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주일)날 산행이 있는 날은 나를 정신없이 뛰게 한다. 더군다나 강북 쪽에 산행계획이 잡히면 그렇다. 오늘도 새벽 5시에 기상, 첫 예배를 본 후 남몰래 교회를 빠져나와 차를 집에다 두고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 전철역 까지 뛰었다. 땀이 범벅이다.
그래도 종화 보다는 빨리 갈려고 했는데, 오늘은 종화 친구는 마나님에게 사정하여 교회에 가 예배도 않드리고 출발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지하철을 탔다. 연신내역 3번출구에 나오자 마자 기다리던 산우들이 바로 출발하자고 한다. 거의 정시에 도착했지만, 볼일을 본다고 내가 꼴찌다.
연신내역(3번출구)에서 나와 연서시장 앞에서 72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 10여분 타고가니 9번째 정류소인 하나고·삼천사·진관사입구에서 내렸다. GS마트에서 막걸리를 사서 하나씩 배분받아 짊어지고, 은평한옥마을(대지 60평, 건평 85평의 가격은 14억이라 함)을 지나자마자 삼천사로 가는 길은 서울둘레길로 좌측 소공원쪽으로 가야만 하는데, 몇몇 산우들이 직진을 해 진관사 입구로 가는 바람에 종화 친구가 사전에 답사를 했다는 책임으로 그 분들을 모시고 온다.
계곡 옆의 아름다운 은행나무숲, 소공원, 둘레길 일부를 지나 심천사로 가는 길 좌우에 임시로 만들어진 지저분한 식당들과 주차장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국립공원이라고 하지만, 식당이 있는 곳은 사유지라고 한다. 어떻게 정리를 할 수가 없는지...?
계속 오르니 삼천탐방지원센터가 있고, 다시 약 10여 분을 더 올라가니 삼천사가 나온다. 본격적인 산행들머리인 시작점이지만, 모다들 등산의 활발한 기개는 보이지 않고, 산보하듯이 물도 한 모금 마시며 쉬엄쉬엄이다.
배낭속에 넣어 짊어지고 온 막걸리와 간식이 무겁다고 소비를 위해 앉았다. 자두, 복숭아, 삶은 계란, 빵 등으로 막걸리 한 잔씩을 하니 가방은 가벼워졌으나 술기운도 약간 돌고 하여 더욱 쓸데없는 말만 무성하고 행동은 더디게 된다.
그래도 착한 산우들이러니 하고 올라가니 비봉과 부왕동암문의 갈림길이 나온다 비봉쪽이 아닌 왼쪽길을 따라 선두에 선 종화, 윤환, 재홍이가 계속 앞질러 올라간다. 오른쪽에 흐르던 계곡물은 얺보이지만 종화가 어제 답사를 해 알아본 알탕지(?)가 있다고 거기서 등목할 거라고 각개전투하는 병사들마냥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물줄기를 보질못해 희망을 잃은 후미그룹은 아예 선두를 따라서 올라오지도 않는다.
불과 2~3분 거리인데... 중간에 위치한 문형, 두 나씨 산우들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은 올라오라고 전화를 해도 처음엔 받는 듯하더니 나중엔 아예 받지도 않는다. 여기는 물은 없어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그런대로 괜찬고, 넓은 곳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후미그룹의 산우들은 작당을 한 것 같았다.
'지들이 내려오겠지'라고... 낙오한 병사들은 총살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만하다. 후미그룹 산우들은 진오, 한, 양기, 경식, 윤상, 천옥 회장님까지 6명이다. 할 수없이 문형 친구가 모시려 가니까 따라서 올라온다. 며칠을 못 본 산우들을 만나듯이 반가웠다. 알고보니 후미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은 중간지점에 집합하여 막걸리와 남은 간식으로 배고품을 달래었다. 그리고 준비한 동반시(이형기 시인의 ‘호수’)는 때를 맞춰 내가 읊었다.
"호수" /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 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이형기(李炯基, 1933~2005)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대표적인 詩로는 '낙화', '죽지 않는 도시'등이 있으며, '적막강산', '그해 겨울의 눈'등의 시집을 남겼다. 또한 "詩란 무엇인가"라는 詩論을 남기기도 하였다.
"호수"의 詩는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는 詩이다. 미워하고, 들끓고, 원망하고, 좌절하는 자세가 아닌 호수처럼 기다려야 한다. 차갑고 슬프게 기다리는 일은 대부분 運命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눈앞에 있다면 뭐하러 기다리겠는가?
손에 잡히지 않고 언제 올지 모르기에 기다리는 것 아닌가. 기다림이란 철저히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호수 같은 마음으로 혼자 하는 일. 그것이 기다리는 일이다. 나무처럼 무성했던 靑春을 뒤로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참으로 차갑고도 슬프다.
우리 산우들은 이 무더운 7월말의 폭염 속에서 전날 다녀온 종화 친구의 사진 속에서 봤던 푸르고 푸른 천지같은 호수를 찾아서 발이라도 담그려 했건만, 육체가 무디어서 가슴속에만 고요한 호수를 생각한다. 이 무더운 여름 날 북한산 삼천사의 한 계곡에서...
하산 때에는 쉬임없이 잘 내려간다. 숲을 지나오니 머리가 벗겨질 만큼 뜨겁다. 역시 산속의 숲이 최고다. 물이 조금 있어 산객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잠시 세족을 한 후 올랐던 길을 따라 진관사입구로 내려왔다. 하나고 옆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역(뒤풀이장소)에 까지만 가면 된다.
어떤 어르신 한 분은 연신내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 타겠다고 하신다. 60대의 고집은 황소보다도 세다. 옆에 탄 한 할머니도 자기 남편도 똑 같다고 하면서 '이놈의 나이가 문제'라고 투덜대며 한탄을 하신다.
뒤풀이장소인 은하식당에 도착하니 민어매운탕이 끓고 있었다. 한 좌석엔 마나님의 반대로 산에 가질 못한 일화 친구가 와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기꺼이 친구들을 보려고 뒤풀이장소에 까지 오신 일화 친구가 고마웠다. 게다가 협찬금(15만냥)을 내어 놓으며, '평소에 같이 산행을 못가서 미안하다'라고 거듭 죄송함을 표한다.
먹을만큼 먹었는데, 2프로가 부족하신지 냉면을 시켰는데, '은하식당'에서는 냉면이 안된다고 하여 옆 골목의 '토속사랑'이란 메밀 전문식당으로 이동을 하잔다. 저녁식사까지 해결을 한 것은처음이지만 메밀만두와 냉면·국수 맛이 제법 괜찬았다.
산우들아! 오늘같이 무더운 날, 산행에 동참하여 행복했습니다. 아마 금년 여름도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지낼 것입니다. 까짓것 고집 좀 부리면 어떻습니까. 건강하면 아무런 탈이 없겠죠.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씨이지만 건강과 함께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