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영성
한낮을 뜨겁게 달군 태양이 태기산 꼭대기 저 너머로 몸을 감추면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만휘군상(萬彙群象)을 집어삼킨다.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이 켜지고 어둠으로 불편할 사람의 길을 안내한다. 어두워진 교회 로뎀나무 카페 앞에도 하나둘씩 조명등이 들어오면서 그 앞에 우뚝 서있는 서양 측백나무 골든스마라그와 블루헤븐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예쁘게 단장된 카페를 포근히 감싸듯이, 때론 근위병처럼 지킴이를 자처하며 우람하나 우아하게 서 있다. 어둠에 밀려난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제 집으로 사라진 이곳엔 적막감이 감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호랑이 없는 숲의 여우처럼 사람 없는 이곳에다 제 세상을 만드느라 분주한 녀석이 있다. 매일 해가 진 초저녁 시간이면 자기들끼리 합의한 측백나무 사이를 자신의 활동 공간으로 삼고 열심히 집을 짓는 거미들이다. 땀 흘리는 수고를 떠벌리며 자랑할 만한데도 녀석들은 소리 내지 않는다. 여전히 어둠 속 고요함을 깨지 않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안식을 돕는다. 거미는 다리(肢)가 마디(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절지동물(節肢動物)로 분류되고 머리에 뿔(角)이 있고 집게(鋏) 같은 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협각류(鋏角類)에 속한다. 여기에는 투구게, 전갈, 진드기 등이 포함된다.
거미집은 항문 근처에 있는 수백 개의 미세한 관으로 구성된 2~3쌍의 방적돌기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다. 이 실이 복부의 실 샘에 연결되어 그 안에 들어 있던 액체상의 단백질 분비물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공기와 닿아 굳어져 생긴 줄이다. 강도가 쇠줄보다 질기다. 거미는 습성에 따라 정주성(定住性), 배회성(徘徊性) 거미로 분류되는데 전자는 한 곳에 정착하여 움직이지 않는 습관을 말하며 후자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습성을 뜻한다. 카페 앞 측백나무에 그물을 치는 녀석들은 정주성 거미다. 이들은 매일 어김없이 높이도 제 각각인 이 나무 사이를 제 영역으로 삼고 마음껏 그물을 친다. 이런 거미의 주된 먹잇감은 곤충인데 날개 짓하다가 재수 없이 줄에 걸려 인생을 종 치는 해충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쳐 놓은 이 그물에는 주로 모기와 파리가 포획된다. 보기에 징그럽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거미가 발견된다는 건 먹을 만한 곤충이 근처에 풍부히 서식하고 있다는 말이고 그 개체수를 거미가 줄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함부로 거미를 제거했다가는 해충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된다. 알고 보니 거미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곤충이구나 싶다. 흔히 나쁜 사람을 비유할 때 거미를 들먹인다. 즉 벌은 인류생존의 필수적인 곤충으로 잘 알려진 유익충이라서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다. 벌 같은 사람이란 말은 최고의 칭찬 언어다. 개미는 이익도, 손해도 끼치지 않는 곤충으로 그저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 근면과 성실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어서 개미 같은 사람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미는 남을 죽여 자기 배를 채우는 곤충으로 인식됨으로 나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을 이롭게 하려고 해충만 잡아먹는 거미의 입장에서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매일 카페 앞을 지나다보니 자연히 그러한 거미의 하루일상을 관찰하다가 문득 믿음의 사람에게 주는 교훈을 발견했다. 즉 기다림이다. 거미는 집을 짓고 밤새 기다린다. 새벽에 그 앞을 지나면 밤새 허탕 친 그 집의 사정을 목도한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자취를 감추다가 저녁에 또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거미는 한낮에 사람들이 철거하여 풍비박산(風飛雹散) 내버려 폐허가 된 자기 집터를 보고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또 집을 짓고 막연한 기다림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어쩌다 해충이 와서 걸려주면 수지맞는 날이다. 그날은 그동안 부풀어 있던 불평의 풍선을 터트리고 감사의 애드벌룬을 높이 띄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기다림의 영성,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그 신앙을 그 녀석이 알려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다림이 서투르다. 준비도 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행이 심리 저변에 깔려 있음이다. 한 번에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는 이런 요행은 게으름을 낳고 부정을 키우며 불행을 제조한다. 이런 풍조가 만연한 현대의 사람들이 복권에 목을 매고 도박장 길을 폐쇄하지 못하는 이유다. 잔뜩 겉멋이 들어서 거죽만 그럴듯하면 된다는 허풍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열기구 같다. 남의 실력으로 내 명성을 쌓고, 남의 수중의 재물로 내 배를 채운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살후 3:10)는 말씀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먹고 마시는 사회가 된 듯하다. 어느 지인이 ‘반박불가’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내왔다. 한 고등학생에게 미래의 꿈을 물었더니 그는 주저 없이 국회의원이라고 대답했다. 이유를 묻자 일하지 않고도 돈 많이 버는 직업이기 때문이란다. 요즘 누구나 공감하는 웃픈 영상이다. 이런 현대판 양상군자(梁上君子)가 권력의 언저리에 포진해 있으면 국운이 위태롭다. 하나님은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말씀하셨다. 열심히 집을 짓고는 이제 하늘만 바라보며 그 응답을 기다리는 거미의 일상은 천하미물이지만 하늘의 섭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기도도 안 하고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못난 사람보다 나아 보인다. 만물의 영장이 이런 거미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진정 그리스도인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예레미아애가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