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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아이를 데려 왔을 때, 이 앤 누구죠? 하고 말했어요. 아이는, 먼 별나라에서 온 외계인 같았죠. 아이에게 나는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았죠. 다만, 낯설고, 어색하고, 힘겹고, 두렵기만 했어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멜로디가 끊긴다. 진은 다시 모빌을 흔들어준다.)
진: 간호사가 불러서 가보니 아이는 울고 있었어요……. 엄마가 보고싶대요 한 엄마를 원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예요. 귀저기를 갈려고 하는 순간, 나는 보았어요. 배꼽. 아이의 배꼽을요. 보라색 소독약이 묻은 길고 검은 배꼽의 상처, 배꼽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어요……. 이 애도 상처를 받았구나. 나만 아파한 게 아니었어. 이애도 혼자 아파하고 있었던 거야. (사이.) 우리는 함께 고통을 치루었구나. 세상에 태어난 댓가를 치루듯이 배꼽의 상처를 받은거야……. 내가 예전에 받은 상처의 흔적을 간직하듯이 태어남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하니. 이제 그 첫 단계로 너는 배꼽의 상처와 싸우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사이.) 네 아픔을 엄마는 이해해. 곧 사라질 고통이니 조금만 참아.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흑진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죠. 얼굴을 익히려는 것인지 눈동자에 나를 담고 꼼짝하지 않았어요. (진은 꼼짝 않고 관객을 바라본다.) 모든 것을 맡기는 무방비한 상태로 두개의 눈동자가 나를 봅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어요. 누가 뭐래도 이 애는, 내 몸에서 나온, 아이라는 사실을요. 아무도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굳이 천년만년 종이에 기록하지 않아도 말이지요 그러니 굳이 자취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는 거지요. 아이 얼굴을 보면서 불안하게 자신의 닮은 점을 찾는 그를 보았습니다. 왜 그는 탐색하듯이 아이 얼굴을 훑어보는 걸까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발가락이 닮았네?……. 가여웠습니다. 이상하게도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아이 같아서 미안했는지도 모릅니다. ……. 우리는, 다시 시작된 걸까요? 그 사람은 한달 만에 여행객들과 네팔로 떠났어요. 우리의 관계가 변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다만, 비로소 지금에야 그를 놓아준다는 사실이죠. (사이.) 나는 남자에게 열등감을 가져야 한다고 세뇌 당했는지도 몰라요…….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은, 서로서로 느끼는 지도 몰라요. (모빌의 멜러디가 끊긴다.) 너무 오랫동안 깊은 늪에 있었어요. 아이가 바로 나를 끌어올렸어요. (검푸른 조명으로 어두워진다.) 무방비 상태의 어린 시절 상처는, 내 탓이 아니야. 나는 너무 오래, 나를 비난했어. 내가 태어난 것까지, 나를 비난해야 했지. 내 책임은 처음부터 없었어! 죄책감에 시달릴 이유도 없었어!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를 용서해. 나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와진 거야. 이제 다시는 나를 지배할 수 없어!
(진은, 가리개 뒤에 앉은 진分을 향해 앉는다.)
진?} 너가 죽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얘기할까? 열 일곱 시간의 진통을 견디면서 내가 누굴 불렀는지 아니?
진分: 누구지?
진: 엄마
진분: 엄마?
진: 엄마!
진분: ……. 엄마…….
진: 내 울음소리는 서른 세살의 여자가 우는소리가 아니었어. 내면에 숨어있는 아이. 자라지 않은 채 늘 울고 있었던 아이. 너무 일찍 늙어 시들어버린 아이, 바로 너가 우는 소리였어.
진분: 누구?
진: 길 잃은 아이. 바로 너
진분: 바로 나란 말이지?
진: 그래, 나는 너야.
진분: 너는 나야?
진: 그래, 너는 나야.
진분: 내가 너라면…….
진: 내가 너라면?
진분: 보내줄 거야.
진: 보내준다고?
진分: 날 잊을 수는 없겠지? 지 잊을 수는……. 없겠지.
진분: 넌, 나를 지을 수가 없어
진: 누구나 과거를 지을 수는 없지. 다만,
진分: 다만, 뭐지?
진: 새로 시작할 용기는 가질 수 있어.
(진과 진分사이에 긴 가로선 조명이 비친다. 진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무대조명은 푸른 조명으로 어두워진다. 가리개가 서서히 걷혀서 거울이 드러난다. 거울 앞에 진分이 앉았던 의자가 있다. 의자에는 진分이 입었던 원피스가 사람처럼 앉아있다. 진이 원피스를 목에 댄 채 의자에 앉을 때, 무대 앞쪽에서 짧은 숏컷의 진分이 등장하여 노트북 앞에 앉는다. 진分은 마치 깊고 깊은 심연의 바닥을 내려다보는 듯 꼼짝 않는다. 진分은 화면의 글자를 읽는다.)
진分: 나는 여러분을 봅니다. 여러분 속에 숨어있는 작은 아이 행복한 아이 외로운 아이 슬픈 아이 상처 투성의 아이 소리 없이 우는 아이 …….
(진이 앉은 의자가 서서히 돈다. 아주 작게 음악이 흐르고, 진은 고개를 떨구고 R 짝 않는다. 조명은, 검푸른 물 무늬로 변하면서 어두워진다. 그 속에 한 점으로 사그라
漢江(한강)은 흐른다. (二十二(이십이)경) 柳致眞(유치진) 作(작)
許圭(허규) 演出(연출)
나오는 사람들
정철 (안화백의 문하생 二十四(이십사)세 <벽돌>이란 별명)
안희숙 (六.二五(육.이오)직전에 정철과 약혼했던 여대생, 二十三(이십삼)세)
최정애 (안화백의 부인, 납치 미망인, 희숙의 올케, 三十五(삼십오)세)
달이 (최정애의 어린 딸)
미쓰 클레오파트라 (여자 소매치기 三十(삼십)세)
미꾸리 (직업적인 소매치기, 클레오파트라와 동거, 三十八(삼십팔)세)
소장 (전재민 구호소란 간판을 붙인 협잡배 三十五(삼십오)세)
로오즈매리 (희숙의 여고동창 본련<백련>, 소장을 숭배하는 땐스홀가수)
삼룡 (전재민구호소 사동)
성경할아버지 (예수교 노인)
부산 손님 (모리상 三十(삼십)세)
똘만이 (부산손님의 부하)
두더지 (다리 병신)
정보원
점장이
슈우샤인보이
철의 종제
땐서 A. B. C. D.
기타 외국 군인들. 악사. 지나가는 사람들 등등
환경
수도 서울을 재침한 공산군이 UN군에게 격퇴당한지 얼마 안된 四二八四(4284)년
(一九五一(1951)년) 사월 초, 아직 추울때.
시가전으로 폐허화 된 서울은 바리케이트, 가시, 철망 등에 묻혔고, 공산군이 버리고 간 각종 포, 탄피는 물론 시체까지도 노변에 방치 되었다.
이것들을 치우지 못할만큼 아직도 전선은 바쁜 것이다.
노변가옥들은 가옥들은 모두 파괴되었고, 성한 집일지라도 탄흔을 입지 아니한데가 없다.
서울의 한 외곽인 미아리고개 서 편은 아직도 적의 준동지대다.
야간이면 때때로 UN군은 그 상공에 조명탄을 밝힌다. 그리고 거대한 포문을 연다. 이 포는 서울 시내에서 쏘기 때문에 그때에는 시민들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전화를 사전에 피하려는 초조한 마음은 그들로 하여금 지하로 숨게 하고, 때로는 한강를 건너게도 한다.
이 연극은 서울 동대문시장 부근에서 벌어진다. 당시 서울 장안은 인적이 끊어져 있어 명동 거릴지라도 대낮에 지나다니기가 무시무시 했고 종로 네거리 조차도 호젓했다. 그러나 동대문 시장 부근만은 제법 사람이 모였다.
장이 섰기 때문이었다. 이 장은 잔유 서울 시민들의 유일한 생명천이었다.
혹자는 이 장에 의거해서 돈 벌이를, 혹자는 이 장에 써 장을 봐 먹음으로써 그 생명을 부지했기 때문이다.
무대
나자로 된 두 한길.
하나는 동대문 시장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 <페이트>칠한 매춘굴로 통했다.
이 두 한길에 끼인 반파괴된 옥상이 있는 벽돌 이층 건물과 이 두 한길 건너편에선 양식 목조 건물과 한국식 고옥.
양식 목조 건물에는 소매치기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가 동거하고 있고, 한국식 고옥에는 전재민 구호소란 간판이 붙었다.
그 창과 문은 전당포처럼 철창으로 굳게 무장되었음이 눈에 뜨인다.
중앙 벽돌 건물의 이층에는 안희숙과 그 올케인 최정애가 그의 딸과 같이 들었고 그 아랫층엔 성경할아버지가, 그리고 방공호에는 두더지가 그의 어린것과 같이 산다.
성경할아버지는 이 연극의 진행중 항상 양지에서 두꺼운 돋보기를 통해 성경책을 읽고 앉았다. 그래서 이 별명을 얻은게다.
이들은 누구나 시장을 뜯어먹기 위해서 시장 부근의 빈 집들을 임시로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길 가에는 바리케이트, 가시철망, 호, 흐트러진 벽돌 등 격전지였음을 연상 시킨다.
장: 一(일). 한길
멀리서 울려오는 포소리와 기관총 소리에 막이 열리면 캄캄한 무대.
포탄 가까이 날아와 떨어진듯 땅을 뒤흔들며 큰 건물이 허물어지는 소리 난다.
한 구석 방공호에서 자던 두더지, 아이를 안고 무대 중앙으로 기어나와 갈바를 몰라 부들 부들 떤다. 또 한방의 포탄 휭, 비단을 찢는 소리를 내며 머리위를 난다. 가까운 건물에 적중, 또 와르르 허물어지는 소리 난다. 두더지, 고함을 치고 도망해 버린다. 포소리 조용해지며 무대 차츰 밝아진다.
사월 초순의 어느 추운날 아침이다.
삼룡은 <영양본위 전재민 구호소 직영 식당>이라고 써 붙인 야대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쓰레기 식료품을 가마에 끓이면서 명랑한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
아이: 어머니? 날 장가 보내주우
뒷집 아가씨: 시원스런 그 눈매, 오늘도 날 보고 방그레 웃었어요. 이자식 주착아, 너 그 무슨소리? 귀걸이, 핸드빽, 나이론 치마, 보는대로 조르는 계집애의 그 얌치, 부지런히 버얼께, 하루를 두곱으로……. 그러면 일 없어요. 그까짓것 넉넉해 아니 어머니 그 눈매가 이뻐요.
삼룡: (외친다.) 싸구려 쩔쩔 끓는 꿀꿀이 죽이 싸구려.
희숙: 자기 처소에서 나타나 무대 중앙 적당한 곳에 담배파는 목판을 차려 놓는다. 야대 앞으로 나아가 죽을 사먹는 등이 꼬부라진 늙은이 하나, 그는 성경할아버지다. 두더지 끈으로 어린것을 이끌고 힘없이 들어와 전재민구호소로 간다. 빈집에서 괘종을 훔쳐 온 게다. 때마침 구호소 소장 나온다. 말쑥하게 차린 부산 손님과 그의 똘만이 따랐다. 이 두 사람의 옷차림은 딴 세상 사람 같다.
소장: (부산 손님에게) 그러면 최후로 한마디 하겠오. 그 값으로 저 물건을 가져갈려거든 가고 싫거든 그만두슈.
두더지: (괘종을 소장에게 내밀며) 소장님, 이거를 사줍세.
소장: (괘종을 받고 지전 한 장을 던져준다. 두더지 그 돈을 UN죽 한그릇과 바꾸어 어린것과 나누어 먹는다.)
부산손님: 이것봐요. 시계 하나에 UN죽이 한그릇. UN죽이란건 부대에서 쓰레기를 공짜로 얻어다가 끓인것, 이러니 저 모아놓은 물건이란건 모두 공짜가 아니냐 말요.
소장: 에케 여보! 그 쓰레기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몇 다리를 거치는지 알기나 허슈?
부산손님: (지전 한장을 점장이에게 내던지고 운수보는 야바위판을 돌려 보드니 선뜻) 맡았소! 그 값에! (똘만이에게) 치러!
똘만이: (돈 한뭉치를 소장의 옷 밑에 은밀히 넣어주며) 부대에서 받은거니까 틀림없을 거요. 그래도 세 보슈.
부산손님: 그대신 한가지 청이 있소. 혹……. (소장을 한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귓속말을 한다.)
소장: (심각한 얼굴로 변하며) 음 뭐가 좋을까?
부산손님: <다이야>반지 같은게 있었으면 이를데 없겠는데…….
소장: 그런게 쉬워야죠. 더구나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이란 보시다시피 끼니를 걱정하는 죽데기들 뿐인걸.
부산손님: 아따 구문은 두둑히 낸다는데.
손님: 노력해 보죠
부산손님: 꼭 믿겠소. 그리고 저 물건은 이따 실어가리다. 가자. (똘만이 데리고 퇴장. 점장이 들어와 운수보는 야바위판을 차려 놓는다.)
삼룡: 옵쇼. 옵쇼. 쩔쩔 끓는 꿀꿀이죽이요! (하고 떠들썩하게 외친다.)
소장: (돈뭉치를 어찌할 바를 몰라) 이걸 어디다 두나? (하고 쩔쩔매더니 자기의 처소로 살짝 들어간다.) 아까 들어와서 외국 군인의 구두를 닦고 있던 슈우샤인보이, 돈을 받아 야대위에 놓는다.
삼룡: <예, 고맙쉬다> 하고 죽을 한그릇 떠 준다.
희숙이, 사장쪽을 바라보고 섰다. 삼룡은 담배 목판을 갖다 감춘다. 그래도 희숙은 모른다. 이번에는 희숙의 손에 든 책을 빼앗는다.
희숙: (깜짝 놀라)아니 이자식이…….
삼룡: 거기 뭐가 있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거야?
희숙: 이리 줘 (책을 빼앗으려 한다. 그 책의 표지에는 정 철 지음. 수상록이라 썼다. 그의 애인 정철이가 六.二五(육.이오)전에 써 보낸 러브레타를 모아 놓은 것이다.)
삼룡: (수상록을 펴서 한귀절 읽는다.) 우이동 멀다더니 당신과 걷는 길은 지척이구려.
희숙: 저런!
삼룡: (더욱 과장된 제스처를 쓰며) 아아. 사랑이란……. (막힌다.) 이게 무슨 글짜야? 한문 아냐? 사랑-이-란…….
희숙: 정말 안 줄테야? (쫓는다.)
삼룡: 자아 빼았아 보지 (놀리며 달아난다.) 전재민 구호소 소장 자기 처소에서 나온다.
소장: (이 광경을 보고) 이 자식아!……. (벽력같은 소리에 삼룡 덜컥 선다. 희숙 수상록을 획 빼앗아 간다.) 헹 제 주제에 수캉아지라고……. 이자식아 여긴 이래봬도 전재민을 위해서 신성한 구호사업을 하는데야. 그리고 네놈은 그 직원이구. 그런데 그 사명을 망각하고……. (하면서 머리를 쥐어 박는다.)
슈우샤인보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솥째로 들어다 놓고 죽을 퍼먹으려다가) 아이 뜨거워! (하고 비명을 지른다.)
소장: 저런……. (하며 구두닦이 목판을 밟는다.)
슈우샤인보이: (구두닦이 목판을 잡아빼며) 아저씨이.
소장: (더 힘주어 밟으며) 쌔벼먹은 죽값부터 내놔라.
소장: (더 힘주어 밟으며) 쌔벼먹은 죽값부터 내놔라.
슈우샤인보이: 한숟가락두
소장: 딴소리 하믄 이 목판 팔아 넘긴다. 다른놈 한테.
슈우샤인보이: 정말 미쳐 한숟가락두 못 떠먹었어요.
소장: 그럼 좋다……. (목판을 야대위에 놓는다. 슈우샤인보이, 할수없어 지전 한장을 꺼낸다. 그제서야 구두닦이 목판을 내던져 준다.)
슈우샤인보이: (목판을 지고) 깟뎀……. 싸나가 뱃치……. (깔깔거리며 달아난다.)
소장: 저눔이! (삼룡이가 내주는 돈상자를 쏟아 놓고는 모인 돈과 죽솥에 남은 죽을 비교해 보더니) 죽이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매상고가 겨우 이거? 손님들한테 죽을 또 가뜩 가뜩 떠준 거로구나?
삼룡: 소장님이 접때 사발에 철철 넘게 떠 주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소장: 이런 맹추. 손님들 앞이구. 그리고 난 주인이니까 그런 소릴 했지.
삼룡: 그럼 그것도 또 공갈이었어요?
소장: 이눔아. 네놈은 고용인야. 주인이야 무슨 공갈을 치든 네놈은 고용인답게 안달을 부려야지. 그래야 수지가 맞잖어? 내 소릴 알아듣겠냐?
삼룡: (부루퉁해 가지고)……. 야
소장: 이런 융통성 없는건 첨 봤어. 첨 봤다니까. 이때에 매춘굴에서 땐서들 손에 타월과 대야를 들고 나온다. 목욕 가는 길이다.
땐서 A. B. 뭘 야단이슈. 소장님?
소장: (당황하여)……. 음 죽을 되도록이면 많이 꾹꾹 눌러서 철철 넘게 떠주랬지. 모두 주우리고 있으니까…….
땐서들: 암 그래야죠. 정말 다르셔 자선가는 호호…….
땐서들 시장쪽으로 모두 퇴장. 여자 소매치기인 클레오파트라.
조금전에 나타나 자기의 동료인 미꾸리를 기다린다. 그러나 미꾸리는 그가 기대하고 있는 반대쪽 방향에서 쫓긴듯 초조히 들어 온다.
미꾸리: 사고다. 짜브(나으리)가 달렸다.
클레오파트라: 쉬……. (하고 눈짓) 미꾸리 얼른 벽에 붙어 선다. 정보원이 나타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정보원에게 눈을 찔끔하며 빙그레 웃어 보인다.
정보원의 퇴장을 기다려 미꾸리, 클레오파트라의 같이 양식 목조건물의 현관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로오즈매리, 매춘굴 골목에서 나타난다.
삼룡: (큰소리로) 자. 맛좋은 꿀꿀이 죽이 한그릇에 십원야! 꿀꿀이 죽이 막 나간다.
로오즈: 이것 또 맡아주슈 (하며 돈뭉치를 내놓는다.)
소장: (세어보며) 오오. 딸라두 섞였구……. 간밤에 누구 하나 물었군?
로오즈: (뾰로통해지며) 창피스럽게 그따위 더러운! 그 돈 도로내요!
소장: (변명하듯) 본인 역시 로오즈 매리를 약간 넘겨다 보고 있으니까 자연 관심이 쏠려서 한 소리야. 노하지 마아.
로오즈: 정말 이눔의 직업을 그만둬야 할 텐데……. 요즘 부산의 방값이 어떻다죠?
소장: 말 마아. 나들이 오르는게 집값이래. 피난민 사태에…….
로오즈: 큰일 났는걸. 여기 더 있다간 아주 패찬 똥갈보로 전락하고 말겠어.
소장: (쪽지에 도장을 찍어주며) 자아 영수증 (손가락으로 숫자를 지시해 보이며) 그동안에 믓게 본전이 이거고 이자가 이거 오오케?
로오즈: 음. (고개를 끄떡해 보인다.)
희숙: (로오즈 매리를 보고) 얘. 백련아. 어떻게 된 일이냐? 아직 철이가 안뵈는구나.
로오즈: (이상하다는 듯이) 그럴리 없는데
희숙: 분명히 철이였지?
로오즈: 암. 나하곤 국민학교 동창인데 못 알아 볼리 있어?
희숙: 어디 있더라구?
로오즈: 과일 도매상 있잖어? 거기서 짐부리고 있었어.
희숙: 내가 한번 가보고 와야겠군.
로오즈: 가만있어. 저기! (손가락질 한다. 철 두리번 거리며 등장) 아니 어딜 돌아다뉴?
철: 어디야? 어디랬지?
희숙: (철에게 가까이 가며) 이게 누구야?
철: (희숙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오오. 희숙이 (덥석 껴안으려 한다.)
희숙: (돌아서며 얼굴을 싸고 느낀다.)
철: 여기 있는줄을 모르고 저쪽만 찾아 다니었지.
로오즈: 호호호……. 죽자 살자하던 약혼자끼리 이 전투지구에서 만나다니 이게 바로 활동사진이 아니고 뭐냐?
철: 고마워 백련이.
로오즈: 난 여기선 로오즈 매리라고들 불러. 저 땐스홀에서 벌어 먹고 있으니까. 이따가라도 또 봐요. 희숙아 뭐가 부끄러우냐? 라브씬 계속해라 호호호……. (하고 퇴장)
철: 희숙이, 눈물 씻어. 역시 옛말이 옳구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헌데 이게 무슨 일야? 희숙이가 예서 담배장사란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인데…….
희숙: 철인 어떻게 돼서 여기서 노동을 하고 있지?
철: 서울에 기어든지가 오늘이 사흘이야. 물론 목적은 희숙이의 소식을 알자는 거였지. 희숙이 집엘 난 먼저 찾아 갔었지. 아주 싹 쓸었더군. 거긴 물어볼래도 지내가는 개미새끼 한마리 있어야지. 그래 단념하고 노자를 벌어 가지고 남쪽으로 가려던 참야. 희숙일 찾아, 희숙인 여전히 이쁘군. 헌데 왜 이렇게 혈색이 나뻐? 퍽 말랐구…….
희숙: 누구나 다 그렇지. 이 난리엔…….
철: 왜 피난가지 않고 아직 송장 냄새가 가시지 않고,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 전투지구에 머물러 있어? 윙윙거리는 저 소리엔 어떻게 견뎌?
희숙: 예라도 있었으니까 철이를 만나게 된것 아냐?
철: 날 기다렸군?
희숙: 음.
철: 아아 멋이다.
희숙: 철인 낙동강 전선에서 어떻게 살아났누?
철: 희숙인 거기서 어떻게 살아났어?
희숙: 얘기 보따릴 털어 놓으려 들믄 하루 이틀두 모자라.
철: 나도 그래. 이 가까이 어디 조용한덴 없나? 좀 앉아서 얘기 해야지.
희숙: 저 이층으로 올라갈까? 저기가 비었기에 임시로 들어있어.
철: 하던 일 치워 놓고 올께.
희숙: 그럼 예서 불러, 그새 나도 이걸 걷어치울테야.
철: (발끝을 돌리며) 음.
장: 二(이). (양식 목조건물의 실내) 클레오파트라는 침대에 드러 누웠다.
미꾸리: (편지를 읽다가 휙 일어나며) 오늘은 왜 이렇게 재수가 없어? 짜브한텐 쫓겼고 쌔빈것은 헛것이구……. 에이 참……. (실내를 왔다 갔다 한다.)
클레오파트라: 저렇게 달달거리니까 복이 달아 날 밖에--
미꾸리: (벽에 붙여 놓은 <그라프> 를 가리키며) 언제 목표액에 도달하는냐 말야. 큰 새낀 중학엘 들다고, 부산선 돈 보내라 재촉이구. 포소린 또 심해 오고……. 클레오파트라 괴뢰군이 또 밀고 오면 어떡허지?
클레오파트라: 미쳐, 그런소리 마아. (술을 마신다.)
미꾸리: (편지를 또 한번 읽어보며 혼자서 웃는다.) 내 아들놈이 했어. 글씬들 좀 얌전해.
클레오파트라: 그런것 다 소용없어. 나도 해 본 장단야.
미꾸리: 자식이 소용없다?
클레오파트라: 벌써 십여년 전 일야. 난 어쩌다가 새낄뱄어. 이게 참 귀여웠어. 허지만 내 직장 때문에 킬 수가 있어야지. 할 수 있나. 남의 집에 맡겼지. 그리고 삼년후에 찾아갔더니 이 에미를 아주 몰라 보지 않어? 그동안 얻어 먹은 암죽에 팔려 에밀 왼통 잊어버린 거야. 그땐 난 생각했지. 인간이란 동물은 혈육이 아니고, 물질에 좌우된다는걸
미꾸리: 그래서 소매치기로 나섰군?
클레오파트라: 음. 돈을 가져야 사람 구실을 하기 때문이야.
미꾸리: 됐어. 그래서 알뜰한 내 짝이지(클레오파트라의 궁둥이를 두들겨 주고는 술을 킨다. 술잔을 주며) 더해 한잠 자구. 저녁에 또 긁으러 나가게-- (커어튼을 친다.) 이 때에 현관에서 <노크> 소리, 미꾸리 문을 열어 준다.
소장 등장
소장: 아니 대낮에 뭣들 해? (커어튼을 척척 걷는다.) 참 형씨, 편지 봤수? 내가 아까 저 문틈으로 떨어트려 났었는데…….
미꾸리: 예 이것? 고마워
소장: 고맙단 인사는 부산서 온 손님에게.
미꾸리: 유엔군 부대에 납품한다는?
소장: 예, 예. 놈팽이가 부산서 가지고 왔다우 이번에 또. 부인 한가지 상의할 일이 있는데……. 저어 다이야 반지는……. 몇개나 가지고 계시던가요?
클레오파트라: 내가 무슨 그런 (잡아 뗀다.)
소장: 아따 내가 소개해 드린것만 해도--
클레오파트라: 그걸 어쩌자는거요?
소장: 파시라는 겁니다.
클레오파트라: (눈이 둥그래지며) 미쳤수?
소장: 그 부산 손님이 이번엔 군에 납품한 대금을 부산에서가 아니고 이 현지에서 그것도 수표가 아니고 현금으로 받았다는 군요. 돈을 받아 놓고 보니 그게 여간 어마어마한 무더기래야죠. 하여튼 큰 푸대로 이거라니까. (하면서 자기의 손가락으로 숫자를 제시해 보인다.) 미꾸리와 클레오파트라 혀를 내두른다.) 아직 은행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송금할 수는 없고 부산까지 운반하자니 도중에 위험하고……. 그래 뭐건 가지고 가기 쉬운걸 그 값어치만 살 수 없겠느냐는 거요.
클레오파트라: 그만두슈. 다이야가 있으면 내가 다 사겠소. 나 역시 비상시를 위해서 그걸 장만하거요. 지니기 쉬우니까-
소장: 아따 이 마담이 왜 그렇게 맥혔담! (하면서 귓속말을 한다.)
클레오파트라: (흐뭇이 느끼며) 그게 쉬울까?
소장: 그 이익 분배에 나도 한몫 끼어만 준다문 무슨 꾀를 쓰던지 마담더러 그자와 접촉할 기회를 만들죠.
클레오파트라: 어떻게?
소장: 그건 내겨 맡겨 주슈.
미꾸리: 그러면 됐지 뭐.
클레오파트라: 해 보죠.
소장: (미꾸리에게) 형씨, 저걸 좀……. (푸대를 가리킨다.)
미꾸리: 이것이 씽(돈)이요?
소장: 그 푸대 속에 이렇게 --(하며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에게 자기의 손가락을 잡혀 준다. 두사람 놀란다.) 그러니까 두 캐럿짜리 다이야반지 세개만……. (하며 손을 벌린다.)
클레오파트라: 눈을 감으슈. (소장 눈을 감는다.) 임자도 (미꾸리도 하라는 대로 한다.) 돌아 서슈. 날 봐서는 안돼. (소장과 미꾸리, 눈을 감고 돌아서자 스커어트 밑에서 얼른 다이야반지 세개를 내어들고) 자아.
소장: (받으며) 이 다이야반지는 틀림없이 도로 찾아가가시도록 그 기회를 만들어 드릴테니 그게 성공될 땐 상금으로 저 푸대속에 든 돈의 삼분의--일은……. (자기를 가리킨다.)
클레오파트라: (고개를 끄떡해 보인다.)
장: 三(삼). (벽돌건물의 이층방)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희숙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 이 가사는 정철의 <수상록> 의 글의 일부이다.
삭풍은 왜 살을 여위는가?
봄바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여름비는 왜 세차게 내리는가?
은빛 구름을 가을 하늘에 날리기 위해서--
님의 눈초리는 왜 맑은가?
죽은 낭구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올케인 최정애, 그의 딸 <달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헙수레한 남자, 외투에 방한 모, 일터에서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의 허리에는 돌깨는 망치, 손에는 저녁 찬거리. 희숙은 몸치장에 열중한 나머지 올케가 들어온 줄도 모른다.
달이: (희숙에게 달려가며 반가히) 고모!
희숙: (깜짝 놀라) 애구 미안해요 언니.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있어서……. 오늘 수입은 얼마나 되죠. 달아, 추웠겠구나.
정애: (바짝 모양을 낸것을 보고)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희숙: 가다 오다 넝마를 벗어보는 것도 좋잖우? 이 지옥에서--
정애: (다급히) 고모 무슨 소식을 들었구려?
희숙: 응?
정애: 나도 이걸 사왔는데, 뭔지 알아맞혀 보지. (바쁜듯이 종이를 벗겨 중절모 하나를 내놓으며) 달이 아버지 해야.
희숙: (눈이 둥그래지며) 오빠의? 어머나! 언니 어찌된거유? 납치된 오빠가 살아왔수?
정애: 아씨부텀 말해 봐. 왜 모양을 내는지--
희숙: 언니 부텀!
정애: 꾸……. 꿈을 꾸었어.
희숙: 누가?
정애: 내가.
희숙: 언제?
정애: 간밤에. 꼭 생시와 같았어. 달이 아버지가 압록강 부근 어느 탄광에서 중노동을 하다가 온다나. 기차를 타고 거기서 서울까지--곧장. 남북 통일이 돼서 경의선이 개통됐던 모양이지? 헌데 모잘 쓰지 않아서 초라해 뵈겠지. 그래 오다가 고물상에서 이걸 하나--
희숙: (흑흑 느끼며) 틀림없이 오빤 살아 오실거유. 언니가 이렇게 생각 하는데 안 와?
정애: 암 오고 말고 그래야 우리도 남쪽으로 피난가지. 이 고생 고만허구(눈물을 씻으며) 자아 인제 작은 아씨의 차례야
희숙: 저 정말은……. (말을 끌어내다가 계속 못하고) 그만 둘테야.
정애: 뭔데?
희숙: 언니, 용서해 주겠수?
정애: 말을 해야 용서구 뭐구 있지
희숙: 오빠와 관련있는 사람야.
정애: 행여나 작은아씨하고 약혼했던 철이란……. (희숙 시선을 피한다. 얼른 알아채고) 아니, 그 자야?
희숙: 왜? 안돼?
정애: 우리 집안을 망쳐 놓은 그 악질! 제자로서 스승을 이북으로 납치시킨--
희숙: 그건 우리가 이성을 잃은 六.二五(육.이오) 때의 일 아뇨? 언니?
정애: 그자완 제발 만나지 말아 주우, 부탁이야. 이때에 한길에서 <희숙이> 하고 철의 부르는 소리 들린다.
정애: 바로 저자야! (당황해 한다. 희숙 한길을 내려다 본다.) 제발 좀 못 오게--
철: (어느새 문을 열고 나타나 정애에게 반가이) 사모님! 정애,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철을 쏘아보며 꼿꼿이 섰다.
희숙은 어쩔줄을 모른다.
달이: (별안간) 엄마! (하고 자지러지게 울며 정애의 목에 꽉 매달린다.)
철: 아니 달이가 왜? (달이를 안으려 한다.)
달이: (벌에 쏘인듯이 기급을 하여 고함친다.) 싫어, 인민군 싫어! 싫어! 싫어!
정애: (가만히 그러나 떨리는 소리로) 나가요, 얼른! (무색한 철, 어쩔줄 모른다. 벽력같이) 냉큼 나가지 못해!
희숙: 언니!
정애: (달이를 꼭 안은채) 왜 안나가! 자식마저 죽이지 못해 이래? 얼른 나가! 나가요!
철 층계를 내려간다. 쏜살같이-- 희숙 그의 뒤를 따른다.
장: 四(사). (한길)
희숙: (따르며) 철이! 철이! 어디로 이렇게 내빼는거야? (하며 간신히 추격하여 철의 앞을 막아선다.)
철: 비켜! 희숙이 비켜!
희숙: 언니가 너무했어. 살아 온 사람에게-- 노하지 마아. 철이 노하지 마아
철: 사모님이 너무한게 뭐야? 내가 나빳어! 왜 내가 죽지않고 살아왔담. (운다.)
희숙: 철이
철: 지금도 난 기억하고 있어. 六.二五(육.이오)때 난 놈들의 협박에 못견디어 선생님의 숨어 계신델 알으켜 줬어. 그래 놈들은 천장 위에 숨어계신 선생님을 강제로 모셔내 왔어. 선생님을 잡아간 자는 놈들이었지만 그걸 방조한 자는 나야. 그 뿐인가? 이렇게 살아는 있지만 그때 난 희숙이마저 여자 의용군으로 나가는걸 방관했어.
희숙: 내 말은 빼 주어.
철: 왜?
희숙: 난 철일 원망해 본적이 없으니까!
철: 거짓말야! 인간이면 원망해야 돼. 달이는 천진하기 때문에 제 감정을 속이지 않는거야. 그래 나를 얼씬도 못하게 하는거야. 사모님이 날 내쫑는건 당연해. 난 살아선 안되는걸 살았고 와선 안될 델 왔어. 단지 희숙이가 보고 싶은 일념에서 전후사를 다 잊고…….
희숙: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우리가 여기서 낙심하면 어떻게 해? 철이, 내가 언니한텐 양핼 구할테니 낙심 마아. 언닌 그 동안 고생도 많이 했을 뿐더러, 원체 이해성이 많은 분이니까. 그때 경우를 잘 말하면 양해하실거야. 六.二五(육.이오) 전엔 그 언니가 얼마나 철일 찬양했다구. 오빠 문하생으로는 제일이라구 누구에게나 그랬는걸.
철: 한번만 용서해 주시문 난 어떻게 해서라도 그 속죄는 하련만……. 아냐 그만둬……. 아무래도 난…….
희숙: 가만 있어 철이. 내가 다 알아 할테니 (철을 밀어내 보낸다.)
장: 五(오). (벽돌 건물의 삼층방)
이층에서 희숙과 철의 대화를 엿듣고 섰던 정애는 희숙이 올라 오는것을 보고 방 한구석에 피해 선다.
희숙, 방안에 썩 들어서며
희숙: 언니!
정애: 이봐요 작은아씨! 용서를 하믄 납치된 사람이 살아 온대요? 그렇지 않다믄 내겐 용서란 생각할수 없는 일요. 도저히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일요.
희숙: 나도 철이의 잘못을 뻔히 알아요. 허지만 나는 그를 미워 할수가 없어 언니. 날봐서라도 좀 더 널리 생각해 주구려.
정애: 안돼 밤이면 잠이 들기전에 난 줄창 성경 말씀을 외웠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러나 난 내 분한 마음을 달랠수가 없었어. 달래기는 새려 점점 머리를 더 치켜드는것을 어떡해? 내 가슴속에는 납치당한 이에 대한 애정보다 때로는 납치시킨자에 대한 증오감이 더욱 불타고 있는걸, 그 불은 정말 아무도 끌수 없어.
희숙: 언니. 계집애로서 할 소린 아니지만 내겐 자나깨나 철이 생각 뿐이었오. 내가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당했을 적에도 모두들 날 죽는다. 했지만 난 살아 철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하늘에 기도 했었수. 그랬더니 기적적으로 나는 살아났어. 철인 내게 일종의 신앙이라 해두 과언이 아뇨.
정애: 그게 무슨. 오빠에 대한 의리로서도 그런 소릴 감히--
희숙: 죄스런 말이지만 억울하게 납치당한 오빠보다 철이 생각이 더욱 간절히 날 사로잡고 있음을 난 느꼈어요. 이래선 안 된다! 이건 의리가 아니다. 죄다! 해 봤지만 어쩐지 그랬어요. 그러니 언니 아무래도 우린 결혼해야겠어. 더구나 이렇게 죽지않고 다시 만난바에야--
정애: (눈이 둥글해지며) 결혼을 해? 그자하고…….
희숙: 결혼날짜까지 잡아 놨다가 六.二五(육.이오)가 터져 못한게 아뇨? 오빠가 택해 주신 약혼자였으니 오빠두 용서하실 거예요.
정애: 작은아씨. 깊이 생각해 보우. 설사 주위 환경이 용납된다 해두 작은아씨의 입장은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우? 첫째, 작은아씨의 가슴에 받은 상처를 어떻게 해? 여자로서 있을게 없으니 말이야. (희숙 정신이 썩 돋아난듯 자기의 젖가슴에 손을 얹는다. 숨소리가 달라진다.) 지금은 그자가 작은아씨의 육체의 비밀을 모르니까 그렇지 만일 결혼해 봐. 빨갱이가 닥치면 왼쪽으로 흰둥이가 돌아오면 바른편으로 왔다갔다 하는 위인이 오죽이나……. 더구나 작은아씨의 뱃속엔 파편까지--
희숙: 그만……. 그만해요! 그만! (격한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흐느낀다.)
정애: ……. 아니, 내가 너무 지나친 소릴 했나봐. 작은아씨. 용서해요. 작은아씨!
희숙: 으아! (솟구치는 울음을 그치지 못해 마침내 딩굴다시피 몸부림치는 동안에 음악이 곁들려……. F.O
장: 六(육)
익일 새벽, 아직 깜깜하다.
조명이 국부에 F.I 거기엔 두더지 그의 어린것과 겹쳐서 자고 있다. 소장 전재민 구호소에서 나와 하품을 한다. 철 등장.
철: (이층을 향하여) 희숙이-- (하고 부른다.)
소장: (종을 흔들며) 자아 시민 여러분 거리를 청소 합시다. 비를 들고 나오십시요. 우리의 서울을 우리가 깨끗이 해야 합니다. 여기는 전재민 구호소 특별 선전반 입니다. (미꾸리 기타 이웃 사람들 비를 들고 나온다. 희숙이 자기방에서 힘없이 내려온다.)
철: 어찌됐어. 희숙이! (희숙, 대답을 할 듯 하다가 못하고 얼굴을 싸고 집 뒤로 피해간다. 철 따른다.)
소장: 야. 두더쥐야! 얼어죽지 못해서 예서 자냐? 일어나라 일어나! (하며 발길로 찬다. 아무 반응이 없다.) 이새끼 정 안 일어날테냐? (한번 더 모질게 찬다.)
두더지: 으아! (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른다. 소장 기겁을 한다. 어린것도 놀라서 운다.)
소장: (어이가 없는듯) 저 작식 미치지 않았어? 두더지 어린것을 이끌고 사라진다
성경할아버지: 소장님 부산 손님한테 말해서 저 사람을 추럭에 좀 태워 주슈. 함경도에서 밀려 나오다가 제 여편넬 잃어 버렸대요. 부산으로 가 봤으문 하는데 누가 아는체나 해 주어야지 그러니 미칠수 밖에--
소장: 추럭에 빈 자리가 있으문 물건 하나라도 더 실어다 팔려고 들지 누가 사람을 태워 준대요?
성경할아버지: 모럴거야 인심이--
희숙과 철이, 힘없이 다시 등장
철: 사모님께서 그렇게 강경히 우기실 줄 알았어.
철 깊은 생각에 잠겨 벽에 기대 선다. 한길을 청소하던 이웃사람들. 뿔뿔히 제 처소로 사라진다.
철: 희숙이, 차츰 살아가는 동안에 사모님한텐 내가 내 정성으로써 사죄할테니 우린 여길 떠나 아무데고 가서 결혼해 그래야 우린 조석으로 만나보기라도 하지. 여기서야 이대로 어떻게 살겠어. 희숙이 아무말 말고 같이 내빼, 지금이라도 좋아, 응?
희숙: …….
철: 왜 대답을 안해?
희숙: 그건 못해!
철: 응?
희숙: 철이, 나같은 하잘것 없는건 아예 잊어버리고 좋은 색시 골라서 결혼해. 그래야 철인 행복해. 난 이 말을 철일 위해서 하는거야.
철: 다따가 그런 소리가 어딨어! 왜 그래? 나하고 결혼 안할 참야? (희숙 대답이 없다.) 왜 말이 없어! 말을 해, 그 이유를!
희숙: 사 사랑이 식었어
희숙: (더욱 정색하여) 농담이 아니야
철: 뭐! (하고 놀라더니 별안간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농담을 해도.
철: 사랑이 식어졌으문 어제 날 그렇게 반갑게 맞아 줄 수 있어?
희숙: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온 이 마당에야 이웃인들 그 만큼은…….
철: 왜 이 허튼소리야?
낙동강 전선 비오듯 쏟아진 그 치열한 포탄 속에서나 인민군 분대장을 죽이고 산에 몰려 있을때에도 나는 일시 반시도 희숙일 생각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나를 찾아 주는 인사가 그래야 옳아? 더구나 어젠 결혼까지 할 생각을 해 놓고…….
희숙이, 그러지 말고 날 불쌍히 여겨 줘. 희숙이가 버림 난 정말 의지할 데가 없어. 이 난리에 날 예까지 생명을 부지케 한것두 희숙이었고, 내가 내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몇번 죽으려 하다가도 희숙이 땜에 결단 못했어. (억지로 희숙이 손을 끌어다 입술에 대며) 난 희숙일 이렇게 사랑해 희숙이!
희숙: 이게 무슨 억지야. 결혼할 수 있는 여자가 나뿐이 아닐텐데. 제발 이렇게 추근추근히 굴지 마아.
철: (달래듯이) 희숙이, 바른대로 말해. 희숙이한테 무슨 번민이 있는게 아냐? 그래, 그렇지? 내게 말못할 비밀이 있어서 지금 내게 거짓부렁을 하고 있는게지? 단적으로 말해서 희숙일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사내가 있다든가. 그렇잖으믄 혹…….
희숙: 쓸데없는…….
철: 그렇잖다면 희숙인 무슨 실수로 여자로서 가장 위해야 할 정조를 더럽힌 일이 있단 말야? 좋아 정조쯤 더럽혀도 좋아! 난 이해해 질서고 윤리고 그런건 안락한 세상에서나 찾을 것이지. 터뜨려지는 포탄 앞에선 도저히 부지될 수 없는거야. 거긴 이성도 선악도 존재하지 못해. 우리가 죽음의 계곡에 밀려 있던 이 몇달 동안의 일은 그건 모두가 불가항력야. 나는 뭐고 용서해. 나만 용서하면 그만 아냐?
희숙: 만일 용서로써 씻어질게 아니라면?
철: (정생하여) 정말 무슨 일이 있는게군 그래? 아니 어린애가 생겼어?
희숙: 그럼 어쩔테야?
철: 뭐? (눈이 둥그래진다. 그 눈에는 눈물이 솟는다. 삐쭉거리는 입술을 깨물며) 좋아! 어린게 있어도 좋아
희숙: 안돼. 무슨 소릴해도 안돼.
철: 이름을 대. 희숙이 하고 좋아한 사내가 누군지 알려 줘.
희숙: 그런것 물을 필요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
철: 그가 누군지 알으켜만 주면 난 그를 찾아가 그를 단념시킬 테야. 내 이 간절한 심정을 설파하면 그도 날 동정해 줄거야. 그래 그는 희숙일 내게 양보할거야. 희숙이! 그 이름을 알으켜 줘. 제발 소원야 (하고 애원한다.)
희숙: (울며) 놔요. 놔! (뿌리치고 이층으로 달아난다.)
철 희숙의 뒤를 쫓으려다가 주춤 선다. 벽을 안고 몸부림치며 흐느끼더니 <에이 빌어먹을……. > 하며 매춘굴 골목으로 사라진다.
장: 七(칠). (매춘굴 안의 홀)
홀은 활짝 핀 벗꽃 복숭아 꽃 등 가화로 뒤덮혔다.
네온 불빛에 구슬픈 <재즈 송>을 흥흥거리는 로즈 매리…….
땐서를 안고 도는 손님들
그 중에는 부산 손님과 그의 똘만이 미꾸리 클레오파트라, 전재민 구호소 소장 등, 그 밖에 외국 군인들도 끼었다.
철은 혼자서 양주를 켜고 앉았다. 춤이 끝나자.
로오즈: (철에게 달려와서) 어머나! 누군가 했더니 바로 정 철군……. 나의 국민학교 시절의 동창생이구먼. 웬일야! 희숙일 두고 혼자 나왔으니? 나하고 한번. (하며 춤을 청하는 자제를 취한다.)
철: (아무 대꾸도 없이 술만 따른다.)
로오즈: 옳아! <휘안세> 하고 다툰게군? 그렇지? 그럴수도 있지. 이봐. 장난으로 배운 노래와 춤으로 내가 지금 벌어먹고 사니. 참 짖궂지. 세상도? 호호호…….
철: (독한 술을 한숨에 켜고 빈 잔을 내민다.)
로오즈: 술은 안먹어. 먹으면 탈선하니까. 처녀의 꿈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아직도-- 호호호……. (철에게 술을 쳐 준다.)
부산손님: (가까이 가서 인사하며) 미스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 (거만하게) 누구시던가요?
부산손님: 아따. 수주일 전 내가 서울 올라왔었을 적에도 뵈었죠. 바로 이 홀에서…….
클레오파트라: (생각난듯이) 예! 예! 부산서 오셨다던?
부산손님: 옳습니다. 호왈 부산 손님 입니다. 댁에선 그때부터 쭉 서울에--
클레오파트라: 난 서울을 사랑해요.
부산손님: 왜요?
클레오파트라: 언제나 나는 약한자의편이니까요. 서울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미망인이거든요. 그렇게도 호화롭던 거리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죠? 명동거리에 나가 보셨나요? 개미새끼 한마리 없잖아요? 그리고 그 참혹하게 부서진 모습! (글썽거리며) 정말 기맥혀요.
부산손님: 부인도 훌륭한 시인이십니다 그려.
소장: 아문요. 서울이란 거대한 시체에 눈물을 쏟기 위해서 예서 고생을 하고 계신걸요.
클레오파트라: (비스듬히 앉아 눈을 스르르 감으며 외운다.) 산아는 전화입어 벌의 집 같애도 한강은 흐른다. 쉬일사이 없이 이 몸은 포탄맞아 누더기 같애도 한강은 속삭인다. 가슴 속 깊이 한강은 나의 넋, 님의 젖줄기! 한강이 흐르는 동안 우린 살아 있다.
손님들: (철을 제외하고) 부라보!
부산손님: (술잔을 쳐들며) 가련한 서울을 위해서.
손님들: (철을 제외하고는 따라서) 우리 서울 만세! (치켜든 술잔을 일제히 비운다.) 이때에 밴드는 옛날을 추억하는 슬픈 곡으로 응한다.
부산손님: 부인 저 곡에 맞춰서 한번…….
부산손님 클레오파트라에게 춤을 청한다. 클레오파트라 눈물을 씻고 응한다.
부산손님 상대를 위로하듯 꽉 껴안고 돈다.
홀안에 있는 손님과 땐서를 모두 도취한 듯 짝을 지어 춤춘다. 그러나 철만은 혼자서 술만 켠다. 로오즈매리의 노래에도 애조가 넘친다.
철: 그런 죽어가는 소린 질색이다. 다른 곡! 다른 곡! 막 때려 부시는걸……. 자아 부셔라! (혼자 나서서 미친듯이 지르박의 춤을 춘다.) 반주 지르박의 곡으로 변한다. 로오즈 매리 신이 나서 철의 상대로 나선다. 다른 손님들 따라서 춤춘다. 광선이 어슴푸레 해지며 광기가 홀을 뒤덮을 때에 부산 손님 갑자기 소리친다.
부산손님: 가만! 불 좀 켜! 불 좀!
음악이 중지되며 춤도 중지된다.
전등불이 환하게 다시 밝아진다.
여럿이: 뭐야! 뭐가 어찌된거야? 무슨 사고야?
부산손님: (자기의 호주머니를 털어 내며) 소매치기를 당했소? 지갑이 없어졌어!
일동: 소매치기? (하며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본다.)
부산손님: 얘야. 홀 문을 닫아 걸어라!
똘만이: 예, (하면서 밖으로 통하는 <도어>에 막아선다.)
철: (부산 손님에게) 형씨. 예 있는 손님을 모조리 도적놈으로 몰작정이요?
부산손님: 그런게 아니라…….
철: 그런게 아니라면 왜 문을 닫아 거는거야?
똘만이: (툭치며) 이봐! 도적을 잡지 말란 말야?
철: 뭐 어째? (웃통을 벗는다.)
똘만이: 이 조무래기가! (대들려니까 싸우지 못하게 모두들 막는다.)
소장: (부산 손님에게) 대관절 뭘 잃으셨나요?
부산손님: 아까 소개해 주신--
소장: 다이야반지?
부산손님: 바로 지금 춤추다가-- (하며 클레오파트라를 쳐다본다.)
클레오파트라: (펄쩍뛰며) 어머나! 이런 벼락을 맞을! 그럼 내가 훔쳤단말야?
부산손님: 미안하지만 좀……. (하며 밝은데로 끌고 나온다.)
클레오파트라: 없으면 어쩔테요?
부산손님: 난 확신하오.
클레오파트라: (두 팔을 쩍 벌리고 나서며) 자아 뒤져봐요 얼른요! (부산손님 어이없는듯 가만히 섰다.)
소장: 여자의 몸이라 손대기가 조심스러우신가 봐. 땐서들 중에서 누구나…….
로오즈: 속시원히 흑백을 가려야 할 테니까 누구나 수고 좀 하지.
땐스 A: 그래! (하며 나선다.)
클레오파트라: 아냐 다른 사람은 내가 용서 안해 본인이 뒤져요.
부산손님: 실례합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클레오파트라의 몸을 뒤진다. 없다.) 웬 일이야?
클레오파트라: 이런 불한당! (빰을 친다.)
철: 에이 엉터리! (부산손님의 멱살을 끌고 한대 먹인다. 부산손님 나가 떨어진다.) 똘만이 철에게 덤빈다. 치고 받고 한동안 치열한 격투! 결국 똘만이를 문밖으로 차낸다. 부산손님 기겁을 하여 도망친다 모두들 통쾌해서 웃는다.
클레오파트라: (철의 목에 매달리며 승리자처럼 소리친다.) 자아 오늘 저녁엔 이 홀 내가 맡았다. 술이다! 실컷 마셔요. 왜 음악이 죽어가?
기운차게 북작거리라니까. 경쾌한 곡이 쏟아진다. 철은 클레오파트라를 끌어 안고 자포자기적인 춤을 춘다. 클레오파트라 신이 났다. 색정적이며 퇴폐적인 춤이 한동안 계속 되면서 무대를 돈다.
장: 八(팔). (양식 목조 건물의 실내)
미꾸리 훔쳐온 지갑 속에서 다이야 반지 셋을 찾아낸다. 불빛에 비쳐 보더니 회심의 웃음을 웃는다.
미꾸리: 갈데 있냐? 백팔백중이다. 헤헤헤…….
이때에 현관에서 노크소리와 함께 소장 썩 들어선다.
소장: 형씬 정말 미꾸리야! 그 머저리가 홀 문을 닫아 걸기에 <야 이거 하발이다> 했더니 어느새 형씬 이렇게…….
미꾸리: (다이야 반지를 내 보인다.)
소장: 됐어 약속대로 빨리 내 모가치를……. (하며 손을 벌린다 미꾸리 숨겨놓은 푸대 속에서 돈뭉치를 하나를 내준다.)
미꾸리: (소득표의 그래프선을 연장시키며) 꽤 올라가는데!
소장: 형씬 못 봤겠지만 그 자식의 빤치! 쓸만해 사내로서.
미꾸리: 누구?
소장: 아까 홀에서 우릴 위해서 놈들을 녹크아웃 시켜 준 덥치말야. 여간 피래미 여남은 덤벼야 어림 없겠든데 사내자식이 그쯤 돼야 해!
미꾸리: 내가 못본게 유감인데.
소장: 굉장해!
미꾸리: (바깥을 살피더니 문을 열어 준다.)
소장 한길로 나온다.
장: 九(구). (한길)
미꾸리 망을 봐 주는 동안에 소장 돈뭉치를 들고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클레오파트라에게 몸을 맡기고 나타난 철. UN죽 파는 야대를 짓묀다. 소장 다시 나온다.
소장: (철에게 대들며) 이봐! 왜 깡을 부려? 서울 시민은 굶어죽일 심뽀야?
철: 이게 어디서 썩다 나온 뼉다구냐? (소장을 메어치려 한다.)
클레오파트라: 안돼! (하며 말린다.)
철: 에이 빌어먹을!……. (저재민 구호소 창문의 쇠창살을 잡아 비튼다.)
소장: 저 개고기! 저 쇠창살이 없어선 내사업이 안되는데!
미꾸리: (쇠창살이 엿가락같이 휘어지는것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클레오파트라를 꾹 찌른다.) 쓸만하지?
클레오파트라: (철의 손목을 끌며) 여보게 젊은이. 이리 와 좀 쉬어. 들어가서…….
철: (벽돌 건물의 일부로서 파괴되다 남은 높은 벽을 가리키며) 저 벽은 뭣하자고 혼자 건공중에 서 있는거야? 싱겁게! 못나게! 외롭게! 궁상맞게! (팔을 걷고 대들며) 이 자식아 물러나! (하고 울음섞인 소리로 기를 쓴다.)
클레오파트라: 왜 이래?
철: (여전히 소리친다.) 꼴보기 싫다. 물러나라거든 물러나!
클레오파트라: 미쳤군! 그런 똥배짱 부리다간 고타꼴 가!
철: 죽음이 무서우면 뭣하러 네미 뱃속에서 나와!
클레오파트라: 그렇다구 사서 생죽음 할거야 없잖아!
철: (클레오파트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이제 하직이다. 캔바스하고도 색채하고도 내가 그리던 모든 꿈하고도 하직이다! (벽돌 쓸어뜨리러 간다. 클레오파트라 철을 붙든다.) 놔요! 놔! (뿌리친다. 클레오파트라 나둥그라진다.)
미꾸리와 소장: (막으며) 안돼! 그러나 철은 어느새 대들어 우뚝 솟은 벽을 민다. 벽 휘청거린다. <에이 뒤어져라> 하며 육탄이 되어 어깨로 벽을 받는다. 벽돌 비오듯 우르르 쏟아진다. 하늘이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클레오파트라 등 일제히 기겁을 하여 <으아> 소리치며 땅에 엎드린다. 희숙, 삼룡, 정애, 두더지, 성경할아버지 등 이웃사람들 자다가 일어나 제각기 자기 처소에서 내다본다. 다시금 무대는 고요해졌다. 모두 놀라서 사상이 된 얼굴로 허물어진 벽돌 틈을 살핀다. 철의 시체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 못한 것이다.
소장: 안 뵈지?
클레오파트라: (떨리는 소리로) 죽었나봐.
미꾸리: 플래시 이리 다고! (삼룡에게서 전지 플래시를 받아 다른 사람과 같이 허물어진 벽돌 틈을 살핀다.) 그때다. 반대편 골목 길에서 힘없이 나타난 사나이가 있다.
성경할아버지: 저게 누구지? (하고 손가락질 한다.)
클레오파트라: (플래시를 그쪽에 비쳐 준다. 철이다. 죽은 사람을 만난듯 반가이 뛰어가서 안으며) 다친덴 없어? 들어가! 미친 짓 그만하고……. 클레오파트라, 철의 등을 밀어 현관 안에 넣는다.
장: 一(일)0. (양식 목조건물의 실내)
철,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에게 부축되어 들어온다.
철: 아아. 어떡허믄 좋아! (침대에 몸을 내던지고 고함치고 흐느낀다.)
클레오파트라: 야. 물좀 줄까? (하며 안아준다.)
철: (눈물을 슬쩍 씻으며) 첨 뵙습니다. 누구시지? (하고 몽롱한 눈으로 두사람을 번갈아 본다.)
미꾸리: 나? 난 미꾸리
철: 이 매담은?
클레오파트라: 미스 클레오파트라 라면 다 알아
철: 참 괴상한 이름들인데.
미꾸리: 형씨는?
철: 본인?……. 음. <벽돌> 이라고 부를까?
미꾸리: 벽돌이라니?
철: 아따. 흔해 빠진게 벽돌 아냐? 괴뢰군이 한번만 더 왔다가면 서울은 벽돌로 뒤덮일걸. 그만큼 아무짝에도 못 쓰는 버릴래야 버릴데도 없는 물건이란 말야. (느낀다.)
클레오파트라: 그 참 의미심장한 이름인걸.
미꾸리: 누구 밑에 있수? 형씬 (철 못알아 들으니까.) 어디서 노느냐 말유?
철: 꾸리게 왜 남의 밑에서 놀아?
미꾸리: 음. 바로 왕초로군?
철: (일어서며) 변소.
미꾸리: 저쪽이야.
철 미꾸리가 가리키는 쪽으로 퇴장.
클레오파트라: 놔 키운 부록 송아지지?
미꾸리: 클레오파트라, 어때, 저 송아지? 젊은놈 젊은놈 하더니 하룻저녁 데리고 놀고 싶겠구려?
클레오파트라: 내가?
미꾸리: 싫지는 않겠지.
클레오파트라: 날 놀리는거야?
미꾸리: 이봐. 우리가 쌔비기만 해 가지고 언제 팔자를 고쳐? (벽에 붙은 목표액을 표시한 그래프를 가리키며) 아직 까마아득 하잖어? 언젠고 클레오파트라도 그랬지. 뜯어야 하겠다고 저놈팽이 같으면 앞장세울만 해. 육혈포 들며 저렇게 제 목숨을 개떡같이 여기는 놈이 흔할순 없거든. 더구나 쌈판도 근사허구-
클레오파트라: 그만둬
미꾸리: 왜 젊고 좋지않어?
클레오파트라: 정작 내가 데리고 놀아 봐. 그 꼴에 내 배때기에 알구지(칼) 꽂으려 들걸.
미꾸리: 질투에 눈이 뒤집혀서?
클레오파트라: 물론이지
미꾸리: 허어 피차에 약속이 있잖어? 우리의 첫째 목적이 <사업> 그 다음이 그거라구!
클레오파트라: 허지만 저 덥치는 만만치 않을것 같애
미꾸리: 아따. 자네한테 걸려 안 감겨들 놈팽이 어딨어? 나도 당했는걸 뭐
크레오파트라: 쉬.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 시치미를 떤다. 철, 다시 등장 손등으로 입을 씻으며…….
미꾸리: 애구. 토한 게로군! 여기 좀 누울까?
철: (모자를 들며) 또 봅시다.
클레오파트라: 가는거야?
미꾸리: 형씨 늦었는데 그만 자지.
철: 두분한테 눈총맞게?
클레오파트라: 여기 앉아 (철을 걸터 앉힌다. 그리고 미꾸리에게 눈짓)
미꾸리: (자기의 이불과 베게를 챙기며) 자아. 그럼
철: 어디 갈려구?
미꾸리: 이층으로
철: 내가 올라가지
미꾸리: 우엔 좀 어수선해
철: 내가 지금 자고 있는덴 창고야 그런데 보다야…….
클레오파트라: (철의 모자를 빼앗아 놓으며 나하고 술 좀 더 먹어. 잠이야 언제고 못 자? (술병을 찾아든다.)
철: (두 남녀를 견주어 보며) 괜히 큰일나지 않어?
미꾸리: 부부가 아냐
철: 그러면?
미꾸리: 남매 간이야.
철: 수상한데. 얼굴도 같은 구석이 없고…….
미꾸리: 난 우리 어머니 닮았고 내 누이는 아버지 닮았거든 그렇지?
(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다진다.)
클레오파트라: 어쨌튼 남매면 그만아냐? 쓸데없는 변명말고 빨랑 올라가 오빤.
미꾸리: 그래, 그래
클레오파트라: (잠옷을 갈아 입으면서) 문틈으로 들여다 봐선 안되우. 오빠.
미꾸리: 원 오라비의 인격을 무시해두…….
미꾸리 이불과 베개를 안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철의 무릅 위에 걸터 앉으면서 클레오파트라 그 손에 술병을 잡혀준다.
클레오파트라: (술잔을 내밀면서) 자아. 한잔 따라. (철의 쳐주는 술을 마시고는) 내 술도 한잔……. (철의 입에 술을 부어 준다.)
철: (클레오파트라를 획 들어 침대 위에 놓으며) 누님 내려 앉아.
클레오파트라: 트릿하게 누님이 뭐야? 오늘 저녁에 삼삼하게 한번 놀 텐데. (철을 덮어 누르며) 자아 내 얼굴을 좀 봐. 나도 이래봬도 근사한 집안에서 귀여운 딸로 태어나서 호강도 할대로 해보고……. 그러나 여자란 결국 아무것도 아니더군. 하늘같이 믿었던 첫사랑을 배반당하고 나니까 이 세상이란……. 참 우스꽝스럽더군.
철: 아니 그게 무슨 서곡이야? 그만 둬! 따분 해. 사랑이란 있을 수 없어! 있는 건 허위야! 배신야! (부서지라고 테이블을 친다.)
클레오파트라: (의아하여) 아니. 어떻게 된거야. 이 젊은 사람이? 호호호……. 실연을 한 거로군. 나 모양으로?
철: (휙 일어나 앉으며) 술 어쨌어? (클레오파트라에게서 양줏잔을 빼앗아 보고) 이런게 아니고 큰 놈을! (하며 양줏잔을 벽에다 낭태를 친다.)
클레오파트라: (큰 유리 잔에 양주를 가득 쳐 준다.)
철: (한숨에 들이키며) 또 줘!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잔을 채워준다.)
클레오파트라: 한잔만 더! (하고 또 쳐주려 한다.)
철: 썩은 물보다는 색다른 동물이 좋아! (상대방의 어깨를 주린듯이 빤다.)
클레오파트라: 호호호……. 아이 징그러워! (하며 철을 떠다민다.)
철: 싫어? 싫다믄 죽여 놓는다!
클레오파트라: 내 말 듣겠다고 약속한다문--
철: 뭐든지 이 세상을 부셔 버리자는 약속이문 더욱 좋고!
클레오파트라: (만족해서) 아이 착해……. (하면서 철을 안는다.)
두사람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에--(F.O)
장: 一 一(일일) (한길)
(F.I)
소란스러운 거리 풍경. 소장은 짓뫼진 야대를 고치고 있고 삼룡은 죽 솥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남녀 노소의 전재민들은 일열로 늘어서서 죽 끓기를 기다리고 있다.
담배 목판을 내놓은 희숙은 제 생각에 잠긴듯 우두커니 앉았다.
양식 목조 건물 아랫층 창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는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의 웃음소리
시장 쪽에선 장사치들의 외치는 소리. 매춘굴 쪽에서 정보원 나타난다.
부산손님과 그의 똘만이 따랐다.
정보원: (걸어 나오면서)……. 이만하면 간밤의 경과는 알겠습니다. 내가 보는 바엔 귀하에게도 실수가 없는바 아닙니다. 왜 그 귀중한 물건을 지니고 하필 저런델 출입하셨느냐 말이오.
부산손님: 좀처럼 구할수 없는 물건을 손에 넣어 주기에 그 인사차로…….
정보원: 그걸 소개해 준 사람은?
부산손님: 바로 전재민 구호소 소장이었지요.
똘만이: 마침 저기에--
정보원: 겅말!
소장: 애구! 누구시라구!
정보원: 문제의 그 다이야반지 어디서 구하셨지요?
소장: 이북서 넘어 온 피난민한테서요.
정보원: 그 사람을 내게 데리고 올 수 있겠오?
소장: 있구말구요. 곧 찾지요.
정보원: (똘만이의 이마를 가리키며) 이런 상처를 낸 자식하고 간밤에 소매치기의 혐의를 받은 여자하고는?
소장: 피차에 전연 모르는 사이 같앴어요. 다른 테이블들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보원: (클레오파트라의 처소를 가리키며) 저게 그 여자가 들어있는 데라구요?
소장: 불러 낼까요?
정보원: 둬 두시오. (갑책을 호주머니 속에 도로 넣으며 죽을 사먹고 있는 전재민들을 보고) 애구. 소장님. 큰 사업 하십니다그려. 헌데 죽값을 받나요?
소장: 천만에요. 물론 무료죠. 이런 사업은 무료로 해야 의의가 있다는것쯤은 난 잘 압니다. 나두 관물을 먹은 놈이니까요. 허지만 부리는 아이의 인건비 정도로 약간--얘, 삼룡아. 철철 넘게 가뜩 퍼 드려라. 이건 국가적인 사회사업이니까.
삼룡: (엄청나게 큰 소리로) 예! 자아. 철철 넘게 가뜩가뜩 담았어요.
(하면서 실상은 반그릇도 못되게 죽을 퍼서 두더지에게 준다.)
두더지: 이게 철철 넘는검매?
삼룡: 애구머니, 너무 놀려서 쑥 들어갔군 그래. 걱정 맙슈 이렇게 듬뿍 드립니다. (하면서 실상은 그와 반대다.)
두더지: (아무 말없이 삼룡의 빰따귀를 갈기더니 야대에 써 붙인 구호소 선전 광고지를 떼어 한길에 떼어 내던진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명실공히 철철 넘게 듬뿍 퍼 담는다.)
소장: 이 자식이 야마시를 부렸지! (하며 정보원더러 봐달라는 듯이 울고 있는 삼룡의 귀밑때기를 붙이고는 변명하듯) 큰일 났습니다. 요즘 새끼들은 시키잖은 짓을 저렇게-- 남을 속이는걸 장한 일로 아는 모양이죠?
삼룡: (어이없어 항변하려고 나서며) 소장님, 아니 소장님이…….
소장: (몽둥이를 번쩍 들며) 이놈아. 저 광고지 주워다 못 붙이겠나? 껑충대지 말고…….
삼룡 하는수 없이 다시 선전문을 다시 건다.
정보원: 감독을 철저히 하셔야겠군요.
소장: 에이 정말 골치예요! 도시 세상이 이래서야 살겠어요?
정보원: 자아 수고허슈.
소장: 안녕히 가세요. (정보원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 부산 손님에게) 정말 미안해요. 이건 소개해 드리지 않은것만 같지 못하게 됐어요.
부산손님: 그러나 그 물건은 꼭 찾고야 맙니다. 그걸 잃고는 내 사업이 아주 거덜이 나니까요.
소장: 암 그래야지. 그 수사에는 나도 전적으로 성원하겠어요.
이때 양식 목조 건물에서 철이 나타나더니 희숙을 힐끗 쳐다보고는 허공에 대해 몇개의 펀치를 먹인다.
실연 당한게 분해 못견디는 모양이다.
똘만이: (철의 출현을 알리기 위해 부산 손님을 꾹 찌른다.)
부산손님: 역시! (철을 눈여겨 본다.)
철: 이 피래미 새끼들이 왜 날 째려! (하며 한대 먹이려 한다.)
소장: 무슨 짓이오. (하며 철의 앞을 막아선다.)
크레오파트라: (이 때에 현관 댓돌 위에 나타나 애교가 흐르게) 벽돌 날 두고 혼자서 어딜?
철 클레오파트라를 휙 들어 건공중에 치켜 올린다. 클레오파트라 어린애 같이 <애그그> 하며 호호거리고 웃는다.
철 희숙이 더러 봐 달라는듯이 클레오파트라의 입을 몇번이고 맞춰 준다. 희숙 얼굴을 돌리며 자기 방으로 피해 간다.
크레오파트라: (철의 손을 끌고) 이리와. 식사는 저기 저 집이 좋아.
미꾸리: (현관문을 바쁘게 잠그고) 같이 가! 같이! (퇴장하는 철과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쫓아 간다.)
부산손님: 저래도 저것들이 한패가 아니란 말요?
소장: 간 밤의 싸움 끝에 저렇게 됐지 결단코 전부터…….
부산손님: 쓸데없는 두둔 하다간 소장마저-- 알겠오? (획 나간다 똘만이 따라 나간다.)
소장: (불안을 느낀듯) 잘못 하다간 나까지 걸리겠는걸!
삼룡: (여태 부루퉁해 있다가 얻어 맞은 빰을 만지며) 소장님 예 있다간 제 귀밑때기가 돌덩어리래도 못 견디어 내겠어요.
소장: 그러니까 세상살이가 어렵다는것 아니냐? 그게 다 공부야!
삼룡: (대들며) 거짓말 하는게 공부예요?
소장: (화가나서) 이자식아,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왜 헛소리를 시켜?
삼룡은 소장이 쏘아붙이는 바람에 질려서 물러난다.
소장은 점장이에게 돈을 던져 주고 야바위판을 돌린다. 물레끝에 매달린 바늘<대길>에서 멎는다. 흐뭇이 <흠 대길이다>
소장의 입에서 경쾌한 휘파람이 나온다. 그는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바쁜듯이 매상고를 계산한다. 로오즈 매리, 풀없이 등장. 타월과 대야를 들었다. 목욕하러 가는 길이다.
소장: 로오즈 매리 왜 그대로 지나가! 오늘은 맡길게 없나?
로오즈: ……. 없어요.
소장: 아니 그 따위 벌이로 언제 방을 한칸 장만 해? 부산에다가…….
로오즈: (주춤서서 뭘 생각하더니) 정말! (하고 섭섭한 웃음을 지으며 발을 옮긴다.)
소장: 딱해
희숙: 백련아!
로오즈: (발길을 멈추고) 장사 잘 되냐?
희숙: (종이에 싼것을 손에 쥐어주며) 이것 받아라. 많진 못하다만 그것 보태서 철일 데리고…….
로오즈: 무슨 소리냐?
희숙: 큰일났다. 너 저집에 든 클레오파트라란 여자 알지? 철이가 그 흉악한 것한테 걸렸구나. 그 계집한테 그의 일생을 망치기에는 그의 전정이 너무 아깝잖어? 더구나 철이는 학생때에 너를 좋아했고 너도 철이를 침이 마르게 칭찬한 적이 있잖었니?
로오즈: 그러니까 이 돈 노자에 보태서 철이 데리고 부산가서 살란 말이로구나 날더러?
희숙: 음, 그래
로오즈: 호호호……. 메가 약혼을 안했더라면 내가 프로포오즈 했을지도 몰랐어. 사실이야. 허지만 지금은
희숙: 지금은 어때?
로오즈: 솔직히 말해서 철이와 같이 너무 이상에만 쏠리는 사람은…….
희숙: 난 너도 꽤 이상을 내세우니까 철이완 꼭 맞을줄 아는데…….
로오즈: 남편이란 좀 융통성이 있어야잖니? 막말로 거짓말도 약간 할줄 알고 급한땐 악한 일이라도 눈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해낼만한 배짱도 있어야 한단 말이다. 헌데 철인 옳고 바른것만 찾으니 그게 一八(십팔)세기 낭만파가 아니고 뭐야. 너무도 구식야. 현실에 맞잖어. 지금 세상엔 약아 빠져야 살아. 따지고 따져서 제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일은 거들떠 보지도 말아야 돼. 저 소장과 같이……. 그런 의미에서 내 결혼의 대상은 철이 같은 이상주의 타잎에서 소장같은 현실주의 타잎으로 옮겨졌어.
희숙: 넌 철저하구나.
로오즈: (멀리서 울리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저 대포소리가 날 그런 안전지대를 찾게 해줬지. 너도 나와 일반일걸. 그래서 억지로 철일 내게…….
희숙: 아냐. 난 그렇잖아
로오즈: 그렇잖다문 왜 남에게 제 약혼자를 떼어 맡기려 드냐? 그 돈으로 너하고 내 빼지. 더구나 이 돈이란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건데 이 어수선한데서 푼푼히…….
희숙: 그러면 백련아. 너 그를 꾀어 여기서 좀 떠나게 해 줄수 없겠니? 친구로서 그만한 수고는 해줄수 있잖니?
로오즈: 얘, 내 나이 지금 스물 셋이다. 내년이면 스물 넷. 오올드 미스야. 얼른 하나 골라 잡아야지 남의 심부름 하다간 괜한 오핼 사서 나까지 안 팔려.
희숙: (딱한듯이 머리를 썩썩 긁으며) 이거 어떡허나?
로오즈: 계집애 참 우습구나. 아무리 약혼했더래도 지가 싫으문 그만이지 왜 사서 걱정야? 호호호……. (퇴장)
삼룡: (희숙에게 가까이 가며) 정말 그 자식을 뭣땜에 생각해? 누나 나도 좀 모아놓은게 있으니 같이 얼려서 걸어서라도 가 부산으로……. 예선 나같은건 정말 못 살겠어. 거짓말을 잘해야 하니……. 그 얼마나 어려운 일야.
희숙: (담배 목판을 걷으며) 방에서 좀 쉬어야겠어.
삼룡: 그 망나니 생각은 말라니까그래…….
희숙: 이따 봐. 골치 아파
희숙, 물러나려 할때에 철과 클레오파트라. 매춘굴 쪽에서 등장. 미꾸리 뒤쫓아 온다. 무언지 싸 들고--희숙 발길을 도로 멈춘다.
미꾸리: 요리 한접시 해왔어. 셋이서 또 한잔 먹을려고…….
크레오파트라: 오빤 영리하셔.
분노한 눈으로 희숙을 쏘아보다가 철은 분함을 참지 못하는듯 한길 한구석에 딩글어져 있는 <철해머>를 마구 돌린다.
그 <해머> 한길 사람들의 머리를 스쳐 휙휙 돌아간다. 모두들 비명을 올린다.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는 쾌재를 부르며 깔깔거린다. 그러나 그 <해머> 공교롭게 두 사람의 머리를 스친다.
이들 또한 기겁을 한다.
미꾸리: (소리친다.) 얘 벽돌아! 그것 그만두지 못하겠냐?
미꾸리 덤벼들어 철을 안아 버린다. 철은 미꾸
리와 같이 나둥그라진다. 해머 철의 손에서 남으집 안방으로 날아 들어간다.
<이놈의 새끼> 하며 미꾸리를 쫓는 철. 미꾸리 매춘굴 골목으로 내뺀다. 철 추격한다. 이로써 위기를 모면한 한길 사람들 모두 한숨을 놓고 제대로의 위치로 돌아간다.
정보원 등장. <여보십시오> 하고 양식 목조 건물의 유리창문을 두들긴다. 창문에서 클레오파트라 얼굴을 내민다. 그는 철의 탈선적인 위기를 피해 조금전에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 지금 막 옷을 벗으려던 참이다.
정보원: 좀 나오시오
클레오파트라: 왜요?
정보원: 나오면 알 일이요.
크레오파트라: 싫어요. (창문을 닫아 버린다.)
정보원: (실내로 들어가) 이 값진 가구들은?
크레오파트라: 빈 집에서 훔쳐왔을까봐 그러슈? 남의 인격을 무시마슈 부산으로 피난간 내 친구가 맡겨놓고 간 거요.
정보원: 부인은 왜 피난 안 가셨지?
클레오파트라: 가건 말건 그건 내 자유가 아뉴? 국민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보장됐을줄 아는데요.
정보원: 같이 가요. 잠깐
크레오파트라: 간밤에 그 소매치기 사건 때문에? 난 싫어요. 그따위 더러운 혐의는 받고 싶잖으니까!
정보원: (위협적으로) 정말 안 갈테요? (달래듯이) 갑시다. 순순이 타이를때에…….
클레오파트라 할수 없이 정보원에게 연행되어 퇴장. 소장을 위시한 이웃 사람들 수상한 듯이 그 뒷모양을 바라본다. 때마침 미꾸리, 철에게 쫓겨서 나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주춤 선다.
철: (바라보며) 웬 일이야?
미꾸리: ……. 글쎄(속이 집히는 바 있는듯 별안간 당황해지며 자기집으로 발끝을 돌리려 한다.)
철: 어딜 가요? 같이 따라가 보잖구…….
미꾸리: ……. 가 가만있어. (현관 안으로 초조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철: 왜 저렇게 꽁무니를 빼? (창문을 열고 안을 향해) 미꾸리형. 같이 가 봐요. (안에서 대답이 없다.) 미꾸리형!
미꾸리: (안에서) 가만 있으라니까!
철: 저런 겁쟁이! 나 혼자라도 가 봐야겠군. (클레오파트라가 끌려나간 쪽으로 나가려 한다.)
희숙: (철의 앞을 막아선다.)
철: 왜 이래?
희숙: 가지 마아. 클레오파트라란 가까이 했다간 큰일나. 난 여기 앉아 허구한 날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까 잘 알아. 그는 아주 나쁜 여자야.
철: 나쁜게 어떻단 말야? 난 나쁠수록 좋아. 나쁘기 때문에 사귀는 거야. 클레오파트라 보다 더 나쁜년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난 그년한테 빠질테야? 허지만 이 지구상엔 너같이 나쁜년은 없을걸 六.二五(육.이오)전에 넌 내게 뭐라구 맹세했지?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겠다구? 그 소린 아직 내 귀에 쟁쟁해. 그런데도 넌 날 배반했어. 다른 사낼 맨들었단 말야. 이런 나쁜년이 누구더러 나쁜년이래?
희숙: 철이 나같은 거야 어떻건 철이만은 맘을 바로잡아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하던 그림 공부도 계속해야잖아? 문화단체며 대학들이 모두들 피난지에서 활동을 개시했대. 제발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하며 돈뭉치를 철이 손에 잡혀 준다.)
철: 이건?
희숙: 몇 푼 안되지만 노자로 써 줘.
철: 아니 이게 날 놀리는게 아냐?
희숙: 제발 얕은 생각 먹지 말고 맘을 크게 잡아 인생의 최후 목적이 뭐라는걸 잊지 마아. 이 소린 六.二五(육.이오) 전에 철이가 내게 들려준 소리 아냐?
철: 그런 소릴 어찌 감히 네년의 그 향내 나는 입으로 (갑자기 절규하다시피) 에이 양의 껍질을 쓴 여우! 위선자! 갈보! (하며 뺨을 갈긴다.)
희숙 얼굴을 싸고 돌아서 느끼더니 젖가슴이 별안간 결리는듯 움켜잡고 꼼짝 못한다. 가까스로 기어서 이층 자기 처소로 올라간다.
삼룡: (분함을 참지 못해 철에게 대들며) 이자식아! 왜 약한 여자한테 손찌검을 하며 그 무슨 그런 더러운--
철: 아니 요놈이 바로 저년의 샛서방이 아냐?
삼룡: (억울해서 글썽거리며) 이런! 희숙인 내 의 누님이야.
철: 의누이?
삼룡: (자신있게) 그래!
철: 하하하……. 제 동생의 남편을 데리고 사는 년을 나는 봤고 사촌끼리 연애를 속삭이는 것도 봤다.
이렇게 환장을 한 세상에 의동생놈 쯤야……. -
삼룡: 이런 추잡스런! 희숙이가 얼마나 깨끗하다고 그따위! (머리로 철을 받으려 한다.)
철: (붙들며) 잘 만났다. 너 바른대로 토해라! 흥분하지 말고 예 앉아서--
삼룡: 우리 누나는 네놈을 한번도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네놈은 우리 누나를……. 이런! (글썽거리며 철의 멱살을 틀어 잡는다.)
철: 네놈이 날 칠테냐?
삼룡: 네까짓게 사내꼬부랑이냐? (당수의 공격적 자세를 취한다.)
철: 도적놈이 날 쳐죽이려는 격이로구나! 이런 뻔뻔스런……. (삼룡을 밀어버린다.)
삼룡 야대를 안고 쓰러진다. 다시 대드는 삼룡을 철이 메다친다. 소장 나타나 깜짝 놀라서 철을 막아서며 <이놈아 삼룡아 내빼라! 얼른!> 삼룡을 골목길로 도망시킨다. 철은 삼룡을 추격한다.
장: 一二(일이). (벽돌 건물의 이층)
최정애와 희숙이, 희숙은 점가슴을 안고 엎디었다.
정애: 어떻게 해? 의사를 부를까?
희숙: (가슴을 움켜잡은 채) 안돼! 언니, 안돼!
정애: 그 가슴의 상처가 탄로날까 봐! 뵈면 어때? 의사한테야…….
희숙: 싫어! 싫어! (옷을 깊이 여민다.)
정애: 허긴 뵐 만한 의사도 없긴 하지만, 이 전투지구엔…….
방문이 열리어 삼룡이 들어선다. 숨이 턱에 닿았다. 철에게 쫓겨 오는 것이다.
삼룡: 누나. 그 개망나니 상관도 말라니까. 왜 괜히 말을 걸어 가지고 이 봉변이야? 하지만 걱정 마아. 이 원수는 내가 갚고야 말테야 시이! 그까짓 놈팽이! 내일부터 나도 당수 배울테니까! 석달만 지나면 그까짓것 두서넛쯤 단박야. 이래뵈두 내가 얼마나 놀았다구 六.二五(육.이오)전에 꽤 날쳤어 인천서.
정애: (이마의 상처를 들여다 보며) 뭐야? 흘러내리는게…….
삼룡: (슬쩍 씻는다. 손에 시뻘건 피가 묻는다 놀라서) 피다! 음. 그 덥치가 이랬군! 허지만 괜찮아 고약이나 붙이면 단박야.
정애: (이마에서 또 피가 흘러 내린다.) 가만 있어. 약이나 바르게 (약상자를 찾아낸다.)
삼룡: (정애의 손을 치우며) 피가 흘러서 죽으문 어때요?
정애: 가만 있으라니까!
삼룡: 난 알고 싶어. 희숙이 누나가 정말 그 놈팽일 사랑하는지?
희숙: 애구 그만 해! (하며 소리친다.)
삼룡: (시무룩해지며) 역시 좋아하는게군? 그 메주가 바로 이걸써 보낸 작자 아냐?
(책상머리에 있는 정철의 수상록을 들어 보인다.)
희숙: 앗어! (얼른 빼앗어 무릎 밑에 감춘다.)
삼룡: 뭐라더라! 우이동 멀다더니 당신과 걷는 길은 지척이구려? 에이 악질!
희숙: 관 둬!
삼룡: 난 다알어! 그런 연애편질 써서 누나를 꾀려다 안 되니까. 저 앞에 사는 예편네 소매치기 한테 붙었지? 에이 사깃군! (한길 쪽을 향해 퍼붙는다.)
희숙: (가슴을 움켜잡으며) 아야야……. (드러 눕는다.)
삼룡: 왜 가슴이? 아까 맞은 덴 뺨인데…….
정애: (희숙을 붙들어 주며) 희숙이 앞에선 그 자의 소린 하지마아.
삼룡: 왜?
정애: (가슴을 가리키며) 자꾸 결리지 않어.
삼룡: 그럼 누나는 역시 그 메주를…….
정애: 가서 쉬어.
삼룡: (정애가 싸매어 준 붕대를 심술스럽게 잡아 뜯으며) 가죠! 갈 테예요! (화가 나서 급히 퇴장)
정애: 참 죄없는 아이지?
희숙: 언니 나 좀 누울테야.
정애: (붙들어 주며) 작은 아씬 날 원망하지? 정말 미안 해! 작은 아씨한텐 허지만 아무리해도 난 철일 용서할 수 없어 오죽하면 어린 달이까지 그를 무서워하는 나머지 저렇게 병이 났겠어. 우리가 그를 미워하는건 이북으로 납치된 오빠에 대한 의린 줄 난 아니까?
희숙: 언니 설혹 언니의 충고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현재의 나로서는 누구하구건 결혼할 수 없어.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면 맘이 조금만 상해도 이렇게 가슴이 쑤시겠수? 난 폐물야. 완전한 폐물야 이런 꼴로 결혼한대야 남의 걱정거리 밖에 더 돼? 언니 조금도 불안하게 생각지 마아. 나는 언니와 같이 납치된 오빠가 살아 오기만 기다릴 테니까.
정애: (감격한듯 희숙의 손을 꽉 쥐어 준다.)
희숙: 허지만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철이 아까워. 제 갈 길을 제대로만 걸으면 정말 보람있는 일을 해 낼 인물인데 저렇게 악질한테 걸려서 타락해서야 되겠수? 어떻게 해서라도 저 여우의 아가리에서 빼어내야겠는데 언니 누구건 사람을 넣어서 철이의 정신이 돌아오도록 충고해 줄 수 없을까? 제발 소원이야.
정애: 그런건 잊어 버려요. 생각하믄 가슴만 결려.
달이: 어머니 조울려. 자장가 불러 주어 (하며 정애의 무릎에 눕는다.)
희숙: 언니 재워 주구려.
정애 자장가를 조용히 불러 준다.
장: 一三(일삼). (한길)
저녁
삼룡, 한길 중앙에 폭격으로 허리가 부러진 전주에 몸을 기대고 섰다. 분해서 입술을 깨물고 있다.
멀리서 여전히 포소리. 간간히 콩볶듯하는 기관총 소리!
이층에서는 정애의 자장가 소리 새어 나온다.
삼룡. 아무리 생각해도 참을수 없다는 듯이 팔을 걷어 올리며 양식 목조 건물의 현관 문을 발길로 찬다.
삼룡: (소리친다.) 이 악질! 사깃군! 연애박사 홀리개! 이리 나와! 내가 네놈한테 질 줄 아냐? 어림없다. 인젠 죽자 사자다!
(웃통까지 벗는다. 당수 연습을 한다. 대판으로 싸울 판이다.)
정보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도적질한 장물을 감추고 있던 미꾸리. 무슨 일인가 하고 한길로 나와 본다.
미꾸리: (삼룡임을 알고 안심하며) 이자식아 미쳤냐? 그 무슨 지랄 이냐?
삼룡: 그 자식 내 놔요. 그 새로 온 건달 말야.
미꾸리: 그러지 않아도 네 놈을 찾아 다닌다. 붙들려믄 너 없어져
삼룡: 죽어도 좋아! 어딨는지 대 줘! 끝까지 해 볼테야
미꾸리: (어이없이 웃으며) 너 그따위 똥배짱 부리지 말구…….
삼룡: 난 아저씨를 사람으로 안 봐.
미꾸리: 응?
삼룡: 제 마누라의 입을 맞춰도 못 본 체하는 그런--왜 그 나쁜 놈을 못 내쫓는 거요? 내 아버지도 계모가 놀아나는 걸 막지 못해 망했어. 그래 나까지 이 꼴야.
미꾸리: 얘 헛소리 하지 말구 정보원 있는데나 좀 갔다 오너라. 자아 심부름 값이다. (돈을 내주며) 이집 아주머니 거기 있나 없나 창 틈으로 보고 오란 말야. (삼룡 돈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거 안 뵈냐? 이자식아!
삼룡: 관 둬! 난 그자식 찾아서 혼을 내 줄테야! (막대기를 주어 들고 퇴장)
미꾸리: 하하하……. 자식도! 하하하
로오즈매리 등장. 전재민 구호소 소장에게 매달려 <재즈 송>을 흥흥거리면서
미꾸리 현관을 잠그어 놓고 퇴장.
로오즈: 서울 장안이 왜 이렇게 좁아? 저녁 먹고 내내 걸어도 개미 쳇바퀴 돌 듯이 골목에서만 뱅뱅 도니…….
소장: 늦잖었어? 홀에 들어가 보지.
로오즈: 지긋지긋해. 지옥도 이렇게 싫진 않을거야.
소장: 큰일 났는걸. 직업이 그렇게 냄새가 나서…….
로오즈: 세상에선우리 같은 계집을 <택시>라고들 부른다구요. 운임만 내면 아무나 태 준다는 뜻이래. 참 기맥힐 노릇이지.
소장: 틀렸어! 로오즈매린…….
로오즈: 왜?
소장: 그렇게 높이 올라 앉았으문 누가 요조숙녀로 본대?
로오즈: 내겐 꿈이 있으니까--
소장: <택시>가 아니고 남의 <자가용>이 되겠다는 꿈이겠군?
로오즈: 물론이지 내가 홀에 나가는것두 내 꿈을 위해서야 . 부산 가서 방 한칸이라도 얻을 밑천을 벌려고 그래. 알뜰한 신랑하나 골라 잡아 그 방에서 행복스런 가정을 이루자는 거지.
소장: 야아! 그 꿈 원대한데!
로오즈: 소장, 예가 뭐가 좋아. 부산 가 같이--
소장: 싫어!
로오즈: 왜?
소장: 내게도 원대한 꿈이 있어!
로오즈: 그게 뭔데?
소장: 배를 한척 사는거야.
로오즈: 부산이 아니구 더 멀리 내빼자는 수작이군 그래?
소장: 천하에 예측 못할건 전쟁야. 더구나 현대엔 기상천외한 신무기들이 뒤이어 나오니까. 언제 전국이 어찌 뒤집힐지 알아?
로오즈: 그런 무서운 소린 그만 둬! 그래 어딜 가?
소장: 바다는 넓겠다. 배만 있으면 어딘들 못 가 남양이구 하와이구…….
로오즈매리, 홀에 같이 갈 애들 없을까?
로오즈: 글쎄
소장: 배 사는데 합자할 수 있는 애들 모아 봐.
로오즈: 날 공짜로 실어다 준다문 벗고 나서서 돈을 모아 보지.
소장: 그야 물론.
로오즈: 정말?
소장: (로오즈매리를 끌어 입을 맞춰 주고) 약속한 표시야 못 믿겠거들랑 또 한번! (또 키스해 준다.)
로오즈: (만족해서) 호호호……. 멋진데!
소장: 얼른 가서 활동 해. 소문나면 너도 나도 할테니까. 귀찮어. 그러니 은밀히 해요.
로오즈: 오오케!
로오즈매리 경쾌하게 뛰어간다. 소장도 성취될 앞날의 행복에 만족한듯 휘파람 삼룡이 막대기를 들고 철을 찾아 씩씩거리고 뛰어 들어 간다. 소장과 부딪힌다.
소장: 이자식아 벽장 속에나 숨어 있잖고 어딜 다녀? 그자 한테 붙들려서 뼉다구 부러질려고
삼룡: (퉁명스럽게) 맞아 죽는게 차라리…….
소장: 왜?
삼룡: 제 월급이나 심해 주쇼.
소장: 어쩌자구?
삼룡: 여긴 못 있겠어요.
소장: 이자식이 밑도 끝도 없이--
삼룡: 희숙이 누나는 날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걸요. (글썽거린다.)
소장: (크게) 하하하……. 귀하신 도령놈께서 실연을 당하셨구만! 이자식아. 꼴 보기 싫다! 들어가 자빠져 자기나 해라! (발길로 찬다. 구호소 안으로 쓰러진다. 삼룡 문을 차고 뛰쳐 나오려 하니까 밖에서 문을 걸어 버린다.)
안에서 발악하는 삼룡의 소리!
이 때에 클레오파트라 등장. 미꾸리와 같이 다음의 대화를 은밀히 속삭이며…….
미꾸리: 그 짜브가 그렇게도 우리를 의심해?
클레오파트라: 들통났어.
미꾸리: 맘 턱 놓고 이젠 딱 잡아떼 꼬리가 잡힐만한 건 내가 죄다 치워 버렸으니까. 클레오파트라 없는 새. (은근히) 그 다이야반지 셋은 부엌 찬장 밑에 밀어 넣어 놓았어.
(허리가 부러진 전주 뒤에 숨어 있던 소장. 이 대화를 엿듣자. 되었다가듯 감격하다가 전주와 함께 길바닥에 쓰러진다. 미꾸리와 클레오파트라 깜짝 놀란다.)
소장: (당황하여) 두 분의 오시는 소리가 나기에 무슨 소식이나 얻어 들을까 하고 집에서 나오다가 그만……. 헌데 이 전주가 이렇게 골병이 든 줄은 몰랐어.
삼룡: (갇힌채 문을 차고 소리 지른다.)
소장: 이놈의 새끼야. 가만 있어!
클레오파트라: 우리의 하는 소릴 엿들었겠구려?
소장: 천만에요. 도대체 뭐래요? 붙들어 가서-
철 매춘굴 골목에서 헐레벌떡 거리고 등장.
철: 그 어린 새끼 어딨어?
삼룡: (안에 갇힌채 문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이 문 좀 열어요! 좀 열어요!
철: 그놈의 소리 아냐? (삼룡을 찾아 간다.)
클레오파트라: (붙들며) 이 봐! 제 예편네가 이렇게 망신을 당해도 모른체 하고 돌아다니는게 어딨어?
미꾸리: 소매치기 혐의를 받았다누 원 기맥혀서--
철: 가만 둬! 이놈의 세상 것뫼 놓고야 말 테니까!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어. 의리고 체모고 정조고 뭐고 다 썩었어.
제보다 나이 어린걸 의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