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 / 박선애
예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은 있었다.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나도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재주를 타고 난 것 같지는 않아 노력이라도 해야겠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한 번 써봐야겠다고 시작은 하지만 몇 줄 쓰고 나면 막히기 십상이고, 그러면 금방 그만 두었다. 내가 이렇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자주 쓰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의 글쓰기 단원은 물론 생각을 끌어낼 만한 일이 있으면 글을 쓰게 했다. 문장이 어설퍼도 아이들의 솔직한 글들을 읽으면 마음이 꽉 차올랐다. 나는 글 한 편 제대로 못 쓰면서 아이들에게는 쓰라고 하는 교사였다.
올해 학기 초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교육정보원에서 글쓰기 연수가 있는데 작년에 보니 참 좋은 것 같으니 한 번 해 보라고 권하셨다. 올해 학교를 옮겨서 만난 교장 선생님은 교육정보원에서 계시다 오신 분이다. 아직 낯설고 어려운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하기에는 남 앞에 글을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특히나 국어 선생이라고 하면 글 좀 쓸 거라고 생각할 텐데, 나서서 창피 당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이미 담당 장학사님께 말씀해 놓으셨다고 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신청을 했다.
연수 지명이 되고 나니, 한 달에 한 편의 글을 써야 하는 사전 과제가 나왔다. 4월 글감은 ‘가족’이었다. 그나마 친근한 소재여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미루다가 마지막 날에야 써서 올렸다. 마침 병중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여서 아버지 이야기를 썼다. 서툰 글이지만 교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 ‘아버지께 읽어 드리세요’라는 댓글을 써 주셨다. 누워 계시는 아버지께 읽어 드렸다. 들으시고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당신이 자식에게 어떻게 기억됐는지 알게 되어 행복하셨을 것 같다. 남매들 카톡방에도 올렸더니, 서로 아버지와의 따뜻했던 추억을 꺼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나누는 훈훈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한 달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발인 예배에서 동생이 내 글을 대신 읽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남편이 ‘그 글을 들을 때,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네, 나도 많이 울었네.’라는 말을 했다.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약간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후의 과제는 하지 못 했다. 연수를 받으러 가 보니 내 글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두 편의 글을 더 올렸다. 그 글로 수업을 받으며 부끄러움과 충격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글쓰기와 관련해서 스스로 판단하기는 내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만한 창의적인 생각과 새롭고 신선한 표현은 못 해도 문장은 정확하게 쓰는 줄 알았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같은 말 반복하지 마라‘고 역설하고 지적했는데, 내가 중복된 표현을 많이 하고 있었다. 띄어쓰기도 대충 넘어가고 있었다. 밑줄과 교정 부호와 바꿔 놓으신 말 등 교수님의 연필이 지나간 흔적마다 내 글쓰기 실력의 실상이 드러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연수 기간 내내 몹시 민망하였지만 바닥까지 보이고 나니 남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지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래서 평생교육원 글쓰기 반에 등록을 해서 공부하고 있다. 어렵다. 글감을 주시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고, 쓰면서도 이것이 글감에 맞는 내용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또 수업 시간에 내 글로 공부를 할 때면 여전히 창피하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글쓰기 공부는 계속 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혼자 글을 쓸 때는 막히면 바로 그만 두고 말았는데, 여기서는 어쨌든 일주일에 한 편은 써야 한다. 말이 잘 되든 안 되든 완성은 하게 된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스럽다. 또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번에만 해도 자화상을 쓰기 위해 내 모습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봤다.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되었다. 더 나은 문장으로 고치는 것은 어렵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글을 정확하게 쓰려고 사전을 찾아보고, 문장을 다듬고, 쓰고 난 후에 여러 번 읽어 보고 고쳐 쓰는 등 공부하면서 변하는 내 모습이 좋다. 오랜만에 맛보는 배우는 즐거움에 신이 난다.
글쓰기 교육의 좋은 점, 필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어교사로서 글쓰기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며 방법에 대해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감동 시키는 내용을 찾아 쓰는 것은 강조한 데 비해 정확하게 쓰는 것은 가볍게 여기게 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문장을 정확하게 쓰는 공부를 해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
첫댓글 어제 선생님이 쓰신 '아버지' 글을 읽었는데, 시골에 아버지가 생각나서 뭉클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격려까지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