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으로서의 예술
Art as Discovery 艺术作为发现
발견으로서의 예술은 손으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발견하는 것을 통해서 예술작품이 탄생한다는 견해다. 현대예술은 발견으로서의 예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전통적 예술은 예술가가 창작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창작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모더니즘 이후 예술의 개념을 바꾼 몇 번의 사건이 일어난 후, 전통적 창작방법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예술작품은 창작되기도 하지만 발견된다는 개념이다. 이 말은 이미 존재하는 물체나 대상의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예술로 선택한다는 뜻이다. 발견으로서의 예술의 첫 번째 사례는 마르셀 뒤샹(M. Duchamp)의 1917년 작 <샘>이다. 뒤샹은 1913년에 자전거 바퀴, 식탁 의자, 포크, 이 세 개의 물건으로 <자전거 바퀴>를 조립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전거 바퀴>는 예술적 가능성만 있었고, 새로운 예술에 이르지는 못했다.
1915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샹은 다다이즘을 중심으로 전위적 예술활동을 펼친다. 뒤샹은 인상파와 큐비즘을 거치면서 재현(representation)의 한계를 깨달았고, 표현(expression)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비롯한 몇 개의 작품을 통해서 (표현을 넘어선) 새로운 예술창작의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것이 발견이다. 그것은 재현이나 표현이 아닌 완전한 새로운 발견의 방법이다. 뒤샹에 의하면, 예술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발견으로서의 예술은 인류 초기부터 존재했던 예술의 한 방법이었다. 인류는 처음부터 쏟아져 내리는 유성, 작고 함초롬한 꽃, 새벽 풀잎의 이슬, 무한한 시간에 대한 상상, 오로라의 신비한 빛, 사막의 모래 언덕, 총총히 떠 있는 별과 같은 것을 보고 예술적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초기 인류는 예술의 개념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예술과 미적 감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선사시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하나의 제도로 발전했다. 근대에 들어 예술의 가치, 의미, 효용성 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었고 예술철학과 미학은 예술의 본질과 의미를 분석하여 예술에 대한 개념을 완성했다. 한편 부르주아가 세상의 주인이 되면서 순수예술(fine art)이 탄생했다. 원래 예술(art, 藝術)의 기원인 테크네(tékhnē, technique 技术)는 고대 그리스어 기술, 기예, 기능, 공예를 의미하는 보통명사다. 그리스어 테크네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아르스(ars)다. 아르스의 직접 목적격인 아르트(art)는 ‘어떤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라틴어 아르트는 현대 서구어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art)로 계승되었다. 기술 아르스가 예술 아트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고전주의 예술의 전범으로 알려진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순수예술(fine art)의 개념이 없었고 모든 예술은 효용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 것은 목적을 위해서 기획하고, 준비하고, 정해진 창작과정을 통해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근대의 순수예술은 칸트의 미학에서 말한 목적없음(purposivelessness)이 예술의 본질이다. 목적 없는 예술은 목적 없는 무목적이 목적이라는 뜻이다. 목적이 없는 예술을 만든다는 것 역시 정교한 창작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순수한 예술은 우연한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목적예술이든, 목적 없는 예술이든 창작과정을 거쳐서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은 같다. 창작과정이란 예술가의 목적에 따른 창작 의도 설정, 장르와 재료의 선택, 예술가의 손과 신체로 작품 창작, 결과로서의 예술작품 탄생의 과정을 말한다. 그런데 뒤샹은 이런 창작과정을 생략하고 이미 존재하는 물체를 직관적으로 응시하여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선택하고, 명명한 다음 예술작품이라고 선언했다.
1917년 뒤샹이 출품한 <샘>이 뉴욕 앙데팡당전에서 전시되지 않은 후, 다다이즘 잡지 [더블라인드맨(THE BLIND MAN)]은 손으로 창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이 중요하다고 썼다. 예술가는 창작할 수도 있지만,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이 말은 현대예술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상징적 개념이다. 마침내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는, 발견으로서의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예술가의 ‘선택’은 응시, 발견, 해석을 말하며 선택 이후에는 의미부여, 명명, 장소이동을 말한다. 이것을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made)로 명명했다. 이 과정을 거쳐서 단지 물체였거나 존재했던 것은 오브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이것이 발견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예술가의 신체와 손으로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마음과 눈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발견으로서의 예술에서 예술가는 개념을 부여하는 창의적 존재가 된다. 그리고 예술은 지적이고 정신적인 가치에서 이해되는 예술적 오브제가 된다.★(김승환)
*참고문헌 Louise Norton, “Buddha of the Bathroom”, THE BLIND MAN 2, 1917.
*참조 <개념예술>, <개념예술로서의 스터키즘>, <레디메이드>, <모더니즘>, <반예술>, <샘[마르셀 뒤샹]>, <순수예술>, <스터키즘>, <아방가르드>, <예술>, <예술가>, <예술민주주의>, <예술작품 선택>, <오브제>, <포스트모더니즘>,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