냐 ?
37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허락하사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왼편에 앉게 하옵소서 주의 영광 중에 앉게 하옵소서
38예수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받은 침례로 침례를 받습니까?
39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할 수 있느니라 예수 이르시되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실로 마시리라 하시니라. 내가 침례를 받는 그 침례로 너희도 침례를 받으리니
40그러나 내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그것은 예비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뒤로 물러서거라고 야단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상같은 나무렘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이 구약성경에 예고되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메시아(히브리어, 기름부음 받은 자, 희랍어로는 그리스도)가 와서 로마를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후에 세계적인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릇된 메시아 관을 바로 잡아주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 당국자들(산헤드린)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이 유죄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산헤드린에서 자신을 사형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이방인(로마사람)에게 넘길 것까지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로마인들에게 넘겨진 후에 로마군인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얼굴에 침뱉고, 또 채찍으로 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로마인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할 것이나, 자신은 죽은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32-34). 그러나 이러한 메시아는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가진 메시야관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들은 패배하여 십자가에 처형될 메시야를 원하지 않고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승리자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자신이 모욕과 조롱과 침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위해 찔림을 받으셔야 했고, 우리의 죄악을 위해 상처를 입어야만 했습니다(사 53:5(상)). 예수님께서 수난과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기 위해서"였습니다(사 53:5(하)). 이사야의 말처럼 "우리는 다 양같이 흩어져서 각각 자기 길을 갔지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게 하셨습니다(사 53:6)."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순교의 위협 앞에 놓인 로마교회 성도들과 비슷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로마황제를 "주"(Lord)라고 부르기를 거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 고백을 위해서 재물과 명예르 포기하고 때로 목숨까지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처형될 것을 알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했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제자들 앞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순교를 위해 가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처형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좇아갔습니다. 마가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제자도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당시의 로마교회에 십자가의 제자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를 통해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베드로도 이 메시지를 전한 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의 설계도를 살펴보면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세상의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마구간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다음에 기도했던 것처럼 “하늘의 하늘이라도” 모시기에 감당치 못할 그 분이,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탄절 카드 그림에서 보는 구유는 주변에 광체가 둘렀고, 하늘에 천군천사들의 찬양하는 모습까지 그려놓았기 때문에 이라 아주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30년을 사시고 메시야로서 새 출발을 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오셨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마태복음3“13-17)
이 영광의 메시야 임관식이 있은 다음 곧 바로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메시야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세상을 섬길 수 없어서, 광야로 나가셨고, 그 곳에서 40일간 금식하였습니다. 이 광야는 베들레헴 마구간의 구유보다 훨씬 더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류의 구세주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 순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40일 금식기도 했던 광야보다 더 낮고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2. 로마서8:3에서는 ‘예수님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육신이 연약함으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에게는 인간적으로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멸시했고,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흉악한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그래서 그는 귀족처럼 헤롯 왕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진정한 복은 자신의 오만을 버리고 허심탄회하게 도움을 청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코 자신의 약점을 두러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필요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왕이 왕 같아야 왕이 됩니다. 대통령이 그 몫을 다하지 못하면 자격이 없습니다.
목사가 목사답고 신자가 신자다워야 신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사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왕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되어 마음이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주신 사무엘 선지자를 무시하였습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만하게 일하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요즘 이야기가 꼭 성경의 사울이야기와 한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증인이되라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또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는 우리 만나인이 되어야 할 줄 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라 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한 가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 바로 주님의 참된 종이 되는 길입니다.
이제 우리 만나인은 오직 주님의 길만 따르겠습니다. 주의 길을 가리라
-찬양 - https://www.youtube.com/watch?v=JGqpzdVPaak
오늘도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 5:16-16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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