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지나며
요즘 저의 귓전에 유난히 많이 들려진 단어가 있습니다. ‘광야’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후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40년이라는 긴긴 세월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 광야, 10여 년 전, 긴 창이 달린 모자와 생수 한 병을 작은 가방에 넣고 광야체험학습을 한 적이 있습니다. 3시간을 걷고 또 걸어도 그늘 한점 없는 광활한 땅이요, 물이 흐르는 작은 시냇가도 찾을 수 없는 이곳이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 광야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나무가 없으니 그늘 한점 없고, 작은 시내가 없으니 물 한 방울 얻을 수 없는 척박한 땅, 광야에서 어찌 40년을 살았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심지도, 거두지도 않았지만 한 번도 굶주림이 없었고, 물을 얻기 위해 땀 흘리며 샘도 파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새벽이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고, 지도자 모세의 손에 준 지팡이로 바위를 치게 하여 물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싣는 신발과 입는 의복도 닳지 않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를 주셨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광야를 허락하신 것일까요? 한 곡의 노래, 광야를 지나며’에 담겨진 가사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 ...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네 인생에 있어 광야, 광야는 왜 필요했을까요? 찬양의 가사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며칠 전 말씀 묵상 시편 말씀에서 다윗이 말해 줍니다. “5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셀라)”(시편 55:5~7).
다윗이 처한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의 노래 5절 말씀에서 잘 보여줍니다. 두려움과 떨림, 공포입니다. 어렸을 때는 사울의 창에, 노년에는 아들 압살롬과 그의 대적의 창을 피해 산으로 동굴로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가 선택하고자 했던 곳이 광야입니다.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겠다합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광야입니다.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가리켜 광야라 하지만, 다윗은 힘든 곳 광야에 머무르겠다 합니다. 주된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다윗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듯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인생의 광야에서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광야는 나를 더 성결케 하고, 나를 선한 도구로 사용키 위해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섬김이 박희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