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믿음은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이 믿는 바를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과 해석의 관계이죠. 질문자님께서 새 전자기기를 장인 장모께 사주었다는 것은 팩트이고, 그에 대해 여호와의 영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은 해석이죠. ^^ 해석은 참된 것일 수도 있고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해석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다. 처형 부부의 해석은 질문자님에게는, 그것이 일어난 직접적 원인이 되는 질문자님에게는, 감사의 표시가 없다는 괘씸한(?) 생각이 들게 하였으며, 처형 부부에게는 여호와 또는 워치타워 조직이 참이라는 더 강한 인식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또 윗 동서가 수주를 따서 10일 간 쉬었던 것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직접적인 근거는 자본주의적 사회의 구조원리에 기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여호와의 도움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진실로 그렇게 인식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 파수대에서 늘 배운 대로 여호와께서 물질적 부양자라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죠. 그러나 어떤 환경이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러한 믿음은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기 때문에 교파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기독교인의 공통적인 믿음입니다. 비단 여호와의 증인에게만 있는 믿음이 아니죠. 마치타워님이 게재한 <교통사고 만화>에 그 사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믿음이 워치타워가 '유일구원조직' 이라는 믿음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만일 워치타워 역사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워치타워 조직을 버릴 때, 두 가지 경우가 발생합니다. 한 가지는 이전에 가졌던 신에 대한 믿음조차 버리는 경우와 신에 대한 믿음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워치타워만 버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탈 증인들은 워치타워를 버리면서 동시에 신도 버리게 되는데, 그것은 워치타워를 버리게 된 동기가 단순히 워치타워의 율법을 어긴 것으로 생각된 것이 아니라, 성서의 율법을 어겼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워치타워가 틀렸다는 생각은 곧 하느님이 없거나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고 무신론적 경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워치타워 교리와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을 면밀히 구별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으로 워치타워와 연합하는 사람들의 입장과는 매우 다른 입장에 있습니다. 그는 워치타워 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워치타워 교리를 여러가지 면으로 분석하고 비판해 볼 기회를 가지는데, 이러한 카페에서 제공하는 객관적인 정보가 그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정보를 조사하면 그는 분명히 워치타워 가르침에 엄청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막상 다른 교파들도 거의 마찬가지이거나 더욱 심한 오류로 범벅이 된 상태라, 종교를 새롭게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를 선택해서 책임과 권리를 그 종교에 맡기는 것보다 오히려 어느 종교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나홀로'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결과적으로 현재 그런 길을 걷고 있기는 하지만, 성서에서 제공하는 희망은 단순히 오래된 고전으로서만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1세기까지 가졌던 선진들의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희망은 일반 기독교파에서는 영혼의 사후세계를 가르치는 것이고, 혹 현대 신학자들이 유투버를 통해서 부활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지배적인 견해가 아니므로 결국 사람들은 현실을,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와 연관짓지 못하는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지 개혁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의 길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여전히 죽음에서 그리고 죄에서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행이 계속된다는 의미이며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참다운 행복을 결코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길이기는 하지만 영적이고 정신적 만족이 결여된 것이므로 현대인들은 풍요 속에서 빈곤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저나 우리가 그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해서 '신의 예정'이 무산된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길에 동참함으로써 '신의 예정'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기서 밝히지는 안했지만 저의 글이나 유투버를 보신다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