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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수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의 서문-이어령/이광수 우덕송과 죽음에 대 하여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애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눔ㅅ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체가 죽어 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죽음에 대하여>
삶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두 가지로 나누었고, 사람이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파괴요, 공격의 두 가지 경향도 모두 이 죽음의 본능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최신해의 「사람은 왜 자살을 하는가」 에서
몽테뉴는 「죽음에 대하여」에서 ‘만일 내가 태어난 고향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기 두려워하거나 내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죽는 것을 괴롭게 생각한다면 나는 프랑스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가 되든 죽음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죽을 자리를 택해야 한다면 침대나 말 위에서 보다는 집을 나가서 식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음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삼 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법정의 「무소유」에서
<우덕송>이광수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농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소는 어떠한가. 그는 말의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스러움, 곰이 우직하기는 하지마는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이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제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매’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근슬근 새김질을 하는 양은 성인이 천하사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장난꾼이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그가 한 번 성을 낼 때에 ‘으앙‘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름뜨고 뿔이 불거지는 머리가 바수어지는지 모르는 양은 영웅이 천하를 취하여 대로하는 듯하여 좋고, 풀판에 나무 그늘에 등을 꾸부리고 누워서 한가히 낮잠을 자는 양은 천하를 다스리기에 피곤한 대인이 쉬는 것 같아서 좋고, 그가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창생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내가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