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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어원
'양치질'의 어원
여러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하시지요? 이 '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언뜻 보아서 한자어인 줄은 짐작하시겠지요? 그러나 혹시 '양치질'의 '양치'를 '養齒'나 '良齒'로 알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간혹 '양치질'의 '치'를 '齒'(이 치)로 써 놓은 사전도 보입니다만, 이 사전은 잘못된 것입니다)
'양치질'의 '양치'는 엉뚱하게도 '양지질' 즉 '楊枝'(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그렇습니다. 고려 시대의 문헌(예컨대 鷄林類事)에도 '양지'로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한 어원 의식이 점차로 희박해져가면서 이것을 '이'의 한자인 '치'에 연결시켜서 '양치'로 해석하여 '양치질'로 변한 것입니다. 19세기에 와서 이러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양지'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습니다. '이쑤시개'를 일본어로 '요지'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양지질'이 비록 '이쑤시개'와 같은 의미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양지질'과 '이쑤시개'는 원래 다른 뜻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두 단어 모두가 오늘날의 뜻과 동일한 것이지요. '양지질'에 쓰는 치약으로는 보통 '소금'이나 '초'를 사용하여 왔습니다.
이렇게 '양지질'이 '양치질'로 변화하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보통 '민간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즉 민간에서 어원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원래의 단어를 해석하거나, 그 해석된 대로 그 단어를 고쳐나가곤 합니다.
이렇게 민간에서 잘못 해석한 단어는 무척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행주치마'가 그렇지요. 원래 '행주'는 '삼' 등으로 된 것으로서 물기를 잘 빨아들이는 천을 일컫는 단어인데, 이것을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 대첩과 연관시켜서,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랐기 때문에 그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한다는 설이 있지만, 그것은 민간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부엌에서 그릇을 닦는 데 사용하는 걸레인 '행주'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걸레의 하나인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는 같은 단어입니다.
'고뿔'과 '감기'의 어원
요즈음 감기에 잘 걸리지요. 저도 지난번 중국 연길시에서 있었던 우리말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과 회담을 하면서, 그만 감기에 걸려 아직까지도 기침은 계속 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독감에 걸린 것이지요.
지금은 감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 '고뿔'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뿔'은 마치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것은 '코'에 '불'이 난 것입니다. 즉 '코'에 열이 난다는 뜻이지요. 이전엔 '곳블'이었습니다. 이것이 원순모음화가 되어 '곳불'이 되고 다시 '뒤의 '불'이 된소리로 되어(마치 '냇가'가 실제 발음으로는 '내까'가 되듯이) '고뿔'이 된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 한자어인 '감기'가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감기'란 한자말은 '복덕방' '사돈', '사촌' 등처럼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입니다. 혹시 일본어에서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어에서는 감기를 '風邪(가제)'라고 하니깐요.
'스승'의 어원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격(巫覡)'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무'는 '여자 무당'을, '격'은 '남자 무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문헌을 보면 '무'를 '스승 무' '격'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무당'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디안 영화나 아프리카 영화를 보면 추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추장은 제사장에게 모든 것을 상의하지요.
결국 '스승'은 임금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선생님을 한자어로는 '師父'라고 하는데, '사'자도 '스승 사', '부' 자도 '스승 부'입니다. 결코 '선생 사, 선생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 무당'이 '임금의 선생님'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화되어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 '무당'을 가리킨다고 하니까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몸이 아파서 강의실에 들어가기 싫다가도 강의실에만 들어가면, 마치 무당이 신명이 난 것처럼 신명이 나서 떠들거든요.
'남자무당'인 '화랑이 격'은 오늘날 '화냥 년'이라는 못된 욕을 할 때 사용하는 말로 변화했습니다. 이 '화랑이 격'의 '화랑'은 신라시대의 '화랑'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 무당'도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귀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도 '화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 무당은 여자 무당에 비해 그 위세가 약합니다. 오늘날의 무당의 세계도 일처다부제가 보이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처용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요. 그래서 남자무당은 이 여자무당, 저 여자무당을 찾아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을 '화냥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에게 쓰이던 것이 여자에게 사용된 것이지요.
간혹 '화냥'을 '還鄕', 즉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는 의미로 해석해서, 淸나라에 끌려 갔던 여인들이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는 분도 있으나, 그것은 민간인들이 만들어낸 어원입니다.
‘시냇물’의 어원
''시냇물'의 의미를 모르시는 분은 없지만, 그 어원을 제대로 아시는 분 은 그리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본래 '시냇물'은 '실'+ '내'+ '물'이 합쳐져서 생긴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시내'의 '실'은 絲가 아닙니다. '실'은 '谷(골 곡)'의 뜻입니다. 아직도 고유 지명에 '실'이 쓰이고 있습니다. '밤실' 등 무척 많습니다. 결국 '시내'는 '골짜기의 내' 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내'도 원래는 '나리'였었습니다. 그런데 모음 사이에서 ㄹ이 줄고 두 음절이 한 음절로 변한 것이지요.
그런 단어가 또 있습니다. 山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은 '모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뫼'가 되었고, 그나마도 山에 밀려 잘 쓰이지도 않지요.
결국 '시냇물'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가물치'의 어원
물고기 중에 '가물치'가 있지요? 이 중에 '-치'는 물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임은 누구나 다 아실 것입니다. '꽁치, 넙치, 준치, 멸치'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가물'이란 무엇일까요?
千字文을 배울 때,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玄)......' 하지요. 물론 지금은 '검을 현'이라고도 합니다. '가물'은 오늘날의 '검을'에 해당합니다. 옛날엔 '검다'를 '감다'라고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가물치'는 '감-+ -을 + -치'로 분석할 수 있지요. 이름에 들어있는 뜻은 결국 '검은 고기'란 말입니다.
'숨바꼭질'의 어원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해 보지 않으신 분은 없으시겠지요? 술레가 있어서 사람이 숨으면 그 사람을 찾는 놀이지요. 그런데, 이 '숨바꼭질'은 원래 그런 놀이가 아니었었습니다.
'숨바꼭질'은 '숨 + 바꿈 + 질'에서 나왔습니다. 이때의 '숨'은 '숨다'의 '숨-'이 아니라 '숨 쉬다'의 '숨'입니다. 숨 쉬는 것을 바꾸는 일이니까 소위 자맥질을 말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이 물 속으로 숨고, 다시 숨을 쉬기 위하여 물 위로 올라오곤 하는 놀이지요.
만약에 '숨다'에서 '숨'이 나왔다고 보면, 동사 어간에 명사가 붙은 경우가 되어 국어의 일반적인 조어법에 어긋난 것이 됩니다. '비행기'를 '날틀'이라 해서 웃음을 산 일이 있는데, 이것도 '날다'의 어간에 '틀'이라는 명사를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국어의 구조에 맞지 않아서, 그 의도는 좋았지만,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남쪽의 방언에 '숨바꿈쟁이' 등의 말이 남아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잠수부를 뜻합니다. 말은 이렇게 그 뜻이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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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어 놀이 동참자를 부르면 여러 아이들이 그 손가락을 붙드는 것으로 숨바꼭질은 시작된다. 그렇게 참가자가 모이면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만들고, 술래가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대문 등의 기둥에 머리를 박은 뒤에, ‘하나’부터 ‘열’까지 여러 번을 센다. 그래서 빨리 세느라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 ‘하나 둘 세 네 다서 여서 일고 여덜 아호 별’이 된다. 이것이 후에는 음절수가 10인 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바뀌었다. 그동안 옆에서 보는 아이들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고 머리를 대고 있던 곳을 손으로 탁 치면서 ‘만세!’(일제 강점기 때에는 뜻도 모르던 ‘야도!’였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술래에게 들킨 아이가 다시 술래가 된다. 이것이 필자가 어려서 놀던 ‘숨바꼭질’ 놀이의 과정이었다.
이 놀이가 숨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에, ‘숨바꼭질’의 ‘숨’은 ‘숨다’의 어간 ‘숨-’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바꼭’을 ‘박꼭’의 변한 말로 알아서, ‘박’은 ‘박다’의 어간 ‘박-’이기 때문에, ‘숨박’은 ‘숨어 박혀 있다’의 뜻이라거나, ‘꼭’은 ‘곳’[處]의 변한 말이거나 ‘꼭꼭 숨어라’의 ‘꼭’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숨바꼭질’은 ‘순바꿈질’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순라를 바꾸어 나가는 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숨바꼭질’의 초기 형태가 ‘숨막질’이라고 하는 사실에서는 그 주장의 근거를 잃게 된다. ‘숨바꼭질’이 출현하기 이전의 초기 형태는 ‘숨막질’이었다. 16세기에 처음 등장해서 간혹 19세기까지도 나타나기도 한다.
녀름내 숨막질니(一夏裏藏藏昧昧) <번역박통사>(1517년)
숨막질(迷藏) <일사문고본 물명고>(19세기)
그런데 16세기의 초간본에 보이던 ‘숨막질’이 17세기의 중간본에는 ‘수뭇져기’로 나타나는데, 이 단어는 ‘숨 + 웃져기’로 분석될 것 같지만, 아직은 해독이 어려운 어형이다.
녀름은 수뭇져기 니라 <박통사언해>(1677년)
그리고 17세기에 와서는 ‘숨박질’로 나타난다. 이 ‘숨박질’은 19세기까지도 사용되었다.
숨박질(迷藏) <어록해>(1657년) 숨박질(迷藏) <物譜>(19세기) 숨박질(迷藏) <다산물명고>(19세기)
숨박질(迷藏) <진동혁 교수소장본 물명고>(19세기) 숨박질(迷藏) <재물보>(19세기)
숨박질(迷藏) <만송문고본 물명고>(19세기) 숨박질<국한회어>(1895년)
그러다가 19세기에 와서 ‘숨박금질’ ‘숨박곡질’ ‘슘박질’ 등으로 출현한다.
숨박금질 <물명괄(19세기) 숨박금질(迷藏) <진동혁 소장 물명류>(19세기)
숨박곡질(迷藏) <광재물보>(19세기) 슘박질다(匿戱) <한불자전(1880년)>
따라서 ‘숨바꼭질’은 ‘숨막질’에서 출발하여 ‘수뭇져기’를 거쳐 ‘숨박질, 숨박금질(슘박질), 숨박곡질’ 등의 세 가지 어형을 거쳐, 19세기에는 모두 다섯 가지 형태가 등장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숨막질’과 ‘수뭇져기’와 ‘숨박질’과 ‘숨박질’과 ‘숨바꼭질’은 서로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각각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말일까?
우선 ‘숨막질’을 보자. ‘숨막질’ 등의 ‘-질’이야 되풀이되는 동작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접미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숨막’은 무엇일까? ‘숨막’의 ‘숨’은 과연 ‘숨다’의 어간 ‘숨-’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원래 ‘숨막질’이 ‘자맥질’을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즉 물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행동이 ‘숨막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숨막질’과 동일한 의미인 ‘숨박질’의 한자풀이에서 알 수 있다.
숨박질(潛) <광재물보>(19세기) 숨박딜(潛) <유희 물명고>(19세기)
‘숨박질’은 ‘잠’(潛), 곧 물 속으로 자맥질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숨박금질’(숨박질 등)도 원래는 ‘자맥질’을 뜻하였다. ‘숨박질’은 ‘숨 + 박- + -ㅁ + -질’로 분석되는데, ‘박-’는 ‘바꾸다’의 뜻이며, 그래서 ‘숨’은 역시 ‘숨다’의 어간이 아니라 ‘숨쉬다’의 ‘숨’이다. 그래서 ‘숨바꼭질’은 그 의미가 ‘숨쉬는 것을 바꾸는 일’을 의미한다. 현대 국어에서도 헤엄칠 때에 숨을 바꾸어 쉬고 물 속으로 숨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숨바꼭질’의 뜻풀이에 “헤엄칠 때에 물속으로 숨는 짓”이 등재되어 있는 이유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며, 또한 방언형인 ‘숨바꼭질군’이 ‘잠수부’를 의미하는 단어로 남아 있는 것도 그러한 증거다. 그래서 ‘숨바꼭질’은 원래는 물 속에서 ‘술래찾기’를 하는 어린이 유희로서 존재했었는데, 이것이 지상에서는 오늘날의 ‘숨바꼭질’의 유희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물숨박질(潛)’(광재물보, 19세기)과 같은 용례까지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숨막질’의 ‘막’과 ‘숨박질’의 ‘박’은 무엇이며, ‘숨바꿈질’이 왜 ‘숨바꼭질’에서처럼 ‘꿈’이 ‘꼭’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숨막’의 ‘막’은 ‘막다’의 어간인 ‘막-’이 아니다. ‘숨막질’의 ‘숨막’을 ‘숨(을) 막다’에 해당하는 ‘숨막-’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접미사 ‘-질’은 그 앞에 ‘가위질, 계집질, 낚시질, 뒷걸음질’처럼 명사가 올 뿐, 동사의 어간은 통합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가능하지 않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숨질> 숨막질> 숨박질’에서 찾을 수 있다. ‘숨질’이란 조어법이 가능해서 ‘한숨질’(졍신이 아득 한숨질 눈물 졔워 경경오열야 <춘향전>)과 같은 표현이 가능한데, 이러한 ‘숨질’에 ‘-막-’과 ‘-박-’이 통합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명사와 ‘-질’ 사이에 ‘-막-’이나 ‘-박-’의 형태가 들어가는 예가 흔히 있기 때문이다. ‘뜀질’에 대해 ‘뜀박질’이 있으며, ‘다름질’(‘닫다’의 명사형 ‘다름’ + ‘-질’)에 대해 ‘다름박질’이 있으며 또한 ‘드레질’에 대해 ‘드레박질’이 있다. 그리고 ‘근두질, 근두막질, 근두박질’ 등의 용례는 흔한 예이다.
근두질다 <역어유해>(1690년) 군두막질(翻金) <일사문고본 물명고>(19세기) 근두박질(翻金) <다산물명고>(19세기)
근두박질(筋斗) <광재물보>(19세기) <물명괄>(19세기)
이와 같은 ‘막’과 ‘박’의 ㄱ 에 유추되어 ‘숨박굼질’이 ‘숨바꼭질’로 변화한 것이다.
16세기에 ‘숨막질’이, 그리고 17세기에는 ‘숨박질’이 등장하여 쓰이다가 19세기에 와서 이들을 대치하는 ‘숨박굼질’이 나타났는데, 특히 이 ‘숨박굼질’은 ‘숨바꿈질’의 의미였다. 수중에서의 어린이들 놀이가 육지에서의 놀이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의미로 변화한 것이다. 오늘날 아파트 숲에서 ‘숨바꼭질’ 놀이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어린이들에게 ‘숨바꼭질’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여지도 없어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마누라' 등의 어원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고,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는 대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까지 아시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지요.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던가요? 거기에 비해서 남자는 '바깥 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이고요. '부부'를 '內外'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여편네'는 한자어이지요.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께서 혹시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아니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를 뜻하는 '남편'은 도저히 그 뜻을 해석할 수 없지요. '여편네'와 '남편'은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예를 들면 '주인 마누라' 등) 쓰이고 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이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판사나 검사를 특히 '영감님'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원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보양이지요?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입니다.
왜 늙지도 않은 남편을 '영감'이라고 불렀을까를 의심하셨던 분은 이제 그 의문이 풀리셨을 것입니다. 지난 날의 유행가 중에 '여보! 마누라, 왜 불러?' '영감, 왜 불러?' 하는 가사가 기억이 납니다.
'총각'의 어원
국어에서는 남녀를 나타내는 말이 무척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 '총각'이란 한자어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처녀'는 그 단어 속에 '女'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아마도 '총각'은 그 어원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한자인 '總'은 지금은 '다 총' 등으로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입니다. '角'은 물론 '뿔 각'이고요.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머리를 '총각'이라고 했었습니다. 이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하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마치 어린 소년을 높여서 부르는 것처럼 생각한 분은 안 계신지요? 여기에서 '더벅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생겼지요. 어떤 사람은 '떡거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쓰는데, 이때의 '떡거머리'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사전에도 '떡거머리'란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연유해서 생긴 단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총각김치'란 말입니다. '총각김치'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 손가락 굵기만한 어린 무우를 무우청째로 여러 양념에 버무려 담은 김치를 말하는데, 그 어린 무우가 마치 '총각'의 머리와 같은 모습을 닮아서 생긴 단어입니다.
그런데 처녀들은 그 '총각김치'란 단어 자체나 또는 실제의 김치를 기피하곤 했었습니다. 그 총각김치가 마치 총각의 생식기를 형상하는 것에서 생긴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니, 처녀들은 이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총각김치를 드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우두머리'의 어원
지금은 '우두머리'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마치 '두목'이란 한자어처럼 '도둑의 괴수'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지요.
그러나 옛날에는 '우두머리'란 단어는 비칭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칭은 아니었습니다.
'우두머리'는 한자어인 '爲頭'(할 위, 머리 두)에 고유어인 '머리'가 합쳐진 합성명사입니다. '위두'는 보통 '위두하다'라는 형용사로 쓰이어서 가장 위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위두머리'의 '위'가 單母音化되어 '우'가 됨으로써, 오늘날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박쥐'의 어원
'박쥐'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짐승이지요. 우선 징그럽다고 하고, 또 밤에만 나돌아 다녀서 그런지, '남몰래 밤에만 음흉하게 일을 하는 사람'을 욕할 때, '박쥐 같은 놈'이라고 하지요.
이 '박쥐'에서 '쥐'는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박'이 붙었으며, 또 그 '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쥐'는 원래 '밝쥐'였지요. 아마도 '눈이 밝다'는 뜻으로 '밝-'이 쓰인 것 같습니다. 박쥐가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포착하여 방향을 조정해서 야간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니까, 그 전에는 '눈이 밝은 쥐'로 이해할 만도 하겠지요.
'고주망태'의 어원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고주망태'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셨다'고 말하지요. 이 고주망태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고주'를 '苦酒'(쓸 고, 술 주)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지요. 그러나 '고주'는 '쓴 술, 또는 독한 술'이란 뜻을 가진 한자어가 아닙니다.
'고주'는 고유어입니다. 원래는 '고자(아래 아)'이지요. '고자' 란 '고조'라고도 썼는데, 그 뜻은 누룩이 섞인 술을 뜨는 그릇을 말합니다. '망태'는 '망태기'와 같은 것으로, 무엇을 담는 그릇을 말하기도 하고, 전혀 쓸모없이 되어버린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주망태'란 술통을 통째로 마신 것처럼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